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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 책에서 길을 묻다 - 책에서 지혜와 삶, 꿈의 멘토를 만나다
김애리 지음 / 북씽크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책 속에서 인생과 삶에 대한 지혜와 용기, 꿈과 도전, 희망과 열정의 멘토를 만날 수 있는 즐거움을 십대 청소년에게 알려주고 싶어 이 책을 썼다는 저자는 이미 <책에 미친 청춘>이라는 책으로 출판계에 알려진 책 사랑 작가 김애리 님의 신작입니다.

서른 전에 천 권의 책을 읽겠노라는 십대 시절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낸, 작가의 책에 대한 깊은 사랑이 <책에 미친 청춘>에 이어 이번에는 십대라는 싱그러운 독자를 향해 독서에세이로 출간된 셈이죠.

 

 

작가가 특별히 십대를 위해 선별한 40여 권은 '문학/인문/경제/시/전기/외국어/자기계발' 에 이르기까지 각 분야에서 오랜 세월 사랑 받아온,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만한 인생의 지침서 같은 책들입니다.

세계를 무대로 꿈을 펼칠 십대들에게 들려주는 한비야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를 비롯해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삶의 여정을 다룬 <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 가난 때문에 포기했던 공부를 뒤늦게 도전해 서울대 수석이라는 합격통지서를 공사판에서 전해받은 장승수의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어학연수 한 번 안 다녀왔음에도 토종 영어스타강사로 활약하고 있는 이보영의 <영어 공부 비밀노트> 등은 한참 학업 스트레스에 빠져있는 십대들에게 도대체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어떤 자세로 해야 하는지, 공부도 재미있는 일이 될 수 있는지, 꿈을 이루는데 지식 탐구가 어떤 도움이 되는지 등을 거부감 없이 보여줍니다.

 

 

또한 인생을 지혜롭고 가슴 따뜻하게 살아가는 데 정서적 도움이 될 만한 책들로 미치 앨봄의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공지영의 <네가 어떤 삶을 살아가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필립 체스터필드의 <내 아들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 숀 코비의 < 성공하는 10대들의 7가지 습관>, 이민규의 <네 꿈과 행복은 10대에 결정된다> 등 제목만으로도 무엇을 전하려는지 유추가 가능한 책들이 소개됩니다.

 

 

개인적으로 지난 해에 읽고 또 읽어 그 감동의 깊이와 여운을 오래도록 가슴에 품고 지내던 책, 안소영의 <책만 보는 바보>는 책을 벗삼아 책 속에서 인생을 살아갔다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책에 푹 빠져 살아간 조선후기 실학자 이덕무에 관한 이야기로 십대에게 가장 추천해주고 싶은 책 일순위랍니다.

 

 

이밖에도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와 다나카 유의 <세계에서 빈곤을 없애는 30가지 방법>, 하퍼 리의 < 앵무새 죽이기>,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등은 지구 반대편의 빈곤 문제와 사회 속 소수자들의 소외 문제를 네 문제가 아닌 우리 문제로 함께 고민해볼 수 있는 책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실패가 패배가 아닌 성공을 향한 무수한 도전임을 보여주는 볼프 슈나이더의 <위대한 패배자>나 월터 아이작슨의 <스티브 잡스>는 수많은 도전과 가능성의 기회를 열어놓고 있는 십대에게, 원하는 결과보다 원치 않는 과정 속에서 겪게 되는 실패의 좌절을 지혜롭게 이겨내는 방법과 실패의 가치에 대한 역설을 담고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자아의 정체성을 찾아가기 위해 무수한 질문을 던지며 어른들의 세계에 살짝 발 담가보고 싶어하는 십대에게 저자는 드류 레너의 <나를 사랑하는 기술>, 루이스 세풀베다의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 포리스트 카터의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등을 들려주며 청춘을 지나는 과정에서 누구나가 길을 잃고 방황할 수 있음을, 다름을 인식하는 순간부터 개성을 찾을 수 있음을 잔잔하게 보여줍니다.

 

 

 

 

애벌레의 '십대에게 부치는 말'

 

저자가 소개한 책들을 보니 읽은 책 반, 안 읽은 책 반인지라 사십대에 접어든 독자임에도 십대와 같은 기분으로 몇몇 권들은 꼭 챙겨보고 싶은 욕심이 나네요.

이 아름다운 책들을 내가 십대에 만날 수 있었다면,이라는 아쉬움이 드는 책들이 여럿이라서요.

수능과 대입이라는 억눌린 현실 속에서 과연 십대들이 시험에도 나오지 않을 독서에 얼마나 매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는 푸념 섞인 반응이 나올 수도 있으나, 일부의 성공만이 아닌 모두의 성장을 위해, 그리고 삶의 진지하고도 유쾌한 가치를 찾기 위해 고민하는 분들이라면 이 책이 하나의 멘토 길잡이가 돼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됩니다.

굳이 어떤 책을 읽어야하는지에 대해 힌트를 얻기 보다 십대에 읽은 책이 그들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우선 고민해본다면 교과서 대신 책을 펼치는 일이 그저 무겁지만은 않을 겁니다.

수많은 가능성과 눈부신 열정을 지닌 십대들에게 이 책을 쓴 저자와 같은 심정으로 책 속에서 길을 묻고 책 속에서 다양한 길을 만나 각자가 오래도록 걸어갈 예쁜 길을 조금씩 조금씩 만들어가면 좋겠습니다.

저자의 또 다른 책, 함께 보면 좋은 책

▲ 저자에 대한 소개들을 보다 어디선가 읽어본 듯한 생각이 들어 책꽂이를 쭈욱 둘러보니 한쪽에 <책에 미친 청춘>이 꽂혀있더군요. 천 권의 책을 서른 전에 읽었다는 독서량에 대한 놀라움보다 얼마나 책을 좋아했으면 그런 목표를 설정해두었을까? 그 순수한 청춘의 열정에 박수를 보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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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는 왜 달리기 경주를 했을까? - 청소년, 인문학에 질문을 던지다 꿈결 청소년 교양서 시리즈 꿈의 비행 1
김경집 외 지음 / 꿈결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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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에서 청소년들에게 세상을 보는 다양한 관점과 지혜로운 안목,

삶의 올바른 가치 추구와 더불어 함께 나누는 행복의 조건 등에 대해 국내 저명한 인문학 저자들을 모시고 강연한 내용을 재편집한 책이다.

다수의 불특정한 독자를 대상으로 선(先)집필 했다기보다 현장에서 직접 강의를 듣는 청중을 대상으로 진행된 원고를 다듬어 후(後) 집필한 책이니만큼 눈으로 보기보다 귀로 듣는 듯한 생생한 현장감이 또다른 친밀감으로 우선 다가온다.

 

특히 1부 김경집의 '윤리'편은 '윤리'라는 단어가 주는 경직되고 부자유스러운 주제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토끼와 거북이>라는 대중적 우화를 큰줄기로 해 정의란 무엇이며, 공리주의의 한계는 무엇이고, 생활 속 집단따돌림이나 안락사 등의 사례를 윤리라는 관점에서 어떻게 바라보고 대처해야 하는지를 명쾌하고도 재미있게 이끌어준다.

큰 줄기를 바탕으로 이어지는 잔가지들의 풍성한 예화가 전체적인 나무의 밑그림을 구체적으로 완성해가는 구조가 독자의 머리 속에 함께 그려지고 있음도 책에 빠져드는 즐거움 중 하나다.

현장에서 오고가는 강사와 학생들 간의 순발력 있는 질문과 대답은 유머를 넘어 재치로, 학문을 넘어 가치관으로 이어져 새삼, 깨어있고 열려있는 우리의 청소년에게 무한한 희망과 기대를 갖게 만들기도 한다.

 

 

p12. 떡을 공평하게 둘로 나누는 방법 - 한 사람에게 자를 권리를 주고 다른 사람에게는 선택할 권리를 주는 겁니다. 떡을 자르는 사람은 최대한 똑같이 나눠야 자신이 손해보지 않을 걸 알아요. 그러니까 최선을 다해서 둘로 나눌 겁니다. 상대방도 마찬가지죠. 자신이 나눌 기회는 갖지 않았지만 선택은 직접 할 수 있으니 눈 동그랗게 뜨고 더 커보이는 걸 고르면 되거든요. 그러면 아무도 그 결과에 대해서 불평하지 않겠죠?모두에게 공정한 셈이죠.

문학적 글쓰기에 대해 강연한 소설가 이승우 님의 <문학소녀, or문학청년에서 벗어나라>는 주제는 감상적 글쓰기에서 벗어난 자기만의 세밀한 관찰과 묘사를 통한 글이야말로 아는 것을 들어본 대로 풀어쓴 구태의연한 글이 아닌, 본 것을 느끼는 대로 쓴 자기만의 개성적인 글이 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p69.당구를 쳐 본 사람은 알겠지만, '스리쿠션'이란 게 있어요. 공으로 직접 다른 공을 맞추면 안 되고, 벽을 맞춘 다음 공을 맞춰야 점수로 인정되지요. 문학적 글쓰기란 게 그런 거예요. 직접 맞추는 건 쉬워요. 확실하고.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다른 데를 거쳐서 가는 거죠. 그래서 '내 마음은 호수요'라고 표현하는 거예요."

개인적으로 무척 재미있게 책장을 넘긴 파트는 3부 박승천(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님이 강연한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에게 진리를 묻다> 편이다.

이미 고등학교 윤리시간에 소크라테스부터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까지 그 명성과 학문적 이론을 배웠음에도 이렇다 깊이있게 정리되지 않았던 부분을 작가가 옛날이야기 들려주듯 아주 쉽고 재미있게 풀어냄이 인상 깊었다.

주입식 학문이 아닌, 삶과 진리에 대해 우리보다 먼저 고민했던 고대의 지성인에게 듣는 깨우침의 시간이랄까?

 

 

p138. 플라톤은 말합니다. " 저 영원불변한 이데아의 세계를 보라." 그러난 스승 플라톤을 향해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묻습니다. "저 영원불변한 세계만 바라본다면, 이 아름다운 자연세계는 누가 탐구합니까? 왜 여기에는 진리가 없습니까?"

 

우리에게 다소 낯선 학문인 진화심리학자 전중환(경희대 교수) 님이 들려주는 과학 이야기 '진화론'은 대중에게 친숙한 소녀시대 윤아를 예로 들어 진화라는 것이 인류사에서 무엇을 기준으로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를, 포켓몬스터의 단계별 성장은 왜 진화가 될 수 없는지를 설명해준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의 외양뿐만 아니라 마음도 과거에 만들어진 진화적 적응이라는 색다른 해석이다.

무한경쟁의 사회 속에서 고전읽기가 어떤 방향 제시를 해줄 수 있는지를 밝혀준 <맹자를 아십니까>나 지루하고 어렵게만 느껴지던 클래식을 편한 정서로 이끌어주는 <클래식 음악, 어렵지 않아요>를 비롯해 국가 정체성을 논한 <대한민국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맥시코의 여류 화류 프리다칼로와 기형적 발로 변해버린 축구선수 박지성, 발레리나 강수진 씨를 통해 그들의 삶 속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을<삶의 고통을 아름답게 승화시킨 사람들>까지 일일이 소개하지 못한 파트 역시 적극 권할 만한 강의였다.




 

책을 읽고 난 후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학문의 기초는 무엇인지,

수능에 내몰려 10대의 빛나는 시간을 책상 앞에서 보내고 있는 우리의 청소년들이 진정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 짧게나마 고민해본다.

이런 고급스런 강좌(책의 원조가 된)가 지역마다 개설돼 아이들의 건강한 미래를 설계하는 데 정신적 밑바탕으로 다져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꿈같은 욕심도 내본다.

청소년에게 수돗물이 아닌 샘물 같은 가르침을 주고싶다는 욕심이 나도록 만드는 책이다.

 

 

작가의 또 다른 책

김경집,이라는 이름이 귀에 익어 책꽂이를 훑어보니 지난 해에 주문했던 <책탐>의 저자이기도 하다.

아, 마치 외국에서 한국인을 만난 듯한 반가움~~~! ^^

넘쳐도 되는 욕심으로 붙인 <탐하노라~!>는 제목처럼 책읽기의 즐거움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도 권할 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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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날아다니는 철학
정호일 지음 / 리베르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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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식은 탐구하되, 진리는 추구하지 않는 현대인에게......

 

오늘 아침 인터넷 뉴스를 훑어보다가 <우주의 비밀 한국인이 풀다, 세계가 경악!>이라는

기사 제목을 보았다.

스마트폰으로 걸어다니는 인터넷 세상이 가능해지고, 암 치료 연구가 활발히 진행돼 불치병의

영역이 좁혀지고 있는 가운데 과연 인간의 지적 탐구 영역은 그 한계가 어디까지일까?

순간 궁금해졌다.

놀라움을 금치 못할 만큼 세상은 문명의 가속화 속에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반적으로 자살률 또한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삶의 모순을 대변해주는

명백한 하나의 의문점이다.

사람들은 왜 예전보다 더 살기 좋아진,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 , 전쟁과 기아의 공포가 줄어든

오늘날에 스스로가 목숨을 끊는 '죽음에 이르는 병'을 앓고 있는 것일까?

인터넷을 통해 집단자살 카페가 등장하고 성인은 물론이요, 청소년 자살까지 속속 보도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과연 인생의 참다운 의미는 무엇이며, 삶의 목적과 방향은 무엇으로부터 기초해야

하는지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이 책의 제목에 우선 눈이 갈 것이다.

<청소년을 위한 날아다니는 철학>.

철학이 우리가 살아가는 현상 세계 속의 모든 문제를 실질적으로 풀어주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명쾌한 힌트를 주는 것만은 분명하니 말이다.

지나친 추종의 지식 탐구나 맹목적적인 일등주의의 과열 경쟁 속에서 '철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상황임에도 자연스럽게 '정의'와 '도', '진리'를 떠올리게 하는 맨 밑바닥 단어가 철학인 만큼 현재의 문제를 과거 옛 성인과 현인들을 만나 풀어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 같다.

 

 

 

 

2. 당신을 '사이버 운명 게임'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이 책은 기존의 철학서가 보여준 이론적 형식에서 과감히 탈피, 쉽게 읽히는 방식인 소설의 형식을 택해 대중에게 보다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더욱이 예상 독자층을 '청소년'으로 규정해 놓은 만큼 십대에게 친숙한 '온라인 게임'의 룰을 적용해 한 단계씩 철학이론에 접근해나가는 맞춤형 전략도 선보이고 있다.

 

출판사에 다니며 신간출간을 앞두고 있는 평범한 중산층 가장인 현수는 어느 날 아내로부터 딸이 없어졌다는 다급한 전화를 받는다.

그동안 부모 속을 썩인 일 없이 공부든 집안일이든 알아서 척척 어른스럽게 도와주던 딸이 갑자기 사라졌다는 말에 주인공 현수는 최근에 달라진 딸 세라의 모습을 회상한다.

부쩍 비밀이 많아지고 방문을 걸어잠그거나 말을 톡톡 쏘아부치는 등 그저 사춘기적 반항을 보이던 모습이 새로운 의문점으로 다가오자 세라의 실종이 혹 또 다른 문제에서 비롯됐는지 고민하게 된다.

사건의 단서를 찾아내듯 서랍 안에 있던 세라의 일기장을 통해 딸의 최근 심경을 읽어내려가던 중 최근에 세라가 친하게 지내던 친구와의 비틀어진 우정, 친구의 자살 등으로 큰 충격을 받은 상태에서 자기정체성과 양심 등으로 고민하던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이어 딸이 접속했던 '사이버운명게임'을 통해 복잡하고 답답한 현실의 문제를 동서양 철학자들과의 대결을 통해 해결하려던 중 딸이 사라졌음을 확신하고는 딸을 찾기 위해 아버지인 현수가 직접 게임사이트에 접속해 동서양철학자들을 만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각 단계별 상대자로 등장하는 동서양 철학의 거장들과의 승부를 겨누는 토론에서 목차에서 보이는 중요 쟁점 및 사상들이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소개된다.

 

'인(仁)'과 '예(禮)'를 중요시한 생활 속 성인인 공자가 내세운 '성인 정치'나 '진리'와 '정의'를 중요시한 이데아 사상의 철학자인 플라톤의 '철인 정치'는 4.11 총선을 앞둔 시점에는 더욱 새롭게 읽혀지는 대목이다.

남을 지배하고 통치하기 이전에 자신의 수양을 먼저 닦는 '수신(修身)'의 덕목을 강조한 공자의 사상이나 그림자에 불과한 허상에 빠져 실체를 보지 못하는 '동굴의 우상'에서 벗어나 교육을 통해 진리를 깨닫기 바라는 플라톤의 이상은 시대를 뛰어넘어 21세기 우리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가르침이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만나게 된 두 번째 대상은 우주와 자연의 법칙에 대한 깨우침을 안겨주는 검은 물체이다.

우주라는 거대한 대상과 자연이라는 폭넓은 환경은 자칫 현실적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영향 관계가 없어 보이는 분야이나 뒤집어 생각해보면, 삶의 바탕인 인간 세상이 없어진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생존 여부에 절대적 영향을 행사하는 것이므로 긴 안목으로 바라보고 대처해야 하는 대상임을 또 다시 인식하게끔 만드는 대결 구도이다.

인공위성을 쏘고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지구 반대편 소식을 전해들은들 화산, 지진, 홍수, 해일, 태풍, 가문, 눈사태 등 온갖 자연 재해 앞에 인간은 한없이 나약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우주 문제는 지구 문제로, 지구 문제는 다시 인간 문제로, 인간 문제는 다시 내 문제로 귀결되는 셈이니 존재에 앞서 생존을 위한 근원적 탐구 영역임을 부인할 수 없기에 이르른다.

 

현수는 그 다음으로 만물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정령'과 힘의 질서를 내세우는 '제우스'를 만나게 된다.

이 세계에는 온갖 생명체가 어우러져 있어 만약 다른 생명체를 인정하지 않고 짓밟으려고만 한다면 결국 우주의 질서가 혼란해지고 소중한 생명체가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가 될 것이라는 정령의 충고는 인간만을 위한 이기적 개발에 시달리고 있는 환경 파괴 및 약자를 강탈해 강자의 배를 채우려는 현실 세계의 모습과 겹쳐져 흥미로웠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신인 제우스의 존재감 또한 '힘'의 논리를 권력과 폭압이 아닌 질서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바탕으로 정리되어 대화를 나누는 관점이 현실정치 세계에서 보여줘야 할 힘의 균형과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새롭게 조명해 볼 수 있는 관점이 아닐까 싶다.

 

당대의 대 철학가들과의 논쟁이 만만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이버 세계에 갇힌 딸을 구조하고자 온 힘을 기울인 아버지의 정성 때문인지 현수는 아슬아슬하게나마 단계마다 극적 승리를 거듭해나가며 대학자들과의 철학적 논쟁을 계속 이어가게 된다.

신으로부터 벗어나 인간의 특성을 찾아가려고 했던 데카르트와 로크, 니체, 무위 사상을 주장한 노자, 세계를 해석하려는 관점에서 벗어나 세계를 변혁하려는 관점에서 철학에 다가간 마르크스, 인간의 실존적 자유와 책임을 논했던 사르트르, 인간의 노력 자체가 결국 쳇바퀴 도는 방식일 수밖에 없기에 근본 방도로 열반과 열반과 해탈을 주장한 석가모니, 인간의 운명 문제와 홍익인간의 세상을 제시한 단군의 사상에 이르기까지 책 속에 등장하는 인류 지성의 축적된 대화는 시공간을 넘어서 인간 삶의 본질적 문제를 왜?라는 근원적 질문에서 시작해 어떻게?라는 방법까지 아울러 제시해준다.

 

마지막 승부는 21세기라는 현 시점의 참상을보여준 후 '인류의 미래에 대한 공개 대토론회'에

앞서 등장했던 동서양의 성인과 현인들이 모두 등장한 가운데 청중들이 각자가 추종하는 사상가들의 핵심사상을 내세우며 설전을 벌인다. 각자가 옳다고 주장하는 청중들의 난투극 속에서 현수는 인류 지성사의 모든 자양분을 골고루 받아들이되, 자신만은 예외라는 엉뚱한 착각에서 벗어나야 편협된 사고를 유연하게 바꿀 수 있다는 해결책을 내놓는다.

결국 마지막 승부에서도 현수가 이긴 셈이니 곧 딸을 찾게되리라는 기대감으로 독자는 다음 페이지를 넘겨 볼 것이다.

그러나 해피앤딩을 기대하는 독자로서는 아쉽게도 세라는 죽음을 맞게 되고 현수는 딸을 구하지 못한 자책감에 시달리다 딸의 마지막 유언을 되새기며 사이버 운명 게임에서 겪은 내용을 글로 정리하게 된다.

 


 

 

3. 대학생을 위한 걸어다니는 철학

 

사실 독자로서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 책은 청소년층에서 읽기에는 상당히 어렵고 지루하다.

철학에 대한 입문서로 보기에도 다양한 철학사상이 축소된 지면 안에서 방대하게 이루어지다보니 겉핥기 식으로 넘어간 부분도 적지 않다.

고등 교육을 마친 대학생 정도라면 상식과 교양의 범위를 넓히기 위해 혹 꼼꼼하게 읽어볼까?

일반 청소년을 겨냥해 출판한 철학책이라고 보기에는 수준이 높고, 소설류로 분류하기에는 구성이나 문학적 표현이 단조롭다.

모범생이었던 딸의 석연치않은 죽음을 통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자신에게는 예외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겠으나 개인적으로는 설득력이 약해 보이고 각 장면의 말미에 나타나는 승부사의 장면도 긴장감이나 명쾌함이 느껴지지 않아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에게 높은 점수를 주는 요소 중 하나는 인문학이 죽어가고 철학이 구시대의 낡은 유물처럼 여겨지는 시대에 어떻게든 대중에게 가깝게 다가가도록 새로운 시도를 해보았다는 점이다.

사실 이렇게 방대한 철학 사상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즐길 수 있는 자리도 흔치는 않은 법이니 말이다.

철학이라는 단어에 무거움을 느끼는 독자보다는 어느 정도의 배경 지식을 가지고 호기심의 연장으로 다가갈 수 있는 독자에게 이 책을 권한다.

그들이라면 재미있게 책장을 넘길 수 있을 것이다.

 

 

 

 

 

애벌레가 추천하는 초등학생을 위한 철학책 - 철학 나침반

 

사진 용량이 커서 안 올려지네요. ㅠㅠ

 

 

 

▲ 생활 속의 사례들을 들어 과연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합당한지 논리적으로 접근한 실용철학서입니다. 가령, 조그만 것 하나 슬쩍한 것 뿐인데 왜 찜찜한지 도덕과 양심의 기준에서 생각해보도록 하거나 선의의 거짓말이 미치는 영향,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러는 데 뭐 어때? 라는 상활 속에서 발휘되는 준법정신의 힘, 착하면 손해 본다는 세태 속에서 이타주의가 무엇인지 등등.....초등학생 수준에서 재미있고 유용하게 읽어볼 수 있는 책이랍니다. '가나출판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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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 아름다운 공존을 위한 다문화 이야기
SBS 스페셜 제작팀 지음 / 꿈결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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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름'에 대해 인색하고 옹졸한 우리들의 일그러진 얼굴

 

한동안 우리 사회는, 아니 여전히 우리 사회는 '다름'에 대해 인색하고 옹졸하다.

정치색이며 지방색은 물론이거니와 세대에 따른 문화색마저 한쪽으로만 기우는 편협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다름'의 차이를 인정한 다양성 추구보다는 '같지 않음'에서 오는 불편한 심기를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정치, 지역, 혈연, 학연 등으로 나타나는 보편적 유형인 배척과 폐쇄성은 빠르게 변화하는 세태 속에서 암울한 그늘로 여전히 자리잡고 있다.

자국민도 이러할진대 탈북이주민인 새터민이나 중국동포인 조선족, 구소련 지역의 고려인, 그리고 서로 다른 국적으로 가정을 이룬 다문화 가정에 대해 바라보는 시선은 오죽할까?

게다가 이들의 대부분은 가난하고 못사는 나라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라는 선입견 탓인지 대부분의 시선은 곱지 않고, 대부분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2. '우리들의 천국'이 누군가에는 '당신들의 천국'으로 비춰질 수 있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위기의 순간에 봉착할 때마다 우리는 '다름'에서 벗어나 모두가 '하나'가 되는 단초인 '단일민족'이라는 유전학적 자부심을 바탕으로 온 국민이 놀라운 저력을 발휘해 오늘날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으로 세계가 놀랄 만한 성장과 성과를 이뤄냈다.

단군 이래 '단일민족'으로의 자부심과 긍지는 교과서적 세뇌에만 그치지 않고, 역사적 사명감으로 모두를 도취케 해온 것이 사실인 셈이다.

 

최근에는 한류 드라마 열풍에서 K-POP 태풍으로 이어지는 신한류문화 덕에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도 늘고 있으며, 외국 대학에서도 한국어과를 채택한 곳이 증가하고 있고, '아리랑'을 흥얼거리는 외국인의 모습이나 국제 결혼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귀화외국인도 심심찮게 볼 수 있으니 실로 대한민국의 저력은 놀랍기만 하다.

아예 한국에 눌러앉아 한국 문화와 역사에 심취해있는 외국인도 증가하고 있다니 역시나 민족적 자부심에 자연스럽게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단일민족으로 똘똘 뭉쳐있던 우리에게는 낯선 풍경이기도 하나 시대적으로는 자연스러운 흐름이기에 여기까지는 그닥 거부반응이 없을 것이다. 그저 잠시 머무는 이방인이라는 생각 때문일까?

 

그러나 일제의 식민통치와 6.25전쟁이라는 현대사의 쓰라린 상처를 '단일민족'의 우수성으로 극복해왔다고 믿는 우리에게, IMF라는 국가적 난제마저도 전국민이 동참한 금 모으기 운동 등을 통해 슬기롭게 대처해온 우리에게, 월드컵 기간 내내 너나 없이 한민족임을 증명하듯 거리마다 붉은 티를 입고 '오~필승 ,코리아~~!를 외쳐온 '붉은 악마 단체'인 우리에게, 생김새는 물론이거니와 피부색마저 확연히 차이나는 그들은 여전히 타인이다. 한자리 당당히 내줄 수 없는 '다른 나라 사람'일 뿐인 것이다.

빠른 시간 안에 아름답게 일궈놓은 천국은 여전히 우리들의 것이지 남과 나눌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닌 것이다.

 

3. '정'으로 찾은 한국, '적'으로 대하는 한국인.

 

극단적인 표현이기는 하나 코리안 드림을 안고 한국을 찾았든, 국제 결혼으로 인해 한국 국적을 취득했든 '정'으로 한국을 찾은 이들에게 우리는 간혹 '적'으로 구분짓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외국인 근로자가 80만 명에 육박하고, 2011년 기준 전체 혼인의 11%가 국제결혼이며, 2011년 1월로 10만 번째 귀화 외국인을 맞이하게 된 대한민국이지만 이렇게 빠른 속도로 다문화 가정이 늘어가고 있는 추세에도 불구하고 다문화 가정을 받아들이는 의식 구조는 여전히 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2006년 SBS스페셜팀이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귀화 외국인을 한국인으로 인정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73.6%가 '인정할 수 없다'고 답했다 한다.

인정할 수 없는 첫번 째 이유가 피부색이었고, 두번 째는 민족 문제였다고 한다.

특히 미국이나 서구 유럽권 등 선진국에서 온 백인에 대한 거부감보다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또는 우리와 같은 혈통을 지니고 있는 조선족 등 후진국의 이미지를 안고 있는 약자에게 우리 사회는 더욱 냉엄하다는 것을 책을 통해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다문화 현상에 대한 부정적인 표현은 도를 넘어서 '한국 정부가 세계의 쓰레기를 다 모아 놓고 있습니다'라는 글을 올리고, 국가 이름에 빗대어 외국인 근로자를 '파퀴벌레(파키스타인)', '방구(방글라데시인)'으로 비하하거나 농촌 총각에게 시집 온 국제 결혼을 '매매혼'으로 매도하는 등 극단적인 인식을 보이는 이들도 있다 하니 충격적이다.

다름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는 없어도 우리가 영화에서 보아온 'KKK단(백인우월주의자들이 흰 고깔을 얼굴에 쓴 채 흑인을 린치하는 장면)'과 별 다를 바 없는 극단의 배척을 보인다면 그들에게도 우리는 살아남기 위한 공격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92년에 일어난 LA 폭동이나 지난 해 전 세계를 놀라게 한 노르웨이 테러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 인종차별의 피해가 어떤 양상으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지 우리는 지켜보아 왔기에 잘 안다.

그리고 지금의 우리 사회는 과거 '피해자'에서 현재 '가해자'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처해 있으므로 더더욱 이 문제를 '민족'이나 '혈족'으로만 국한 시킬 수 없는 것이다.

 

 

 

4. '박힌 돌'에 힘없이 밀려나는 '굴러들어온 돌'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 빼낸다'라는 속담이 있다.

'내 것을 튼튼히 지키지 않으면 밖에서 들어온 것에 밀려날 수 있다'는 경계의 의미로, 종종 문화적 주체성이나 자문화 애호사상으로 쓰이는 말이다.

그러나 굴러들어온 돌이 항상 무용지물이자 골칫거리가 되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아무도 채우려하지 않는 빈 틈에 들어와 더욱 튼튼하고 아름답게 빛내줄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아쉬운 점은 익숙하게 세뇌된 문화적,인종적 편견 탓인지 굴러들어온 돌을 너무도 쉽게 차버린다는 점이다.

 

다음은 이 책에서 발췌한 '단일민족이라는 한국인의 의식 구조가 지닌 단단함에 상처입은 귀화한국인들'의 몇몇 사례이다. (귀화 이전 해외근로자 사례도 있음)

 

(1) 한국의 독특한 '정(情)' 문화가 너무 좋아 미국 국적을 포기한 채 국제변호사로 일하며, 아예 귀화한국인으로 25년을 이땅에서 살고 있는 유명한 방송인 '로버트할리(한국명 : 이하일)'씨에게도 대한민국은 여전히 단일민족사관에 부딪혀야만 하는, 높은 장벽이 있는 사회라 한다.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허물없이 현장을 누비며 방송리포터로도 맹활약을 하던 그였기에 국민적 사랑을 받고 있는 그조차 철옹성 같은 민족적 장벽을 느꼈다는 점이 내게는 뜻밖이었다.

 

(2) 1992년 필리핀에서 만난 한국남자와 결혼해 한국에서 살다가 남편을 먼저 잃고도 여전히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주디스' 씨는 입맛과 생활방식까지도 한국인이 되어버렸으나 여전히 가난한 나라 필리핀에서 온 외국인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한다. 간경화로 세상을 먼저 떠난 남편의 약봉지조차 아직까지 버리지 못한 채 냉장고에 보관해두고 살아갈 힘으로 여기면서 영어강사로 일하며 빚을 갚고 있는 그녀의 사연은 무척이나 안타까웠다.

 

(3) 2011년 한국나이로 열일곱 살이 된 '파나마료브 다니엘'은 러시아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다문화 가정의 자녀이다. 러시아에서 6년을 살다 왔지만, 러시아 음식을 먹으면 몸에서 받지를 않아 토해낼 정도로 한국음식에 길들여진 영락없는 한국 사람이건만, 초등학교 5학년 때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노래를 친구들이 "넌 러시아 사람이니까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 부르지마"라는 트집으로 상처를 입었던 소년이기도 하다.

 

(4) 방글라데시아인 아빠와 한국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이스마엘'은 어느 날 학급 아이들이 제안한 '반에서 제일 재수없는 애' 투표에 28명 중 2명을 제외한 몰표를 받아 갑작스럽게 이뤄진 폭행으로 온몸에 타박상을 입었다고 한다. 육체적 상처는 아물어도 정신적, 심리적 폭력의 후유증은 어떻게 치유해줄 수 있을까?싶어 읽으면서도 눈시울이 붉어지는 소년이었는데.... 반 아이들의 막무가내한 따돌림과 폭행의 고통 속에서 엄마에게 고통 없이 죽는 방법이 뭐가 있겠느냐,라고 물었다니 비슷한 또래의 사내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가슴이 아프고 괜스레 미안해진다.

 

(5) 다문화 가정이 흔치 않았던 때에, 시골 마을인 전라남도 진도에 시집을 온 필리핀 여성 '테레시다' 씨는 대영,문영, 은영 삼 남매를 낳고 여느 가정 못지않게 소박한 행복을 일구며 살아가고 있지만, 아이들의 검은 피부로 인해 간혹 "아프리카 사람~!"이라는 놀림을 받고 들어오면 가슴이 미어진다고 한다.

 

(6) 스리랑카에서 온 26살의 K씨는 안산의 한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지난 여름 휴가 시즌을 맞아 공장이 문을 닫는 바람에 1인당 받은 5만원을 가지고 왕복 운임 4만5천원을 지불한 채 모처럼 부산 해운대를 다녀왔다고 한다. 파라솔 하나 빌릴 돈이 없어 비슷한 사연으로 그곳에 오게 된 해외노동자끼리 돈을 모아 파라솔 하나를 빌리고 편의점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며 지냈는데, 주위 사람들이 더러운 짐승 보듯 슬슬 피하는 모습에 시간이 빨리 가서 회사에 복귀할 날만을 기다렸다고 한다.

 

(7) 얼굴을 보지 않고 말만 들으면 한국인보다 더 유창한 언변술을 지닌 남미 태생 '레슬리 벤필드'씨는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한국에 와 16:1의 경쟁을 뚫고 우리나라 최초의 외국인 공무원으로 일하며,외국인에게 한국을 알리는 문화 전파사 역할을 하고 있으나 여전히 피부색의 장벽을 뛰어넘지 못한다고 한다.<미녀들의 수다>에서 잠깐 얼굴을 비추기도 했던 그녀는 잡채부터 궁중요리, 된장찌개 등 못하는 요리가 없으며 한국 문화를 매우 사랑해 장고춤부터 부채춤 등을 익혔고, 자수까지 섭렵할 정도로 끔찍하게 한국에 동화되고자 했던 인물이다.그러나 한국인 친구들은 그녀가 영어를 잘 하는 외국인 친구에서 잠꼬대까지 한국어로 할 만큼 철저히 한국인으로 변하자 하나 둘 곁을 떠났다고 한다.한국을 사랑한 만큼 상처도 크게 입은 탓에 그녀는 우리에게 진심어린 충고도 잊지 않았다.

" 한국 사람들이 종교처럼 맹목적으로 신봉하고 있는 단일민족사상이 사회적 합의를 방해하고 균열을 가져올 수 있는 위험한 믿음이 될 수도 있다.어차피 10년, 20년 뒤에는 큰 사회문제가 될 텐데. "라고 말이다.

 

(8)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에서 400m계주 부문 금메달을 수상한 '야무나' 씨(스리랑카)는 고국에서 유명인사였으나 가난을 견딜 수 없어 코리안 드림을 안고 한국에 왔다고 한다. 1997년 산업연수생 자격으로 한국에 들어온 남편(하산트 씨)을 만나 '하영광'이라는 귀여운 아들을 낳고 살고 있으나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하루하루를 조마조마하게 보내던 중 방과후에 영광이를 코시안의 집(이주근로자와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을 위한 사림 보육기관)에 데려다주다 출입국관리소 직원에게 붙잡혀 결국엔 강제 출국을 당하게 됐다. 어쩌면 부모의 나라 스리랑카로 돌아간 영광이는 그곳에서도 혹 이방인으로 대접으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생김새는 같지만 언어와 문화가 다른 색다른 이방인으로....

 

 

 

 

5. '독존'보다 '공존'이 아름다운 이유

 

 

이 책은 단순히 다문화 가정의 우울한 현주소만을 적나라하게 늘어놓고 있지 않다.

단일민족사관에 대한 신화적 믿음을 넘어선 학문적 접근과 더불어 다문화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미래 설계까지, 방대하면서도 꽤 체계적이고 설득적인 제안들을 풀어놓고 있다.

때문인지 뒤로 페이지를 넘겨가는 시점에서는 답답한 체증이 조금씩 가라앉게 되고, 이들에 대한 일종의 부채감에서 벗어난 가벼움마저 느끼게 된다.

생김새와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차별로 인해 혼란스러운 청소년기를 맞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교육적 대안으로 제시한 이들의 강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차별을 만들어낸 이들만의 '다름'에 있다.

이중 언어의 환경 속에서 자란 덕에 이들은 한국어는 물론이요, 제 2언어까지 모국어 수준으로 구사할 수 있는 강점이 있는 것이다.

게다가 세계가 빠르게 지구촌화, 국제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다양한 나라의 문화가 공존해 공동의 발전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흐름 속에서 이들 제2 세대는 한국의 반짝이는 미래 주역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우리가 땅 속 깊이 묻혀있는 금강석을 빛나는 보석으로 다듬어낼 수 있다면 말이다.

자신을 굳건히 '한국인'이라 믿고 있고, 이땅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내일의 시간을 마련해준다면 그것은 분명 미래라는 값진 희망으로 우리에게 찾아올 것이다.

민족적 독존으로 고립되어살아가느 것보다는 문화적 공존의 가치로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책에서도 언급했듯 진정한 '홍익인간(널리 인간세상을 이롭게 하라)'의 구현일지 모른다.

목숨을 건 탈북으로 대한민국에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한 새터민과 중국에 살고있는 2,3세대 조선족, 극한의 땅인 시베리아 이주 정책으로 내몰렸던 옛고려인(사할린동포), 산업연수생으로 입국해 한국에서 가정을 이뤄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해외근로자들, 국제 결혼을 통해 귀화한 외국인들.

이들 모두는 밀처내고 도려내야 할 군식구가 아닌, 2012년 한국 사회가 보듬어야 할 대한민국 국민인 것이다.

다니엘이 마음 편하게 <독도는 우리땅>을 부를 수 있고, 이스마엘이 집단폭행이 아닌 집단놀이를 할 수 있는 사회, 다문화가정 이주 여성이 학교에서 제2외국어를 가르쳐줄 수 있는 사회, 피부색이 달라도 한국을 사랑하는 공통된 마음 하나로 미래의 한국을 함께 설계할 수 있는 사회.

그런 대한민국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한번 꼭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살아보니 '독존'보다는 '공존'이 아름답더라, 말할 수 있는 독자들에게 좀더 폭넓은 공존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싶게끔 만드는 좋은 책이다.

 

 

▲ 책을 읽으며 밑줄을 긋는 것은 제 오래된 독서 습관입니다. 이 책에는 유난히 밑줄을 많이 긋게 되더군요. 사진으로 다 보여드릴 수는 없지만, 함께 공감하고 싶은 얘기거리가 무척이나 많았나 봅니다.^^

 

▲ 코시안의 집 아이들이 피부색과 상관없이 하나의 띠를 이룬 채 기차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모두들 자신이 한국인이라고 믿고 있는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지요.




▲ 책 뒷 부분에 실린 아이들의 그림입니다.

"외국에서 온 친구들과 같이 하면 우리나라는 축구를 더 잘할 거예요."

"흑인 친구는 랩을 하고, 나는 노래를 부르고, 백인 친구는 춤을 추면 인기가 많을 거예요."

"친구와 같이 우주에 가서 태극기를 꽂을 거예요."

"외국인 친구를 사귀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 이 아이들의 소망이 미래에는 현실이 되길~~! ^^


▲ 전남 진도로 시집 온 테라시다(필리핀) 씨가 차린 밥상입니다.

세상에나~~! 저로서는 한식집에나 가야 맛볼 수 있는 우리 고유의 전통밥상을

이 집에서는 매일같이 후다닥 차려낸다니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아이들도 이런 건강한 밥을 먹고 토종의 체질로 자라고 있으니 분명 한국인이 맞겠지요? ^^

 

 

 

 

 

 

애벌레의 마지막 끄적끄적...

 

요즘은 학교에서도 다문화 가정에 대해 수업 시간에 배운다고 하네요.

아들 녀석(현 초5) 말에 의하면 자기 반에도(4학년 때) 일본인 엄마를 둔 친구와 핀란드 아빠를 둔 친구가 있었다고 하네요. 게다가 아이들에게는 낯섬보다는 부러움의 대상으로 인기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 부러움은 자연스럽게 여러 나라에서 살아볼 있다는 것과 이중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라네요. ^^

하지만 아직 동남아시아 등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소외된 다문화 가정의 친구들은 만나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또 다른 편견으로 이들을 두번 나누는 잣대를 들이대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아들 녀석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해줬더니,

"엄마, 완득이 엄마도 베트남 사람이었잖아!"그러네요.(그게 왜 문제가 되느냐는 식이죠^^;)

지난 겨울, 소설 '완득이'에 심취해 있던 이 녀석에게 다문화가정은 어른인 저보다도 더 빠르게 친숙하고 가까운 이웃이 돼버린 것 같습니다.

역시나, 아이들이 희망이고, 교육이 밝은 희망의 등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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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암 정채봉 전집 동화 3
정채봉 지음, 송진헌 그림 / 샘터사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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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시험이 끝났다.

근 한 달여간 효석이를 방치해둔 채로 일에만 매달리다 보니 모든 것이 금세

엉망이 돼버려 집안 구석구석이 참 가관이다.

무엇보다 효석이 생활태도가 여기저기 틀어져 요즘 내 잔소리가 많아지고 심해졌다.

무엇이든지 쌓기는 어려워도 무너지는 것은 쉬운 법이다.

추락과 붕괴는 그래서 순간이다.

목소리를 높여 야단치는 일이 많아지다보니 속이 상하기도 하지만,

뭐 하나 제대로 챙겨준 것도 없어 미안한 마음에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동화책 '오세암'을 읽어 주었다.

 

피곤한 눈으로 침대에서 뒹굴거리면서도 귀는 내게로 향해 있는지 효석이는 중간중간 킬킬 웃는다.

엄마 없이 떠도는 오누이 '감이'와 '길손이'가 설정스님을 만나 절에 들어가

함께 생활하면서 겪게 되는 길손이의 엉뚱하고도 장난스러운 말과 행동이 우스운 모양이다.

눈이 먼 누나에게 '감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스님 옷 색깔을

'맛없는 나물국 색'이라 표현하는 길손이.

탑을 돌며 복 달라고, 명 달라고, 극락 가게 해달라고 소원을 비는 사람들을 보며

"부처님도 참 성가시겠다. 나 같으면 부처님을 즐겁게 해 드릴 텐데..."

라는 순수한 동심을 가진 아이.

바람은 안 보이지만 바람의 손자국과 발자국은 뒹구는 낙엽을 통해 볼 수 있다는

꼬마시인 길손이.

장난이 심해 선방으로 불개미를 잡아와 스님들의 바짓가랑이 사이에 넣기도 하고,

날짐승을 선방에 풀어넣기도, 방귀를 뿡 뀌고 달아나기도 하는 길손이는 젊은 스님들에게는 골칫거리지만 장님인 감이 누나에게는 세상을 보여주는 눈이요,

큰스님에게는 순수한 마음의 눈을 지닌 꼬마 불제자이다.

그러다 큰스님이 수행을 위해 절을 잠시 떠나야 하는 상황이 돼버리자 스님은 길손이가 혹 눈칫밥에 골치덩이가 될까 염려돼 길손이를 데리고 가게 된다.

혼자 남은 감이는 잠시라도 길손이와 떨어져 있는 게 싫었지만 스님의 뜻을 헤아리고는 순순히 길손이를 보낸다.

관음암이란 암자에서 겨울을 나는 길손이와 스님.

길손이는 이곳에서도 자연을 벗 삼아 혼자서도 즐겁다.

"누나, 꽃이 피었다. 겨울인데 말이야. 바위 틈 얼음 속에 발을 묻고 피었어.

누나, 병아리의 가슴털을 만져본 적 있지? 그래, 그처럼 아주아주 보송보송해.

저기 저 돌부처님이 입김으로 키우셨나봐."

빨래를 널고 오던 스님이 묻는다.

"너 조금 전에 누구한테 말을 했느냐?"

"감이 누나한테 했어."

"감이는 아래 큰절에 있지 않느냐?"

"아유, 답답해. 누난 지금 내 곁에도 있는 거야. 감이 누나가 그랬어. 내가 있는 곳엔 어디고 감이 누나 마음도 따라와 있겠다고."

어느 날, 길손이는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듯한 낡은 방에 들어가게 된다.

문둥병에 걸린 스님이 묵었다던 골방 한 쪽 벽에는 머리에 관을 쓴 보살님 그림 한 폭이 길게 걸려 있고, 길손이는 왠지 모를 친숙함에 이때부터 매일 그 골방을 찾게 된다.

"계곡의 고드름이 하늘에서 늘어뜨린 동아줄 같아요. 스님은 김치를 꺼내다가 얼음 조각에 손가락을 베었어요. 보살님도 춥지요? 가만 있어요. 내가 솔가지 긁어 와서 군불 넣어드릴게요."

"아유 냄새! 보살님이 뀌었지?"

"엄마라고 불러도 돼요? 나는 엄마가 없어요. 엄마 얼굴도 모르는 걸요. 정말이어요. 내 소원을 말할게요.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요. 약속하지요? 내 소원은....... 내 소원은....... 저......... 엄마를 ........... 엄마를 가지는 거예요. 저........ 엄마........ 엄마라고 불러도 돼요?"

"엄마, 삶은 밤이어요. 스님이 다섯 개를 주셨어요. 내가 네 개를 먹었지만 가장 큰 것은 남겨 왔어요. 어서 잡수셔요. 참 맛있어요."

길손이가 관음보살 탱화 앞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들려주면 관음보살은 소리없이 조용한 웃음으로 길손이를 내려다 본다. 그런 관음보살님이 엄마처럼 느껴저서인지 길손이는 골방을 수시로 드나들며 혼잣말을 해댄다.

그러던 어느 날, 스님은 양식을 구하러 마을로 내려가게 되고 길손이 혼자 관음암에 남게 된다.

"길손아, 내일 내가 없는 동안 무섭거나 어려운 일이 생기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고 관세음보살을 찾거라. 알았지?"

"그러면 관세음보살님이 오셔?"

"오고말고. 네가 마음을 다하여 부르면 꼭 오시지."

"마음을 다해 부르면? 그러면 엄마가 온단 말이지?"

"이녀석아, 엄마가 아니고 관세음보살님이라니까."

낮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어느새 정강이가 푹푹 빠질 만큼 쌓이고 스님은 장터에서 양식을 구하자마자 혼자 있는 길손이가 걱정이 돼 눈길을 뚫고 관음암을 향해 산을 오르지만, 폭설로 쌓이기 시작한 눈은 어느새 길조차 눈속에 파묻혀 방향을 찾을 수 없게 된다.

결국 스님은 부처님과 길손이를 부르다 눈 위에 쓰러지고 만다.

다행히 지나가던 농부의 도움으로 목숨은 구했으나 혼자 있을 길손이 생각에 끙끙 앓는 상황에서도 길손이를 찾는다.

스님이 큰절에 있는 감이를 데리고 관음암에 오르게 된 건 길손이를 홀로 두고 온 지 한달이 넘은 시간.

"스님, 냄새가 나요."

"사향노루 내음 말이냐?"

"아냐요. 우리 길손이 내음이어요."

"스님, 무슨 소리가 들리지 않으셔요?"

"무슨 소리? 지금 윙윙거리는 저 소리는 전나무를 울리는 바람 소리인데."

"바람 소리, 새 우는 소리말고 목탁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셔요?"

"감이야, 그건 딱따구리가 고목을 쪼는 소리란다."

"스님, 우리 길손이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

"스님, 딱따구리 소리가 아니어요!"

"암자에 떠돌이 스님이라도 와서 묵고 있단 말인가."

스님도 바람결에 들려온 목탁소리를 듣고는 서둘러 관음암으로 향한다.

"스님, 가만히 들어 봐요. 목탁소리말고 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하는 소리가 들려요."

"저......저.....저.......저 소리는........"

관세음보살을 외치는 어린아이의 목소리에 깜짝 놀란 두 사람 앞에 길손이가 나타난다.

"길손아, 너 살아 있었느냐?"

"엄마가 오셨어요. 배가 고프다 하면 젖을 주고 나랑 함께 놀아주었어요."

길손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관음봉에서 하얀 옷을 입은 여인이 소리없이 내려오더니 길손이를 품에 안는다.

"이 아이는 곧 하늘의 모습이다. 티끌 하나만큼도 더 얹히지 않았고 덜하지도 않았다. 오직 변하지 않는 그대로 나를 불렀으며 나뉘지 않은 마음으로 나를 찾았다. .... 과연 이 아이보다 진실한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냐. 이 아이는 이제 부처님이 되었다."

길손이는 관세음보살의 품 안에서 평화롭게 잠들고 그 순간 감이는 감았던 눈을 뜬다.

"스님, 파랑새가 날아가고 있어요!"

길손이의 장례식에는 기적이 일어났다는 소문과 함께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길손이가 골방에서 만나 본 탱화 속의 관세음보살을 향해 자꾸자꾸 절을 하였다.

그리고는 이 암자의 이름을 다섯 살짜리 아이가 부처님이 된 곳이라고 해서 아예 '오세암'이라고 바꿔 부르기로 했다.

길손이와 감이를 돌보아온 설정스님은 부처님 공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고, 감이는 막상 눈을 뜨고 보니 길손이가 말해주던 세상에 비해 훨씬 못미치는 풍경에 실망하고는 더욱 길손이를 그리워하게 된다.

연기가 되어 사라지는 길손이 앞에서 사람들은 일제히 절을 하고, 감이만이 울면서 중얼거린다.

"저 연기 좀 붙들어 줘요, 저 연기 좀 붙들어 줘요......."

 

효석이는 중간에 잠이 들었는지 불러도 대답이 없다.

듣는 이가 없는데도 나는 책을 덮지 못하고 마지막 페이지까지 천천히 읽어 내려간다.

예전에도 읽어본 책인데 또 새롭다. 또 뭉클하다.

내 아이에게 꼭 읽혀주고 싶은 책, 그래서 내가 한 번 더 보게 되는 책, 오.세.암.

이미 고인이 된 정채봉 선생님을 처음 알게 된 건 스무 살 무렵 읽게 된 <초승달과 밤배> 때문이다.

이후 선생님의 글들을 찾아 읽으며 그 순수한 동심의 세계에 빠져들었는데, 후에 알고보니 월간 잡지 <샘터>의 편집인이라고도 했다.

작가의 작품 세계를 통해 작가의 정신 세계와 정서적 농도를 추정해 볼 때 정채봉 님의 글들은 항상 맑다.

맑아서 오래 가는 향기처럼 조용히 스며드는 멋이 있다.

'순수'라는 게 가급적 치장을 줄이고 있는 그대로의 자연미를 드러내는 법인데, 선생님의 글이 그러하다.

덕분에 좋은 밤이다.

잠시나마 내 영혼을 맑은 개울물에 씻기우는 깨끗함과 시원함을 맛볼 수 있어 행복한 밤이다.

효석이에게 내일 마저 읽어줘야겠다고 다짐하게 만드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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