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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선생님과 함께 큰 소리로 읽어요 - 자신감.언어 감각.상상력이 자라요! ㅣ 토토 생각날개 23
안도현 엮고 씀, 한상언 그림 / 토토북 / 2012년 8월
평점 :
유독 엄마 손맛이 그리워지는 날이 있습니다.
별다른 재료 준비없이 냉장고에 있는 신김치만 송송 썰어 넣었을 뿐인데도
엄마가 해주는 김치전은 맛집으로 소문난 음식점의 그것보다 입에 찰싹 달라붙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물론 저 역시 간단한 김치전 쯤이야 마음만 먹으면 후딱 해낼 수 있지만,
할 수 있고 없고를 떠나 40이 넘은 다 큰 딸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엄마가 해주신 김치전을
여럿이 모여 젓가락으로 북북 찢어먹는 그 생생한 꿀맛은 가끔씩이나마 제가 누릴 수 있는 호사스런 경험입니다.
책읽기를 통한 아이들의 호사스런 경험으로 큰소리로 함께 읽기만큼 좋은 것이 또 있을까요?
글자를 깨우쳐 스스로 읽기가 가능한 나이일지라도 누군가가 목소리를 통해 들려주는 이야기는
요리를 할 수 있음에도 가끔씩 엄마가 해주는 요리가 그리워지는 이치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눈으로 읽는 것보다 귀로 듣는 것이 우리 몸의 다양한 감각 기관을 자극하기 때문에 더욱 더 집중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단순히 문자의 의미망 연결로 끝나는 줄거리 파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의 구체화된 밑그림으로서 다양한 반응과 정서 공유, 기억력의 증대 등을 가져옵니다.
게다가 읽는이의 음색과 어조, 목소리의 크기와 말하기의 속도, 강약의 조절에 따라 인상깊은 장면을 연출해냄으로써
상상력의 극대화를 가져와 상황에 따른 인물의 심리를 이해하는 데 훨씬 효과적이라고 생각됩니다.
굳이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골고루 갖출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본인의 목소리 그대로 아이와 함께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책읽기의 효과를 높일 수 있습니다.
그저 김치만 넣었을 뿐인데도 훌륭한 맛을 내는 어머니의 손끝맛처럼요.
안도현 시인이 엮은 『큰 소리로 읽어요』는 큰 소리로, 실감나게, 또박또박, 떠올리며, 이해하며
온몸으로 책을 읽는 방법을 동시, 그림책, 동화, 일기, 희곡 등 다양한 종류에서 가려 뽑은 글을 예로 들어가며
소개해 줍니다.
이 책에 소개된 50여 편의 좋은 글들을 저자가 안내하는 대로 아이와 함께 한 작품씩 읽다보면,
목소리의 변형 하나만으로도 어느 새 서로를 바라보며 까르르 웃음이 터지곤 합니다.
일관된 목소리와 빠른 호흡으로 빨리 책 한 권을 읽어겠다는 의무감에서 벗어나
저자의 의도를 생각해보고 작품의 상황 속에 간접적으로 뛰어들어 마음 속 대화를 나누다보면
등장인물의 감정에 서서히 이입돼 천천히 스며드는 독서법을 즐길 수 있게 됩니다.
마치 신호등이 켜진 횡단보도를 빨리 건너야 한다는 촉박함에 앞만 보고 바삐 걸었던 발걸음에서
꽃과 풀과 나비와 벌레와 돌멩이가 오밀조밀한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는 시골길을 여유롭게 감상하며 걷는 발걸음으로의 변화랄까요?
낭독 문화가 사라지고 있는 시대에 책 읽기의 성숙한 관문으로 낭독하는 법을 들려주는 저자의 의도가 궁금해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미셀 투르니에의 "작가가 쓴 글은 독자가 낭독을 함으로써 완성된다."(p.5)는 말로 고개가 끄덕여지네요.
저자가 소개하는 낭독의 다섯 가지 방법을 글 내용에 맞게 익살스럽게 그려진 그림과 더불어 다시 한 번 읽어보니
정말 새로운 느낌, 새로운 재미가 있네요. 여러분도 이 책을 통해 한 번 따라해보세요.
1. 씩씩하게 소리내어 읽으면 자신감이 쑥쑥 자라요.
2. 몸으로 책을 읽으면 새로운 말을 만나도 두렵지 않아요.
3.'만약에 나라면~'하고 상상하면서 읽으면 친구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하게 돼요.
4. 또박또박 읽기를 습관 들이면 내 생각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어요.
5. 탐정이 되어 글의 속뜻을 찾아 읽으면 책 읽기가 재미있어요.
이 책이 도착하자마자 초등 5학년인 아들 녀석과 무작위로 아무 곳이나 펼쳐 함께 읽고 있는 요즘,
책 읽기가 그대로 놀이가 되고 학습이 되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이 책의 내용은 이렇고 주인공은 누구야' 식이 아닌, 바르게 읽을 때와 제 멋대로 읽을 때의 느낌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상대방 읽어주는 내용을 경청할 때와 흘러들을 때의 차이는 어떠한지, 호호호와 하하하의 어감에는 어떤 목소리톤이 느껴지는지,
시를 읽을 때와 동화를 읽을 때의 호흡 조절은 어떻게 달라지는지, 책 뒷이야기가 궁금할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은지 등등
아들 녀석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어 무척이나 재미있고 의미있는 시간들이 되었습니다.
책의 구성 및 편집 형태만 훑어보면 유아부터 초등 저학년을 대상으로 한 책 같지만,
초등 고학년이나 부모들이 읽기에도 괜찮습니다.
이 책을 통해 많은 분들이 낭독의 즐거움을 누려보셨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