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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어쩌면, 어쩌면
박광수 지음 / 청림출판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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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대교 난간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져 있습니다.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입니다'

 <광수 생각>으로 유명한 박광수의 신작『어쩌면, 어쩌면, 어쩌면』의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위 글이야말로 이 책이 전하고 싶은 메세지의 압축이 아닐까? 싶다.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벼랑 앞에 서보게 될 것이며 그 순간에 각자는 더 이상 살아갈 힘이 없는 절망과 동시에 살아있는 순간의 고귀함과 아름다움에 대한 예찬에 빠질 것이다. 마침표를 생각하는 순간에 떠올리는 쉼표처럼 이 책은 삶의 고단함과 서글픔,  답답함과 억울함, 깊은 한숨과 얕은 분노를 느껴본 자들에게 잠시 쉬었다갈 수 있는 쉽터를 제공해주는 책이 될 것이다.

그림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간결하고 섬세하되, 광수 생각은 시간을 덧입은 만큼 깊고 풍성해져 스쳐 지나가는 사물에도 깊은 애정과 관심을 두고 관찰하는 관조적인 그만의 사상으로 성장했다.  

 

1. 어쩌면

 

이 책은 섬과 섬 사이를 떠도는 외로운 현대인에게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싶다"라고 말한 어느 시인의 바람처럼 나와 타인에 대한 적당한 거리에서 오는 관계미학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1부인 '나, 그대로의 나'에서 종종 보여지는 현실에 대한 순응적 받아들임은 우울한 체념보다 평온한 순리에 가깝게 느껴지며 거추장스런 위선보다 솔직한 고백으로 다가오기에 공감이 가는 부분이 참 많다.

이제는 더 이상 젊다고 말할 수 없는 나이에, 인생에 핑크빛 희망을 지니고 살기에는 현실감각이 지나치게 발달해버린 시점에, 막연한 행운이나 요행을 바라고 새로운 일을 펼치기에는 책임져야 할 것들이 많아진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 허망한 희망보다 따뜻한 위로가 되주는 조언이랄까? 저자는 나이들면서 조금씩 사람에 대한, 일에 대한, 상황에 대한 기대감을 내려놓고 조금씩 좌절을, 분노를, 슬픔을,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는 것을 인정해가며 가면을 벗고 타인을 대하는 순간 우리 생이 더욱 빛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아픈 것은 아프다고 말하자

 무서운 것은 무섭다고 말하자

 힘든 것은 힘들다고 말하자

 세상 사람들은 속일지라도 내 자신에게만은 솔직하자

 

 같은 실수에도 누군가는 자신의 실수를 감추기에 바쁘고,

 또 누구가는 실수를 통해서 내면의 키가 한 뼘쯤 자라기도 한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나.

 내 인생의 구경꾼들로 인해 내 인생이 흔들릴 필요는 없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타인을 바라보게 되면, 서로의 미숙함과 불완전함도 비난이 아닌 동병상련이 되기에 안녕?하고 인사를 건넬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2부인 '안녕, 낯선 사람'에서는 용서보다 아름다운 화해를, 기분이 나빠지는 간섭과 가슴이 아파오는 충고의 차이를, 핸드폰이라는 우물에 빠져 계절의 오고 감도 못 느끼고 사는 현대인을, 하나뿐인 무전기가 소용없음을 통해 소통의 쌍방 조건을, 계산기로는 도무지 계산할 수 없는 너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각자 외로이 떠 있는 섬이지만,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다정한 섬이기도 한 것이다. 

  

2. 어쩌면

 

이 책은 치매에 걸린 노모를 곁에서 지켜보며 자식으로서 느끼는 부모의 깊은 사랑에 대한 '사모곡'인지도 모른다.

밥때가 되면 광수야! 이름을 불러가며 신호를 보내신 후 누런 코를 깨끗이 씻어주신 다음에야 식탁에 앉히시고는 맛있는 음식으로 저자의 입안을 채워주시던 어머니.

대견할 것도 없다고 표현하는 저자를 평생 대견한 아들로 여기시며 막내에 대한 애틋함을 가슴 깊이 새기며 살아가시던 어머니.

그 어머니가 어느 순간 치매 판정을 받고는 자식들의 이름을 깜박깜박하시더니 씻는 일조차 잊으시고는 음식 만드는 일조차 불가능하게 되어버린다.

그런 어머니를 지켜보며 저자는 치매를 앓는 노모와 지켜보는 가족의 안타까운 심정 속에서의 아픔을 이렇게 표현한다.

 

  치매란 자신이 젊은 시절 애쓰며 건너온 징검다리를 되돌아 가는 것.

  되돌아 가면서, 자신이 건너온 징검다리를 하나씩 치우는 일.

  그때 옆에 있는 당신은 답답하다고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어서는 안 됩니다.

  그녀에게는 당연한 일들.

  그때 당신이 해야 할 일은, 그저 뚝방에 서서 웃으며 손을 흔드는 일.

  밝게 웃어주며 날 천천히 잊어달라고 비는 일.

  안단테, 안단테......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밝혔듯 누구나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것들에 대해 막연한 기대감을 품게 된다. 나이가 들면 기대가 작아지는 것이 순응을 배워가는 것이라지만, 저자가 끝까지 버리지 않고 싶은 기대감은 예전처럼 온 가족이 둘러앉아 엄마가 만들어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날에 대한 소망이다. 소박한 희망, 실낱같은 그 기대감이 간절한 기도 의식처럼 만나 이뤄진 것이 3부 <안단테, 안단테, 안단테>이다. 막을 수 없고 되돌릴 수는 없어도 천천히 진행되기를 바라는, 천천히 잊혀지기를 바라는 저자의 현실적 소망이 고스란히 담겨있어서인지 먼저 손이 가고 이내 마음을 울린다. 저자의 차분한 기도의식이 독자의 응원 속에 지침 없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3. 어쩌면

 

이 책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에 대한 저자의 시인적 관찰 보고서인 동시에 사물이 지니고 있는 상징적 설명서이기도 하다.

늘상 곁에 두고도 스쳐지나갈 만큼 하찮거나 사소한 것들에 대한 저자의 섬세한 관찰력과 사물의 속성에서 기인한 새로운 의미 부여는 마치 시인의 눈을 닮아 있다. 나는 어쩐지 광수씨가 그림에 가까운 화가라기보다 문학에 가까운 시인같은 느낌을 받곤 하는데 그건 아마도 짧지만 긴 여운을 주는 그의 시심(詩心) 때문인 것 같다. 일상에서의 한 단면을 인생으로 연결시켜 풀어갈 수 있을 만큼 그의 관찰력과 통찰력은 타인의 공감력을 이끌어낸다. 그림과 함께 봐야 제맛이지만 아쉽게나마 몇 편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계란 후라이 - 그 사람이 웃으며 내게 물었습니다. "깨뜨릴까? 깨뜨리지 말까?"

                     계란이야 어찌 되었든, 우리의 사랑은 깨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안경 - 내 눈에 사람들이 보는 것과 다른 것이 보인대도.

           사람들이 이제 그만 벗어버리라고 해도.

           난 당신이 내게 씌워준 안경을 벗지 않으련다.

           당신이 내게 씌워준 콩깍지라는 안경.

 초콜릿 - 언젠가 녹아서 없어지겠지만,

           당신과 나의 달콤했던 추억은 잊지 말아 주세요.

  편의점 - 당신의 사랑은 너무 게으르오. 어느 날은 열렸다가 어느 날은 닫혔다가.

           내 사랑은 24시간 항상 당신을 위해 열려있는.

  선풍기 - 내가그 사람을 잊을 수 있을까?

              내 물음에 선풍기가 머리를 좌우로 돌리며 대답한다.

              못 잊어. 넌 그 사람 절대 못 잊어.

  전화기 - 내가 사는 곳에 눈이 왔다고 말하니 전화기 너머의 그녀가 말했다.

             "이곳은 비가 왔어요. 이곳은 씻어버릴 것들이 많고,

             당신이 있는 곳은 덮어버릴 것들이 많은가 보네요."라고.

  성냥개비 - 상대가 눈앞에서 멀어지면, 보통의 사랑은 잊히고

              큰사랑은 그 사랑이 더 커진다.

              바람이 불면 성냥의 불은 꺼지고 들판의 큰불은 더 불길이 세지는 것처럼.

  망치 - 망치는 못을 박는 도구만이 아니다. 반대로 못을 빼는 도구이기도 하다.

           나는 내 망치로 그동안 내가 타인의 가슴에 박은 못들을 모두 뺄 것이다.

이쯤되면  광수씨에게 만화가/화가라는 호칭 뒤에 작가/시인이라는 호칭을 붙여도 억지스럽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참고로 글쓰고 그림 그린이 박광수의 신작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에는 쪽수를 나타내는 숫자가 없다.

아무 데나 펼쳐 읽어도 아무렇지 않게 쉽고 편안하게 읽혀지는 책.

그러나 깊은 울림과 떨림이 있어 자꾸만 또다시 들춰보게 되는 책. 

내게 박광수의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은 '자꾸만, 자꾸만, 자꾸만' 들춰보게 되는 책이 될 것 같다. 보고 또 보고 또 보게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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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준 선물 - 아빠의 빈 자리를 채운 52번의 기적
사라 스마일리 지음, 조미라 옮김 / 처음북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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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내 아들녀석은 늦은 밤까지 일하는 엄마 때문에 저녁식사를 늘 혼자서 해결한다.

행여 안 먹었다,말하면 엄마가 속상해할까봐 잘 챙겨먹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지만, 그 말이 가벼운 눈속임일 뿐인 것을 나는 안다.

밥통에 있는 밥도 그대로인데다 내가 퇴근해 집에 도착하면 걸신들린 사람마냥 야식거리를 찾곤 하니까....

간혹 해놓은 밥도 못 찾아 먹느냐고 핀잔을 주다가도 혼자서 먹어야 하는 밥의 서러움을 알기에 속상한 마음은 늘 미안한 마음으로 바뀌곤 한다.

혼자 먹는 밥은 방금 지어 김이 모락모락 날지라도 찬밥과 다를 바 없이 쓸쓸하고 처량하다는 것을 나 역시 경험을 통해 내 몸이 먼저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모의 보살핌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어린아이에게는 온 가족이 둘러앉아 그날의 일과를 서로 주고받으며 공감과 위로를 통해 안정감을 느끼는 저녁식사 자리는 밥 이상의 알파(α)적 요소가 있으므로 '혼자라도 잘 챙겨 먹어'라는 말은 분명 가혹한 요구사항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인정하지만 현실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그것이 내내 마음에 걸려 직업을 바꿔볼까도 고심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현실적인 답은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던 중 작은 힌트나마 얻을 수 있는 귀한 책을 한 권 만났다.

저녁식탁에서 사라진 아빠의 빈 자리를 가족을 대신해 다양한 이웃들이 채워주는 감동 실화를 담은 책 <저녁이 준 선물>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2.

아프리카로 파병간 아빠의 부재로 인해 평화롭고 단란했던 스마일리 가족은 불안에 휩싸인다.

이미 군인 남편의 파병으로 인한 이별상황을 몇 차례 경험해봤음에도 불구하고 엄마인 사라는 아이들이 커나감에 따라  또다른 문제에 부딪히며 달라진 상황에 적응하려고 애를 쓰나 갈수록 남편(아빠)의 빈자리는 존재감의 무게만큼이나 크게 다가와 모두를 힘들게 한다. 

사춘기에 접어들어 삐딱하게 구는 큰아들 '포드(당시11세)'와 형이 하는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는 둘째 '오웬(당시 9살)', 이별의 상황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어린 막내 '린델(당시 4세)'과 이들 개구쟁이 삼형제를 돌보며 일을 해야 하는 사라가 남겨진 가족이다. 

남편은 떠나기 전 아내에게 매주마다 새로운 사람들을 저녁식사 자리에 초대해 함께 식사를 하면 기다리는 시간이 덜 외롭고 덜 힘들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해보지만 내성적인 데다가 사교성이 부족하다고 스스로를 평가하는 사라는 내켜하지 않는다. 

요리하는 것도, 어색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도 싫어하는 아내로서는 매주 새로운 손님과의 불편한 저녁식사 자리야말로 또다른 피곤함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로 일단 한 번 보내본 초대장(첫번째 손님-상원의원)에 의외로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약속한 날에는 취소하고 싶다느니 방에서 안 나올 거라느니 억지를 쓰며 낯선 사람과의 저녁식사 자리를 회피한다.

그러나 이들 가족은 몇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차츰 '스마일리 가족의 저녁식사' 를 특별하고도 신선한 만남으로 하나둘 채워 나간다. 그것도 무려 52주라는 긴 시간 동안 말이다.

상원의원, 기상캐스터, 작곡가, 야구역사가, 일러스트레이터, 소방관, 밀렵감시인, 주지사,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등 사회적 저명 인사는 물론이요, 암을 극복한 제니퍼 아줌마, 이웃집 글로리아 할머니, 아이들의 학교 선생님, 국립공원 기념품샵 직원, 결혼반지를 찾아준 스쿠버다이버, 문앞에 몰래 음식을 놓고가는 '음식요정' 등 평범한 일상 속 이웃들이 아빠인 더스틴의 식탁의자에 앉을 수 있는 특별손님으로 초대된다.

감동적인 건 이 특별한 저녁식사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평범하게, 격식을 갖춤 없이 소박하게 진행된다는 점이다.

초대된 이웃들은 그들만의 직업 세계와 인생 경험에서 얻은 지혜를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아이들은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과 대화 속에서 배려와 인내, 사랑과 절제 등을 배워 나간다. 

'이럴 때 남편이 있었으면, 아빠가 있었으면'이라는 원망 섞인 아쉬움은 차츰 '남편(또는 아빠)을 대신해주는 이웃 덕분에'로 바뀌어 가면서 혈연관계로 맺어진 가족개념을 뛰어넘어 아무런 바람 없이 누군가를 돕고 함께 기뻐하는 이웃으로서의 또다른 가족애를 공감있게 보여준다.

이별이 또 다른 성장 과정임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이는 누구보다도 불평 불만이 많은데다 툴툴거리기 잘 하던 큰아들 '포드'인데 그만큼 사춘기 남학생에게 아빠의 역할은 동성어른으로서의 역할모델이 되는 셈인지라 아빠의 부재감을 견뎌내기가 더더욱 힘들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포드는 '스마일리 가족의 저녁식사'가 끝나갈 즈음 엄마인 사라의 든든한 지원군이 돼 있을 만큼 꽤나 성숙한 소년으로 변모하게 된다.

 

이렇듯 시간이 흐를수록 '스마일리 가족의 저녁식사'는 모두에게 기다려지는 저녁식사, 아쉬워지는 저녁식사가 되고 마침내 52번째를 끝으로 하여 막을 내리고, 남편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다.

 

3.

책을 읽으면서 내내 부러웠던 점은 이 부부(더스틴과 사라)의 현명하면서도 안정감 있는 부모 역할과 사려 깊은 부부 관계이다.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와 책임감은 가족이 위기에 처한 상활일수록 더 빛나는 힘을 발휘하도록 이끄는 원동력이 됐으며, 평소에 늘 아이들과도 많은 대화를 나누며 놀이를 통해 시간을 함께 보내는 아빠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형성된 유대감 속에 존경의 마음까지 싹트게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된 것이다.

저녁식사에 순순히 응해준 초대 손님들 또한 타인의 어려움(상처)을 남의 일이 아닌 우리 모두의 일로 여기고 요란스럽지 않게 돕는 공동체 의식을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가족적인 분위기'의 참 의미가 무엇인지를 잔잔한 감동으로 심어주었다.

삐딱한 생각인지 모르지만 과연 우리나라의 경우라면, '아빠를 대신해 줄 손님으로 오늘 저녁 식사에 와주시겠어요?'라는 초대장을 받았을 경우 사회 고위 인사들 중 몇 명이나 긍정적인 답을 해줄 수 있을까? 왠지 부정적인 생각이 앞서 씁쓸해진다.

 

부모는 맞벌이로 직장에, 아이들은 학업으로 학원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져 온가족이 모인 저녁식사 자리를 갖는 게 갈수록 어려워지는 현대 사회에서 저녁식사 자리는 단순히 밥만 먹는 게 아님을 절실히 느끼게 해 준 아주 멋진 책이다.

더불어 기회가 된다면 나 또한 가까운 이웃이라도 한 번 초대해 특별한 저녁식사를 한 번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책이다.    

멋있다!라는 말로는 부족한 그 무엇이 책을 덮고도 오래도록 내 가슴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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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귀촌 정착에서 성공까지 - 베이비부머 은퇴 후 인생 2막을 위한
매일경제신문 경제부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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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 오래 전부터 막연하게나마 전원 생활을 꿈꿔오던 내게 이 책은 '반딧불의 낭만을 깨고 사마귀의 현실을 보라'는 쓰디 쓴 감상 깨기로 가득 찬 책이다. 풀벌레 우는 소리를 들으며 저녁 산책길을 걷는 낭만 속에 가려진, 발밑을 기어다니는 온갖 흉물스런(어찌보면 '낯선'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한지도 모르는) 벌레들에게도 눈을 마주칠 수 있을 때라야 시골에서의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냉정하게 콕콕 찔러주는 책이라고나 할까? 준비없이 이뤄지는 귀농이나 전원생활의 감상에만 젖어 농촌의 삶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는 귀촌이 짧은 희망으로 끝나버리는 아픔이 될 수도 있음을 짚어주는 『 귀농귀촌-정착에서 성공까지』는 표지에서 밝히고 있듯 '마흔에서 시작하는 귀농귀촌 가이드' 역할에 매우 충실하다. '이것저것 하다 안 되면 귀농이나 하지 뭐.'라는 얄팍한 생각에서 출발한 귀농이 가족 모두에게 얼마나 무모한 도전인지를 들려주며 마흔부터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단계적으로 실행해야 할 만큼 귀농과 귀촌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꼼꼼하게 짚어준다. 매일경제신문 경제부가 6개월에 걸쳐 편집한 이 책은 비록 당장의 현실은 아닐지라도 '언젠가는...'이라는 미래적 휴식의 시간으로 귀농귀촌을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직업 전환으로서의 귀농과 전원생활로서의 귀촌을 구분해 각각 어디에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고 실행해나가야할 지에 대해 객관적인 자료와 구체적인 선례를 들어가며 안내해주고 있다.

 

쁘게 돌아가는 도시 생활에 몸과 마음이 지친 많은 사람들이 노후 설계 일환으로 귀농귀촌을 꿈꾸는 건 어쩌면 인간이 타고난 자연회귀본능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일인지도 모른다.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가는 자연 순리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귀농귀촌'이 노년의 삶을 뛰어넘어 4~50대 중년에게까지 각광을 받게 된 건 그리 오래 된 일이 아니다. 산업화 이후 도시로 몰려들던 이촌향도 현상이 불과 30여 년 만에 이도향촌으로 뒤바뀌게 된 데에는 IMF 이후 평생 직장 개념이 사라진 불안한 고용 시장과 100세 수명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인간 학명 '호모헌드레드(Homo-Hundred)'의 사회적 배경이 크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지독한 가난과 눈부신 경제 성장의 양면을 고스란히 지켜본 베이비부머 세대(한국전쟁 직후인 1955년~ 산아제한정책 도입 직전인 1963년 사이에 태어난 이들) 의 집중적 귀농 현상은 도시화, 현대화가 진행될수록 자연으로의 회귀 욕구 또한 강렬해진다는 것을 반증하는 자료로써 경제적 요인과 상관없이도 귀농귀촌은 또 하나의 용기 있는 선택이요, 아름다운 포기임을 보여준다.

 

식품부 발표에 따르면, 2001년 880 가구에 불과한 귀농귀촌 가구가 2011년에는 1만503 가구로 늘어났다고 한다. 연령별로는 50대가 32%, 40대가 24.4%를 차지해 40~50대의 베이비붐 세대가 주를 이뤘으며, 직업별로는 자영업이 24.6%, 사무직(18.5%), 생산직(10.8%) 등이 뒤를 이었다. 시도별로는 충북(2천85가구), 전북(1천380가구), 전남(1천355가구), 경북(1천317가구) 순으로 귀농귀촌 인구의 흐름을 볼 수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귀농 가구 중 전국 억대 부농은 경상북도(7499가구), 전라남도(2753가구)에 편중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예전과 달리 귀농을 원하는 인구 구성에도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데, 외환위기 직후 실직이나 은퇴 등 '생계형 귀농'이 주류를 이뤘던 것에 비해 최근에는 젊은층의 '창업형 귀농'이나 노년층의 '전원생활형 귀농' 등이 뚜렷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고학력자들의 귀농은 주먹구구식 영농에서 탈피해 비용 절감, 신기술 개발 등의 경영농으로서의 변화를 꾀해 연간 1억 원 이상의 고수익을 올리는 억대부농의 증가에 발판이 되고 있다고 하니 귀농붐은 단순한 거주지 이동만이 아닌, 새로운 경제적 가치 창출을 위한 농촌 활성화에도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어촌으로 이주해 농어업에 종사하며 일정한 수입을 내는 귀농과 달리 귀촌은 전원생활 등을 목적으로 농어촌으로 이주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 책에서는 귀농과 귀촌을 이분법으로 딱 규정지어 나누기보다는 귀농으로의 정착을 위해 귀촌의 형태로 우선적 체험을 해 볼 것을 권하고 있다. 어차피 귀농의 삶 자체가 결국에는 귀촌이 될 것이며, 귀촌 역시 삶의 터전을 시골에 두고 있는 한, 도시적 삶과는 다른 농촌의 삶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소박하게나마 귀촌 생활을 먼저 시작해보고 난 후 귀농이 자신의 삶에 맞는지 점검한 이후래야 안정적인 정착이 가능하다는 것은 그만큼 섣부른 귀농 욕심으로 인생 2모작에 실패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반증이 되기도 할 것이다.

 

책에는 현실적인 귀농 준비를 위한 단계별 유익한 자료가 각 장마다 유기적 연결고리로 상세히 소개되고 있다. 특히 2장에서 소개하고 있는 '귀농 전 적성 테스트'는 귀농의 목적과 마음가짐을 일차적으로 살펴보는 항목으로서 귀농 시 반드시 점검해봐야 할 중요 사항이다. 자가테스트를 통한 자체 점검 사항, 활용하기 좋은 온라인 귀농 사이트, 알아두면 편리한 귀농 전 선행학습 교육, 농촌정착지원정책, 예비 귀농인을 위한 권역별,지역별 맞춤형 교육/실습, 농가주택의 종류, 농작물 선정과 농약,농기계 구입 방법들이 풍부하게 실려있어 현장 경험이 없는 도시인에게도 미리부터 겁 먹을 필요없이 차근차근 준비하는 귀농귀촌이 되도록 안내해 준다. 귀농 성공담을 다루고 있는 4장에서는 남들과 다른 역발상이나 틈새 공략으로 귀농의 다양한 형태를 간접적으로 시사해주며 '준비 없는 귀농이야말로 가장 경계해야 함'을 역으로 강조해주고 있다. 도시농업 블루오션 개척으로 도시에서 소규모 농작을 즐기려는 사람들을 위해 옥상이나 베란다에 텃밭을 조성해 주거나 벽면, 실내, 옥상정원 등 도시녹화 작업까지 손을 대고 있는 성공 사례나 번식우의 최적 수정시기를 태블릿 PC로 실시간 점검하여 한우 가격 쇼크에도 큰 매출을 올린 사례, 항산화물질 입힌 폴리페놀 배추로 매출 4억원을 일궈낸 사례, 풍뎅이로 억대 소득을 올린 삼우곤충농장의 사례,수도권 체험마을 프로그램으로 성공한 사례 등은 비전만 가지고 있다면 농업도 충분히 경쟁력 있는 희망 사업이 될 수 있음을 성공담으로 보증하고 있다.

 

기 위해선 먹어야 하고 먹기 위해선 일해야 한다. 농촌에서의 삶이라고 해서 유유자적 물 흐릇이 여유롭게만 흘러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냉정하게 보여주고 있는 이 책이 실질적인 귀농귀촌을 꿈꾸는 많은 이들에게 한 장 한 장 귀담아 들어야 할 노하우의 집약체로 다가설 수 있으리라 본다. 귀농도 적극적인 창업으로 인식하고 변화된 사회 현상에 맞춰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시대 흐름 속에서 분석해주고 있는 만큼 과거의 귀농 형태와는 또 다른 2010년대의 귀농귀촌 색채를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산업화의 급격한 변화 속에 도시적 삶이 주는 또다른 부작용을 경험했던 루소가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명언을 남겼다면, 이 책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법을 말해주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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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TV프로그램 <즐거운 책 읽기>에서 한젬마 씨가 헬렌 니어링&스콧 니어링이 쓴 『조화로운 삶』이라는 책을 소개하더군요. 대공황이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용감하게 시골로 찾아가 집 짓기부터 먹을거리 재배하기, 간단한 공구로 집안 구석구석 고치기, 자연 속에서 소박하게 나누며 살기 등을 실천하며 자연으로 돌아가 자연인으로 살아가는 부부의 모습을 담은 책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노년은 전원에서 생활하고 싶은 바람을 지니고 있는 만큼 그에 대한 현실적인 준비와 지식도 철저히 뒷받침돼야 한다는 필요성과 넘치는 소비를 극복한 필요한 수준의 자족적 삶, 생태주의적 삶에 필요한 지식, 교육과 의료, 문화 생활 등의 부족한 면에 대한 보완책 등 귀농과 귀촌에 대한 현실적인 정보를 들려주는 책이었습니다. 그 책의 영향 때문인지 매일경제 신문사에서 편찬한 『귀농 귀촌, 정착에서 성공까지』는 보다 우리나라 현실에 맞는 귀농책으로서의 안내서로 비교해가며 읽게 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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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잘되게 하는 소통, 나를 망하게 하는 불통 -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는 소통마인드 50
김옥림 지음 / 북씽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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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은 많아지는데 들을 귀가 없다

 

 

요즘처럼 '소통'이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최근의 서점가에는 소통 부재를 반증하는 책들이 넘쳐난다. 그만큼 탈(脫) 권위적 사회의 변화를 보여주는 긍정적 척도로도 볼 수 있겠지만, 한편으론 소통 기술의 부재에서 오는 불통의 답답함을 하소연하는 반증으로도 볼 수 있다. 소통의 도구는 넘쳐나는데 소통의 마인드는 없는 것이다. <탈무드>에 '입이 하나이고 귀가 둘인 것은 그만큼 말하기보다 듣기를 두 배로 하라'는 뜻이라 했는데, 이 시대의 소통법은 아무래도 뒤바뀐 듯하다. 경청의 귀보다 주장의 입이 많아지다보니 개인 간 의사 소통은 물론이요, 정치 사회적 현상에서도 불필요한 갈등을 조성하거나 안타까운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넘쳐나는 소통의 통로, 부족한 소통 마인드

 

 

지금 우리 곁에는 가족, 친구, 지역을 뛰어넘는 새로운 소통의 통로들이 넘쳐나고 있다. 한때 크게 유행했던 실시간 채팅 사이트 네이트온을 비롯해 전세계인을 친구로 만들 수 있게 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의 SNS 등장에 이어 이제 걸어다니면서도 가벼운 문자 대화가 가능한 스마트폰 카톡의 유행에 이르기까지 언제 어디서건 원하는 사람과의 소통이 손 안에서 해결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입으로 말하고 귀로 듣던 시대에서 손으로 말하고 눈으로 듣는 소통법의 변화는 빠른 전달과 신속한 반응 요구로 나타나 상대방의 마음을 미처 읽기도 전에 다음 화제로 넘기고는 한다.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다보면 미세한 표정 변화와 감정의 떨림까지 감안해가며 듣기 때문에 말의 의도를 좀더 섬세하게 잡아낼 수 있지만 스마트한 시대에 스마트하게 이뤄지는 대화는 아이러니하게도 참 스마트하지 못하다. 뜻이 통하지 않는 소통, 이것이 곧 불통이니 소통이 불통이 될 때 우리는 고통스럽다. 그리고 우리는 누구나 소통의 시작이 불통으로 돌변해 고통의 후유증으로 남게 되는 씁쓸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소통의 50가지 기술, 공통분모는 열린 마음으로 경청해 듣기

 

 

 

김옥림의 저서 『 나를 잘되게 하는 소통, 나를 망하게 하는 불통』이라는 제목이 눈에 띄는 건 소통이 단순히 대화 여역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목 그대로 나를 돋보이게 하는 장점이자 때로 관계를 해쳐 나를 망하게 하는 단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대가 원하는 인재상이 출신대학의 배경보다 조직 내 원만한 인간관계능력을 더 높이 평가하는 걸보면 소통의 힘이 개인의 스펙으로 작용하는 시대가 온 셈이다.

이 책에서는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는 소통마인드 50가지를 세계적 유명인사와 관련된 일화와 글쓴이가 경험한 구체적 사례 및 다양한 사람들의 예를 들어 소개하고 있다. 각 장의 마무리는 FOCUS답게 <소통의 7가지 원칙>, <소통을 방해하는 12가지>, <상대와의 소통을 유리하게 이끄는 8가지 방법>, <소통에 대한 오해와 진실>, <소통의 말 24가지> 등을 소개하고 있어 생활 속 실천을 위한 지침서로 활용하기에 알맞다.

영국의 수상을 지낸 맥밀란은 퇴임 후 고급승용차 대신 전차를 타고 다니며 국민과의 눈높이를 맞춘 소통으로 오래도록 존경을 받았다. 세계적 동화작가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안데르센과 세계 테너계의 전설이 된 카루소의 어머니들에게서 발견되는 소통의 공통된 힘은 '칭찬'이다.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가보와 같은 가방을 우연히 맺은 한 소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기어히 무덤 앞에까지 갖다 준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가 보여준 소통의 힘은 '약속'이다. 2m가 넘는 키에 다소 험상궂은 얼굴을 한 격투기 선수 밥 샘이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설 수 있었던 소통의 기술은 이미지의 편견을 깨게 만든 천진난만한 그의 '웃음'이다. 학교를 다니지 못했음에도 독서를 통해 풍부한 지식을 갖췄던 링컨은 타인에 대한 배려심으로도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았는데 링컨의 인간적 소통의 기술은 어쩌면 가장 평범할 수도 있는 '맞장구'였다.

이밖에도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소통의 사례는 성실과 인사, 편지와 티타임, 유머와 센스, 친절과 인사, 선행과 자선 등 다양하다. 여러 단어로 세분화시켰을 뿐, 결국 소통의 밑바탕에 깔린 기본 자세는 경청과 열린 마음이 아닐까 싶다. 열린 마음으로 경청해서 듣는다면 오해도 과장도, 자의적 해석도 줄어들게 될 것이며, 소통은 이해로 발전해 서로를 더욱 단단한 인연의 끈으로 묶어두게 될 것이다.

또한 입으로만 떠벌리는 말의 잔치보다 몸으로 보여주는 실천적 행동이야말로 진정성이 담긴 소박하면서도 위대한 소통임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더불어 소통을 위한 노력으로 삼고초려의 정신 또한 필요하다는 것을 몇몇 사례를 읽다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작은 노력으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소통의 기술

 

 

한때 KBS의 간판 오락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 코너 중에 현대 사회의 가족 간 무관심과 소통 부재를 다룬 '대화가 필요해'라는 코너가 큰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다. 소재는 다르지만 여전히 "말이 안 통해~!"라는 적반하장의 대사를 남기며 사라지는 여학생 캐릭터가 요즘 인기다. 모두 소통 부재를 통한 단절의 벽을 희화화한 것으로 시청자 입장에서 깔깔거리며 보면서도 웃기지만은 않은 이유는 그 안에 담긴 뼈 있는 사회비판의 칼날 때문일 것이다. 모니터 안의 세상이 아닌 우리가 부딪히며 살아가는 현실 공간에서 종종 일어나는 현상의 복사판이랄까? 혹 가족 간, 부부 간, 친구 간, 동료 간, 집단 간에 불통의 답답함을 느껴 가슴을 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길 권한다.작은 노력으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실천적 제안이 곳곳에 숨어 있어 밑줄을 긋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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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와시다 고야타 지음, 김정화 옮김 / 와우라이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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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인 조카의 진로를 두고 언니에게 상담전화를 받았습니다.

제 직업이 학원강사이다보니 다년간 입시를 지켜본 경험을 바탕으로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얻고 싶었다는군요.

고3이 코앞인데 그저 막막하기만 한 상황으로 진로탐색과 관련된 전공 분야는 무엇으로 결정해야 할지,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 사이에서의 조화는 어느 지점에서 맞추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면서요.

이것저것 점검할 것도 많고 모르는 것도 많았습니다만, 내신 관리나 과목별 성적보다 더 큰 문제는 '하고 싶은 일이 없다' 거나 '본인이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를 아예 모른다'는 점에 있었습니다.

아직 '하고싶다'라는 특정 분야를 절박하게 느낀 적이 거의 없기에 조카 입장에서는 어떤 선택에서든 망설여진다고 하더군요.

눈에 띄게 잘 하는 분야가 있거나 특별히 관심이 가는 분야가 있다면 선택의 폭을 좁혀나갈 수 있으련만, 이도저도 아닌 경우는 정말이지 무엇을 1단계에 놓고 기준을 잡아야할지 막막할 수밖에요.

 

 

그러던 차에 이 책을 만나게 돼서 그런지 무척이나 반갑고 기대가 되더군요.

꼼꼼하게 읽어본 후 중요한 포인트를 정리해 조카에게 조언을 해주리라 마음먹었으니까요.

비단 조카만의 문제가 아닌, 40줄에 들어선 제 자신도 늘 이 문제로 고뇌하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죠.

아이러니하게도 책을 받자마자 제일 먼저 펼쳐 읽었음에도 평점에는 인색할 수밖에 없는 것이 기대했던 것에 비해 소득이 적었기 때문일까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개인적으로는 목차 구성이 몹시 알차고 체계적으로 느껴져 실질적인 문제 파악과 방향 제시를 기대했는데 막상은 보편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사항들의 열거에 그친 듯해 아쉬움이 컸습니다.

게다가 번역서 특유의 오타도 군데군데 발견돼 예정된 출간날짜에 촉박하게 맞춘 느낌이랄까요?

제 개인적인 독서 습관인지라 늘상 책을 읽으며 오타 표시를 해두고는 하는데 이 책에는 발견 오타가 좀 많더군요.

혹 제가 잘못 이해해 올바른 표현을 무리하게 바꿔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예) p.27 : 않을까? - 아닐까? / p.36 : 선수도 - 선수로 / p.43 : 여전히 사람이 - 사람이 여전히 / p.49 : 작은 따옴표 하나 빠짐 / p.75 : 내용이 - 내용을 / p.110 : 지술 - 기술 / p.112 : 뭐든 시작하지 않는 - 뭐든 시작하는 / p.140 : 하던 하지 않던 - 하든 하지 않든

 

그렇다고 해서 한쪽으로 제껴둘 만한 책은 아닙니다.

익히 알고 있다 해도 깊이 깨닫지 못해 가벼이 흘려보내는 숱한 상식들을 저자는 '톡' 쏘는 소스를 곁들여 독자 앞에 10 part로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구체적인 사례와 진단까지 첨가한 메뉴얼 체계가 독자 입장에서는 '나는 어느 유형, 어느 사례에 가까운 걸까? 고민하게 만듦도 이 책의 유용한 효과 중 하나일 겁니다.

 

 

특히 part 4에서 들려주는 '하고 싶은 일을 모르는 걸까? 알려고 하지 않는 걸까?'는 저자의 날카로운 지적대로 '하고 싶은 일 찾기를 미루고 있는 것(p.68)일 수도 있으며, 쉽게 '모르겠다'는 말을 내뱉는 사람일수록 스스로 떨쳐 일어나려는 의지가 약한(p.74)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 '하고 싶은 일'을 수 년째 머리 속에 막연히 밑그림으로만 그린 채 색칠하는 데는 늘 상황을 핑계대며 미뤄왔으니까요.

정작 '지금 하고 있는 일'과의 현실적 비교 속에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용기를 못 내고 있었으니까요.

'최소한의 것도 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모르겠다는 것은 지적 태만일 수도 있다(p.76~77)'는 저자의 지적대로 학생은 학생으로서의 최소한이라는 범주를 학교생활과 학업으로, 직장인은 직장에서의 업무 능력 향상과 자기계발로(혹 이직을 준비하고 있다면 이직을 위한 적극적 교육 투자로), 구직자는 다양한 정보 수집과 적극적인 구직 활동으로, 각자의 위치에 맞게 접근하고 조절하는 노력이 필요하겠죠?

 

 

혹 하고 싶은 일이 많아 무엇을 우선으로 두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분들께 저자의 생각 분류법을 소개해주고 싶습니다.(책 속에서는 이런 의도로 씌어진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저는 이렇게 이해하고 '하고 싶은 일'에 적용해보니 딱 들어맞더군요.)

'먼저 모호한(obscure) 것과 분명한(clear) 것을 구별하고, 분명한 것에서 혼란스러운(confused) 것을 구별한다.'(p.70)

가령 제가 하고 싶은 일이 '청소년상담사, 심리학자, 사회복지사, 문구점, 청소년 공부방 봉사, 문화재 해설가'라면 이중에서 해도 그만이거나 안 해도 어쩔 수 없다 싶은 모호한 것인 문구점, 공부방 봉사, 문화해설가' 등을 일차적으로 빼버립니다.

그런 다음 꼭 하고 싶은 일인지 아니면 관련 분야라 그저 관심이 가고 좋아하는 것 뿐인지 혼란스러운 대상을 정리합니다.

평소 심리학과 철학 분야를 즐겨 읽고 관심을 두고 살아서인지 막연하게 꿈의 한 분야로 저장해놓고 살았는데 사실 '심리학자'는 그저 '유희'에 가까운 독서 영역일 뿐, 현실적으로 간절히 바라고 꿈꾸던 꿈의 영역은 아니었음을 이참에 점검해보게 되더군요.

책이란 게 저자의 손을 떠나면 수용자에 따라 다르게도 읽혀진다고 하는데 이 책이 이런 면에서 제게는 그렇군요.

 

 

하고 싶은 일을 찾았으나 금세 이르지 못하고 헤매거나 길을 찾지 못해 좌절하는 사람에게는 part 6이 심리적 위안이 되주리라 봅니다.

'헤매고 보람 없이 되돌아온다 해도 모조리 허탕은 아니다. 목적에 도달하지 못하는 길 하나는 알아냈기 때문이다.(p.117)'

에디슨은 전구 하나를 발명하는데 무려 2천 번 정도의 실패를 거듭했다고 하죠?

그렇게 힘든 연구를 계속할 필요가 있느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에디슨은 '그래도 전구를 만들지 못하는 방법 2천 가지는 알아냈으니 소득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라고 했다죠?

실수를 즐기는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을 깨달아도 두 번 다시 헤매지 않기 위해 바로 돌아서지 않고 걸어온 길을 탐색해보는 여유를 지니게 될 것입니다.

 

 

끝으로 이 책에서 얻은, 마음에 위안이 되는 구절이 있어 소개하려 합니다.

"어차피 고생할 거라면 좋아하는 사람하고 결혼하고 싶다. 마찬가지로 이왕 힘들게 할 일이라면 자기가 선택한 일이면 좋겠다. 이게 기본이고 이게 솔직한 심정이다.왜일까? 자기가 선택했기 때문이다."(p.137)

하고 싶은 일은 시간이 없고 몸이 피곤해도 스스로가 원해 쪽잠을 자면서도 견뎌내지만, 하기 싫은 일은 많은 시간이 주어져도 내일로 미루고 있음을 생활 속에서 종종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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