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카페의 노래
카슨 매컬러스 지음, 장영희 옮김 / 열림원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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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스가 주는 미세한 차이 때문일까? 차분한 찻집이나 시끌벅적한 술집과는 달리 카페라는 단어에서는 사람들 간에 주고받는 생기 있는 말소리 이외에도 색다른 문화적 활기가 느껴진다. 지극히 개인적일 수밖에 없는 이런 생각에는 아마도 영화 <바그다드 카페>의 영향이 크지 않을까?싶다. 황량한 사막 한 가운데 자리한 우울한 카페가 어느 날 문득 찾아든 한 여인에 의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생기발랄한 카페로 거듭나게 됐던 것처럼 카슨 매컬러스의 <슬픈 카페의 노래> 역시 단순히 술이나 음식을 파는 가게를 넘어 마을 사람들의 단조로운 일상에 문화를 덧입히는 공간으로 카페가 등장한다.

 

시로부터 동떨어진 황량한 마을의 한 복판, 사료나 곡식, 코담배 등 생필품을 팔던 가게에 어느 날 흉측하게 생긴 꼽추 라이먼이 찾아든다. 자신을 가게 주인인 미스 어밀리어의 사촌이라 소개하는 라이먼의 등장은 이내 온 마을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게 되고, 전 남편을 내쫓고 혼자 살고 있는 사팔뜨기 여주인인 미스 어밀리어는 한순간에 사촌이자 꼽추인 라이먼에게 반하게 된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지어내거나 이간질로 싸움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나 사교성이 좋아 모두를 즐겁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라이먼으로 인해 평범했던 사료가게는 저녁이면 사람들로 북적이는 사교장소가 된다. 본디 미스 아밀리어는 평범한 여성들과는 달리 180cm가 넘는 큰 키에 골격이 크고 힘이 넘치는데다 남자라고는 안중에 없는 듯 돈 버는 일에만 몰두하는 여자인데 그런 그녀에게 마을의 불한당인 마빈 메이시는 흠뻑 빠져 개과천선하기에 이른다. 온갖 못된 일을 일삼던 그가 교회에도 나가고 착실하게 일을 하는 등 사랑에 빠진 진정한 거듭남을 보이는 것이다. 무슨 일인지 미스 어밀리어는 그런 그와 결혼을 하지만 이내 열흘 만에 남편인 마빈 메이시를 내쫓았던 것이다. 이에 분개한 마빈은 또 다시 온갖 악행을 일삼다가 결국 교도소로 들어가게 되나 출소 후 앙심을 품고 다시 마을로 돌아온다. 기괴한 일은 미스 어밀리어의 사랑 속에 풍족하고 자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던 꼽추 라이먼이 마빈 메이시에게 푹 빠져 그의 뒤를 졸졸 따라 다니게 된 것이다. 어밀리어는 사랑하는 라이먼을 잃을까 두려워 평상심을 잃고 마빈을 집에 들이는 위험한 동거를 하게 된다. 노심초사 불안한 날을 보내는 어밀리어와 달리 새로운 호기심과 열정으로 마빈에게 구애의 눈빛을 보내는 라이먼과 그런 라이먼을 짐승 보듯 경멸하면서도 어밀리어의 심기를 흐트려 놓으려는 듯 교묘히 이용하는 마빈. 결국 어밀리어와 마빈의 한판 승부가 벌어지고 어밀리어가 마빈을 제압하려던 그 순간, 갑작스럽게 달려든 라이먼에게 의해 전세가 뒤바뀌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 사랑하는 사람에 의해 패배로 끝나자 멍한 허탈감에 빠진 어밀리어는 이후 카페를 닫고 세상과 단절된 은둔의 세계로 들어가고 마빈과 라이먼은 마을을 떠난다.

 

으로 기괴한 사랑 노래요, 슬픈 발라드라 할 수 있는 이 이야기의 저자는 윌리엄 포그너와 더불어 미국 남부를 대표하는 작가 카슨 매컬러의 작품으로, 영화로도 제작되었을 만큼 독특하고도 기묘한 인생 이야기를 들려준다. 열다섯 살에 열병을 앓고 몇 번의 뇌졸중을 거쳐 걷는 것조차 힘겨워진 저자는 육체의 고통을 오로지 정신의 힘으로 극복하려는 듯 죽을 때까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쳐갔다 한다. 이 책에서도 보여주듯 그녀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주로 평범한 세계관에 순응하기 힘든 소외된 영혼의 열망과 고독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의 이력 때문인지 주류에서 소외된 이들의 가슴 아픈 상처와 순수한 열정은 작품 속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생생한 목소리로 되살아난다 

 

랑에도 다양한 색깔이 있고 무늬가 있다면 <슬픈 카페의 노래>에서 어밀리어와 라이먼, 마빈이 보여주는 사랑은 언뜻 보기에 어둡고 탁한 색채에 갈기갈기 찢어진 흉터로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흉터 하나 없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싶다. 흉터 하나 없이 미끈하게 살아온 인생이 사랑으로 가슴 시리고 가슴 저려본 적이 있었겠는가? 그 어떤 빛깔이라도 사랑으로 마음을 내어준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흉터도 세월이 지나 무늬로 새겨지는 법. 기괴한 인물들의 가슴에도 뜨거운 사랑의 젖줄이 흐르고 있음이 너무도 당연한데 무척이나 오묘하게 느껴지니, 독자로서도 색다른 호기심을 넘어 사랑의 본질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아주 이상하고 기이한 사람도 누군가의 마음에 사랑을 불 지를 수 있다.

선한 사람이 폭력적이면서도 천한 사랑을 자극할 수 있고,

의미 없는 말만 지껄이는 미치광이도 누군가의 영혼 속에 부드럽고 순수한 목가를 깨울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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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 자매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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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운 이웃들의 사소한 모습에서도 섬세한 보석을 발견하는 능력이 있는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의 신작 <도토리 자매>는 상처입은 영혼을 치유하는 과정을 요란스럽지 않게 보여주는 힐링소설이다. 간결하고 재치 있는 문체 속에 무겁지 않으면서도 진중한 삶의 단면들을 경쾌하게 보여주고 있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글 속에는 일상이 배경임에도 동화와 영화의 중간계를 보는 듯한 묘한 글맛이 있다. 이번에 발표한 소설 <도토리 자매> 역시 단조로운 일상의 고백 속에 거창하지 않은 동화적 순수를 이중주로 전해준다.

 

다보면 가끔씩 익숙하고 가까운 사람보다 모르는 낯선 사람이 오히려 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서로의 사정을 너무 잘 알기에 비밀이 비밀로 지켜지기 어려운 경우라거나 차마 말하기 어려운 경우, 또는 가까움이 오히려 민망함이나 쑥스러움으로 작용해 얼버무리게 만드는 경우 등등. 그럴 때면 누군가 나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 숨겨왔던 비밀 내지는 들키고 싶지 않은 아픔에 대해 마음의 빗장을 열고 싶어진다. 그저 누군가 들어주기만 해도 좋은 넋두리부터 객관적인 조언이 필요한 고민까지 말이다. 적당한 거리가 주는 편안함은 때로 우리의 닫힌 입을, 상처입은 마음을 치유하는 관계의 조건이 되기도 하니까

 

구나가 한번쯤은 상상해봤을 이러한 바람을 누구에게든 메일을 보내고 싶은데, 아는 사람에게는 보내고 싶지 않을 때 마침 딱 좋은 존재(p8)’라는 콘셉트로 외로운 이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자매가 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도토리 자매> 속 돈코와 구리코는 무슨 말이든 하고 싶어 견딜 수 없거나 무척 외로운 사람들에게서 편지를 받고 그들의 사연에 답장을 해주는 일을 하며 살아간다. 물론 돈은 받지 않으며 답장은 늦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꼭 보낸다는 철칙으로 말이다. 부모님과 삼촌, 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 사랑하는 사람을 연이어 잃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 자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받은 사랑을 누군가에게 돌려주고 싶다는 취지로 의기투합해 각자의 이름을 합성한 돈구리(=도토리)’ 자매로 활동하며 이메일로 외로운 사람들의 고민 상담을 받는다.

 

매라고는 하지만 생활 속에 드러나는 개인적 성향과 기질은 극과 극으로 나타날 만큼 확연히 다른 돈코와 구리코. 연애가 시작될 때를 좋아할 뿐, 결혼도 임신도 원치 않는 언니 돈코는 연애가 끊이지 않는 반면, 연애를 하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느끼는 동생 구리코는 반 년 동안 슈퍼와 DVD대여점, 책방, 스타벅스 외에는 간 곳이 없을 만큼 연애 자체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폐쇄적 생활을 한다. 그러나 편지를 읽고 답장을 보내는 도토리 자매로서의 역할에 대한 둘의 애정은 누가 먼저라거나 높다 할 것 없이 세심하고 진지하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하여 이들에게 편지를 보낸 사람들은 형식적인 답장이 아닌, 따뜻한 위로와 공감어린 조언 속에 힘을 얻는다.

 

난하지만 낙천적이고 유쾌했던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타고난 성정과 사고 후 조카를 맡아 기르는 삼촌 내외의 따뜻한 인정, 그리고 무뚝뚝해 보일 정도로 과묵하지만 속 깊은 정과 지적인 낭만을 지닌 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 이들에게 두 자매가 물려받은 공통적인 삶의 유산은 관계의 따뜻함에서 오는 사랑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였을까?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삼촌댁에 맡겨졌던 이들 자매가 이후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는데다 사회적 명망까지 갖춘 이모집에서 지내면서는 오히려 숨막히는 생활을 하게 된 것은. 누구나가 부러워할 만한 갖춰진 조건 속에서도 무언가 부족한 상태에서 느끼는 생의 건강함을 되찾기 위해 결국 이모집을 나오게 된 데에는 돈꼬와 구리꼬의 혈관 깊은 곳에 온몸을 휘돌아 흐르는 자유 의지와 사랑이 있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극도의 슬픔과 그로 인해 파생되는 외로운 시간을 보내봤기 때문에 남의 상처와 흉터를 어루만져 줄 수 있는 도토리 자매의 소소한 일상은 이메일이라는 온라인 공간을 통해서 잔잔한 파동을 일으키며 이어간다

      

을 읽다보니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도 도토리자매와 같은 사이트가 있어 잠 안 오는 밤, 불 밝히듯 마음을 밝힐 수 있는 공간이 내게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고독한 현대인에게는 자기만의 밀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광장이 필요하다. 도토리자매가 운영하는 홈페이지는 형식상으로 은밀한 밀실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의 소통이 이뤄지는 광장이 되는 셈이며, 표면적 상담자는 돈코와 구리코이나 이들 역시 이러한 일을 통해 자신들의 내면을 치유해 가고 있는 피상담자가 되는지도 모른다. 도토리 자매는 밀실과 광장의 조화를 관계 맺기와 관계 유지의 장으로 지혜롭게 다룰 줄 아는 여성들이란 생각이 든다.

 

 

서없는 얘기를 두서없이 해도 좋을 대상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 사람은 분명 행복할 것이다. 마음을 여는 데 경청만큼 좋은 기술이 또 어디 있으랴? 부모님께 받은 사랑을 누군가에게 돌려주고 싶어 이메일로 사연을 받아 답장을 주는 도토리 자매의 순수하고 사랑스런 일상이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만들어 주듯 멀리서 찾을 것 없이 오늘은 내가 한 번 도토리 자매가 돼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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