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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너드 번스타인의 음악의 즐거움 - 세대를 넘어 사랑받는 클래식 해설서의 고전
번스타인 (Leonard Bernstein) 지음, 김형석 옮김 / 느낌이있는책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레너드 번스타인의 음악의 즐거움>은 클래식에 대한 접근 방법에 있어 확실히 차원이 다른, 성격이 다른 책이다.
기존에 내가 접했던 클래식 서적이 감상의 이해를 돕는 안내 서적과 유사했다면, 이 책은 클래식이라는 음악의 뿌리를 순전히 음악적인 요소로서 분석하고 논리적으로 평가한 비평서적에 가깝다. 화려하게 치장한 의상보다 골격과 뼈대에 더 관심을 갖고 있는 미적 기준이랄까?
대부분의 클래식 관련 서적이 클래식의 역사나 유파, 음악가의 생애, 음악에 얽힌 일화 등을 통해 감상의 지평을 넓혔다면, 이 책은 오로지 음악적 요소에 근거한 치밀하고 논리적인 악곡 분석부터 전통 클래식은 물론이거니와 재즈, 뮤지컬, 현대음악, 오페라 등 각각의 음악적 장르가 지닌 특성을 적확한 비유와 날카로운 비평을 통해 명쾌하게 정리해준다.
이 책에는 ‘적확한’이라는 단어가 곳곳에서 여러 번 쓰이는데, 이것은 아마도 레너드 번스타인이 추구하는 음악관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핵심어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우주에 태초부터 허락된 이 악장만을 위한 공간이 있어 그것이 맞춰지는 순간 우주가 완벽해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p31)
작곡가는 다음 도착지가 어떤 곳인지 아는 능력, 풀어 말해 주제로부터 이어지는 모든 음이 정확히 그 자리에 나타날 수 있는 유일한 음이라는 감각, 이 ‘적확함’의 감각을 전달하기 위해서 이 음 다음에 어떤 음이 나와야만 하는지 아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만 합니다.(p83)
지휘자는 시간의 흐름에 극히 민감한 사람입니다. 가장 ‘적확한’ 순간에 가장 ‘적확한’ 길을 통해 한 음에서 다음 음으로 넘어가는 사람입니다. (P169)
비약인지 모르겠으나 이 단어 하나만으로도 이 책에서 펼쳐나가고 있는 방대한 음악 지식을 때로는 압축해서, 때로는 확장해서 절도있게 표현해주는 것만 같다. 작곡가든 연주가든 지휘자든 음악가에게 이 ‘적확한’이라는 용어는 아름다운 선율을 이끌어내기 위해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자질임을 책 곳곳에서 짐작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평소 번스타인이 지니고 있는 음악에 대한 입장과 태도를 1부 ‘상상의 대화’를 통해 독특하게 보여준다. 베토벤이 왜 위대한 작곡가인지, 정통 클래식에서 벗어난 세미 클래식으로의 접목이 어찌하여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난 현상인지를 가상의 서정시인과 매니저를 등장시켜 대화와 편지의 형식을 통해 상반적인 논쟁 방식으로 이끌어 나간다. 팽팽한 논리로 서로를 이해시키는 상상의 대화라니, 꽤나 흥미로운 전개 방식이다.
이어 2부에서는 1950년대 미국에서 인기리에 방송되었던 <레너드 번스타인 옴니버스> 프로그램의 방송대본 7강이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전문성에 근거한 진행으로 흥미롭게 펼쳐진다. (우리나라에서는 금난새 지휘자가 이와 유사한 프로그램으로 <청소년을 위한 음악회>, <해설이 있는 음악회> 등으로 클래식 대중화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베토벤이 그 유명한 <운명> 교향곡 제 2악장의 서두를 위해 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가장 ‘적확한’ 음을 찾아내기 위해 최소 14가지 버전의 악보를 만들었다는 놀라운 이야기와 이들 중 오늘날 우리가 듣고 있는 완성곡이 왜 필연적 결과물로서 완벽한지를 무대에서 각각의 연주를 들려주며 시청자(독자)로 하여금 비교하게끔 이끈다. 그 결과 베토벤이라는 작곡가는 주제 뒤에 이어져야 할 바로 그 음들을 찾아내는 데 있어 특별한 재능의 소유자임을, <운명> 교향곡이야말로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가며 가장 ‘적확한’ 음과 리듬, 클라이맥스, 화성, 악기 편성에 대한 고뇌의 산물이었음을 말해준다.
“ 내가 재즈를 사랑하는 것은 재즈의 유머 때문이기도 합니다. 재즈는 실로 음을 가지고 ‘놉니다’. 우리는 ‘논다(play)'라는 단어로 음악을 ’연주한다(play)'고 말합니다. 브람스를 논다, 바흐를 논다? 실은 스포츠에 더 잘 어울릴 법한 단어지요. 그런데 재즈는 진짜 놀이입니다. 재즈는 음들을 가지고 놀고 음들로 재미를 만듭니다. 재즈는 그야말로 즐거운 엔터테인먼트입니다.(p107)
재즈는 악보로 옮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사분음을 정확히 기록할 방법도 없고 그 다양한 음색, 그 미묘한 조음법을 그대로 옮겨 적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리듬 역시 애초에 정확하게 기보할 수가 없습니다. 그만큼 재즈 음악의 성격은 악보를 읽는 연주자의 감에 달려 있는 것이지요. 결국 재즈는 그렇게 만들어집니다. 연주자들은 심오하고도 순전한 감으로 재즈를 창조해 냅니다. (P131)
나는 일찍이 재즈에 대해 이렇게 명쾌하고도 멋진 평을 들어본 적이 없다.
한때 저급한 하층민의 음악으로 폄하되기까지 한 재즈에 대한 번스타인의 놀라운 지적 탐구와 세밀한 관찰은 개인적으로 뜻밖에 얻은 이 책의 백미이다. 클래식이라는 견고한 테두리 안에서는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장르를 번스타인은 아무런 선입견 없이 과감히(?) 건드린 것이다. 향유층에 따라 음악에도 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정통 클래식과 확연히 다른 재즈는 선술집에서나 흥얼거리듯 흘러나오는 서민층의 가벼운 노래일 수 있겠으나 탁월한 음악적 안목을 지닌 그에게는 재즈의 세계야말로 음악 영역에서 간과할 수 없는 매력적인 분야였던 것이다.
우리는 이 책에서 종종 음악가로서의 번스타인 이외에도 문학가, 철학가로서의 번스타인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데 지휘의 기술을 논하는 2부 3강에서는 특히나 빛나는 문학적 표현과 진지한 철학적 고찰 속에 이루어진 깊이 있는 해석이 절로 감탄을 자아낸다.
지휘자의 악기는 100명의 ‘인간’입니다. 자기 의지를 가진 전문 연주자 100명으로 마치 하나의 의지로 하나의 악기를 연주하듯 음악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그래서 지휘자는 강력한 권위의 소유자인 동시에 이 큰 집단을 이끌어갈 수 있는 심리적 통찰력의 소유자여야 합니다.(p138)
지휘자는 이런 악보를 처음 받아들고 무슨 일을 할까요? 대개는 우선 처음부터 끝까지 악보를 읽습니다. 탐정 소설 읽듯 말이죠. 악보에도 서스펜스가 있고, 사태의 결말이 궁금해지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지휘자는 악보를 눈으로 보는 동시에 머릿속으로 듣습니다.(p160)
길고 가느다란 지휘봉의 움직임이 소리를 입힌 언어가 되어 완성된 연주를 위한 소통의 통로가 된다는 표현이 참으로 적절하고 멋지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머릿속으로 음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없는 내겐 소설책 읽듯 구성단계별로 음을 그려내는 능력이, 선율만이 아닌 의미까지 읽어내는 능력이 신비롭게 느껴지기까지 하다.
클래식과 대중음악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번스타인의 음악지평은 재즈에만 국한되지 않은 채 뮤지컬과 영화음악, 오페라, 현대음악에까지 이어져 방대한 전문성을 드러낸다. 뮤지컬이야말로 미국이라는 토양에서 발생한 예술로 가장 미국적인 언어와 빠르기, 도덕관, 방향성으로 이루어진 작품으로 시대적 요구에 따라 만들어진 새로운 음악 형식이라 평하며 음악에 있어서의 창조적인 에너지가 새로운 장르,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내고 있음에 열광한다.
이밖에도 음악의 아버지라 일컫는 바흐의 음악세계를 절대신앙의 신심에서 비롯된 찬양으로 규정지으며, 그가 작품을 쓰는 것은 신앙 활동이었고, 작품을 연주하는 것은 찬양 활동이었으며 그는 음 하나하나를 오롯이 신에게 봉헌했다,는 멋진 말로 정리를 한다.
오페라의 매력에 대해서는 오페라야말로 짧은 시공간 속에서 모든 장치, 즉 노랫말을 확장하고 상황을 확장하고 분위기를 확장하고 인물을 확장하고 감정을 확장하는 기법이 전부 동원되는 음악예술이라고 평한다. 단순한 가사로 이루어진 드라마에 음악이 들어가 새로운 경지와 새로운 심도를 부여하는 오페라야말로 ‘그랜드’하다고 부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화려함과 대규모가 주는 황홀함을 상상해볼 만하다.
책을 읽다 문득 번스타인의 탁월한 문장력에 그의 이력이 궁금해 자료를 찾아봤더니, 역시나! 그는 작곡 공부 이전에 하버드대에서 언어와 철학을 전공한 인물로 이미 글쓰기에 있어서도 남다른 재능과 교양을 여러 곳에서 선보였던 바, 이 책에서 유감없이 그 실력을 발휘한다. 그래선지 글 흐름이 매끄럽고 자연스러워 막힘없이 술술 읽힌다. 한 가지 재능을 온전히 발휘하기도 어려운데 다방면에 걸쳐 흠 잡기 어려울 정도의 조화로운 재능을 지녔다는 점에서 살짝 인간적인 부러움이 이는 부분이기는 하나 덕분에 이렇게 질적으로 우수한 책을 읽게 된 독자로서는 호강을 누리는 일임에 틀림없다.
다만 이 책을 읽으며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개인적으로 음악적 소양이 부족해 악보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는 점이다. 방송에서는 노래와 연주를 통해 현장감을 살릴 수 있는 부분도 책에서는 악보로만 전해지기에 그 소리와 분위기를 원래 취지대로 온전히 못 누린 것에 대한 아쉬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스타인의 수려한 문장과 ‘적확한’ 비유 덕에 이 책은 단순히 눈으로 읽는 책이 아닌 귀로 듣는 책으로의 색다른 독서법을 보여준 멋진 예라 하겠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가 레너드 번스타인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는 카라얀과 더불어 20세기를 대표할 만한 위대한 지휘자로서의 명성과 하루에 담배 5갑 정도를 피워댈 정도의 애연가였다는 것(결국 그는 폐암으로 생을 마감한다), 예술가에게 흥미로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독특한 성적 취향(양성애자), 지휘 도중 흥에 겨우면 폴짝폴짝 뛰는 열정적인 재스추어 등 음악적 알맹이는 빠진 채 지극히 대중적인 관심권에 머물러 있었다.
허나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지휘자이자 작곡가, 피아니스트, 음악 해설가로서 음악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음악가로서의 레너드 번스타인에 흠뻑 빠져들게 되었다.
평생 음악을 사랑했고, 음악과 함께 살았으며, 음악의 향유를 개인적 감상으로서의 ‘사유’가 아닌 대중과의 소통과 공감지대 형성을 위한 ‘공유’로 확장할 수 있었던 그는 진정한 마에스트로로 대중에게 기억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클래식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아니 음악이라는 영원한 울림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레너드 번스타인은 <음악의 즐거움>이라는, 참으로 값진 선물을 남겨주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에서 ‘아는’의 범주를 전문가답게 펼쳐놓은 책, ‘아는’의 진정한 의미가 ‘느끼는’이라는 것임을 음악을 통해 보여주는 책, 따라서 이 책은 '눈으로 읽는 책'이 아닌 '귀로 듣는 책'이라 정의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