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 경제학 - 경제학은 어떻게 인간과 예술을 움직이는가?
문소영 지음 / 이다미디어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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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부터 엉뚱한 소리일는지 모르지만 최근 교육계에서는 '창의적 융합 인재 양성'이 관심 용어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각 분야의 전문성은 별개의 영역이 아닌 융합과 조화의 영역임을 나타내는 말로, 가령 전혀 다른 분야로 인식되어온  과학과 예술, 철학과 공학이 결합하여 새로운 창의적 생산물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거울을 이용한 구조물을 만들고 그것을 광고하는 글을 쓰거나 거울을 보고 그림을 그리는 활동을 하는 등 다양한 경험과 관찰 모두가 거울의 원리를 이해하는 전반적인 과정으로 융합 교육의 한 방법이 되는 것이다. 과학 수업인지 작문 수업인지 미술 수업인지 경계가 모호하지만 결론은 겨울에 대한 총체적 이해가 주된 목적이 된다.

21세기 창조 경제 시대에 지식과 기술, 예술이 만나 이루는 융합형 인재는 어쩌면 다변화되고 세분화되는 시대에 또 다른 요구에 의해 만들어지는 인재 유형이 아닐까 싶다.

 

접적으로 대면한 적은 없지만 저자에 대해 굳어진 이미지가 내게는 위에서 언급한 융합형 인재와 흡사하다. 책으로 만나기 전 저자가 운영하는 네이버 블로그 <미술관 속 비밀도서관>을 비밀스럽게 출입하던 방문객인지라 그간 저자의 그림 소개를 줄기차게 읽어왔기에 그의 해박한 인문학 지식과 그림을 풀어가는 문장력에 탄복하고는 했는데, 이번에 출간한 <그림 속 경제학>을 통해서는 저자의 또 다른 전공 분야인 경제학 풀이에 감탄을 금치 못했으니 말이다. 사람이 한 분야에서만이라도 전문성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은 법인데 역사와 철학이라는 인문학적 배경에 숨겨진 명화를 찾아내 맛깔스럽게 소개하는 그의 필력은 주말에 가까운 미술관이나 박물관이라도 찾아가보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다.

 

다미디어에서 출간된 <그림 속 경제학>은 언뜻 낯선 조합처럼 보이는 두 영역을 저자 특유의 문체인, 합리적 사고 방식이 빚어내는 정갈한 언어로 미술 작품 속에 반영되어 있는 당대의 세태는 물론이거니와 숨어있는 경제학코드를 알기 쉽게 풀이해낸 책이다. 모든 예술이 당대 사회를 반영하고 있다고는 하나 감상자 입장에서는 오랜 시간이 흘러 삶의 양식이 바뀌었기에 들여다보지 못한 구석도 있을 것이며, 작가가 은밀하게 처리한 탓에 전문가가 아니라면 보지 못하는 구석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내게는 이 책이 후자의 경우에 더욱 속하는 것으로서 저자의 설명이 없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만큼 의외의 숨겨진 구석이 많아 호기심이 비례적으로 작용한 책이기도 했다. 차례만 훑어보더라도 일단 구미가 당긴달까? 예감은 종합적 판단을 전제로 하기에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세의 종교그림부터 현대의 벽화미술에 이르기까지 시대별, 상황별, 사상별로 이슈가 되었던 작품들을 토대로 경제용어와 재미있는 미술사를 섞어가며 풀어가는 이 책은 총 12 파트로 진행되는 미술사 수업인 동시에 경제학 강의이기도 하다. 청강생이 되어 12파트를 수강하는 기분으로 한 장 한 장을 넘기다 보면 때로 오래도록 시선이 머무는 그림이 있는가 하면 때로 밑줄을 긋게 만드는 구절이 있어 색다른 즐거움을 독자에게 선사해 준다.

 

 

Part 1 에서 다루고 있는 지오토 디 본디네가 그린 프레스코 벽화 중에는 인류 구원의 상징인 예수가 무서운 눈빛으로 채찍을 휘두르는 그림이 있어 온화하고 자비로운 예수의 이미지에 익숙한 이들에게 낯선 경험을 안겨준다. 유대인의 큰 명절 중 하나인 유월절(모세의 인도로 이집트를 탈출한 것을 기념하는 명절) 제사를 위해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던 유대인들이 성전에 모여 외국 화폐를 성전 반세겔 은화로 바꾸는 가운데 환전이 성행하게 되었으며, 흠없고 순결한 제물을 구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가축상들의 가격 횡포가 극심하게 이뤄지던 풍경을 목격한 예수가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 이르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이 안에서 저자는 당시 서민의 등골을 휘게 만드는 독점과 담합의 실체를 읽어내며 제물용 가축과 성전세용 환전 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이들에게 절대적인 만큼 가격 변화에 지극히 비탄력적일 수밖에 없음을 지적한다. 분노한 예수의 표정 하나에, 채찍을 휘두르는 손짓 하나에, 쏟아지고 흩어지는 동전과 인파들의 동작 하나에 독점과 담합원리는 물론이거니와  이를 묵과하고 뇌물을 챙기는 부도덕한 종교지도자에 대한 비판과 조롱이 숨어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공정거래법이 등장하게 된 바탕에는 이러한 인류 역사의 진행이 있었음을 그림은 증언처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자'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샤일록의 이야기를 그린 얀 요세프 호르만스의 그림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이어 대금업에 대한 당대인들의 부정적 시각을 그린 히에로니무스의 <죽음과 구두쇠>를 통해 대금업으로 부를 축적한 구두쇠가 죽음의 순간 직전까지도 돈자루에 본능적으로 손이 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영혼 구원과 물질의 세속 사이에서 오가는 심리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오늘날의 대부업계 또한 여전히 높은 이자율로 인해 절박한 사정으로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에게 삶의 부담을 가중시켜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했으니 합법적 사채업에 대해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논쟁거리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Part 3 '여왕은 지구본 위에 손을 얹었다'는 제목부터가  대항해시대를 통한 식민지 개척과 중상주의 정책을 자동적으로 연상시킨다. 인류 역사상 위대한 여왕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영국의 엘리자베스1세를 그린 <아르마다 초상화>에는 화려한 장신구로 꾸며진 위풍당당한 여왕의 모습에 가려 지나치기 쉬운 부분으로 지구본에 살짝 손을 얹은 부분이 있다. 당대 유럽의 정치, 경제, 사회 상황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시각 자료라 할 만한 이 그림에서 여왕이 손으로 덮은 북아메리카 동부의 한 지역은 나중에 여왕의 별명이 된 '버진 퀸'을 따서 '버지니아(Virginia)'라고 불리게 됐다고 한다. 또한 그림의 왼쪽 상단에는 창문 너머로 보이는 영국과 에스파냐의 범선들이 보이는데 당시 바다를 가로지르던 무역상들이 국가와 군주의 권위를 드높이기 위해 생활과 밀접한 항구 풍경을 화가들에게 자주 주문했다고 한다. 고전주의적 풍경화의 대가인 클로드 로랭의 < 빌라 메디치와 항구 풍경>은 웅장한 돛대의 배가 정박한 해안가와 분주하게 움직이는 선원들을 그리고 있어 대항해 시대의 경제적 변화와 부흥을 절감케 한다. 한편 대항해 시대가 낳은 활발한 교역과 중상주의는 국가 간 식민지 쟁탈전의 문제점을 낳기도 했으며, 유럽의 서민들 또한 낮은 임금과 비싼 상품 값으로 인해 중상주의의 폐해에 시달려야만 했다. 일반 국민의 부가 아닌 절대군주의 부와 소수의 특혜 권력층을 만들어낸 강력한 중상주의와 보호무역은 우리나라의 경우 급격한 경제성장의 대명사가 돼버린 '한강의 기적'을 이뤄내기도 했으니 그림 한 장에 담긴 경제학적 속뜻은 의미심장하기만 하다. 

 

Part 5에서는 프랑스 왕 루이 15세를 사로잡은 여인을 그린 <퐁파두르 후작부인>과 그녀의 주치의였던 <프랑수아 케네>의 초상화를 통해 계몽주의와 중농주의를 살펴보게 된다. 단순히 아름다운 미모와 세련된 패션 감각만을 엿보는 것이 아닌, 초상화 뒤로 보이는 백과사전과 지구본, 손에 들고 있는 악보를 단서로 그녀가 한낱 왕의 정부가 아니라 당시 많은 학자와 예술가를 후원한 여장부였음을 드러내준다. 케네는 그녀의 주치의로서 의학뿐만 아니라 경제에도 관심이 많아 계몽주의 시대에 농업, 제조업, 상업 사이의 자연스런 경제적 상호작용과 순환관계에 주목했으며, 이후 퐁파두르 부인의 후원으로 중농주의 학파를 창시하게 된다. 무역업을 통한 금과 은의 획득이 아닌 생산에서 부가 창출된디고 믿었던 중농주의 사상과 되도록 정부 간섭과 규제를 줄이고 내버려두라는 자유방임주의는 이후 근대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애덤 스미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밖에도 산업혁명의 견인차 역할을 한 증기기관차의 발명을 매력적으로 나타낸  윌리엄 터너의 <비, 증기, 속도>나 우리에게 인상주의 화가로 잘 알려진 클레드 모네가 그린 <생 라자르 역> 과 같은 그림은 현대인인 우리에게 일상적인 경험인 기차가 당시 사람들에게 얼마나 충격적인 속도의 경험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기계와 분업이 가져온 속도의 혁명만큼이나 몸으로 체험하는 교통수단의 변화는 수증기를 내뿜으며 기차가 들어오는 역에 빽빽하게 모여있는 사람들의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읽어내게 한다.

 

디를 먼저 펼쳐 읽든 손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재미있게 읽혀지는 < 그림 속 경제학>은 책의 앞부분인 추천의 글에서 이주헌 미술평론가가  '경제는 물질적으로, 미술은 정신적으로 우리의 삶의 질을 높이'는 영역이라 말했듯이 이 두 영역을 한 번에 만나볼 수 있는 색다른 독서 경험이 될 것이다. 책에 담긴 수십 편의 그림만 물끄러미 바라봐도 시대와 소통하는 기술이 반쯤은 생길 듯한데 그림 속에 담긴 경제학적 메시지까지 읽어본다면 예술과 경제학이 결합해 이뤄낸 당대의 풍속을 좀더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계기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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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너드 번스타인의 음악의 즐거움 - 세대를 넘어 사랑받는 클래식 해설서의 고전
번스타인 (Leonard Bernstein) 지음, 김형석 옮김 / 느낌이있는책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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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드 번스타인의 음악의 즐거움>은 클래식에 대한 접근 방법에 있어 확실히 차원이 다른, 성격이 다른 책이다.  

기존에 내가 접했던 클래식 서적이 감상의 이해를 돕는 안내 서적과 유사했다면, 이 책은 클래식이라는 음악의 뿌리를 순전히 음악적인 요소로서 분석하고 논리적으로 평가한 비평서적에 가깝다. 화려하게 치장한 의상보다 골격과 뼈대에 더 관심을 갖고 있는 미적 기준이랄까?

대부분의 클래식 관련 서적이 클래식의 역사나 유파, 음악가의 생애, 음악에 얽힌 일화 등을 통해 감상의 지평을 넓혔다면, 이 책은 오로지 음악적 요소에 근거한 치밀하고 논리적인 악곡 분석부터 전통 클래식은 물론이거니와 재즈, 뮤지컬, 현대음악, 오페라 등 각각의 음악적 장르가 지닌 특성을 적확한 비유와 날카로운 비평을 통해 명쾌하게 정리해준다.

책에는 ‘적확한’이라는 단어가 곳곳에서 여러 번 쓰이는데, 이것은 아마도 레너드 번스타인이 추구하는 음악관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핵심어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우주에 태초부터 허락된 이 악장만을 위한 공간이 있어 그것이 맞춰지는 순간 우주가 완벽해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p31)

작곡가는 다음 도착지가 어떤 곳인지 아는 능력, 풀어 말해 주제로부터 이어지는 모든 음이 정확히 그 자리에 나타날 수 있는 유일한 음이라는 감각, 이 ‘적확함’의 감각을 전달하기 위해서 이 음 다음에 어떤 음이 나와야만 하는지 아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만 합니다.(p83)

지휘자는 시간의 흐름에 극히 민감한 사람입니다. 가장 ‘적확한’ 순간에 가장 ‘적확한’ 길을 통해 한 음에서 다음 음으로 넘어가는 사람입니다. (P169)  

비약인지 모르겠으나 이 단어 하나만으로도 이 책에서 펼쳐나가고 있는 방대한 음악 지식을 때로는 압축해서, 때로는 확장해서 절도있게 표현해주는 것만 같다. 작곡가든 연주가든 지휘자든 음악가에게 이 ‘적확한’이라는 용어는 아름다운 선율을 이끌어내기 위해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자질임을 책 곳곳에서 짐작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은 평소 번스타인이 지니고 있는 음악에 대한 입장과 태도를 1부 ‘상상의 대화’를 통해 독특하게 보여준다. 베토벤이 왜 위대한 작곡가인지, 정통 클래식에서 벗어난 세미 클래식으로의 접목이 어찌하여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난 현상인지를 가상의 서정시인과 매니저를 등장시켜 대화와 편지의 형식을 통해 상반적인 논쟁 방식으로 이끌어 나간다. 팽팽한 논리로 서로를 이해시키는 상상의 대화라니, 꽤나 흥미로운 전개 방식이다.    

이어 2부에서는 1950년대 미국에서 인기리에 방송되었던 <레너드 번스타인 옴니버스> 프로그램의 방송대본 7강이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전문성에 근거한 진행으로 흥미롭게 펼쳐진다. (우리나라에서는 금난새 지휘자가 이와 유사한 프로그램으로 <청소년을 위한 음악회>, <해설이 있는 음악회> 등으로 클래식 대중화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토벤이 그 유명한 <운명> 교향곡 제 2악장의 서두를 위해 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가장 ‘적확한’ 음을 찾아내기 위해 최소 14가지 버전의 악보를 만들었다는 놀라운 이야기와 이들 중 오늘날 우리가 듣고 있는 완성곡이 왜 필연적 결과물로서 완벽한지를 무대에서 각각의 연주를 들려주며 시청자(독자)로 하여금 비교하게끔 이끈다. 그 결과 베토벤이라는 작곡가는 주제 뒤에 이어져야 할 바로 그 음들을 찾아내는 데 있어 특별한 재능의 소유자임을, <운명> 교향곡이야말로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가며 가장 ‘적확한’ 음과 리듬, 클라이맥스, 화성, 악기 편성에 대한 고뇌의 산물이었음을 말해준다.

“ 내가 재즈를 사랑하는 것은 재즈의 유머 때문이기도 합니다. 재즈는 실로 음을 가지고 ‘놉니다’. 우리는 ‘논다(play)'라는 단어로 음악을 ’연주한다(play)'고 말합니다. 브람스를 논다, 바흐를 논다? 실은 스포츠에 더 잘 어울릴 법한 단어지요. 그런데 재즈는 진짜 놀이입니다. 재즈는 음들을 가지고 놀고 음들로 재미를 만듭니다. 재즈는 그야말로 즐거운 엔터테인먼트입니다.(p107)

 

재즈는 악보로 옮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사분음을 정확히 기록할 방법도 없고 그 다양한 음색, 그 미묘한 조음법을 그대로 옮겨 적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리듬 역시 애초에 정확하게 기보할 수가 없습니다. 그만큼 재즈 음악의 성격은 악보를 읽는 연주자의 감에 달려 있는 것이지요. 결국 재즈는 그렇게 만들어집니다. 연주자들은 심오하고도 순전한 감으로 재즈를 창조해 냅니다.  (P131) 

는 일찍이 재즈에 대해 이렇게 명쾌하고도 멋진 평을 들어본 적이 없다.

한때 저급한 하층민의 음악으로 폄하되기까지 한 재즈에 대한 번스타인의 놀라운 지적 탐구와 세밀한 관찰은 개인적으로 뜻밖에 얻은 이 책의 백미이다. 클래식이라는 견고한 테두리 안에서는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장르를 번스타인은 아무런 선입견 없이 과감히(?) 건드린 것이다. 향유층에 따라 음악에도 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정통 클래식과 확연히 다른 재즈는 선술집에서나 흥얼거리듯 흘러나오는 서민층의 가벼운 노래일 수 있겠으나 탁월한 음악적 안목을 지닌 그에게는 재즈의 세계야말로 음악 영역에서 간과할 수 없는 매력적인 분야였던 것이다.

리는 이 책에서 종종 음악가로서의 번스타인 이외에도 문학가, 철학가로서의 번스타인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데 지휘의 기술을 논하는 2부 3강에서는 특히나 빛나는 문학적 표현과 진지한 철학적 고찰 속에 이루어진 깊이 있는 해석이 절로 감탄을 자아낸다.

지휘자의 악기는 100명의 ‘인간’입니다. 자기 의지를 가진 전문 연주자 100명으로 마치 하나의 의지로 하나의 악기를 연주하듯 음악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그래서 지휘자는 강력한 권위의 소유자인 동시에 이 큰 집단을 이끌어갈 수 있는 심리적 통찰력의 소유자여야 합니다.(p138)

지휘자는 이런 악보를 처음 받아들고 무슨 일을 할까요? 대개는 우선 처음부터 끝까지 악보를 읽습니다. 탐정 소설 읽듯 말이죠. 악보에도 서스펜스가 있고, 사태의 결말이 궁금해지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지휘자는 악보를 눈으로 보는 동시에 머릿속으로 듣습니다.(p160)  

길고 가느다란 지휘봉의 움직임이 소리를 입힌 언어가 되어 완성된 연주를 위한 소통의 통로가 된다는 표현이 참으로 적절하고 멋지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머릿속으로 음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없는 내겐 소설책 읽듯 구성단계별로 음을 그려내는 능력이, 선율만이 아닌 의미까지 읽어내는 능력이 신비롭게 느껴지기까지 하다.  

 

래식과 대중음악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번스타인의 음악지평은 재즈에만 국한되지 않은 채 뮤지컬과 영화음악, 오페라, 현대음악에까지 이어져 방대한 전문성을 드러낸다. 뮤지컬이야말로 미국이라는 토양에서 발생한 예술로 가장 미국적인 언어와 빠르기, 도덕관, 방향성으로 이루어진 작품으로 시대적 요구에 따라 만들어진 새로운 음악 형식이라 평하며 음악에 있어서의 창조적인 에너지가 새로운 장르,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내고 있음에 열광한다.

밖에도 음악의 아버지라 일컫는 바흐의 음악세계를 절대신앙의 신심에서 비롯된 찬양으로 규정지으며, 그가 작품을 쓰는 것은 신앙 활동이었고, 작품을 연주하는 것은 찬양 활동이었으며 그는 음 하나하나를 오롯이 신에게 봉헌했다,는 멋진 말로 정리를 한다.

오페라의 매력에 대해서는 오페라야말로 짧은 시공간 속에서 모든 장치, 즉 노랫말을 확장하고 상황을 확장하고 분위기를 확장하고 인물을 확장하고 감정을 확장하는 기법이 전부 동원되는 음악예술이라고 평한다. 단순한 가사로 이루어진 드라마에 음악이 들어가 새로운 경지와 새로운 심도를 부여하는 오페라야말로 ‘그랜드’하다고 부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화려함과 대규모가 주는 황홀함을 상상해볼 만하다.

 

을 읽다 문득 번스타인의 탁월한 문장력에 그의 이력이 궁금해 자료를 찾아봤더니, 역시나! 그는 작곡 공부 이전에 하버드대에서 언어와 철학을 전공한 인물로 이미 글쓰기에 있어서도 남다른 재능과 교양을 여러 곳에서 선보였던 바, 이 책에서 유감없이 그 실력을 발휘한다. 그래선지 글 흐름이 매끄럽고 자연스러워 막힘없이 술술 읽힌다. 한 가지 재능을 온전히 발휘하기도 어려운데 다방면에 걸쳐 흠 잡기 어려울 정도의 조화로운 재능을 지녔다는 점에서 살짝 인간적인 부러움이 이는 부분이기는 하나 덕분에 이렇게 질적으로 우수한 책을 읽게 된 독자로서는 호강을 누리는 일임에 틀림없다.

   

만 이 책을 읽으며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개인적으로 음악적 소양이 부족해 악보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는 점이다. 방송에서는 노래와 연주를 통해 현장감을 살릴 수 있는 부분도 책에서는 악보로만 전해지기에 그 소리와 분위기를 원래 취지대로 온전히 못 누린 것에 대한 아쉬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스타인의 수려한 문장과 ‘적확한’ 비유 덕에 이 책은 단순히 눈으로 읽는 책이 아닌 귀로 듣는 책으로의 색다른 독서법을 보여준 멋진 예라 하겠다.

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가 레너드 번스타인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는 카라얀과 더불어 20세기를 대표할 만한 위대한 지휘자로서의 명성과 하루에 담배 5갑 정도를 피워댈 정도의 애연가였다는 것(결국 그는 폐암으로 생을 마감한다), 예술가에게 흥미로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독특한 성적 취향(양성애자), 지휘 도중 흥에 겨우면 폴짝폴짝 뛰는 열정적인 재스추어 등 음악적 알맹이는 빠진 채 지극히 대중적인 관심권에 머물러 있었다.

허나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지휘자이자 작곡가, 피아니스트, 음악 해설가로서 음악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음악가로서의 레너드 번스타인에 흠뻑 빠져들게 되었다.

평생 음악을 사랑했고, 음악과 함께 살았으며, 음악의 향유를 개인적 감상으로서의 ‘사유’가 아닌 대중과의 소통과 공감지대 형성을 위한 ‘공유’로 확장할 수 있었던 그는 진정한 마에스트로로 대중에게 기억될 것이다.

런 의미에서 클래식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아니 음악이라는 영원한 울림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레너드 번스타인은 <음악의 즐거움>이라는, 참으로 값진 선물을 남겨주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에서 ‘아는’의 범주를 전문가답게 펼쳐놓은 책, ‘아는’의 진정한 의미가 ‘느끼는’이라는 것임을 음악을 통해 보여주는 책, 따라서 이 책은 '눈으로 읽는 책'이 아닌 '귀로 듣는 책'이라 정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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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 필요한 순간들
홍승찬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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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책 밖에서 폴짝~~!

 

요즘은 학생들의 수행평가가 여러모로 다양해졌지만 제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80년대만 해도 방송으로 클래식을 틀어주고 작곡가와 제목을 맞추는 음악시험은 파격적인 실기평가이자 학생들에게는 곤혹스런 난제이기도 했습니다.

그간 가요와 팝송에만 익숙해있던 귀였던지라 처음으로 진지하게 듣게 된 클래식은 마치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처럼 낯설고 복잡하게만 들려 곡을 구분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려야 했습니다.

테이프에 녹음한 클래식 20여 곡을 수십 번 되돌려 듣기를 하다보니 어느 새 따분함과 무거움은 서서히 편안함과 익숙함으로 바뀌어 들려오기 시작했고, 놀랍게도 제 클래식 사랑은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들을수록 편안한 생활 속 배경이 되는 클래식이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는 딱딱하고 지루한, 접근하기 어려운 음악 장르가 돼버린 것 같아 클래식 애호가로서 무척이나 안타깝습니다.

 

어쩌면 삶 자체가 느리게 흘러가던 클래식 음악의 탄생시기보다 스피드를 강조하며 빨리빨리를 외쳐대는 요즘이야말로 클래식이 주는 '여유와 휴식'의 효과는 더욱 더 큰 의미를 지니지 않을까 싶네요.

'클래식은 어렵다'라는 편견보다 '클래식은 편안하다'라는 편견 깨기가 클래식 다가가기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책, <클래식이 필요한 순간들>은 클래식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보다는 얼마나 느낄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책입니다.

이 책의 소개글 중 '지식을 전하려는 게 아니라 느낌을 공유하려는 것'이라는 문구가 특별한 울림으로 와닿은 건 저 또한 제 작은 경험 속에서 공감하게 된 접근법이기 때문이겠죠?

클래식이 머나 먼 고전이 아닌 가까운 생활 속 배경음악이 되려면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명강의가 저자의 깊이있는 전문성과 수려한 문장 속에 고스란히 전해져 글 한 편에 담긴 곡 하나 하나를 다시 찾아 들어보게끔 합니다.

 

이 책은 단순한 곡 해석이나 작곡가의 삶 소개가 아닌, 클래식에 관한 소소한 정보와 뒷 이야기가 소리로 듣던 음악에서 무대 위에서 배우가 연기하는 움직이는 음악으로, 검은 음표 넘실대는 오선지에 색이 덧입혀진 눈으로 보는 음악으로, 음악도 결국은 사람 사는 풍경을 담은 휴먼다큐임을 전해주는 감동으로 독자들에게 다가옵니다.

기어히 여행지까지 손에 들고 가게 만든 <클래식이 필요한 순간들>은 최근에 읽어본 음악관련 책 중 단연 으뜸입니다.

저자의 겸손한 표현 그대로 '안다고 뽐내기 위해 씌어진 책'이 아닌,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픈 음악 사랑이 돋보이는 책이기도 하고요.

 

살면서 우리에게 클래식이 필요한 순간들을 4악장 47장면으로 구성해놓은 이 책은 제1악장 '스타카토처럼 경쾌하고 활기차게', 제2악장 '안단테처럼 느긋하고 여유롭게', 제3악장 '비바체처럼 열정적으로', 제4악장 '칸타빌레처럼 흘러가듯이'라는 음악적 표지로 각 장면을 나누고 있습니다.

대분류 제목이 주는 압축적 표현처럼 음악적 영감이 우리네 삶 속에 얼마나 환상적으로 잘 들어맞는지를, 얼마나 낭만적인 배경이 돼주고 있는지를, 얼마나 커다란 위로와 힘이 돼주고 있는지를 두 세 편만 읽어봐도 금세 공감이 될 것입니다.

 

2. 책 속으로 풍덩~~~!

 

20세기 대표적 지휘자였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뛰어난 승부사 기질로 클래식의 흐름까지 바꾸어놓았으며, 세계적 오케스트라 중 하나인 베를린 필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 제안을 종신지휘자로 요구하는 등 과감한 도전과 결단을 보여줍니다.

그는 또한 음반 작업에 회의적이던 당시에 음반사 EMI의 제안으로 음반 작업에 적극 뛰어들어 클래식의 대중화에 앞장섰으며, 오늘날 CD의 분량이 70여분이 된 것도 그가 소니사에 제안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한 장에 담을 수 있는 규격 제안에서 비롯됐다고 합니다.

 

하이든의 '놀람교향곡'에 대한 에피소드는 이미 잘 알려진 대로 고상한 취미를 즐기는 귀족들의 형식적 우아함을 풍자하기 위해 나른한 졸음이 오는 순간, 객석에서 졸고있는 관객을 깨우기 위해 느린 악장에서 시작해 갑자기 모든 악기가 큰 소리를 동시에 내는 놀람으로 이어져 모두를 즐겁게 놀라게 하는 유머와 위트를 보여주는 곡입니다. 값비싼 보석으로 치장한 귀족들이 우아한 품격을 덧입히고자 음악회를 찾았던 당시의 풍경을 생각해보면 하이든의 유머야말로 고품격 위트라 할 수 있겠습니다.

 

공연 직전의 리허설에서 보여지는 숱한 장면이야말로 지휘자와 연주자들의 태도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에 본 공연보다 더 인간적이고 감동적이라는 저자의 시각은 성취 이전의 과정이 주는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팽팽한 의견의 대립과 조화를 위한 양보가 우리 삶 속의 모습을 축소해놓은 것 같아 더더욱 공감이 가기도 하고요.

 

세르비아 민병대가 사라예보에 쏜 포탄으로 무고하게 희생된 22명의 안타까운 죽음을 기리기 위해 목숨을 건 22일의 연주를 감행한 첼리스트 베드란 스마일로비치의 용기있는 연주는 음악이 해낼 수 있는 수많은 아름다움 중 가장 숭고하고 값진 감동을 선사해주는 장면입니다.

22일 동안 적군 앞에서 알바니노의 '아다지오'를 연주하며 그가 들려준 음악은 첼로라는 악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소리가 아,닌 '전쟁 없는 평화를 위해 무고한 희생을 치르지 말자'라는 함성이었을 겁니다.

저격병의 마음조차 음악으로 녹일 수 있다면 이보다 더 값진 효과가 어디 있겠습니까?

 

책에는 재미있는 실험에 관한 소개도 있습니다.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이 출근길 지하철역 앞에서 거리의 악사로 변장해 연주를 했는데 그때 벌어들인 돈이 총 32달러였다고 합니다.

1분에 1000달러를 벌어들이는 연주자가 45분 동안 32달러를 벌어들인 거리 공연은 우리나라 바이올리니스트 피호영 씨의 이벤트로 이어져 인구 이동이 많은 강남역 앞에서 똑같이 45분을 연주한 결과 1만 6900원을 벌어들입니다.

'온통 근심 걱정 때문에 서서 구경할 시간조차 없다면 도대체 이걸 산다고 할 수 있는가'(p59)라는 문구로 죠슈아 벨의 거리연주 상황을 끝맺은 워싱턴포스트지의 기사는 음악을 통해 잃어버린 삶의 여유와 휴식을 되찾고자 하는 이 책의 의도와 가치를 한층 높여준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오스트리아를 침공하던 나폴레옹은 수도 빈에 머물고 있던 당대의 대음악가 하이든을 보호하기 위해 군대를 보내 하이든의 집을 경비토록 했으며, 전쟁광 히틀러는 평소 바그너를 끔찍하게 좋아해 극비 작전명에도 바그너의 '발퀴레의 기행'을 딴 '발퀴레'라는 명칭을 붙였다고 합니다.

 

클래식 연인 중 슈만과 클라라는 너무나 유명한 커플이라 굳이 부연할 필요가 없겠습니다만,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브람스의 스승에 대한 존경과 클라라에 대한 절제된 사랑은 관계에서 오는 제각기 다른 사랑법의 숭고한 실천이 무엇인지를 애틋하게 들려줍니다. 스승 슈만의 아내 클라라를 평생 사랑했으면서도 단 한번도 고백하지 못한 채 슈만 사후에도 클라라를 온정으로 보살핀 브람스는 클라라의 죽음을 앞두고 그녀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고자 '4개의 엄숙한 노래'를 작곡합니다.

 

평소 베토벤을 너무도 존경한 나머지 베토벤의 음악세계를 똑같이 닮아가고자 노력했던 슈베르트는 오히려 베토벤과는 완전히 다른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하게 되고 그 유명한 명작 '미완성 교향곡'을 남기게 됩니다.

형식적으로 미완성임에도 불구하고 내용적으로 완성작이라 평가받을 수 있는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의 매력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오늘밤, 다시 한번 들어보고 싶군요.

 

이밖에도 일일이 소개하지 못한 여러 편의 글들이 아직 이 책을 접하지 못한 독자들의 호기심을 긍정적으로 자극할 수 있기를 바라며 우리 삶 속에 진정 클래식이 필요한 순간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서평을 맺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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