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국인 - 우울을 행복으로 반전시켜라
유한익 지음 / 민트북(좋은인상)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자살률 세계 1위의 부끄러운 자화상, 벼랑 끝에 선 위기의 한국인

 

신과 의사 유한익이 쓴 『위기의 한국인』은 현대인에게 정신적인 암 덩어리로 존재하는 우울증에 대해 다각도의 진단과 더불어 34가지의 심리치유 처방전을 일러주는 책이다. 우울증이라는 단어가 개인심리상태를 넘어 사회병리적 현상을 가늠하게 할 정도로 널리 쓰이는 오늘날, 신문의 사회면을 우울하게 차지하고 있는 단어 중 하나는 '자살'이다. 이 단어만큼 한 사회의 정신 건강 상태를 압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단어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우리 사회는 현재 우울하다.

2010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 우리 사회에서 1년 동안 자살하는 사람은 10만 명 중 28.4명으로 OECD 가입 33개국 중 단연 1위라고 한다. 하루 평균 43명이 자살하는 셈으로, 특히 10~30대 사이의 자살은 교통사고와 암을 넘어설 만큼 심각한 수준이라 하니 개인의 건강 문제를 넘어 사회적 정신 건강 상태를 점검해봐야 할 위기의 시대가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정신 건강을 가늠해볼 수 있는 병적 현상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현대인의 우울을 부추기는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표정들,

그 속에 갇혀 경련으로 일그러져가고 있는 자살공화국의 타살적 흔적들.

 

자가 '지금, 여기, 우리의 표정을 돌아보라'며 지적했듯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

의 얼굴은 1등만 기억하는 '1등 지상주의'와 특별해야 행복하다는 '스페셜주의', 현대판 마녀 사냥처럼 질투에서 비롯된 '악성 댓글', 돈의 맛에 길들여져 돈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는 '물질 지상주의', 이기지 못하면 죽는다는 극단적 경쟁에서 비롯된 '루저 양산 사회', 무조건 앞서 나가야 내 아기가 성공한다는 '선행중독증', 짝퉁 자신감을 명품으로 포장하려는 '명품중독증',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치닫는 '성공 스토리의 허상'으로 일그러져 있다.

 

금 더 세밀한 표정 관찰을 위해 현미경으로 마음 속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 너무 참아 병이 돼버린 '화병'(화병이 한국 문화의 특수적 상황에서 비롯된 독특한 현상이라 문화-관련 증후군으로 분류됨은 뜻밖이다), 성인이 되도록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분리불안', 남과 다르다는 것에서 오는 불안 장애인 '획일화 강박증', 남을 쫓느라 나를 잃게 만드는 '유행강박증',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의 경제적 책임에 짓눌려 아버지로서의 올가미에 묶인 채 우울증을 앓고 있는 '아버지 딜레마' , 피해의식에서 비롯된 '분노조절 장애', 통제할 수 없는 억압된 충동에서 거짓된 공포를 조장해 발생한다는 '공황 장애' 등이 불안과 우울이 가득한 현대인의 표정이다.

 

결과 유명 연예인과 일류대 학생들의 잇따른 자살과 생계비관형 집단 자살, 성적 비관이나 왕따 문제로 인한 청소년의 자살, 기댈 곳 없는 노인들의 외로운 자살, 현대 사회의 무서운 경쟁에서 밀려난 젊은이들의 자살 등이 하루가 멀다 하고 신문의 사회면을 우울하게 차지하고 있다. 급격한 경제 성장률 속에 가려진 급격한 정신 불균형이 절름발이 사회를 보여주는 것만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우울의 늪에 빠진 이들에게 권하는 건강한 심리 되찾기 처방전

 - 대인관계 치료법 및 약물치료의 효과

 

찌기 철학자 키에르 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을 '절망'이라는 단어 하나로 규정한 바 있다. 절망은 일상을 우울한 기분에 젖게 만들고, 우울은 자아를 잊게 만들며, 결국 '자아'가 없는 자기 상실은 죽음을 오히려 고통에서 벗어나는 쉬운 선택으로 부추겨 생을 놓아버리게 한다. 이 책을 읽다보니 모든 우울의 밑바탕에는 공통적으로 '나'가 없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없는 공허함은 우울의 가장 큰 원인(p.115)이라고 압축한 저자의 표현처럼 앞에서 진단한 우울의 은밀한 곳에는 공통적으로 자신만의 아우라가 형성되지 못한 상태에서 타인과 사회의 영향력에 짓눌려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자신이 다른 사람과 다른 환경에 처했다는 불안은 타인과의 비교에서 비롯되며, 주류를 쫓아가지 못하는 비주류의 조바심은 경쟁사회에서 밀려난 듯한 자괴감에 빠지게 해 절망적으로 '나만 행복하지 못하다'라는 비약된 생각을 품게 만든다.

 

책은 우울한 사회의 원인 분석과 진단에 초점을 맞췄다기보다 건강한 심리 치료인 처방전 제시에 기획 의도를 두었다고 볼 수 있는 만큼 우울증을 극복하고 행복한 삶으로 인도해줄 수 있는 구체적 실천방법을 몇 가지 알려주고 있다. 독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결국 '나'를 찾아가는 길이 아닌가 싶다. 주변의 의식에 억눌려 '나'를 감추고 포장하고 비하해온 우울증 환자들에게 저자는 말한다. "과감히 실수하고 비난에는 말대꾸하며 당당히 거절하라.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벗어나 당신도 잘못할 수 있다는 것을 편하게 받아들여라. 염려가 결정을 지배하지 않도록 중요한 것에만 집중하라. 사랑을 구걸하기보다 당당히 홀로서기를 준비하라. 더불어 철저하게 혼자임도 즐겨라. 분노를 조절하고 화를 표현하는 부드러운 방법을 연구하라. 그리고 움직여라. 생각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빛 가운데로 움직여 나오라. 빛이 곧 치유의 시작이다.

 

인적으로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우울증이 단순히 개인의 심리적 상태에 기인한 질병이 아니라 기분과 생각을 조절하고 의욕과 동기를 유지하는 뇌의 기능이 약화되는 데에서 비롯된 질환이라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심리치료 못지 않게 약물 치료가 매우 효과적이라는 점은 그간 약물치료에 대해 인위적 억제 작용일 뿐이라며 부정적이었던 내게 좀 충격적인 의식 깨기로 다가왔다. 무엇이든 제대로 알고 볼 일이다.

 

 

우울한 상황은 '나에게만' 적용되는 특수 개념이 아닌,

 '나에게도' 적용되는 일반 개념일 뿐!

방관하지 말고 지켜보기, 그리고 지켜주기가 절실히 필요한 위기의 시대

 

실 이 책을 읽던 중에 남동생의 절친한 친구의 아우가 얼마 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2년 간을 계약직으로 열심히 꿈을 키우며 일해왔는데 결과는 희망적이지 못했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전세값 상승으로 살던 집에서 나와 월세로 거주지를 옮긴 후부터는 여자친구와도 다툼이 잦아졌었나 보다. 속상한 마음에 술을 마시고 대리운전을 부른 모양인데 먼길로 돌아가는 대리운전수와 시비가 붙은 후 경찰서에서 취조를 받다가 돌연 자리를 박차고 나가서는 한강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왜 이렇게 모든 일이 안 풀리고 꼬여만 가는지, 왜 열심히 노력하며 사는 만큼 생활은 비례적으로 나아지지 않는지, 왜 나한테만 이런 일들이 끊임없이 닥쳐오는지, 그 순간만큼은 '나에게도'라는 보편적 적용보다 '나에게만'이라는 특수 적용이 절망적인 추락으로 끝없이 자신을 몰고 갔을 것이다. 가족의 슬픔은 말할 것도 없었으며 친구의 아우를 어린 시절부터 보아온 남동생에게도 충격적인 일인지라 더 이상 캐묻지도 못한 채 며칠 간 쉽게 말을 건네지 못하고 지냈다.

 

약 누군가가 미세한 낌새라도 눈치를 채고, 아니 그 마음의 우울한 한 조각이라도 이해하고 먼저 다가가 등이라도 한 번 두드려줬다면, 부질없는 생각이기는 하지만 행여 그 친구가 극단적 행동 이전에 이 책을 만나게 됐더라면, 혹 '나만 이런 것이 아니라 타인도 그렇구나!' 공감에서 비롯된 새로운 위안과 힘을 얻지 않았을까? 저자가 내린 처방전 중 하나인 '방관하지 말고 지켜보기, 그리고 지켜주기'가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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