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큰 놀이터다 - 화랑세기에서 배우다, 소통편
김정산 지음 / 예담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화랑제도는 삼국중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빈약했던 국력을 가졌던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데 있어 가장 신체적, 정신적으로 기여한 국가의 제도였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는 '어진 재상과 충성스러운 신하가 여기에서 나왔고, 훌륭한 장수와 용감한 병사가 여기에서 생겼다'라는 <화랑세기>의 문장을 인용해 화랑의 성격과 그 특징을 전하고 있다. 하지만 <화랑세기>는 오랫동안 고서속에서 그 이름만을 볼 수 있었지만 1989년 그 필사본이 발견되면서 국내 사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게 된다. <화랑세기>는 화랑들의 우두머리 풍월주 32명의 전기가 주로 담겨있는 책이지만 그 안에는 그들의 계보 뿐만 아니라 당시 신라시대의 왕위계승 방식 그리고 왕실내의 근친혼 등 자유분방하기만 했던 신라의 성풍속이 속속들이 들어 있다. 또한 권력을 둘러싼 음모와 암투 그리고 화랑들은 물론 왕족들의 생활상을 통해 당시 신라사회의 전반적인 모습을 전하는 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발견된 이후 부터 시작된 진위논쟁은 끝이 없다. 무엇보다도 <화랑세기>가 그러한 논쟁에서 자유로울수 없는 이유는 그 내용들이 사실로 인정된다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국내역사학계에 커다란 혼란을 몰고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팽팽한 논란과 대립과는 상관없이 <화랑세기>속의 인물들은 서서히 묻혀진 역사속에서 깨어나 새롭게 평가받기 시작하고 있다.

 

삼한지의 작가 김정산의 소설 <세상은 큰 놀이터다>는 <화랑세기>의 많은 인물들 중에서 화랑의 1세 풍월주였던 위화랑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위화는 본래 날이군이라는 빈촌출신이었으나 여동생 벽화가 비처왕의 황후가 되면서 그 외척이 되어 중앙으로 진출하게 된다. 시골 한량에서 일순간 황후의 오빠라는 막강한 권력의 중심으로 부상했지만 그는 권력을 쫓기보다는 본래 가지고 있던 풍류라는 자신만의 철학을 앞세워 모든 이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된다. 누구를 만나든 막힘이 없고 거리낌없는 그의 행동을 당대의 고승 법화는 '무장무애(無障無碍)'라 한다. 그는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누구앞에서나 욕심을 차릴 필요도 행동과 말에 거짓이 있을 필요도 없었다. 그러한 그의 낙관적인 삶의 태도는 당대 최고의 권력을 가지고 있던 국공 원종을 비롯한 마복칠성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릴수 있게 만든 한는 힘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또한 일반 백성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그의 성격과 생활은 요즈음으로 치자면 천하의 한량이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에는 그러한 풍류를 쫓던 위화와 함께 원종의 이야기가 많이 다루어진다. 원종은 후일 법흥왕이 되는 인물로 국공에서 태자로 권력의 최정점에 서 있던 인물이다. 호방하고 남자다운 원종과 삶을 관조한듯 살아가는 위화의 삶의 태도는 여러가지 면에서 대비를 이루기도 한다. 법화는 원종을 일컬어 산과 같고 위화를 일컬어 물과 같다고 했다.
"원종은 어떤 것도 겁내지 않고 무엇으로도 속박할 수 없는 큰 인물이기지만 오직 하나, 백성과 민심만은 누구보다 두려워 했다. 다시 말해 백성과 민심이라는 포승만 있다면 천하의 원종도 붙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위화에게는 그런게 아예 없다. 그를 사로잡아 울타리에 가둘 게 아무것도 없었다는 말이다. 이런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이다."
시골 출신의 비렁뱅이에서 경주 최고의 인기인이 되었지만 그에게도 위기는 다가온다. 한 여인때문에 원종과의 관계가 틀어지면서 위화는 일순간에 모든 것을 잃는다. 어쩌면 그의 생애 최악의 시기였지만 그는 스스로 몸을 더욱 낮추고 저자거리에서 사람들과 어울렸다. 그는 자신에게 닥친 어려움을 뒤로하고 백성들에게 사람이 일생을 살면서 만나는 질곡들이 오히려 축복이며 기회라며 위안과 용기를 심어준다.

 

후사를 놓고 고민하던 법흥왕이 그 결정을 하는데 있어 위화는 자신의 외손인 비대 보다는 천리와 인륜에 따라 후일의 진흥왕을 택하게 하는데 기여한다. 그가 욕심을 부렸다면 그의 외손이 다음 왕이 되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그는 복잡하고 어려운 일일수록 순리에 따르자는 조언을 통해 욕심을 버린 삶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그는 그 일로 진흥왕의 어머니 지소태후의 신임을 얻어 화랑의 초대 풍월주가 된다. 화랑도에서 말하는 풍류사상이란 고달픈 현실 생활 속에서도 늘 마음의 여유를 갖고 즐겁게 살아갈 줄 아는 삶의 지혜와 멋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한 멋이 정서적 생활 모습으로는 가무를 즐기고 철따라 물 좋고 산 좋은 경관을 찾아 노닐면서 자연과 기상을 키워나가는 화랑의 기반이 되었고 그것은 위화가 자신의 일생을 통해 타인들에게 보여준 삶의 태도이기도 하다.

 

"사람을 경영하는 일은 곧 사람사이의 관계와 소통을 원활히 하는 것입니다."
<화랑세기>의 진위여부와 상관없이 소설은 우리가 그 안에서 배울수 있는 세상과 소통하는 법과 관계의 재정립이라는 관점에 주목한다. 물론 소설속의 신라인들은 아무리 개방적인 현대인들의 관점으로 보아도 이해하기 힘든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듯하다. 복잡하기만한 세상에서 모든 잣대를 먼저 들이대보고 자신의 이익을 계산해보려는 현대인들에게는 그들의 삶은 무척이나 어렵게만 보일 것이다. 하지만 위화가 보여준 관계를 중시하고 누구와도 소통을 열어 놓는 삶은 태도는 화랑제도의 근간이 되었고 후대의 신라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어쩌면 사람이 세상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고대 신라나 지금이나 그리 다를 것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관계라는 사람 사이의 가장 기초적인 끈 때문에 고민하기도 하고 때로는 어려워 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가장 어려워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아마도 그 바탕에 숨겨진 욕심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욕심이라는 것을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그러한 사욕에 앞서 자기 자신을 스스로 닦으라는 위화의 말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가장 기본적으로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아닐까 생각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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