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황 이야기
마쓰오카 유즈루 지음, 박세욱.조경숙 옮김 / 연암서가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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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는 동양과 서양의 무역이 이루어졌던 통상로였을뿐만 아니라 그 두 문명을 이어주는 소통의 길이기도 했다. 그러나 광활한 사막과 7천미터급에 이르는 거대한 산맥은 누구에게나 쉽게 그 길을 열어주지는 못했다. 돈황은 서양 문명으로 향하는 여러개의 실크로드가 합쳐지는 접점에 위치해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중국의 신강성에 속해있는 중국 영토가 분명하긴 하지만 그 시작을 알 수 없는 옛날부터 이민족이 교대로 들어와 살고 있기 때문에 완벽한 중국의 영향권이라 할 수는 없는 문화적 배경을 하고 있다. 결국 돈황은 그 위치 때문에라도 종교나 인종 등 모든 분야에서 교류가 이루어지는 사막의 수도였기에 서유기의 모델이 되었던 삼장법사나 탐험가 마르코 폴로 역시도 돈황을 거쳐 가는 길을 택했을 것이다. 돈황의 동남쪽 20여킬로 조금 밑도는 곳엔 부처님을 모신 크고 작은 벌집 같은 동굴이 이층 삼층으로 수없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그곳이 바로 천불동이라 불리는 곳이며 이 책의 주요 무대가 되는 돈황 막고굴이다. 이 책 <돈황 이야기>는 그 막고굴에 숨겨져 있던 경전 수만권을 놓고 벌어지는 서양 열강과 일본의 쟁탈전을 그린 일종의 리포트인 셈이다. 이 책의 저자 마쓰오카 유즈루가 소설가였기 때문에 소설의 형식을 차용했다고 하지만 몇 군데를 빼고는 생생했던 현장의 상황을 제대로 전달해주려 하고 있다. 이야기는 '나'라는 사람이 우연히 작은 박물관을 방문해 그 수집품을 바라보면서 시작된다. 너덜너덜한 경전을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박물관의 주인은 그것이 돈황의 막고굴에서 나온 중국의 국보급 문화재임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관심을 보이는 '나'에게 돈황이 문화침략의 옛 전쟁터였음을 알려주는 긴 이야기를 시작한다.

 

19세기말 부터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돈황의 석굴 즉 천불동에는 금빛과 푸른 빛이 도는 찬란한 불상들이 여러점 있고 실제 그 주변을 오가던 선교사들이 수집한 발굴품들이 알려지면서 돈황에서도 20세기가 되면서부터 드디어 유럽 열강의 고대 문화 발굴 경쟁이 시작되기 시작한다. 1907년 영국의 스타인은 돈황에 도착한다. 이전까지 많은 탐험가들이 거쳐갔지만 이렇다할 소득을 올리진 못했지만 스타인은 현장이 중국에서 인도로 불경을 구하러 갔던 것처럼 자신 역시도 많은 경전이나 고고학 참고물품을 자신의 나라로 가져감으로서 후대에까지 자신의 이름을 영원히 남기려 하는 욕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모래속에 묻혀 있던 석굴사원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두루마리가 들어있는 비밀의 문이 있다는 사실이 들려온다. 그는 비서인 중국인 장효원을 대동하고 사원의 주지인 왕도사라는 사람을 만난다. 어쩌면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핵심적인 인물이 바로 왕도사이다. 거의 버려지다시피 했던 석굴사원을 재건했고 발견된 경전을 관리했던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 속에서는 왕도사가 글을 읽을 줄도 모르는 문맹으로 묘사되고 있다. 어쨌든 왕도사는 발견된 경전들을 지역의 관리에게 보고했지만 그저 폐지같은 두루마기였기에 그냥 두라는 명령을 받는다. 결국 그는 사원을 계속해서 번창시키기 위해 기부금을 모으려 여기저기 다니는 중이었다. 그런 그에게 스타인의 방문은 서유기의 삼장이 살아 돌아온 것처럼 느껴진다. 비밀의 문안에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몰랐지만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녔다는 것을 아는 그에게 자국인 장효원을 앞세운 스타인의 유혹은 치밀해 보이기만 했다. 수없는 밀고 당기기 끝에 결국 비밀의 문은 열리고 대형 마제은 4개와 수천권의 경전은 교환되기에 이른다.

 

이듬해 방문한 프랑스의 펠리오는 스타인의 소득을 넘어선다. 그는 북경에서 중국학을 공부했기에 한문을 하나도 모르는 스타인과 비교해 좋은 물건을 고글수 있는 안목을 지니고 있었다. 실제 그는 스타인은 들어가보지 못한 비밀의 문 안에 들어가 20일 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15,000권의 두루마리를 모두 훑어보는 초인적인 힘을 보여준다. 촛불을 켜고 산더미 같은 두루마기 옆에서 경전을 살피고 있는 펠리오의 사진속 모습은 너무나 진지해 보이기만 하다. 그는 자신이 직접 골라낸 5천여부의 경전을 들고 북경으로 개선한다. 왕도사 역시 엄청난 양의 마제은을 챙긴다. 그러나 북경에서 펠리오가 돈황에서 획득한 유물들의 전시회가 열리고 그 존재가 알려지면서 왕도사는 졸지에 국보를 팔아먹은 역적으로 몰린다. 남은 1만여권의 경전과 함께 왕도사는 북경으로 압송되기에 이르지만 사건은 이상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최초 돈황을 출발할때 1만여권이던 경전이 막상 북경에 도착해서는 6천여권 밖엔 남지 않았던 것이다. 그 중요성이 인식되면서 중간중간 관리들이 빼먹고 지역의 관리들에게 바쳐졌으며 단두대에서 사라질뻔 했던 왕도사 역시도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경전을 바쳐 사형수를 대신 북경으로 보내게 된다. 어쩌면 이 대목은 나라의 국보를 빼앗길 수 밖에 없었던 중국인의 습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왕도사는 다시 돈황으로 돌아가고 세번째 탐험대를 맞이한다. 바로 이 책의 저자 마쓰오카 유즈루의 나라이기도 한 일본 탐험대이다. 하지만 그 부분에서 만큼은 앞의 영국이나 프랑스 탐험대와 달리 그 여정이 자세히 묘사된다. 사막을 건너고 산맥을 넘는 그 여정을 자세히 묘사한 것이 아마도 자국인을 보다 돋보이게 하려한 저자의 의도가 아닐까 싶다. 그는 다치바나라는 이제 겨우 스물을 갓넘겼으며 실제 불제자이기도 했기에 왕도사와의 협상에 있어 보다 유리할 수 있었다. 특히 왕도사를 윽박질러 그가 숨겨놓은 경전들을 획득하는 장면들은 작가에 의해 과도하게 포장되어 있지 않나 싶기까지 하다.

 

세차례에 걸친 동서양의 탐험대들은 돈황 막고굴의 국보를 모두 강탈해간 셈이다. 작가가 책 속에서 그것을 유물약탈사건이라 부른 것도 결코 무리가 아니다. 다만 그 시선이 일본인의 관점이라는 점에서 출발했기에 세 탐험대를 보는 시각이 조금은 다르게 표현되었을 뿐이다. 또한 무엇보다도 그 모두를 겪은 왕도사의 시선이 눈길을 끈다. 그 진귀한 보물들을 발굴한 것이 자신이고 관리조차도 그것들을 귀하게 여기지 않아 그것을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려 하는 서양의 삼장들에게 나누어 준 것이라는 그의 해석이 어쩌면 재미있기 까지하다.         

 

책을 읽으며 우리의 상황이 그와 다르지 않음을 느낄수 있었다. 우리 역시 많은 문화재가 국외로 유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물은 단순히 오래된 물건 만은 아닐 것이다. 영국의 유명한 E.H.카의 말을 빌리자면 "현재를 거울삼아 과거를 통찰하고,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를 바라보며,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를 통해 더 나은 미래를 창출하는 수단"이라고 했다. 그것은 다시말해 역사란 생물처럼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 존재이며,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주어진 화두이며 미래를 향해 진보해 나가는 가능성에 대한 끊임없는 믿음일 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유물은 그것을 증명해 주는 우리 자신의 또다른 모습일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문화재 반환운동 역시도 보다 체계적이고 범국민적으로 벌어져야만 할 것이다. 파르테논신전 방문객들에게 일일히 유인물을 나눠주며 영국이 약탈해간 문화재 반환운동을 적극 펼쳤고 마침내 꿈을 이뤄낸 유명 영화배우출신 멜리나 메르쿠리 그리스 문화부 장관의 일생에서 볼 수 있듯 진정한 노력만이 뜻을 이뤄낼 수 있다.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관심만이 파리 국립도서관에서 잠자고 있는 직지심경을 비롯한 수많은 문화재들이 따뜻한 우리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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