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제국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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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귀화명령을 받은 15년째 남한살이 북한 공작원 기영이 헛다리를 짚고 횡설수설하는 이야기.
한 시간도 견디기 힘든 난해한 영화를 수입하는 기영의 회사 포르노 중독자 직원 위성곤이 알고 보니 경찰의 내부자였다는 놀랍지 않은 반전, 대학생과 쓰리섬을 즐기는 기영의 아내 마리를 첩보원급으로 의심하여 뒤를 쫓아다니는 사복경찰의 어설픈 잠복수사. 그 사이에 신기하게도 멀쩡한 정신을 유지하는 딸 현미의 친구 아영은 중학생이지만 놀랍게도 전 남친의 동영상 유포 피해자이고, 상상속의 친구를 집에 몰래 숨겨 지내는 진국의 집에서 딥키스를 나눈다.
단 하루만에 격변의 난장판을 겪는 가족들의 서사, 속도감은 느껴지지만 뭔가 90년대 이 정도는 알고 있어야 잘 나간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고 여겼던 낯뜨겁고 챙피한 개념이나 브랜드들이 문장 곳곳에 난립해 부끄럽기도 했다.
그래서 결론은 이 막장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다 제자리에서 필사적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인가.

아버지는 사회악의 화신이었고 부패한 독재정권 그 자체였다. 그녀는 바이런과 워즈워스는 던져버리고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아버지와 정신적으로 그리고 물질적으로결별했다. 그 시절엔 그런 자식들이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모두들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어쩌면 조금 부러워하는 친구도 있었을 것이다. 태생부터 가난했던 학생들이 누릴 수 없는 정신적사치가 거기 있었다. 부유하고 부도덕한 부모를 버리는 사치. 그들이 부모인 한 언젠가는 그 부와 권력을 제 자식을 위해 쓸 것임을 가난한 집의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그녀 주변의 모두가 아는 바였다. - P63

"사람마다 꿈이 있겠지?"
그녀는 그렇다고 했다.
"그런데 내 나이가 되면 꿈이 없어지고……… 뭐라고 해야 할까, 대신 욕망이라는 게 생긴단다. 무슨 말인지 알아?" - P65

기본적으로 기영은 인간을 움직이는 두 가지 심리적 축을두려움과 욕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 P91

사회주의 낙원의 신화를 허무는 모든 언어는 기밀이었다. - P118

민족주의, 특히 북의 그것은 일종의 정치적 혈액이었다. - P148

그러나, 생각한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라는 폴 발레리의 시구처럼, 그는 운명을 잊고 있었지만 운명은 그를 잊지 않고 있었다. - P221

"형, 헨리 데이비드 소로라고 알지? 그 사람이 그런 말을 한적이 있어. 가만히 살펴보면 모두가 필사적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P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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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 종속적 자영업자에서 플랫폼 일자리까지 서해문집 사회과학 시리즈
전혜원 지음 / 서해문집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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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에 대해 알지 못했던 개념들을 습득했다. 사람은 계속 배워야 한다.
사회보험이 고용이 아니라 소득을 상실한 이들을 위한 보험으로 확대되어야 한다는 점, 자영업이 선택이 아니라 고용의 울타리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불가피함일 수 있다는 점을 새롭게 깨닳았다.
노조는 단순히 집단 이기주의를 실현하는 이익집단에 불과하고, 이들의 승리는 노동자들의 임금 격차만 벌릴뿐 사회적 정의와는 무관하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산업별 교섭이라는 개념은 처음 접했는데 너무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임금이 자격이나 신분에 대한 보상이 아닌 성실한 노동의 대가가 되는 날이 오길 바란다.
공정과 정의를 가장한 젊은 세대들의 보상심리의 문제점도 동의하는 바이다. 도저히 연대라는 개념도 없고 자기 성찰도 모르는 최악의 세대가 탄생했다. 그래도 인간이라서 존중해 주지만 결국 스스로 자멸해 가기를 더 바란다.

한국사회는 건강보험제도를 도입해서 확대해나가는 과정에서이해관계 세력들 간에 파국적인 갈등과 분열을 겪었지만, 건강한자와 병든 자, 부자와 가난한 자의 행복과 고통을 서로 기대게 함으로써 모범적인 제도를 만들 수 있었다. 전혜원 기자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건강보험제도의 성공사례는 지금의 갈등과 대립을조정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이라고 생각했다. 강자와 약자 사이의대등한 경쟁은 공정이 아니라 약육강식의 질서를 확립한다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경험을 통해서 증명되었다. 합리주의의 수리개념으로 보면, 정의가 현실 속에서 구현된 모습은 다소 불합리해보인다. ‘서로 기대기‘ 이외에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그러나 ‘기대기‘를 제도화하려면 정치력이 필요하다. - P7

문제는 노동시장이 더 이상 직접고용으로 굴러가지 않는 상황에서, 기존 노동법으로 포괄할 수 없는 ‘자영업자‘가 자꾸만 생겨난다는 점이다. ‘자율적으로‘ 새벽배송에 나섰다가 골반뼈가 부서진 최서경 씨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지금까지는, 노동자가아니지만 ‘예외적으로 보호해주는 조치‘를 확장해오는 일의 연속이었다. 이 과정은 더디고, 우연에 의존한다. 이런 방식으로는 노조로 조직되거나 특별히 눈에 띄는 업종의 사람들만 순차적으로보호할 수 있을 뿐이다. - P49

‘건강보험처럼 고용보험도 모든 일하는 국민에게 확대하자‘는주장 역시 코로나19를 계기로 공감대를 얻었다. 이른바 ‘전 국민고용보험‘이다. 언뜻 당연해보이지만, 실은 혁명에 가까운 변화다. 왜 그런가.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정치권과 학계에서 두루 인정받는 복지제도 연구자다. 그는 "기존 고용보험은 회사에 고용된 사람, 즉 노동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제도였다. 전국민 고용보험은, 노동자 기반에서 취업자 기반으로 사회보험의 틀을 바꾸겠다는 의미다"라고 말한다. 취업자란 노동자보다 넓은개념이다. 수입을 위해 한 시간 이상 일한 모든 사람을 포괄한다. - P60

"나는 안정된 고용을 가지고 있지만 불안정 노동자들을 위해서 보험료를 더 낼 수 있느냐. 전 국민 고용보험이던지는 질문이다. 이걸 해야 하는 이유는, 그게 새로운 사회계약이고 연대이기 때문이다. 안정된 고용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의 연대이고, 또한 세대 간 연대다." - P69

한국은 이미 ‘제조 노동자 1만 명당 로봇 이용 대수‘ 1위인 나라다. 이 같은 극단적 자동화에는 노동조합의 묵인도 기여했다는평가가 있다. 회사는 정규직의 고용을 보장하는 대신 생산공정을자동화하고, 생산 유연성은 외주화로 확보해왔다. ‘정의로운 전환‘이란 기후위기에 대응해 급격한 산업전환이 일어날 때, 그 과정이 모두에게 정의로워야 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한국사회는 준비가 되어 있을까. 성큼 다가온 전기차 시대가 던지는 질문이다. - P114

한마디로 ‘데이터 기반의사결정‘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것이 물류 혁명의 본질이다. - P122

그런 한편 쿠팡은 막대한 돈을 쏟아부으며 로켓배송 관련 인력을 유지하면서도, 큰 규모를 바탕으로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상품을 제공하고 있다. 당장의 이익을 추구하는대신 공격적인 투자로 경쟁자를 몰아내는 ‘약탈적 가격 책정‘이다. 플랫폼 기업에게 이는 합리적 전략이다. 이용자가 많아질수록효용이 올라가므로 초반에 얼마나 많은 이용자를 확보하느냐가 관건이어서다. - P133

그런데 공기업의 진정한 주인은 시민이다. 공기업 경영진은 정부를 대리하고, 정부는 시민을 대리한다. 인천공항 정규직이 시험한 번으로 사실상 평생 얻고 있는 결과는 납세자의 이익에 충실한가? 시민이 제공받는 서비스의 질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가? 공채시험으로 얻는 유무형의 이익이 100% ‘노력‘ 또는 ‘재능‘에 따른것인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 P174

이쯤 되면 공정은 우리 시대의 블랙홀이다. 일단 ‘불공정 논란‘에 불이 붙으면, 논의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다. 논의를 뒤엎을 힘이 있는 의사 집단은 자신들의 의지를 실제로 관철했다. 의사 파업은 인천공항 정규직화 논란의 극단화된 버전이라 할 만하다. - P180

저성장 사회가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젊은 세대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 예전만큼 질 좋은 일자리가 많지 않고, 학벌이나 자격증이 더 이상 괜찮은 직업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밥그릇 싸움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의사나 (공기업) 정규직 같은일자리를 노력해서 얻게 되었는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나 공공의대같은) 구조적 개입이 ‘나‘의 노력을 헛수고로 돌린다며 일단 반발하고 본다. 좀 더 넓은 시각으로 사회적 불평등이나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때 공정성을 들이대는 건 굉장히 문제적이다. 사실그 공정성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해관계를 반영할 뿐이다. ‘내밥그릇을 빼앗아가거나 내 노력을 보상해주지 않아서 불공정하다‘는 것이지 사회적 공정성을 말하는 게 아니다. 자신의 이해관계를 들이대면서도 ‘절차적 공정성이 문제‘라며 이를 은폐한다.
미국에서는 이런 현상을 흔히 웨포나이즈weaponize(무기화)라고 한다. 담론 싸움에서 (공정성 같은 특정 단어를 무기화하는 거다. 사실 공공의대가 얼마나 복잡한 문제인가? 이 정책을 둘러싸고 검토해야 할 갈등이나 세부사항이 정말 많다. 인천공항 정규직화 역시 풍부하고 섬세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의제인데, 공정성이라고 말하는 순간 논의가 활발해지는 게 아니라 차단되어버린다. 나아가 다른 집단에 속한 사람이 말할 자격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들은 ‘절차적 공정성‘ 같은 정의로워 보이는 개념을 들고나온다. 그 순간, 비정규직은 갑자기 불공정하게 수혜를 입은 것처럼 되어버린다. 결코 그렇지 않은데도. - P182

대한의사협회의 카드뉴스가 드러낸 건 지난 20년간 양성된 의사 집단의 엘리트주의, 능력주의, 성과주의다. 우리가 그만큼 성적이 좋은 엘리트들이고, 한번 이겼기 때문에 계속 모든걸 독점해야 한다는 논리인데, 지적한 것처럼 공정이나 정의 같은단어를 갖다 붙였을 뿐이다. 특히 이번에 공공의대나 의사 증원에반대하기 위해 집단휴진을 하는 과정에서 가장 전면에 나선 집단이 필수의료를 공급하는 대학병원의 전공의였다는 건, 기본적인직업윤리나 ‘전문가주의‘조차 잠식당했다고 봐야 한다. 이렇게 양성한 의사들이 과연 우리 사회에서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필수적이고 공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심각한 의문을 던져주었다. - P185

공채에서 또 반복될 것이다. 취업시장의 서열이란 그 앞의 교육불평등에 따른 서열일 거고, 그건 아마 부모 소득의 서열과 맞아떨어지지 않겠나? 이렇게 가는 구조를 계속 둘 것인지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 - P190

그렇게 위험은 흘러서 하청에 고인다. - P242

중소 영세기업의 지불능력과 지속성을 고려할 때, ‘모든 노동자들이 연공급을 받아야 한다(연공급의 보편화)‘는 대안엔 현실성이 없다. 격차를 해소하는 데 한계가 뚜렷하다. 연공급이 사회적기준으로 작동하긴 어렵다는 이야기다. ‘근속연수‘와 그 사람이다니는 기업의 지불능력, 그리고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 현재의 노동시장이 더 정의로운지, 아니면 그사람이 하는 일 (직무급)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 노동시장이 더 정의로운지 고심해볼 필요가 있다. 막연하게 ‘원·하청 격차를 줄이자‘고 주장하는 것보다 ‘원청이든 하청이든 같거나 비슷한 일을하면 비슷한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가 격차 축소에 훨씬 강력할 수 있다. - P288

한국사회에서 20년 가까이 떠도는 구호가 하나 있다. ‘산업별(산별) 교섭 법제화‘다. 지금은 기업마다 있는 노동조합이 각 기업 사용자 측과 ‘우리 회사 임금‘을 논의한다(기업별 교섭). 이 경우 개별회사의 지불 능력과 노조의 힘에 따라 회사마다 임금이 달라진다. 하지만 특정 산업의 노동자 전체를 대표하는 노조가 해당 산업 사용자 단체와 협상을 벌인다면(산업별 교섭), 어떤 기업에 속해 있든같은 일을 하면 비슷한 임금을 받게 될 것이란 논리다. - P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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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혼자에게
이병률 지음 / 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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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림부터 봤는데 점점 겉멋은 사라졌고, 농후한 감성으로 따듯해져 가는 느낌이다.

사랑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고 할수록 희미하고, 또 차이가 없다고 할수록 선명하다. - P19

누굴 좋아하는 것이 나 스스로에게 보내는 ‘알람‘이라고 한다면사랑하는 것은 내가 나에게 내리는 ‘명령‘이다. - P21

우리는 한 끼를 소화시킨다음, 타이머에 맞춰 또다른 한 끼를 먹기 위해 그저 한 끼와 한 끼 사이의 간격을 이동하면서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아무리 모른 체하려 해도, 배가고프다는 사실은 지긋지긋하면서도 참으로 눈물겹게도 인간적이다. - P107

친구로부터 그를 경멸하듯 함부로 내뱉는 소릴 듣자니 참 딱하고아찔했다. 세상을 살면서 혼자 있는 것을 단 한 번도 꿈꾼 적이 없는사람이라는 게 들통나버린 것이다. 단언컨대 그 친구는 아내와 아이가 자신을 떠나버리면 대책 없이 발을 동동 구르며 대로에 퍼질러앉아 울부짖기나 할 사람이다. 가여운 사람. 자신과는 다른 철학을 부여잡고 혼자 세상을 살며, 혼자 세상을 떠도는 친구를 옆에 두고서그런 말을 서슴지 않다니.
나는 말해주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언제든 혼자일 수 있으며 혼자더라도 당당할 수 있으니 혼자인 사람에 대해 함부로 말해선 안된다는 사실을. 우리가 가끔 혼자이고 싶은 것은, 우리에게 분명어딘가 도달할 점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을. 내 밑바닥의 어쭙잖은 목소리를 스스로 듣게 된다면 스스로를 객관화할 수 있다는것을.
그래도 언젠가는 말해주겠다. 우리가 어떻게 혼자일 수 있는가는, 의존적으로 살지 않겠다는 선언으로부터 가능하다고. 도대체 얼마나 혼자 있어 보질 않았으면 혼자 있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지, 그 또한 보통의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 P122

여기, 세상에서 가장 뜻이 긴 단어가 있다. 동시에 의미가 간명한단어이기도 하고 또 역시 세상의 그 어떤 말로도 번역하기가 난감한단어라고 하는데 바로 Mamihlapinatapai(마밀라피나타파이)다. 칠레 최남단 섬에 사는 소수민족인 야간Yaghan족이 쓰는 단어로 뜻은, ‘서로에게 꼭 필요한 것이면서도 어떤 일에 대해서 상대방이 먼저마음을 앞세워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두 사람 사이에서 조용하면서도 긴급하게 오가는 미묘한 눈빛‘이다. 아주 긴 의미를 가지고 있는 동시에 타국의 언어로 번역하기 가장 난감한 단어로 기네스북에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 P236

대답이 시원치 않았다. 관계에 체한 것 같았다. - P247

하라는 것이다. 언뜻 화장실 매너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지만, 도시인일수록 살면서 타인들을 향해 얼마나 섬세해야 하는지 그 중요성을 알게 해주는 일화다. - 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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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오피스 오늘의 젊은 작가 34
최유안 지음 / 민음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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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가 맛이 간 지 오래지만 그 정점을 찍은 작품.
현명한 척 잘 나가다 막판에 성격을 바꿔 행사를 말아먹는 임강이 (그리고 홍지영과 마지막에 주고받는 훈훈한 문자는 무엇??), 강혜원의 스토리를 위해 이랬다 저랬다 파전 뒤집듯 편리하게 입장을 바꿔가며 써먹는 선차장, 초반에 뭔가 대단한 인물인 듯 등장시켰다가 후반부에 감당을 못해 포기한 듯한 오균성과 송라희, 그 사이에 도저히 개연성이라고는 없는 행동으로 스토리 사이사이 끼워 맞춘 백대표, 뜬금없는 알렉스와 홍지영의 러브라인. 역시 막장드라마를 보고 자란 세대들은 등단하고 이딴 소설을 배설하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는구나.
캐릭터 정체성도 일관성도 없이 뻔하기만 한 극적 요소들로 떡칠해 놓은 쓰레기임.

홍지영은 오균성을 보며 예의에 대해 생각했다. 오균성은아마 지금 자신이 매너를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할 거였다.
불편하지 않게 자연스러운 대화 자리를 만든 자신의 모습을자랑스럽게 느낄지도 몰랐다. 홍지영이 보기에는 전제부터 잘못됐다. 오균성은 매너가 아니라, 예의가 없는 거다. 스킬이 없는 게 아니라, 상식이 없는 거다. 더 놀라운 건 강혜원이었다.
그런 것 따위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한 손에 다이어리를들고 오균성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간간이 다정한 박수를 치는, 체득된 사회화가 무엇인지 보여 주는 저 사람. - P86

어릴 때 홍지영은 자신이 지구에 떠다니는 먼지 같다고각하곤 했다. 사회에 편입되기 위해 교육을 받고 회사에서일을 하고 늙어 가다 결국 죽는 이 거대한 연극이 한없이 유치하게 느껴졌다. 그것 좀 하자고 일을 하며 청춘을 바치는꼴이라니. 그런데 언제부턴가는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청춘, 꿈, 열정 따위는 애초에 인생에 없었던 단어처럼 멀어졌다. - P96

"고담 시티 같은 신도심에서는 회사 식당 아니면 먹을 데가 마땅치 않거든요. 이 나라의 성실함과 기술이라면 5년 뒤쯤 도시 하나가 뚝딱 완성되겠죠. 개성이야 하나도 없겠지만." -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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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없는 기분
구정인 지음 / 창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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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기분이 든다.
나도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현실과 미래가 다 들어있는 만화이다.

누군가를 보낸다는 건, 그리움, 슬픔만이 아니라 쌓인 분노를 털어낼 시간도 필요한 일이에요. - P187

나는 겁이 났던 것 같다. 그래서 아무것도 안보려고, 자꾸 괜찮다고만 했었나보다.
마음을 아주 조금 열어봤더니, 역시나 불안하고 무섭다.
모르는 척하고 얼른 도로 닫아버리고 싶지만, 그러면 고장난 데를 고칠 수 없겠지.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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