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어휘력 - 말에 품격을 더하고 세상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힘
유선경 지음 / 앤의서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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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맞춤법이 틀리는 문제는 무지가 아니라 무심에서 비롯된다는 소견이 인상적이다. 노력도 태만하면서 항상 어휘력이 좋아지길 바란다. 관심이 최선의 방법이라 새로 깨달았다. 발전해 나가길 스스로 응원한다.

어휘력은 말발 센 게 아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어휘를 마음대로 부리어 쓸 수 있는 능력‘이라고 풀이하는데 그러려면 낱말을 양적으로 ‘많이‘ 아는 것이 필요하긴 해도 낱말에 대해 ‘잘‘ 알아 적재적소에 활용하는것이 더 효과적이다. 여기서 ‘잘’이란 다른 낱말과 함께 배치했을 때 의미나 어감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섬세하게파악한다는 뜻이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부유한 시대를 살면서도 많은 사람이 우울과 불안에 시달리고 세상이 뭐 하나 제대로돌아가는 것 없이 엉망진창으로 보이는 건 산업경제가 도입된 후에 인간을 꾸준히 도구화한 원인이 크다.

"가격을 가지는 것은 무엇이든 동등한 자격을 지닌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칸트의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다 해도 사람들은 선험적으로 안다.

"생각이 언어를 오염시킨다면 언어도 생각을 오염시킬 수 있다." 조지 오웰이 한 말이다.

‘지역감정‘은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 어휘가 아니다. 높은 산맥과 큰 강을 경계로 말이 달라지는 것처럼 지역마다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우리나라에서 지역감정이 뿌리 깊은 갈등이 된 것은 ‘민족주의‘와 마찬가지로 정치적으로 이용했고, 차이를 인정한 것이 아니라 차별한 자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특정 지역을 비하하는 발언이 처음에는 의도적으로, 나중에는 세뇌된 사람들을 통해 무신경하게 살포됐고 현재도 그러하다. 나는 반세기에 걸친 이 사투리 전쟁에서 승자는 단 한 명뿐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나 자주 쓰는데 번번이 맞춤법을 틀린다는 건 무식보다 무서운 무심함이다. 그 무심함이 정말 꼴 보기 싫다.

잘한다는 평가 말고 다른 말, 층고, 조언, 주의, 지적, 불평 따위를 들으면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우거나 의기소침해진다. 나를 깎아내리거나 공격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그들의 의견일 뿐이며 서로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고 이해하면 좋으련만, 이미 결과중심주의에 단련된 두뇌회로는 평가로 받아들인다.

"문 닫고 나가라." 하시는 할아버지에게 문 닫고 어떻게 나가냐고 한 예닐곱 살의 나는 말의 의(意 : 뜻 알았을지 몰라도 미(味 : 맛, 기분, 취향, 느낌, 기분)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어휘력은 말뜻뿐 아니라 말맛도 파악하는 능력이다.

이런 작업을 반복하면서 발견한 사실은 의외로 많은 사람이 말하기와 글쓰기를 분리한다는 점과 주어와 시점을 챙기는 데 서투르다는 것이다. 글을 가장 쉽게 쓰는 방법은 말을 받아쓰는 것이다. 여기에 주어와 시점만잘 챙겨도 웬만한 문장은 완성할 수 있다. 한 문장이 길면 또 주어와 시점이 헛갈리니 짧게 쓰는 것이 낫다. 그렇다고 무작정 문장을 자르려 하면 그거 고심하느라 영감이 날아가 버릴 수 있으니 일단 떠오르는 대로 쓰고 수정하면서 분리하는 것도 방법이다.

안 붙이면 허전해 습관적으로 붙이는 경우도 많은데 수식어 없이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어휘를 찾는 게 우선이고, 형용사를 용언으로 돌려놓으면 문장이 간결해지고 뜻이 분명해진다. 예를 들어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보다 ‘음식이 맛있었다.’,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보다 ‘오늘 즐거웠다."는 식으로 말이다. 뭘 먹어서 맛있었는지, 어떻게 보내서 즐거웠는지. 구체적인 어휘와 함께 쓰면 글이 생생해진다. 이런 수고를 생략하고 ‘맛있는‘,
‘즐거운’ 등의 형용사를 동원해 문장을 뭉뚱그리면 대명사처럼 모호해진다.

필사하면서 아주 느리게 지워나갈 수 있었다. 전형적, 주입식, 세뇌……힘 센 어른들이 젠체하며 한 모든 말들, 힘없는 어른들이 비겁해서 한 모든 말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배웠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대해서. 그렇게 행동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대해서. 내가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것에 대해서. 내 잘못이 아닌 것에 대해서. 내가 맘껏 탓하고 욕해도 되는 것에 대해서. 나는 조금씩 후련해졌고 덜 외로워졌다.

자료와 근거가 8할을 차지하고 주장은 2할 내외다. 그 2할을 주장하기 위해 8할을 총동원했고 읽는 이들이승복하게끔 순서를 배치한다. 여기서 유의할 사항은 그 8할이 질적으로 편향돼 있거나 양적으로 지나치게 적은표본을 취해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면 유치해진다는 거다.
질적으로 균형 잡혀 있고 양적으로 충분한 자료와 근거를 걸맞은 어휘로 압축해 뒷받침하는 주장은 설령 수신자의 성향이나 믿음과 달라 끝까지 수긍할 수는 없다 해도 증오심은 생기지 않는다. 적의 의견이지만 존중한다는 마음은 이럴 때 생길 것이다.

누군가 쓴 글이 낡은 어휘에 갇힌 가치를 꺼내 현실로 가져오기에 성공했을 때 우리는 오랜 잠에서 깨어나 흔하고 닳은 어휘에 담긴 가치를 첫눈처럼 본다.

"나는 독창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란 아주 진부한 이야기들을 어떻게 재구성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3월 발표한 ‘2019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2018년 10월 1일부터 2019년 9월 30일까지 1년간 성인이 읽은 종이책 연간 독서율 52.1%, 독서량은 6.1권, 책 읽은 시간은 평일 31.8분이다. 참고로 2015년 UN 조사에서 미국인 연간 독서량은 79.2권, 일본인 73.2권, 프랑스인 70.8권으로 한국인 독서량은 192개국 중 166위였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보급률 세계 1위, 독서량 166위. 이 수치는 무엇을 가리킬까. 한국 학생 열명 중 세명은 교과서를 이해하지 못하고, 성인 열에 일곱은 글을 읽고도 무슨 뜻인지 몰라 실질문맹률이 OECD 국가 중최고 수준이다.

숫자가 기업 수익과 사회적 영향력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가진 반응 미디어를 손에 들고 있는 한 사유, 음미, 상상, 사색 등이 끼어들 틈은 없다. 내면에 집중할 시간을 스스로에게 내어주지 않는다는소리다. 정신적 존재인 인간은 그에 따른 후유증을 피할 길 없다.

벼락같이 들이닥친 외세의 침입이거나 천재지변이 아니고서야 국가든 개인이든 망한 원인은 대체로 이러하다. 자기 생각 없이 남의 생각만 받아들이거나, 남의 생각 모르고 자기 생각만 고집하거나. 자기 생각과 남의 생각의 경계가 순수하지 않은 시대에 앞서의 문장은 이렇게도 바꿀 수 있겠다. 남의 생각에 조종당하고 정서에감염된 줄 모르고 자기 취향이나 정서, 선택, 가치관이라고 믿거나, 자기와 비슷한 생각만 받아들여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하면서 남의 생각을 많이 안다고 착각하거나.
자기 관점 없이 남의 관점만 일방적으로 따라가거나 자기 관점과 같은 것만 받아들여 자아만 비대하게 키운다면 위험하다. 자칫 망할 수 있다. 인간은 늘 그 두 가지 위험에 노출돼 있다. 국가와 사회, 가정은 목적이나 목표, 필요에 맞게 구성원을 조종하려는 의지를 가졌고 인간은 사회나 집단, 다른 사람이 가진 감정에 쉽게 감염될 수 있으며 자기가 선호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받아들이는 속성을 지녔다.

주최 측이 작품 <샘>, 아니 소변기를 저급하고 불결하다는 이유로 전시를 거부하자 뒤샹은 기다렸다는 듯 〈미국인에게 보내는 공개장>이라는 글을 발표해 반격한다. 이런 대목이 있다. ‘그것을 직접 자기 손으로 제작했는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화가가 그것을 선택했다. 평범한 생활용품을 사용하여 새로운 이름과 새로운 관점 아래, 그것이 갖고 있던 실용적 의미가 사라지도록 그것을 배치했다. 이리하여 이 소재의 새로운 개념을 창출해냈다."

글이나 시, 노래를 쓰기도 하지만 짓는다. 문학, 사진, 그림, 조각 등의 분야에서 작품을 창작하는 사람을 집짓는 사람, 작가(作)라 이르는 게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름도 짓는다고 한다.

가끔 궁금하다. 돈 많은 사람들은 행복할까? 답한다. 돈이 많다고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또한 돈이 많다고 불행하지 않을 이유도 없지 않은가? 다시 묻는다. 행복과 불행에 가격을 매길 수 있는가? 인간을 인간답게 할 수 있는 가치에 행복뿐 아니라 불행도 그 가치 중 하나다. 가격을 매기려는 속내는 그 가치를 사실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가치가 무엇이건 돈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인연도 그러하다. 언제 누가 훔쳐가거나 잃어버리거나 할지 모른다. 물건은 발이라도 없지, 사람은 발까지달렸다. 인연이 우리 사이를 잇는 동안 내게 생긴 가장 좋은 것을 나누고 닳도록 사랑하자. 다음을 기대하지도, 기약하지도 말자.

변함없는 달변의 조건이 있다면 인간을 이해하는 것, 그중에서도 앞서 오뒷세우스가 연설했듯 ‘우리의 몸에서는가슴이 손보다 더 유능하고 우리의 모든 힘은 거기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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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 지금 물 올리러 갑니다 띵 시리즈 9
윤이나 지음 / 세미콜론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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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에 관한 시시콜콜한 푸념이나 늘어놓는 단편적인 글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책이 얇고 주제도 일상적이지만, 작가의 라면에 대한 애착뿐 아니라 라면과 작가의 삶을 비유적으로 짜임새 있게 꾸린, 잘 익은 라면 한 그릇 같은 책이다.
워킹홀리데이에서 느꼈던 그 순간의 임시방편 같은 삶을 인스턴트 컵라면에 비유한다. 어딘가에 속박되어 있지 않는 자유로움도 있지만 그만큼 부유하고 있던 자신의 청춘을 돌아보며 내 인생의 컵라면과 같았던 시기라는 의미를 붙이는 작가의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비빔면의 채소 고명을 보며 상상했던 전원 시골 농가의 삶을 톺아보는 등 작가의 인생에 대한 진한 농도의 고찰을 엿볼 수 있다.
라면 도구와 연관된 일화도 섞여있다. 라면포트와 연관된 원주 창작실의 생활이나 라면땅을 만들 수 있는 에어후라이를 비롯해, 냉라면 레시피를 완성할 수 있는 조미료를 갖추어가는 1인 가구 살림 성장기(완성기?)도 펼쳐진다.
친구들과의 만찬에서 일의 기본기를 언급하며 라면의 기본을 다시 한번 강조하기도 하고 김치와의 ‘마리아주’를 완벽히 이룬 주점의 속 깊은 뜻을 헤아리는 일화도 재미있게 볼 수 있다. 후반부 라면의 상차림에서는 호떡 장사를 했던 작가 어머니의 일화를 들고 와, 호떡 하나와 라면 상차림에 투여되는 너무나 많은 노동력을 보며 애틋함과 함께 감상에 젖게 한다.

가벼운 책이지만 너무 가볍지 않은, 라면과 함께 나의 삶에서도 상기시킬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상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이 일은 쓰레기 같은 일이 아니야. 그냥 일이지. 너에게 가치가 없는 일이라고 해도 그 일을 하고있는 사람이 있는 한, 절대 쓰레기 같은 일이 되지는않아." - P53

역시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한법이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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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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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콤에서 진 루이즈(스카웃)라는 소녀의 시각으로 미국 남부의 흑인 인권문제와 집단 내에서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 소수자(희생자)들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진 루이즈와 오빠 젬(제레미 애티커스 핀치)은 여름마다 레이철 아주머니의 집에 방문하는 딜(찰스 베이커 해리스)과 함께 래들리 집을 가지고 놀이를 즐긴다. 메이콤에서는 래들리 집안의 둘째 아서(부) 래들리가 탈선을 일삼다가 교도소에 수감된 이후로 집안에 갇혀 살고, 부 래들리가 래들리부인을 살해했다는 등의 괴담이 마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천진한 세 아이들은 래들리의 집을 귀신의 집처럼 여기며 서로의 담력을 경쟁 삼아 래들리 집을 서성거리고, 부 래들리의 생김새를 괴물처럼 묘사하기도 하며, 래들리 집안에 관한 소문을 연극으로 만들어 놀기도 한다.

‘래들리 집안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환영받을 수 있었는데도 남들과 잘 어울리지 않고 자기들끼리만 지냈는데, 그건 메이콤에서는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이었습니다.’(27p.)

사실 집단주의 문화는 한국에서만 발견되는 독특한 습성이 아니다. 과거엔 어느 문명에서나 사람들은 생존에 유리한 집단생활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이런 행동이 유전되어 이제는 단체생활이라는 말로 순화되어 이제는 생존과 관계없이 개인에게 사회 이익을 위하여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을 다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단지 서구의 개인주의 문화가 우리보다 아주 약간 빨랐을 뿐이다.
책에서는 이러한 습성을 아이들부터 스테퍼니 크로포드 같은 어른들의 행동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모디 아주머니 같은 인물은 스카웃에게 알지 못하는 일을 예단하지 말라는 조언을 해주기도 하며, 아버지 애티커스는 아이들의 짖궂은 장난에 일침을 가하기도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한테 일어난 일은 전혀 알 수 없어.’(94p.)-모디

하지만 아이들의 래들리에 대한 호기심은 끊이지 않아 낚싯대에 쪽지를 걸어 래들리 집에 전달하는 등 계속해서 장난을 친다. 그러다 늦은 밤 몰래 래들리 집에 침입을 하다 젬이 바지를 래들리의 집에 두고 도망쳐 오는 일도 생기지만, 바지를 다시 찾으러 갔을 땐 구멍난 젬의 바지가 수선되어 잃어버렸던 자리에 놓여있는 것을 발견한다. 래들리집 근처의 나무 옹이구멍에는 껌이나 동전, 털실 공, 비누 조각 등이 숨겨져 있는 것을 발견해 아이들이 가져오면서 부 래들리와 아이들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듯하지만, 곧 부 래들리의 형인 네이선이 옹이구멍을 시멘트로 막아버린다.

소설의 국면은 크리스마스를 기점으로 흑인인권 문제에 대한 화두로 넘어간다.
애티커스 가족은 핀치스 랜딩으로 크리스마스를 보내러 갔다 스카웃이 사촌 프랜시스가 애티커스를 깜둥이 애인이라고 놀려대자 싸움이 벌어진다. 애티커스는 흑인 톰 로빈슨이 유얼집안 사람들에게 쓰인 누명을 풀기 위한 변호를 맡고 있어 마을 백인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지 않았다.
애티커스의 동생 알렉산드라는 핀치스 랜딩에서 애티커스의 아이들을 돌본다는 명목으로 메이콤으로 온다. 알렉산드라는 애티커스집안과 함께해온 흑인 가사도우미 캘퍼니아가 백인과 흑인 사이의 선을 지키지 않는다며 배제하려 한다. 애티커스는 톰 로빈슨의 변호를 맡아 흑인사회에서는 영웅처럼 받들어지고 있었고, 캘퍼니아는 그런 마을 분위기를 고려해 젬과 스카웃을 흑인교회에 데려간다. 젬과 스카웃은 그곳에서 자신들을 환영하는 사람들도 만나지만 불쾌해하는 이들도 만난다. 알렉산드라는 캘퍼니아의 행동을 맹비난하지만 애티커스는 상관하지 않고 알렉산드리아에게 캘퍼니아를 가족처럼 받아들이길 권하며, 스카웃은 알렉산드리아에 대한 반발심만 높아진다.
톰 로빈슨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유얼 집안은 가난하여 쓰레기장 근처에 살고, 이상한 사람이라 낙인찍혀 백인사회에서 배제당한 사람들이다. 메이엘라 유얼은 톰 로빈슨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집안으로 유인했고, 그녀는 성적인 욕구를 이기지 못해 톰을 덮쳤다. 이 상황을 목격한 메이엘라의 아버지 유얼이 분노하여 메이엘라를 구타하고 톰은 그 상황에서 도망쳐 나온다. 유얼의 분노는 톰 로빈슨에게 번져나갔고, 그는 톰이 메이엘라를 폭행하고 강간했다며 허위로 고발하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왼손잡이에게 구타당한 메이엘라의 상흔과 진술로 오른손 잡이인 톰이 아니라 왼손잡이 유얼에게 구타당한 것이 밝혀지고, 톰은 메이엘라가 자신을 덮치자 그런 상황이 자신에게 화가 될 것이 두려워 저항했다고 진술한다. 하지만 메이엘라도 끝까지 자신이 피해자라고 우기고, 배심원들은 흑인차별이 심한 남부사회의 구성원답게 톰 로빈슨에게 유죄를 선고한다.
유얼은 재판에서 이겼지만, 애티커스가 자신에게 가한 심문이 모욕적이라고 생각하고 앙심을 품게 되었으며, 톰 로빈슨은 감옥에서 탈영을 시도하다 총에 맞아 숨진다. 유얼은 재판에서 승리했지만, 유얼의 승리는 백인들 특권의 승리였을 뿐, 유얼에게는 패배보다 더한 모욕이었다.

‘자신을 영웅이라고 생각했지만, 고통을 치르고 얻은 대가라는 것이 고작...... 그래, 좋아, 이 깜둥이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지, 하지만 넌 다시 쓰레기장으로 돌아가, 이런 식이었거든.’(461p.)

결국 유얼은 애티커스에 대한 복수로 핼러윈 축제로 연극을 마치고 돌아오는 스카웃과 젬을 살해하려고 덮치지만 스카웃은 단단한 연극 복장 덕에 살아남고 유얼과 몸싸움을 벌이던 젬도 부 래들리에 의해 구출된다. 그리고 유얼은 끝내 칼에 찔린 시체로 발견된다. 애티커스는 젬이 정당방위로 유얼을 살해했다고 생각하지만, 보안관 헥 테이트는 유얼이 놓친 칼에 자신이 넘어져 칼에 질려 즉사한 것이라고 애티커스를 설득(?)한다. 이에 대한 진실공방은 벌어지지 않고, 애티커스는 헥 테이트의 의견을 순수히 받아들이다. 젬은 그날의 사고로 장애가 생겼다.

고전은 시대의 분위기에 맞게 새롭게 읽혀야 한다. 당시의 도덕으로 선과 악을 판단해 독자에게 교훈을 주려고 했겠지만, 지금 시대에 이 소설은 조금 의아한 부분들이 많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의 여성에 대한 관점이 그의 낙천적인 삶의 자세로 용서될 수 없는 것처럼...
아이의 순수한 시선으로 명확하게 선과 악을 구분하여 의도를 전달하려 한 것 같지만, 지금 현재의 입장에서 단지 스카웃의 입장에서만 비친 유얼을 정말 악한 인물로만 평가해야 하는지 의문이다.(사실 그것을 판단하기엔 그의 서사는 너무 단편적이다)
나는 이 작품의 저변에 깔린 의식이 ‘흑인만도 못한 백인 놈을 타도하자’로 보인다. 그런 전제를 발판삼아 흑인인권을 옹호하는 권선징악적 교훈을 더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가 불편하다. 래들리 집안은 유얼 집안 사람들처럼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메이콤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해왔지만, 마침내 백인사회에 선(혹은 이익)을 제공하고 메이콤의 주민이라는 지위를 얻었다. 유얼은 가난하고 노력도 하지 않는 이유로 죽음에 대한 진실공방마저 가릴 필요가 없는 ‘쓰레기’ 취급을 받고 죽음에 대한 진실공방도 이뤄지지 않은 채 사라진다.
또 메이콤의 백인들의(혹은 백인 독자들의) 흑인에 대한 인식이 ‘자기들만도 못한 위치에서 배려를 받고, 선을 베풀어야하는 대상’이었는지 ‘동등한 위치에서 동등한 존엄을 가진 인격’이었는지도 묻고 싶다.
그리고 아래 스카웃이 소설에서 지적한 위선을 유얼처럼 아직 백인 사회에 품어줄 수 있는 마땅한 자격을 갖추지 못한 다른 백인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지도 생각해 보길 바란다...

‘그게 말이지. 오늘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그렇게 대하는 게 얼마나 나쁜 일인지 말씀하셨거든. 오빠, 누구라도 박해하는 건 옳지 않잖아? 내 말은, 심지어는 어느 누구에 대해서 나쁜 생각을 갖는 것조차 말이야. 안그래?
......
그날 밤 게이츠 선생님이 법정에서 나오고 계셨거든. 선생님이 스테퍼니 아줌마랑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어. 누군가 그들에게 본때를 보여줄 때가 됐다, 점점 분수도 모르고 주제넘게 군다, 이러다가는 우리하고 결혼할 생각까지 하게 될지 모른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걸 들었거든. 오빠, 히틀러를 그토록 끔찍하게 미워하면서도 돌아서서는 어떻게 바로 자기 나라 사람에게 비열하게 대할 수 있냔 말이야’(455p.)

아빠가 나를 내려다보실 때면 아빠의 얼굴에는 언제나 어떤 기대감을 갖게 하는 표정이 나타났습니다. 「너 타협이란게 무엇인지 알고 있지?」 아빠가 물으셨습니다.
「법을 융통성 있게 적용하는 것 말이에요?」「아니, 서로 양보해 합의에 이르는 것 말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지. 네가 학교에 가기로 양보한다면, 우리는 전처럼늘 매일 밤마다 계속 글을 읽을 거야. 그러면 되는 거지?」「네, 아빠!」「통상적인 절차 없이 이것을 인준한 것으로 생각하는 거다.」 - P67

세상에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있어. 죽은 뒤의 세계를 지나치게 걱정하느라고 지금 이 세상에서 사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사람들 말이야. 길거리를 한번 보려무나, 그 결과를 보게 될 테니까. - P93

「그들에겐 분명히 그렇게 생각할 권리가 있고, 따라서 그들의 의견을 충분히 존중해 줘야 해.」 아빠가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기 전에 나 자신과 같이 살아야만 해. 다수결에 따르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바로 한 인간의 양심이다.」 - P200

「스카웃, 깜둥이 애인이란 아무 뜻도 없는 그런 말들 중 하나란다. 말하자면 코딱지처럼. 설명하기가 쉽지 않은데……무식하고 쓰레기 같은 사람들이 어느 누가 자기보다 흑인들을 더 좋아한다고 생각할 때 쓰는 말이지. 누군가를 욕하는점잖지 못하고 상스러운 용어가 필요할 때 우리 같은 사람들이 상습적으로 사용하는 말이 되어 버렸어.」
「아빠가 정말로 깜둥이 애인인 건 아니죠?」
「정말로 흑인 애인이란다. 난 모든 사람을 사랑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어…. 그래서 때로 어려움에 처할 때가 있지………. 누가 욕설이라고 생각하는 말로 불린다 해서 모욕이되는 건 절대 아니야. 욕설은 그 사람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인간인가를 보여 줄 뿐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는 못해. 그러니까 듀보스 할머니가 뭐라 하시든 실망할 필요 없어. 할머니는 할머니 일만으로도 고통이 많으시단다.」 - P207

고모는 <무엇이 집안에 가장좋은 일인지 단언하는 버릇이 있었고, 고모가 우리 집에 함께 살러 오신 것도 그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P242

고모는 어떤 일도 지루해하는 법이 전혀없었으며, 아무리 작은 기회라도 주어지기만 하면 왕비다운특권을 행사하려고 하셨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정리하고 조언하고 충고하고 경고했습니다. - P243

「그런데 말이야, 딜, 결국 그는 흑인이잖아.」
「난 그런 거 손톱만큼도 상관 안 해. 그런 식으로 대하는건 옳지 않아. 옳지 않다고. 어느 누구도 그런 식으로 말할권리는 없어. 그게 나를 구역질 나게 만드는 거야.」 - P368

그 애한테 잘못된 것은 없어. 내 생각으로는오직 한 종류의 인간만이 있을 뿐이야. 그냥 사람들 말이지. - P420

「게이츠 선생님은 좋은 분이시지, 안 그래?」
「물론이지. 그 선생님 반에 있을 때 좋았어.」
「히틀러를 엄청 싫어하시던데…….」
「그게 뭐 잘못이야?」
「그게 말이지. 오늘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그렇게 대하는게 얼마나 나쁜 일인지 말씀하셨거든. 오빠, 누구라도 박해하는 건 옳지 않잖아? 내 말은, 심지어는 어느 누구에 대해서나쁜 생각을 갖는 것조차 말이야. 안그래?」
「스카웃, 물론 옳지 않고말고. 그런데 왜 그렇게 안달을 해?」
「그게 말이야. 그날 밤 게이츠 선생님이 법정에서 나오고계셨거든 ㅡ 우리보다 앞서서 계단을 내려가셨기 때문에 오빠는 선생님을 볼 수 없었지ㅡ선생님이 스테퍼니 아줌마랑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어. 누군가 그들에게 본때를 보여줄 때가 됐다, 점점 분수도 모르고 주제넘게 군다, 이러다가는 우리하고 결혼할 생각까지 하게 될지 모른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걸 들었거든. 오빠, 히틀러를 그토록 끔찍하게 미워하면서도 돌아서서는 어떻게 바로 자기 나라 사람에게 비열하게 대할 수 있냔 말이야.」
갑자기 오빠가 버럭 화를 냈습니다. 침대에서 뛰어내리더니 내 옷깃을 잡고 흔들어댔습니다. 「두 번 다시는 그 법정얘기를 듣고 싶지 않아.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알아듣겠어? 알아들었냔 말이야! 다시는 나한테 한 마디도 입 뻥긋하지마. 알겠어? 자, 그럼 나가 봐!」 - P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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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 픽션 - 지금 어디에 살고 계십니까? 테마 소설집
조남주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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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곳에 대한 소설 묶음인데 사는 곳이 소재라면 무엇이든 다 들어올 수 있지 않나…
정용준, 이주란, 조수정 작가의 단편을 재밌게 봤다.

불타 사라진 종묘를 장소라는 의미를 부여해 마음속에 기리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실체가 없는 것도 상징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스노우>가 제일 인상적이었다.

이주란의 소설은 일상이 따스하게 흘러가는 냇물같아서 좋다. 아랫층 방화로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엄마와 썸남 재섭씨와의 소소한 일상과 우연들이 마음이 고요하고 한적해져서 좋다.

중고나라 사기극의 뻔한 전말을 통해 쌩뚱맞은 연민을 느끼는 조수정소설도 재밌었다. 한번쯤은 이런 기분이 들기도 한다. 오죽 했으면 저러고 살까.
부동산 유튜브 강의를 들으며 관광을 다니다 중고사기꾼의 발신 주소를 찾아가 보니 재개발 지역인 것을 알고 사기꾼의 사는 곳에 대한 측은한 마음에 화자가 느끼는 허탈하고, 외롭고, 화나고, 쓸쓸한 감정…

사람들의 표정은 어둡고 딱딱했다. 모두에게 일어난 비극이었지만 내용과 상실의 감각은 제각각이었다. 모두가 소중하고 중요한 것을 한순간에 잃었다. - P57

누가 그랬나. 밤은 초라한 것을 가려주는 아름다운 옷이라고. 이렇게 밤의 시간에 잠긴 종묘는 고요하고 아늑했다. - P77

"음, 지킬 것은 없지만 돌볼 것은 있잖아요. 전 밤마다돌아다니면서 계속 그들에게 말을 걸어요. 여기 있다는 것을 안다고. 기다려달라고. 그렇게 말해요. 어딘가를 맴돌고 있다는 것을 알아요…………. 영혼들이?" - P78

이도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고 감정이 장소인 것 같다는 서유성의 말을 곱씹었다. 감정이 장소다. 감정이 장소다. - P89

아이의 얼굴에서 20세기의 분위기가 풍기는 동네. - P151

피로했다. 화가 나는 것도 같았고 쓸쓸한 것도 같았다.
서글펐다. 허탈했다. 아니, 외로운 것도 같았다. 뭘까 이감정은. 이 감정에는 대체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하는 걸까.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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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리커버) - 지나온 집들에 관한 기록
하재영 지음 / 라이프앤페이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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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나도 집다운 집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늘 보통의 집이라고 하는 아파트, 단독주택, 빌라 같은 형식을 벗어난 독특한 형태의 집에서 살아왔고, 그런 결핍으로 인해 나는 안정적이고 안락한 분위기의 거주형태를 갈망하고 산다.

작가는 초등학교에서 ‘너 어디 사니?’라는 질문을 계기로, 사는 곳이 계급을 상징하는 기준이 된다는 걸 깨달았다. 어렸을 때부터 부유하게 태어나 자연스럽게 세속적이고 속물적인 사회에 편승해 자본주의의 구성원이 되는 과정을 볼 듯했다. 하지만 중학교에 들어가고 찾아온 아버지 사업의 부도로 가난해졌고, 대학 입학을 위해 서울에 상경하면서 빈부격차를 더욱더 현실감 있게 체험하며 빈곤한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게 된다.
처음엔 낯선 부잣집 딸내미의 배부른 삶의 애환을 들어줘야 하는 책인가 싶었지만 이내 곧 동질감(?)을 느끼게 되었다. 월세나 전세로 원룸과 투룸을 전전하며 살아가던 나의 20대, 그곳에서 타의로 이룬 자립. 아등바등. 살면서 많은 사람들이 겪었을 흔한 고통이지만 드러내기는 차마 부끄러운 처지를 공유한다는 것만으로도 작가가 좋아지고 글을 대하는 나의 감정도 달라진다.

집이란 것은 좋은 점만 보자면 한없이 자랑만 할 수도 있고, 안 좋은 점만 보자면 끝도 없이 불평만 늘어놓을 수도 있다. 안목이 좋았는지 생각이 긍정적인지 모르겠지만 작가는 자신이 거쳐온 어떤 집이든 그 대상을 ‘친애’하고 있다는 점에서 읽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어떤 형태든 집은 나의 은신처고 삶을 지탱해주고 살아가는 힘을 충전하는 곳이니까.

일곱 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었지만 건축가인 르 코르뷔지에가 말년에 살던 마르탱의 오두막은 네 평이었고, 작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은둔의 장소로 삼았던 월든의오두막도 비슷한 크기였으니 불만스러워할 일도 아니었다. 게다가 그 원룸은 내가 가진 얼마 되지 않는 돈으로 엘리베이터와주차장, 외부 도어락과 빌트인 가구의 혜택까지 누릴 수 있었다. - P55

가난은 서로에게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가난은 월세 30만 원짜리 자취방이지만 누군가에게 가난은 포클레인이 밀어버릴 쪽방이었다. 누군가에게 가난은 자기만의 방을 가지지 못한 것이지만 누군가에게 가난은 거리로 내몰린 노숙인의 삶이었다. 가난을 가늠하는 일은 자신의 과거든 타인의현재든 비교 대상이 필요했다. 마포의 30평대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는 친구의 집을 다녀온 날, 나는 가난했다. 원룸에서 불과 몇 정거장 떨어진 난곡의 쪽방을 목도한 날, 나는 가난하지 않았다.
신림동의 일곱 평짜리 원룸은 마포의 아파트와 난곡의 판자촌 중 어디에 더 가까울까? 아무리 노력해도 한강 전망의 브랜드 아파트가 대변하는 삶에 진입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노력을 게을리하면 도시 빈민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달동네 판자촌으로 추락할 것 같았다. 난곡의 안쪽을 바라볼 때마다 ‘여기‘가최악은 아니라는 안도감과 ‘저기‘로 굴러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교차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알고 있었다. ‘저기‘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그 사람들은 ‘저기‘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저기‘에서나마 쫓겨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그 절박함 앞에서 느끼는 안도와 불안이 부끄러웠다. - P59

세상에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 사람조차 기어이 바닥을 드러내게 만드는 동네가 있었다. 품위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존중받기를 원하는 만큼 타인을 대접하는 사람, 나의 상처가 아픈 만큼 남의 마음을 섬세하게 헤아리는 사람이고 싶었다. 품위는 인간에 대한 예의이자, 가진 것 없는 자가 자기혐오에 빠지지 않기 위해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방어선이었다. 나는 매사에 ‘내돈을 써야 하는 일인가만 생각하는 사람, 폭력적인 시선으로남을 쳐다보는 사람, 남의 차에 가래침을 뱉는 사람, 욕설을 퍼붓고 악을 쓰는 사람이 결코 되고 싶지 않았다. 나뿐 아니라 누구도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다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그런 사람이 되고 만 것이다. 어떤환경에 있는 사람에게는 자연스럽게 몸에 배는 품위와 교양과인격이 다른 환경에 있는 누군가에게는 필사적인 노력을 통해만들어야 하는 태도였다. 피곤하고 지친 나머지 끝내 화만 남은이들에게는 인간성을 유지하는 데에도 노력이 필요했다. 나는이웃들을 좋아할 수 없었지만 차마 미워할 수도 없었다. - P84

"이제 나도 서른이니까."
동생의 책상 위에는 최승자의 『이 시대의 사랑』이 놓여 있었다. 나는 동생이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때 서른 살은 온다"는 구절을 읽고 그런 결심을 하지 않았을까짐작했다. 왜 그런지 동생의 회사에 찾아간 날이 떠올랐다. 나는 로비에서 동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건물의 인테리어도, 로비를 오가는 사람들의 옷차림도 근사하고 세련되어 보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내 쪽으로 걸어오는 동생은 발목까지 내려오는 슬립 드레스에 디자이너 브랜드의 재킷을 걸치고 있었다. 동생이 그 장소에 잘 어울려 보이는 데 안도하면서도 그 아이가 매일 느낄 괴리감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화려한 사람들로가득한 건물을 빠져나와, 만원 전철을 타고, 어둡고 가파른 골목을 걸어올 때의 기분을. 그동안 동생은 누구에게도 우리의 남루함을 들키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 따로 살자."
우리는 이 집에서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없"는 시간을 너무 오래 보낸 것이 아닐까? - P86

그녀는 혼자 원룸-방에 사는 것 같지만 남편과 아이가 있고 가족과 함께 사는 집이 있다. 여자는 남편이 출근한 뒤에 방으로 가고 남편이 퇴근하기 전에 집으로 돌아온다. 시간이 흐르고 아내가 다른 공간에 드나들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남편이 여자를 미행하여 방에 들이닥친다. 그리고 혼자 사는 여자들이 안전을 위해 흔히 그러듯 현관에 놓아둔 남자의 구두를 본다. 남편은 아내의 외도를 확신하지만 그곳은 자기만의 공간과시간을 가질 수 없었던 여자의 ‘자기만의 방‘일 뿐이다. ‘집’은 여자가 가사 노동과 육아를 전담하는 공간, 독립과 자유의 실현을억압하거나 최소한 보류하게 만드는 장소다. 그녀가 고정된 성역할에서 벗어나 지적 갈망을 충족하고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곳은 집이 아니라 ‘방‘이다. 여자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그녀는 자기만의 방에서 끊임없이 읽고 쓴다.
여자가 집 바깥에 마련한 자기만의 방이 서재의 역할을 한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읽는 것은 다른 삶, 다른 사유, 다른경험을 흡수하는 일이다. 과거에 여성은 아버지, 남편, 오빠 같은 남성 가족이 허용한 책만 읽어야 했고 스스로 책을 선택하는일은 허락되지 않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성이 여성의 독서를 불온하게 여겼던 이유는 여성이 억압받는 현실을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을 차단해야 했기 때문이다. 책은 전복적 세계, 또는 세계의 전복을 꿈꾸게 만든다. - P133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인테리어 업체에 의뢰하는 대신 각 시공마다 개별적으로 인력을 섭외하기로 했다. - P153

학교가 가까워지자 아빠가 물었다.
"좀 떨어진 데 내려주는 게 좋겠지?"
"왜? 학교 앞에 내려줘."
아빠는 내 대답에 흐뭇한 표정이었다. 학교 앞 사거리에서신호를 기다리며 그가 말했다.
"며칠 전에 재경이도 학교에 데려다줬는데 이 녀석이 멀리떨어진 골목에서 내려달라는 거야. 화물차 타는 걸 친구들이 보는 게 싫었나 봐."
장난기가 발동한 아빠는 동생의 속내를 모르는 척 정문에내려주겠다고 했고, 당황한 동생이 거듭 사양하면서 한바탕 실랑이를 벌였다고 했다. 나는 그런 일로 장난치는 아빠가 좀 어이없었다. 아빠는 동생의 표정이 떠올랐는지 쿡쿡 웃더니 기쁜목소리로 말했다.
"재영이는 착해서 아빠를 부끄러워하지 않지."
물론 나는 화물차를 운전하는 아빠가 부끄럽지 않았다. 착해서가 아니라 직업의 귀천을 따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부끄러워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많이 지난 뒤에도 아빠는 우리가 함께 살던 시절의 몇 가지 일화를 근거삼아 나를 ‘착한 딸’이라고 확신했다.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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