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 종속적 자영업자에서 플랫폼 일자리까지 서해문집 사회과학 시리즈
전혜원 지음 / 서해문집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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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에 대해 알지 못했던 개념들을 습득했다. 사람은 계속 배워야 한다.
사회보험이 고용이 아니라 소득을 상실한 이들을 위한 보험으로 확대되어야 한다는 점, 자영업이 선택이 아니라 고용의 울타리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불가피함일 수 있다는 점을 새롭게 깨닳았다.
노조는 단순히 집단 이기주의를 실현하는 이익집단에 불과하고, 이들의 승리는 노동자들의 임금 격차만 벌릴뿐 사회적 정의와는 무관하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산업별 교섭이라는 개념은 처음 접했는데 너무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임금이 자격이나 신분에 대한 보상이 아닌 성실한 노동의 대가가 되는 날이 오길 바란다.
공정과 정의를 가장한 젊은 세대들의 보상심리의 문제점도 동의하는 바이다. 도저히 연대라는 개념도 없고 자기 성찰도 모르는 최악의 세대가 탄생했다. 그래도 인간이라서 존중해 주지만 결국 스스로 자멸해 가기를 더 바란다.

한국사회는 건강보험제도를 도입해서 확대해나가는 과정에서이해관계 세력들 간에 파국적인 갈등과 분열을 겪었지만, 건강한자와 병든 자, 부자와 가난한 자의 행복과 고통을 서로 기대게 함으로써 모범적인 제도를 만들 수 있었다. 전혜원 기자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건강보험제도의 성공사례는 지금의 갈등과 대립을조정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이라고 생각했다. 강자와 약자 사이의대등한 경쟁은 공정이 아니라 약육강식의 질서를 확립한다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경험을 통해서 증명되었다. 합리주의의 수리개념으로 보면, 정의가 현실 속에서 구현된 모습은 다소 불합리해보인다. ‘서로 기대기‘ 이외에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그러나 ‘기대기‘를 제도화하려면 정치력이 필요하다. - P7

문제는 노동시장이 더 이상 직접고용으로 굴러가지 않는 상황에서, 기존 노동법으로 포괄할 수 없는 ‘자영업자‘가 자꾸만 생겨난다는 점이다. ‘자율적으로‘ 새벽배송에 나섰다가 골반뼈가 부서진 최서경 씨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지금까지는, 노동자가아니지만 ‘예외적으로 보호해주는 조치‘를 확장해오는 일의 연속이었다. 이 과정은 더디고, 우연에 의존한다. 이런 방식으로는 노조로 조직되거나 특별히 눈에 띄는 업종의 사람들만 순차적으로보호할 수 있을 뿐이다. - P49

‘건강보험처럼 고용보험도 모든 일하는 국민에게 확대하자‘는주장 역시 코로나19를 계기로 공감대를 얻었다. 이른바 ‘전 국민고용보험‘이다. 언뜻 당연해보이지만, 실은 혁명에 가까운 변화다. 왜 그런가.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정치권과 학계에서 두루 인정받는 복지제도 연구자다. 그는 "기존 고용보험은 회사에 고용된 사람, 즉 노동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제도였다. 전국민 고용보험은, 노동자 기반에서 취업자 기반으로 사회보험의 틀을 바꾸겠다는 의미다"라고 말한다. 취업자란 노동자보다 넓은개념이다. 수입을 위해 한 시간 이상 일한 모든 사람을 포괄한다. - P60

"나는 안정된 고용을 가지고 있지만 불안정 노동자들을 위해서 보험료를 더 낼 수 있느냐. 전 국민 고용보험이던지는 질문이다. 이걸 해야 하는 이유는, 그게 새로운 사회계약이고 연대이기 때문이다. 안정된 고용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의 연대이고, 또한 세대 간 연대다." - P69

한국은 이미 ‘제조 노동자 1만 명당 로봇 이용 대수‘ 1위인 나라다. 이 같은 극단적 자동화에는 노동조합의 묵인도 기여했다는평가가 있다. 회사는 정규직의 고용을 보장하는 대신 생산공정을자동화하고, 생산 유연성은 외주화로 확보해왔다. ‘정의로운 전환‘이란 기후위기에 대응해 급격한 산업전환이 일어날 때, 그 과정이 모두에게 정의로워야 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한국사회는 준비가 되어 있을까. 성큼 다가온 전기차 시대가 던지는 질문이다. - P114

한마디로 ‘데이터 기반의사결정‘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것이 물류 혁명의 본질이다. - P122

그런 한편 쿠팡은 막대한 돈을 쏟아부으며 로켓배송 관련 인력을 유지하면서도, 큰 규모를 바탕으로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상품을 제공하고 있다. 당장의 이익을 추구하는대신 공격적인 투자로 경쟁자를 몰아내는 ‘약탈적 가격 책정‘이다. 플랫폼 기업에게 이는 합리적 전략이다. 이용자가 많아질수록효용이 올라가므로 초반에 얼마나 많은 이용자를 확보하느냐가 관건이어서다. - P133

그런데 공기업의 진정한 주인은 시민이다. 공기업 경영진은 정부를 대리하고, 정부는 시민을 대리한다. 인천공항 정규직이 시험한 번으로 사실상 평생 얻고 있는 결과는 납세자의 이익에 충실한가? 시민이 제공받는 서비스의 질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가? 공채시험으로 얻는 유무형의 이익이 100% ‘노력‘ 또는 ‘재능‘에 따른것인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 P174

이쯤 되면 공정은 우리 시대의 블랙홀이다. 일단 ‘불공정 논란‘에 불이 붙으면, 논의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다. 논의를 뒤엎을 힘이 있는 의사 집단은 자신들의 의지를 실제로 관철했다. 의사 파업은 인천공항 정규직화 논란의 극단화된 버전이라 할 만하다. - P180

저성장 사회가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젊은 세대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 예전만큼 질 좋은 일자리가 많지 않고, 학벌이나 자격증이 더 이상 괜찮은 직업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밥그릇 싸움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의사나 (공기업) 정규직 같은일자리를 노력해서 얻게 되었는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나 공공의대같은) 구조적 개입이 ‘나‘의 노력을 헛수고로 돌린다며 일단 반발하고 본다. 좀 더 넓은 시각으로 사회적 불평등이나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때 공정성을 들이대는 건 굉장히 문제적이다. 사실그 공정성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해관계를 반영할 뿐이다. ‘내밥그릇을 빼앗아가거나 내 노력을 보상해주지 않아서 불공정하다‘는 것이지 사회적 공정성을 말하는 게 아니다. 자신의 이해관계를 들이대면서도 ‘절차적 공정성이 문제‘라며 이를 은폐한다.
미국에서는 이런 현상을 흔히 웨포나이즈weaponize(무기화)라고 한다. 담론 싸움에서 (공정성 같은 특정 단어를 무기화하는 거다. 사실 공공의대가 얼마나 복잡한 문제인가? 이 정책을 둘러싸고 검토해야 할 갈등이나 세부사항이 정말 많다. 인천공항 정규직화 역시 풍부하고 섬세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의제인데, 공정성이라고 말하는 순간 논의가 활발해지는 게 아니라 차단되어버린다. 나아가 다른 집단에 속한 사람이 말할 자격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들은 ‘절차적 공정성‘ 같은 정의로워 보이는 개념을 들고나온다. 그 순간, 비정규직은 갑자기 불공정하게 수혜를 입은 것처럼 되어버린다. 결코 그렇지 않은데도. - P182

대한의사협회의 카드뉴스가 드러낸 건 지난 20년간 양성된 의사 집단의 엘리트주의, 능력주의, 성과주의다. 우리가 그만큼 성적이 좋은 엘리트들이고, 한번 이겼기 때문에 계속 모든걸 독점해야 한다는 논리인데, 지적한 것처럼 공정이나 정의 같은단어를 갖다 붙였을 뿐이다. 특히 이번에 공공의대나 의사 증원에반대하기 위해 집단휴진을 하는 과정에서 가장 전면에 나선 집단이 필수의료를 공급하는 대학병원의 전공의였다는 건, 기본적인직업윤리나 ‘전문가주의‘조차 잠식당했다고 봐야 한다. 이렇게 양성한 의사들이 과연 우리 사회에서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필수적이고 공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심각한 의문을 던져주었다. - P185

공채에서 또 반복될 것이다. 취업시장의 서열이란 그 앞의 교육불평등에 따른 서열일 거고, 그건 아마 부모 소득의 서열과 맞아떨어지지 않겠나? 이렇게 가는 구조를 계속 둘 것인지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 - P190

그렇게 위험은 흘러서 하청에 고인다. - P242

중소 영세기업의 지불능력과 지속성을 고려할 때, ‘모든 노동자들이 연공급을 받아야 한다(연공급의 보편화)‘는 대안엔 현실성이 없다. 격차를 해소하는 데 한계가 뚜렷하다. 연공급이 사회적기준으로 작동하긴 어렵다는 이야기다. ‘근속연수‘와 그 사람이다니는 기업의 지불능력, 그리고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 현재의 노동시장이 더 정의로운지, 아니면 그사람이 하는 일 (직무급)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 노동시장이 더 정의로운지 고심해볼 필요가 있다. 막연하게 ‘원·하청 격차를 줄이자‘고 주장하는 것보다 ‘원청이든 하청이든 같거나 비슷한 일을하면 비슷한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가 격차 축소에 훨씬 강력할 수 있다. - P288

한국사회에서 20년 가까이 떠도는 구호가 하나 있다. ‘산업별(산별) 교섭 법제화‘다. 지금은 기업마다 있는 노동조합이 각 기업 사용자 측과 ‘우리 회사 임금‘을 논의한다(기업별 교섭). 이 경우 개별회사의 지불 능력과 노조의 힘에 따라 회사마다 임금이 달라진다. 하지만 특정 산업의 노동자 전체를 대표하는 노조가 해당 산업 사용자 단체와 협상을 벌인다면(산업별 교섭), 어떤 기업에 속해 있든같은 일을 하면 비슷한 임금을 받게 될 것이란 논리다. - P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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