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싫은 사람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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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에는 남자친구와 결혼해서 지긋지긋한 직장을 벗어나고 싶어 남자친구의 프로포즈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남자친구는 결혼 후에도 이카에가 계속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하루 빨리 일에서 벗어나고픈 자기 계획에 차질이 생겨버렸다. 그때 이후 이상하게 남자친구의 단점이 부각돼 보인다. 특히 식당점원을 대하는 무례한 말투가 너무 거슬린다. 그러다 남자친구가 전보를 계기로 아카에에게 프로포즈한다. 자기를 따라 발령지역으로 따라와줬으면 좋겠단다. 프로포즈의 기쁨도 잠시 웬지 생각해보니 남자친구가 자기를 너무 휘두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아카에는 그냥 결혼을 미루기로 결정한다.

아무런 노력도 없이 내 몸이 편하면 좋겠는데, 그러면서 동시에 누군가에게 존중도 받으면 좋겠다. 타인의 사랑은 자기 희생과 노력을 담보로 얻을 수 있는 건데, 오로지 내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타인에게 존중받아야 한다는 현대인들의 비대한 자의식 문제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아카에의 자존감 회복은 축하할 만하지만, 과거에 대한 자기 반성은 없다. 이런 책들의 공감과 위로는 결국 현대인들에게 자의식 과잉을 부추기기만 할 뿐 아무런 순기능을 하지 못한다.

순짱의 인생은 내가 옆에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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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실직 도시
방준호 지음 / 부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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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도시 군산의 최근 20-30년간의 상황을 현장 정규직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지역공무원, 자영업자 등의 진술을 토대로 기록했다. 한국에서 자리 잡은 ‘노동‘이라는 개념을 통해 산업도시의 흥망성쇠가 각각의 주체들에게 어떤 파급효과를 낳았는지를 정리해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결과적으로 안타까운 점은 우리의 현실이 민첩한 유연성을 갖춘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보상은 적고, 안일함에 주저 앉아버린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누리는 기득권은 점점 두터워진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직업 전문성과는 무관한 자격을 갖춘 사람들을 관리자로 뽑아놓고 ‘아무나 쉽게 제대로 할 수 없는 능력을 갖춘 전문 인력들을 관리한다. 이런 것이 공정하고 바람직하다.
는 광적인 믿음이 있다. 이는 충분히 비윤리적으로 보이나, 기득권층(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은이런 선입견이 만들어내는 차별과 멸시에 정당성을 부여하며 굳건하게 자리를 지켜왔다. 하지만 이들이 시대 흐름에 대응하지 못해 산업구조개편으로 순식간에 무너져버리고, 노동의 존엄성을 빙자해 인간 존엄성(결국 이기심)을 주장하는 것이 반복되고 있다. 어쩌면 이러한 시스템을 만든 권력자들은 본 경기에 빠져있고 하위 그룹들이 아귀다툼하는 꼴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어떤 노동자들이건 우리 안의 차별을 없애고 연대해야 진정한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실은 2000년대 이후 모든 정부가 일자리 정부를 결심했다. 일자리는 지표가 흔들릴 때마다 부단히 대책을 내놓는 대표적인 과제가 되어 있다. ‘노동은 인간 삶의 본질‘ 따위 고색창연한 당위 때문은 아닌 것 같다.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일자리의 맥락은 일종의 나랏돈 들지 않는, 노력한 만큼 주어지는 ‘공정한 분배 정책에 가깝다. (무려 시장이 완벽히 승리한 21세기에) 기업에 조금이나마 임금을 통해 분배 책임을 지우는 방법으로 여겼다. 노력한(?) 자에게만 떡이주어져야 한다는 공통 감각(?)에 바탕한 분배처럼도 보였다. 보수든 진보든 다른 의견이 끼어들 틈이 없다. 모두가 ‘중요하다‘고 했다.

그런데도 제조업을 말하고 생각하는 일은 드물었다. 좀 시대에 뒤처진 것처럼 느꼈다. 1980년대 후반 수도권에서 태어나 2000년대 이후 서울에 살며 작은 공장이나마 제대로 본 기억이 없다. 주변 대부분은 컴퓨터 화면을 일터삼았다. 공장과 삶의 거리가 멀면 멀수록, 반짝이는 것 같았다. 2010년대를 지내면서 공식처럼 외운 문장(제조업 중요해!)을 실감하는 일은 점점 드물었다.

대우와 정부가 공장 건설 비용 문제를 두고 씨름을 했던 듯도 보이지만, 결국 대우는 군산을 새 자동차 공장 자리로 정했다.
당시 부평이나 창원 대우차 공장이 옮겨 올 계획까지 세운다는 소문이 돌았다는데, 그 정도까지는 안됐다. 대우는 바다를 메워주고 돈 대신 땅을 받았다. 그 자리에 공장을 지었다. 120만 평 규모다. 군산 국가 산업 단지의 절반을 넘는다.

국가 산업 단지가 생겨난 이후에도 바다를 메워 공장 부지를 짓는 일은 멎지 않았다. 오식도부터 비응도까지를 메운 군산제2국가 산업 단지가 만들어진 건 2000년대다. 군산 제2국가 산업 단지 대표 기업이 현대중공업 군산 조선소다.

위기는 많은 것에 새로운 정당성을 부여한다.

한국은 그사이 어디쯤, 중간재 생산 국가로 운 좋게 자리 잡았다. 세계 생산에 강하게 얽혔고 구조적인 무역 흑자국으로 불렸다. 세계 경기가 좋으면 수출이 늘어서, 세계 경기가 좋지 않으면 생산에 필요한 자재 수입이 줄어서 늘경상 수지는 흑자였다. 쉽게 휩쓸리고 변동성이 늘었지만, 아무튼 흑자였다. 국가 경제 전체로 보면 성공적인 2000년대를 났다고 자부할 만하다. 1990년대 꿈꿨던 모습이다. 생산과 소비의 무대가 세계화되었다.

대기업은 "역시준비성부터 달랐다." 당시 현대중공업 회장이 군산 출신이기도 했다. 백일성과 동료들은 조선소가 들어서야 할 땅을 차지하고 있던 기업과 협상을 중재해 현대중공업에 땅을 넘겼다. 보조금 200억 원을 시와 도가 나뉘 지원했다. 도로와 주차장을 새로 지었다.
이것만으로 충분치 않다. 백일성은 군산대학교에 가서 조선업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 과정을 준비해 달라고 요구했다. 군산대학교에는 조선공학과가 설립됐다. 심지어 유서 깊은 지역 고등학교 장항공고는 충남조선공업고등학교로 이름까지 바꿔 달았다.

저성장과 변동성은 한국 사회에 다양한 영향을 미쳤다. 산업 단지만 놓고 보자면 IMF에 이은 두 번째 비정규직 붐을 이루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유연하게 인력을 구성해야 한다고 여겼다.
조선업은 그 가운데서도 유연화가 가장 적나라한 산업이 됐다. 조선 3사(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의 기능 인력(생산직) 비정규직은 2010년 8만 6810명에서 2015년 13만 5785명까지 늘었다(비정규직 중심으로 꾸린 해양 플랜트 산업 확장의 영향도컸다). 정규직은 1990년 이후 6만 명 수준을 유지할 뿐이다. 현대중공업 군산 조선소는 이런 시점 만들어졌다. 울산이나 거제에서 조선업이 가지는 의미와 군산에서 조선업이 가지는 의미는 그러므로, 꽤 다를 터였다.
군산에서 현대중공업은 산업 단지와 도시에 비정규직 노동자가 유입되는 것을 주로 의미했다. 울산이나 거제도 같은 변화를 겪었으나, 그나마 긴 역사 속에 형성된 중산층 조선업 가족도 도시를 이루는 한 축으로 남아 있기는 했다.

현대중공업 군산 조선소는 2017년 6월 가동을 완전히 중단했다. 8년, 짧은 역사였다. 현대중공업 사람들은 사라지고, 현대중공업을 바라보고 꿈꿨던 사람들만 남았다.

2018년 2월 13일, 그날, 한국지엠 군산 공장은 3개월 보름여 뒤6319) 공정을 폐쇄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현대중공업 군산 조선소의 가동 중단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이유는, 덜 고통스러웠다기보다 통곡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의 목소리는 터져 나오지 않았다.
노동조합과 현대중공업 군산 조선소 하청 노동자의 관계는 느슨했다. 하청 노동자 문제는 조선업 노동조합의 묵은 숙제다.
사내 하청 노동자 문제를 둘러싸고 민주노총 금속산업연맹은 2004년부터 10년 가까이 현대중공업 노조를 제명하기도 했다. 현대중공업 사내 하청 노동자 박일수 열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 현대중공업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과 연대에 나서기는커녕, 장례식장을 때려 부수고, 탄압했던 일이 결정적이다(<프레시안), 박점규의 동행, ‘정몽준 왕국‘ 현대중공업 ‘어용 노조‘ 12년 만에 몰락), 정규직의 이해와 기업의 이해가 맞물려 그 바깥의 이들은 들어설 수 없는 해자를 쳤다. 노동 운동은 정규직 조합원 처우 개선에 머물렀다.
조합이 하청 노동자를 품지 않은 시기는 더군다나 조선소에 비정규직이 급격하게 늘던 시기와 겹친다. 군산 조선소는 노동자 80퍼센트를 비정규직으로 채웠다. 조선업이 비정규직으로 한창 재편되던 시점(2009년) 지어졌으므로 당연한 결과다.
2013년 현대중공업에도 민주노조가 다시 들어섰다. 돌아온 민주노조도 비정규직을 포괄해 노동조합을 재건하지는 못했다.
여전히 정규직 중심이었다. 정규직은 군산 조선소가 가동을 멈춰도, 울산 조선소로 자리를 옮기면 될 일이었다. "조합과 현대중공업 노동자 사이에 연결 지점이 많지 않았어요. 조선소가 가동을 중단하기 6개월쯤 전에야 소식을 알게 됐어요. 그나마 정규직인 조합원 500명 정도는 울산으로 가게 됐으니까 큰 반발이 있지는 않았죠. 하청 노동자는 조합원이 아닌 채 뿔뿔이 흩어져 버렸고요."(최재춘, 민주노총 군산지부장)

그렇다면 답은 재취업 혹은, 자영업뿐이다. 재취업이라고 해 봐야 이전 같은 일자리는 사라졌으므로, 다른 직업을 찾아야한다.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 머뭇댄다. 정규직은 한층 그렇다.
여론은, 머뭇거림을 조롱했다. 인정, 그들은 누군가 보기에 고임금에다 안정적인 삶을 보장받으며 일했다. 귀하게 일한 탓에 스스로 제일 하나 찾지 못한다. 대체 왜 그들을 보듬어야 하는가.

다만 한국 사회에서 일이 지닌 사회적 인식은 엄연히 계층화돼 있다. 상대적으로 열악한사회 복지 일자리의 처우와 환경이 문제가 된다. 또한 일에 대한 젠더 구분이나 고정 관념을 깨기가 쉽지 않다.

이 일, ‘하고자 한다면 누구나 할 수 있어도 제대로 하려면 아무나 할 수 없는 프로의 세계‘다.

한국지엠의 비정규직, 특히 30~40대 젊은 축에 속하는 노동자들은 정부와 고용 기관에 모범적인 케이스‘로 불린다. 독려하고 관리하지 않아도 알아서들 새 일자리를 구했다. "2019년 초까지만 해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아 애태웠던 정규직 노동자와는 확실히 결이 다르다." (김정화, 군산 고용위기지원센터 팀장) 비정규직으로 살아 왔기에 임금과 처우에 까다롭지 않고, 희망퇴직금을 받지 못해 다급했으며, 무엇보다 옮겨지는 것에 익숙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뒤따른다.

공장이 떠난 이후, 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민첩함을 부러워한다. 동시에 어떤 세상의 이치가 실직 이후 이들과스스로의 차이를 갈라놓은 것은 아니었을지 되새긴다. 기억에는 미안함도 꽤 섞여 든다. "세상에 나와 보니 정규직들이 완전 뒤쳐져 있지. 공장 안에서도 정규직이 등한시하는 힘든 일을 비정규직들이 더 많이 했으니까 능력 면에서도 낫다고 봐. 생존 능력 자체가 강한 것도 사실이고." (박철수)

10퍼센트도 되지 않는 제조업 사업체가 많게는 절반 넘는(울산 동구나 거제 같은 조선업 도시가 특히 두드러진다) 고용을 흡수한다. 일부 대기업이 해당 지역의 제조업 전체를 견인해 가는 상황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역의 제조업 대기업의 위기가 곧 지역 경제 위기로 파급될 가능성이 큰 것을 의미한다‘ (고용노동부 · 한국노동연구원, 지역산업 및 고용 위기 지역 지원 대책의 고용 효과‘).

산업과 일자리는 들고 나길 반복한다. 도시를 쓰다듬고 할퀴고 지나간다. 들고 나는 산업과 일자리에 따라 모습은 바뀐대도.
아무튼 도시는 그 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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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눈꽃 에디션)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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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특유의 몽환적인 분위기는 좋지만 소년이 온다 같은 몰입감과 감동은 부족하다.

인생과 화해하지 않았지만 다시 살아야 했다. - P15

어떤 사람들은 떠날 때 자신이 가진 가장 예리한 칼을 꺼내든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가까웠기에 정확히 알고 있는, 상대의 가장 연한 부분을 베기 위해. - P17

어떤 기쁨과 상대의 호의에도 마음을 놓지 않으며, 다음 순간 끔찍한 불운이 닥친다 해도 감당할 각오가 몸에 밴 듯한, 오래 고통에 단련된 사람들이 특유하게 갖는 침통한 침착성으로.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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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지 마, 니들 얘기야 - 잊힌 룸펜 흙수저와 문화자본가로 전락한 좌파 대안연구공동체 작은 책 - 인문학, 삶을 말하다
장의준 지음, 대안연구공동체 기획 / 길밖의길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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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읽고 많이 배워서 똑똑하고 잘난 줄 알았는데, ‘잘남’이란 내가 배운 정의도 아니었고 위계는 배움의 순위가 아니라 가짐의 순위라는 것을 깨닫고는 배운 지식을 전부 세상을 향해 빈정대는 폭언으로 쏟아내는 유약하고 빈약한 영혼의 울림.
서문에 쓴 ‘병신’이란 단어 사용에 대한 지적을 향한 자기 변호는 처절하게 옹졸할 뿐더러 아집을 신조로 포장하려는 궁색한 변명이다. 그 꼴이 참으로 우습지만 그래도 그게 ‘똑똑함’이라고 착각하고 있겠지.
그래도 몇 가지 남의 지식을 요약해 놓은 수고가 있으니 별점 하나 더.

그가 ‘일생 동안 추구했던 가치‘는 ‘합리‘였다. 반면, 그가 보기에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가치는 비합리였다. 즉 "먼저 태어난 자, 가진 자, 힘 있는 자의 논리에굴복하는 것이 합리로 통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 P10

있는 자를 위한 의미를 지켜 주는 것은 우파이데올로그의 과제이며, 없는 자를 위한 의미를 제시해 주는 것은 좌파 이데올로그의 과제이다. 그리고이는 곧, 좌파들이 없는 이들이 겪고 있는 의미의 부재 문제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의 좌파 이데올로그들은 없는 자들의 고통에 의미를 부여해 주는 일에 실패했다. - P16

알튀세르의 어휘로 말해 이데올로기는 주체를 호명 interpellation 한다. 상황은 이렇다. 인간 주체는 자신이 항상 중립적이며 자유롭고 객관적인 인식을 하고 있고, 그렇기에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져야만 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이러한 믿음은 사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다. 인간 주체는 자신의 믿음과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의 존재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인간 주체는 계급 관계 속에서 지배하고 있는 이데올로기가지배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데올로기라는 사실을 알 수 없으며 바로 이러한 무지로 인해 주체는 지배 이데올로기에 봉사하며 자본주의의 재생산에 기여한다. 이데올로기가 주체를 호명한다는 것은 이렇게 이데올로기를 통해 주체가 만들어지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 P72

달리 말해서 현대인들은 문화산업에 의해서 자신들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총체적인 물화 속에 빠져들게 되며 반성 능력과 비판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반성과 비판 능력을 상실한 개인은 지배 체제에 보다 더 잘 흡수되고, 보다 더 잘 통합될 수 있도록 길들여진다. 요컨대 문화산업의 궁극적 효과는 바로 체제에 저항하지 않는 개인들을 길러 내는 것, 체제에 철저하게 순응하는 개인들을 키워 내는 것이다. 말하자면 문화 산업은 모든 반항의 씨앗을 사전에 미리 차단하면서도 대중의 즐김에 대한 욕구를 만족시켜 준다. - P75

그런데 한국사회에서는 집권세력에 대한 저항 자체가 유흥이나 오락거리, 즉 ‘동의‘로 보인다. 우리 사회의 대중은 체제에 저항한다고 믿는 가운데 실제로는 체제에될순응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문화산업은 체제에도전하려는 욕망을, 체제에 반항하려는 욕망을 북돋고 자극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렇게 자극된 대중의 체제에 대한 저항의 욕망은 일종의 사이비 욕망, 즉 환상일 뿐이다. 실제적인 저항의 계기는 오락으로서의 사이비 저항을 통해, 체제 순응적 저항을 통한 대리만족을 통해 미리 차단된다. - P77

그에 의하면 상류계급 내에서 취향이 갈라지는이유는 바로 이러한 경제자본과 문화자본의 소유 비율 때문이다. 연극 관람에 관련된 취향을 예로 들어보자. 문화자본을 더 많이 가진 상류 계층 구성원들(전문직 종사자, 대학 교수, 언론인)은 대개 아방가르드 작품을 관람하는 경향이 있으며 멜로드라마를 얕잡아 본다. 반면 경제자본을 더 많이 가진 상류 계층구성원들(기업 임원, 자영업자)은 대개 멜로드라마를 높이 평가하며 아방가르드 작품을 개밥의 도토리취급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한국사회에서 좌파와 우파의 대립은 문화자본 세력과 경제자본 세력 간의 대립으로 설명될 수도 있을 것이다. - P89

그리고 바로 이러한 사실로 인해서 선물을 받는사람은 거기에 답례해야만 한다는 부채의식을 갖게된다. 이런 부채의식은 선물을 주는 사람에 의해 요구되거나 강제된 것이 아니라 선물을 받는 사람이 저절로 혹은 자발적으로 갖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 부채의식은 자발적인 감사나 자발적인 순종의 논리로나타나게 된다. - P93

플로베르뿐 아니라 마네, 조이스, 프루스트 등과 같은 모더니즘 예술가는 모두 특권 사회계층 출신이다. 브루디외에 의하면 그들이화상들의 요구나 시장의 요구를 거절하며 물질로부터 초연한 자세를 취할 수 있었던 것은 물질적 필요와 편안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 P101

한국 문화장의 문화자본은 좌파 이데올로그들이독점하고 있다. 알라딘이나 교보문고 웹 사이트의 정치 분야 베스트셀러 목록을 검색해 보면 좌파 이데올로그들이 거의 독점적인 지위를 차지한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문화자본 독점 현상은 연예계에서도두드러지게 관찰된다. 연예인들이 좌파적 성향을 갖고 있다고 자기선전을 하는 것은 문화자본을 획득하기 위한 장점으로 작용하는 반면, 우파적 성향을 갖 - P105

그렇다면누가 체제의 정당화를 가장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까? 바로 좌파 이데올로그들이다. 피지배계층은 그들의 계급적 조건으로 인해 반체제적 성향을 가질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들은 반체제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체제의 유지 및재생산에 기여하고 있는 입장, 좌파적이라고 자처하는 입장을 지지하는 것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우리는 앞에서 19세기 후반에 사회주의자들이 시도했던 사회주의 문화운동이 사실상 노동자들을 부르주아 문화에 통합하는 데 기여함으로써 자본주의자체를 증진시킴과 동시에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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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가 될 줄 몰랐다는 말 - 무심히 저지른 폭력에 대하여
김예원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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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지적장애가 있을 경우,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 순종과통제에 익숙한 생활을 해온 경우가 많고, 협소한 인간관계를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에게 조금만 잘해주는 사람(특히 비장애인)이 나타날 경우 쉽게 친밀감을 드러내기도합니다. 가해자의 돌봄에 길들여진 지적장애인은 가해자로인한 착취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지 혼란스러워합니다.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자라왔기에 애정과 관심을 받으려고원치 않는 성적인 관계에 끌리기 쉽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성적인 관계에 실제로 나가게 되면 이것을 성범죄로 인식하기보다는 애정관계로 인식하여 그 관계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 처합니다.
가해자는 피해자를 가족들로부터도 고립시키고 자신이 연락을 피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피해자에게 큰 심리적 압박이 된다는 것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설령 문자메시지를 통해 나눈 대화에서 피해자가 먼저 연락하거나 애정표현을 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애정관계라고 단정하기보다는 이 힘의 불균형을 반드시 수사과정에서 고려해야 합니다. - P40

장애인은 소수자일 수는 있지만 ‘약자‘로 불릴 이유는 없다. 사람의 얼굴이 제각기 다르듯 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도개개인의 특성에 따라 모두 다르다. ‘약자‘라는 말로 납작하게 표현할 사람들이 아니라는 말이다. ‘도와줘야 하는 장애인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감탄하고 배우고 싶은 한 사람으로 만나는 것을 기대하고 실천해보면 어떨까. - P86

장애인이라서 비장애인들의 대상이 될 이유는 전혀 없다는 내 속마음이 아이에게 얼마나 전달되었을까. 누군가 데리고 나와줘야 소풍이라는 이름으로 공원 구경이라도 할 수 있는 삶을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더는 비장애인 중심의사회에서 객체나 대상이 되는 삶이 아니라,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 마음껏 자유를 누리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 P93

정말 아이에게 한 행동이 학대인 줄 몰랐다면 다른 사람이있을 때도 똑같이 행동해야 한다. 그런데 아이가 같은 잘못을한 경우라도 다른 사람들이 보는 데서는 아무 일도 아닌 듯넘어가면서, 다른 사람이 없는 곳에서는 죽일 듯이 몰아세운다. 결국 본인도 아는 것이다. 이게 학대라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정말 학대인 줄 모르고 행하는 사람은 오히려 외부의 개입이 수월하다. 아이가 자신을 화나게 하면 아이의 뺨을 때리고, 사장이 자신을 화나게 하면 사장의 뺨을 때리는 사람은분노조절장애 등 신경정신과적 진단을 받고 사회적 관리의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동학대 가해자 대부분은 상대를 봐가면서 선택적으로 분노한다. 결국 ‘몰라서‘ ‘훈육하려고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자신보다 약한 존재에게 가하는비열한 폭력이다. 아동학대 가해자들이 합당한 벌을 받아야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 P140

민감할수록 잘 자라는 말의 씨앗
언어에는 힘이 있다. 말이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서, ‘어떤 언어를 쓰느냐‘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 나의 경우에는 비장애인을 ‘정상인‘이라고 표현하는 사람을 만나면 "이분은 장애인권 교육을 접해본 적이 별로 없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곱추(꼽추의 규범표기)는 지체장애인을 비하하는 표현이다.
아이들이 대번에 물었다. "엄마 곱추가 뭐예요?" 잠시 멈칫하다가 대답했다. - P161

어떤 사람들은 이런 나를 보고 왜 그렇게 피곤하게 사느냐고 묻기도 한다. 그깟 작은 말, 사소한 표현이 뭐가 그리 대수냐며 "네 앞에서는 무슨 말을 못하겠다"라는 사람도 만난다. 언어의 민감함을 생각하며 사는 것은 상대방을 판단하기위해서가 아니다. 사람이 언제 화가 나고 언짢고 불쾌한지 찾아내고 그 이유를 생각하며 사는 것이 직업이다 보니, 오히려언어에 대한 민감함이 생각의 변화를 일깨우는 선생님 역할을 해준다. - P163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이제 언론에서도더는 ‘처녀작‘ ‘여선생‘ 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첫 작품 ‘선생님‘이라는 표현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성 중립적 표현을 입에 붙이려고 노력하는데, 관용적으로 굳어진 유모차‘를 ‘유아차‘로 바꿔 부르는 연습, ‘아빠다리‘ 대신 ‘나비다리‘ 라고말하는 연습이 쉽지만은 않다.
줄임말이 편하기는 하지만 불편해도 줄이지 않고 쓰는 표현들이 있다. 남녀노소‘라는 말 대신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 이라고 표현하니 더 의미가 명확하고 좋았다. 같은 의미로 ‘우리나라에 사는 사람들‘ 이라는 말이 길어도 함부로 ‘국민‘이라는 단어로 줄여 쓰지 않는다. ‘국민‘이라는 말을 뜯어보면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사람‘으로 의미가 좁아지는데 그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권리의 영역에서 배제되기 때문이다. 미등록 이주민도, 난민으로 와서 낯선 땅에 정착한 사람도 같은 하늘 아래 함께 살고 있다. 그래서 헌법에서 집요하게 반복하는 ‘국민‘이라는 단어를 ‘사람‘이나 ‘인간‘으로 바꾸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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