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랜드
제시카 브루더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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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카는 한국사회에서 낭만이자 부의 상징이다. 주거를 고정된 부동산의 의미에서 그 이상으로 확장시키지 못한 사회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캠핑카에서 숙식을 해결하거나 요트나 배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것은 여러 나라에서 다양하게 형성된 주거문화의 형태 중 하나일 뿐이다.

디지털노마드라는 용어가 구속되지 않고 방랑하는 자유로운 영혼처럼 미화되어 등장한 것이 2000년대 후반쯤으로 기억한다. 그때가 마침 이 책에서 얘기하는 ‘방황으로 내몰림’이 생겨난 금융위기 때이니 어쩌면 디지털노마드는 주거 난민들이 발생한 사회문제를 하나의 트렌드로 미화시키려한 미국 언론의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종신고용을 책임지고 싶지 않은 설계자들의 신종 가스라이팅 말이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이란 전형적으로 미국적인 대응기제이며, 사실상 하나의 국가적인 오락이다.’(271p.)

린다 메이는 건축공학을 수료하고 준학사학위를 받았지만 관련 업무에 종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는 힘들었다. 90년대 초에 동업자에게 사기를 당해 여러 가지 일자리를 전전긍긍하며 홈디포에서도 일하고, 카지노에서도 일을 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자 더 이상 자신을 고용해주는 기업을 찾기 힘들었고, 자식이나 손주들의 사정도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좁은 집에서 여러 가족이 사는 것에 눈치가 보인 린다 메이는 어스십이라는 자급자족 가능한 주거형태를 알아보았고, 어스십을 만드는 꿈을 이루기 위해 일시적으로 노마드의 삶을 시작한다.
‘워캠퍼’는 린다와 같이 캠핑카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계절성 일자리나 임시직을 찾아 전국을 유랑하는 노동자들을 뜻하는 신조어다. 린다가 워캠퍼가 되어 임시직으로 찾아다닌 일자리는 계절성 일자리인 캠핑 관리인이나, 아마존의 캠퍼포스 같이 적은 수입에 고된 육체노동이 요구되는 것이었다. 아마존에서는 무료로 진통제를 지급하는 자판기까지 구비해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캠핑장에서는 매해 상황에 따라 손쉽게 관리인 수를 조정하는 등 힘들고 불안한 일자리를 전전하지만, 이런 워캠퍼들에게 비참한 시선을 던지지 말라고 경고한다.
CheapLiving.com는 워캠퍼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공유하는 사이트로 한때 소프트웨어 회사의 임원이었다가 금융위기로 몰락한 밥 웰스가 창시했다.

‘오래지 않아, 밥은 자신이 예전에 어떻게 살았는지 생각해보고는, 잃어버린 것이 그리 많지 않음을 깨달았다. 반대로 자기 삶에서 이제는 없어진 것들-구체적으로는 집세와 전기, 가스, 수도요금-을 떠올리자 아찔할 정도로 행복했다’(124p.)

구조적으로 내몰린 하우스리스이지만 살아보니 그동안 삶을 너무 의미 없는 소유에 집착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현재 삶을 받아들이며 만족한다는 사람들도 많다. 불행과 가난은 결핍과 부족이 아니라 시선이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이들도 좀 더 비참한 처지의 사람들과 자신들을 비교하며 존엄성을 지키려고 하는 점도 보였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어떻게 정의내리는가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해요. ... 당신 자신을 홈리스라고, 혹은 다른 어떤 부정적인 꼬리표를 붙여 부르고 있다면, 그건 큰일이에요.’(329p.)

하우스리스라는 홈리스와는 차별화된 의미로 워캠퍼들이 자신을 규정하기 위해 만든 용어이다. 이들은 은연중에 자신들의 처지가 조금 더 낫다는 의미로 길거리 노숙자들을 차별하고 있는 것이다.
노마드 커뮤니티에서 소수인종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도 워캠퍼 생활이 그나마 백인이라는 계층들에게만 주어진 특권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인종혐오를 실천하는 경찰들에게 흑인이 트레일러에서 숙박을 한다는 것은 강력한 처벌 대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린다는 워캠퍼 생활 끝에 자신이 꿈꾸던 어스십을 실현할 땅을 구매하게 된다. 규제가 느슨한 주에서 자급자족할 수 있는 삶을 이루기 위해 린다의 워캠핑은 진행 중이다.

사회구조적인 문제의 고발, 차별적 시선에 대한 경고, 그리고 나 자신의 삶의 방식과 노후를 돌아볼 수 있는 르포였다.

임금은 낮고 주거비용은 치솟는 시대에, 그들은 그럭저럭 살아나가기 위한 한 방편으로 집세와 주택 융자금의 속박에서 자신들을해방시켰다. 그들은 미국을 살아내고 있다. - P14

내가 만난 많은 사람들이 승부가 조작된 게임에서 지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써버렸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시스템을 뚫을방법을 찾아냈다. 그들은 전통적인 형태의 벽과 기둥으로 된 집을 포기함으로써 집세와 주택 융자금의 족쇄를 부숴버렸다. 밴과 RV, 트레일러로 이주해 들어가 좋은 날씨를 따라 이곳에서 저곳으로 여행했고, 계절성 노동을 해서 얻은 돈으로 연료 탱크를 채웠다. - P25

엠파이어가 죽어가던 바로 그 시기에, 남쪽으로 11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는 새롭고 아주 다른 종류의 기업 의존형 마을이 번성하고있었다. 많은 점에서 그곳은 엠파이어의 반대말처럼 느껴졌다. 중산층의 안정을 제공하기보다는, 이 마을은 ‘프레카리아트‘, 즉 낮은 임금을 받고 단기 노동을 하는 임시 노동자에 속하는 사람들로 채워졌다. - P81

("업셀링에 능숙해야 합니다." 구인 내역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 P87

구체적인 숫자는 없지만, 미국의 유랑 노동자 계층이 주택시장 붕괴 이후 급증했고 계속 증가해왔다고 일화들은 말하고 있다. - P91

아마존 창고에는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진통제를 제공하는, 벽에 고정된 자동판매기들이 있었다. - P98

그는 새로운 자기 삶의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현실을 영화 <매트릭스> 안에서 각성하는 것에, 우리가 살고 있던 즐겁고 예측 가능한 세계가 신기루였고, 잔인한 디스토피아를 감추기 위해 세워진 거짓이었음을 깨닫는 것에 비유했다. "사람들 대부분이 위안으로 삼는 ‘안정감‘이라는 것, 그게 환상이 아니라고 확신하지 못하겠어요." 그가 덧붙였다. "사실이라고 믿어온 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게 되면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되죠.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는것은 아주 깊이 박혀있어요. 버리려면 철저히 때려 부숴야 해요." - P100

워캠퍼들은 별다른 교육 없이 바로 사용할 수 있는 노동자들이며, 계절성 인력을 찾는 고용주들에게는 편리함의 완벽한 본보기다. 그들은 고용주가 필요한 때와 장소에 나타난다. 자기 집을 스스로 가져와서는, 트레일러 주차장을 일이 끝나면 비워지는 단기간의 기업 의존형마을로 바꿔놓는다. 워캠퍼들은 노동조합을 조직할 만큼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육체적으로 힘든 업무에서는 많은 노동자들이 교대 근무가 끝나면 너무 피로해 사람들과 어울리지조차 못한다.
그들은 또 수당이나 보장 제도의 형태로 요구하는 것이 적다. 반대로, 내가 워캠퍼들을 취재하기 시작한 첫해에 인터뷰한 50명 이상의노동자 대부분은 자신들의 단기 일자리가 제공하는 안정성 비스름한 무엇에든 오히려 감사한 마음을 드러냈다. - P102

나는 아마존 같은 회사가 왜 육체적으로 젊은 사람들에게 더 적합해 보이는 일에 나이 많은 지원자들을 더 환영하는지 궁금했다. "우리가 아주 신뢰할 만한 사람들이니까 그렇죠." 조앤이 의견을 제시했다. "우린 뭔가를 하기로 하면 그 일을 해내려고 최선을 다하잖아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쉬지도 않고요." (머리 부상에서 회복하는동안 조앤은 예정된 근무일 중 단 하루만 결근했다. 그날 임금은 지불되지 않았다.) - P103

"저는 이 문제를 절대 ‘은퇴‘의 측면에서는 얘기하지 않아요." 그가 말했다. 미국인들은 전통적으로 "자신이 남에게 빌붙어 살아가는 사람이라거나 생산적이지 못한 존재라는 생각"을 혐오한다. - P116

어린 시절부터 그가 디딘 땅이 흔들릴 때마다, 그는 무엇도 영원히 지속되지 않음을 힘겹게 하나하나 배워왔다. - P122

오래지 않아, 밥은 자신이 예전에 어떻게 살았는지 생각해보고는, 잃어버린 것이 그리 많지 않음을 깨달았다. 반대로 자기 삶에서 이제는 없어진 것들 - 구체적으로는 집세와 전기, 가스, 수도 요금을 떠올리자 아찔할 정도로 행복했다. - P124

"밴으로 들어갔을 때, 사회가 내게 말한 모든 것이 거짓임을 깨달았습니다. 결혼을 해야 하고, 흰색 말뚝 울타리를 두른 집에서살아야 하고, 직장에 나가야 하고, 그다음엔 삶이 끝나는 바로 그 순간에 행복해야 한다는, 하지만 그때까지는 비참하게 살아야 한다는이야기가요." 그가 한 인터뷰에서 내게 말했다. "밴에서 사는 동안 전태어나서 처음으로 행복했습니다." - P125

그들은 사회적 계약에서 자기 몫의 의무를 다했으나 시스템은 그들의 기대를 저버렸다. - P127

하지만 밥의 어조가 항상 그렇게 명랑하지만은 않았다. 어느 방문자와의 좀 더 진지한 대화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당신 말이 맞다고생각해요. 아주, 아주 더 많은 사람들이 훨씬 단순한 삶으로 내몰릴거예요. 제 목표는 그들이 가능한 한 쉽게 변화를 겪어내고, 바라건대결국에는 그 안에서 기쁨을 찾아내도록 돕는 거예요. 우리 중 아주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요." - P149

린다는 뭐가 됐든 지금 당장 눈앞에 놓인 어려움에 집중하는데 전문가가 되었고, 해결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들 때까지 거대한 문제를 한 입 크기의 덩어리들로 쪼개 분석했던 것이다. - P171

"사람들은 오래 일하는 직원을 원치 않아요. 왜냐하면 그사람들한테는 퇴직금도 줘야 하고, 생활비 상승분도 계속 반영해줘야 하니까요. 그리고 한 회사에서 오래 일한 사람들은 성과급도 달라고 할 테니까요." 애시가 말했다. "새로운 경영자들은 말 그대로 쓰고버릴 수 있는 인력을 원해요. 쓰고 버릴 수 있는 인력을 만들어내려면, 쓰고 버릴 수 있는 일자리가 있어야 하죠. 그렇게 해서 모든 것이 자동화된 거예요." - P179

무엇으로부터 숨어 있는데요? 내가 물었다. 수치스러움으로부터, 가난으로부터, 추운 날씨로부터. 그의 대답이었다. - P217

나는 내 사람들을 찾아냈다. 나를 사랑과 환대로 감싸준 부적응자들, 어중이떠중이 한 무리가 그들이다. ‘부적응자‘란 패배자나 낙오자라는 뜻이 아니다. 그들은 영리하고 인정 많고 열심히 일하는, 새로운세계에 눈을 뜬 미국인들이었다. 평생 동안 아메리칸드림을 좇은 끝에그들은 그것이 단지 커다란 하나의 사기극에 불과했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었다. - P248

린다는 언젠가, 알코올의존증 환자에게 술을 안 마셨다고 축하하는것은 치질 걸린 카우보이에게 말을 타지 않았다고 칭찬하는 것과 같다고 재치 있게 농담하기도 했다. - P267

다른 이야기들은 그만큼 쾌활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열린 길 위에서의 스릴과 동료애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자기삶을 급진적으로 다시 상상하도록 몰아간 문제들은 회피했다. 어떤면에서, 나는 그 기자들을 비난할 수 없었다. 나 역시 초기 인터뷰에서그렇게 봤었기 때문이다. 기사 하나를 때우려고 낙하산을 타고 내려와 오후 반나절 정도 있다 가는 기자는 어떤 종류가 됐든 진실을 들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다가가는 일이 거의 없다. 처음으로 워캠퍼들에게 접근했을 때, 내가 마주친 건 유쾌하고 진부한 이야기들이었다.
나는 경고를 받기도 했다. 캠퍼스에서 일하던 한 RV 생활자는 나를만나는 데에는 동의했지만, 자기 동지들과 자신을 위기에 처한 미국인들로 그려내지는 말아달라고 덧붙였다. "거의 매사에 불평을 늘어놓는 나태한 징징이들, 태만한 사람들, 게으름뱅이들이 많습니다. 그런사람들은 찾기도 쉽죠." 그는 당당하게 적었다.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 P270

나는 그와 비슷한 ‘징징거리지 마‘ 정서를 노마드 대상 격월간 잡지<워캠퍼 뉴스>에서도 본 적이 있었다. "마음가짐을 바꾸고 싶으신가요?" 헤드라인이 묻고 있었다. 그 아래 딸린 칼럼은 일하면서 생긴 문제들 때문에 힘들어하는 워캠퍼들에게 자기 내면을 돌아봄으로써 해결책을 찾으라고 권유했다. "다음과 같은 생각들로 자신의 고통을 달램으로써 마음가짐을 바꾸고, 낙담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한번 봅시다." 글쓴이는 이렇게 제안했다. "우리는 여기 영원히 있는 게 아니다. 이 일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우리는 여행을 할 것이고, 이 지역을 탐험하며 (또는 가족들을 만나며) 시간을 보낼 것이고,우리가 꿈꾸던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 격려 연설은 초현실적이었지만, 그렇게 놀랍지는 않았다. 결국, 긍정적인 사고방식이란 전형적으로 미국적인 대응 기제이며, 사실상하나의 국가적인 오락이다. 작가인 제임스 로티는 대공황 시기 동안미국을 여행하며 길 위로 내몰린 채 일자리를 찾게 된 사람들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이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1936년 『더 나은 삶이 있는 곳에서, 자신의 인터뷰 대상자 중 그렇게 많은 사람이 그토록 확고부동하게 밝은 태도를 보여준 것에 몹시 충격을 받았다고 썼다. "나는 2만 4,000킬로미터를 여행하는 동안, 환상에 중독된 이 미국적인태도만큼 나를 경악시키고 혐오감을 일으키는 어떤 것도 마주치지 못했다" - P271

숲 한가운데 전기도, 수돗물도, 차도 없이 갇혀 있게 된다면 당신은아마도 그 상황을 ‘악몽‘이라거나 ‘비행기 사고나 그 비슷한 무언가가 일어난 뒤에 벌어진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묘사할 것이다. 하지만 백인들은 그걸 ‘캠핑’이라고 부른다. - P296

"우리가 우리 자신을 어떻게 정의내리는가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해요. 길을 나서 운전을 하면서 당신 자신을 홈리스라고, 혹은 다른 어떤 부정적인 꼬리표를 붙여 부르고 있다면, 그건 큰일이에요. 폴볼스는 『셸터링 스카이』라는 책을 썼는데,그 책에서 ‘관광객‘과 ‘여행자의 차이를 설명했죠." 사미르는 잠시 말을 멈췄다. "저는 여행자예요." 밥 웰스는 자신의 책에서 밴 생활자와홈리스 사이에 선명하게 선을 긋는다. 그는 밴 생활자들은 망가지고타락해가는 사회질서에서 빠져나온 양심 있는 이의 제기자들이라고주장했다. 자의로 선택했건 그러지 않았건, 그들은 자신들의 생활방식을 받아들인 사람들이었다. "반면에, 홈리스인 사람은 밴에 살 수는있지만, 사회의 규칙들이 싫어서 밴에 사는 건 아니에요. 아뇨, 그 사람에게는 하나의 목표가 있는데, 그건 그 폭압적인 규칙들 밑으로 다시 들어가는 거예요. 거기서는 쾌적하고 안전하다고 느껴지니까요."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 P330

평균 소득을 비교할 때, 상위1퍼센트에 속하는 사람들은 이제 하위 50퍼센트에 속하는 사람들의81배를 벌고 있다. 소득 사다리에서 하위 50퍼센트에 속하는, 약 1억1700만 명에 이르는 성인 미국인의 소득은 1970년대부터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다. - P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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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어른 - 지금, 한국의 서른을 말하다 북저널리즘 (Book Journalism) 64
이민경 지음 / 스리체어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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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인문학적 소양으로 시대정신을 선도하겠다는 저널에서 이런 새로울 것 없는 뻔한 소리를 하고 있다니….

부모의 헌신적인 지원 속에서 강한 자아의식을 형성하며 성장한 30대에게 조직 사회에서 마주해야 하는 ‘비루함‘은 견디기 어렵다. 어떤 일을 하든 최소한의 자존감은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에 대한 바람은 존중받는 ‘자아‘에보다 민감한 30대들의 특성이기도 하다.
현재 30대는 1990년대에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가 정착되기 시작하면서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문화의 세례를 받았다. 조직에 자신의 몸을 맞췄던 기성세대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비민주적이고 위계적인 조직 문화는 이들에게 낯설뿐더러 자존감에 상처를 입힌다. - P82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보다는 처세술이 사회적 기회를 획득하는 데 쓸모있는 현실에 상처와 배신감이 적지 않다. 구조적인 불공정에 앞서 평가 기준이나 과정의 공정함조차 보장되지 않는 일상적인 경험이 청년들에게 더 확실하고 구체적인 상흔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 P86

근대 산업 역군으로서 ‘일 중독자‘로 살았던 기성세대와는 삶의 지향이나 태도가 같다고 할 수 없다. 이런 새로운 세대들의 특성 가운데 하나가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 일과 삶의 균형)‘이다. 이들은 경제적보상에만 얽매이지 않는다. 개인적인 삶의 행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의미 있는 일을 추구하는 경향이 크다. - P25

인간은 경제적 동물이다. 동시에 의미 있는 삶에 대한욕망도 있다. 워라밸에 대한 욕망은 경제적 성과가 최우선이었던 산업 역군 세대와 다른 삶을 꿈꾸는 세대의 출현이라는의미도 있었다. 그러나 고실업과 고용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30대에게 워라밸은 그저 로망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나는 정말 괜찮은데
특정한 삶의 방식을 정상적인 것으로 규정하는 사회적 통념에 대해 30대들은 대부분 비판적이었다. 암묵적으로 사회가강요하는 나이와 성별, 직업에 기반한 편견 등 집단적, 문화적압력도 몹시 불편해했다. 타인의 시선보다는 자신만의 삶의방식과 태도가 중요하고 나름 자신만의 고유한 삶의 가치를추구하며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강조했다.
그런데 이런 공식 선언과는 별개로 주위의 시선이나 기대에 자주 심리적으로 휘둘린다고 고백하는 이들이 많았다. 스스로 정의하고 욕망하는 공식적인 자아와는 별개로 일상에서 접하게 되는 외부 시선 때문에 불안하다는 것이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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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이라는 삶의 기술 - 어떻게 인생의 중심을 지킬 것인가
이진우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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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균형적인 삶을 위해서는 양극단의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의견이 신선하다. 마음의 균형뿐만 아니라 삶의 전반적인 분야의 균형을 이야기 한다. 어렵지 않고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내용이 많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잘 살기 위해서는, 우리 삶에 좋은 것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느끼는 감정과 정념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욱해서 격한 마음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극도로 화를 잘 내는 사람‘이다. 만약 화를 내는 것도 일종의 능력이라면, 이와 관련된 모자람은 ‘화를 낼 줄 모르는 것‘이다. 화와 분노는 자신에게 또는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가해진 불의와 고통에 맞서는 반동적인 감정인데, 고통과 불의를 당하고도 화를 내지 못하는 것은 자신을 방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대체로 화를 내지 못하는 사람을 업신여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마땅히 화를 내야 할 일에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으로 여겨진다.

우리는 삶에 대한 성찰을 자발적으로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계기는 대부분 사회적으로 강요되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처럼 철저하게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사회에서는 연민이나 공감 같은 감정 능력이 더욱더 중요하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이러한 감정들에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성격이 결정되고, 그것이 삶의형식을 만들어낸다.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 제일 먼저 가다듬어야 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감정과 정념들이다.

우리 모두는 죽을 운명이다.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이미 죽음의 방향으로 호기롭게 발을 뗐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길은 되돌아갈 수 없으며, 멈춰 설 수도 없다. 우리는 그 길을 끝까지 마저 가야 한다.

국어사전은 ‘여가餘暇’를 ‘일이 없어 남는 시간‘이라고 정의하는데, 여가를 뜻하는 그리스어 스콜레schole는 성찰하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말한다. 여가가 있어야만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처럼 수동성에 높은 의미를 부여했다.

일반적으로 수동성은 외적인 것과 낯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수동’을 나타내는 말인그리스어 파토스pathos는 외부의 자극으로 우리 마음에서 감정이 일어나는 것을 뜻한다. 감정이 열리지 않으면 열정도 생기지 않는다. 우리가 세계를 판단하려면 일단은 세계에 대해 마음을 열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균형 이론은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는가?‘라는 실존적이고 실천적인 질문에 여전히 타당한 답을 전해준다. 그의 균형 이론은 간단하다. 과도와결함, 지나침과 모자람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어떤 일을 하건 어떻게 느끼건, 잘 살기 위해서는 너무 지나치거나 너무 모자라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현대 심리학은 이를 ‘회복 탄력성resilience’ 또는 ‘적응유연성‘이라고 한다. 감정의 균형은 스트레스 상황을 겪고 나서도 고통을 잘 이겨내고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는 삶의 능력이다.

상실은 우리에게 고통을 안겨주지만, 그것은 상실하기 전까지는 커다란 즐거움을 주었다는사실의 반증이지 않은가? 사실 상실할 것이 있는 사람은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는 사람보다 행복한 사람이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상실 자체에 매몰되는 대신에 상실할 때까지 누렸던 시간과 가치를 생각하면 상실의 고통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한계를 모르는 무한한 욕망을 ‘극단‘이라고 한다. 극단은 멈추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자동으로 진행되는무한한 운동이다. 끝까지 가보려는 극단주의자들에게는 사실 끝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익의 효율적 최대화라는 자본주의적 공리에 따라 한계가 없는 자본주의의 극단적 경향 속에서, 무엇 때문에 일하는지 모르면서도 그냥 열심히 일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사람들은 잘 만들어진 작품에 대해 종종 더 이상 빼거나 보탤 수도 없다고 말한다. 이것은 지나침과 모자람이 그 작품의 잘됨을 손상시키고, 중간이 잘된 작품을 보존한다는 의미다. 훌륭한 예술가들은 중간을 눈여겨보면서 작품을 만든다.

독일 문화권에서는 흔히 노동과 직업을 구분한다. 직업이 소명 의식을 느낄 정도로 자신의 모든 정신과 에너지를 투입할 수 있는 천직을 의미한다면, 노동은 단순히 생존을 위한 활동이다.
요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잡job과 워크work는 구분된다. 하나는 ‘생계를 위한 일’이고, 다른 하나는 ‘삶을 위한 일’이다. ‘잡이 고용 관계에서 계약 사항을 충족하기 위해 필요한 역할과 책임이라고 한다면, ‘워크‘는 삶의 과정에서 스스로 소중하게 생각하고 실현하고자 하는 목적과 사명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돈 받는 만큼 일하는 것이 잡이라면, 일하는 게 좋아서 하는 일은 워크다. 고용주들은 대부분 고용인들이 워크를 해주기를 바라고, 고용인은 자신의 일을 단순히 돈 벌기 위한 잡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악행과 불의를 보면 분노하면서 "얼마나 충격적인 일인가. 어떤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라고 말한다. 이런감정이 미래의 바람직한 상태를 지향하는 생산적인 경향을 띠기도 하지만, 대부분 훼손된 상태를 복원하려는 경향이훨씬 강하다. 다시 말해 분노라는 감정은 대체로 보복과 앙갚음을 지향한다. 남이 나에게 해를 준 대로 나도 그에게해를 주려는 앙갚음이나 남에게 당한 부끄러움을 씻으려는 설욕은 훼손된 상태를 복원하는 데 어느 정도 효과적이다. 이런 점에서 보복을 지향하는 분노가 부정적이기는 하지만 불의에 대처한다는 도덕적 가치를 갖기도 한다.

독재 정권의 탄압이나 사회 부조리에는 저항하지 못하고 사소한 일에만 분개하는 소시민성을 비판한 김수영 시인의 시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는 감정의 중용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말해준다.

사소한 일에 자주 화를 내는 것과 사회적 불의에 화를 내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우리는 음식점에서 벌어지는 작은 실수와 잘못에 화를 내며 집요하게 따지는 사람들을 용기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문제에서는 비겁하게 온건해질 가능성이 크다. 와인 잔에 들어 있는 코르크 부스러기와 갈비탕 안의 비곗덩어리에 화를 내는 사람이 일반적인 사회문제에는 무감각한 사람일 수도 있다. 거꾸로 타인의 불의에는 둔감한 사람이 쉽게 화를 내는 사람일 수도 있다. 자신이 지향하는 목적에 따라 감정과 정념에 대한 태도도 달라지는 것이다.

유머는 모욕하는 사람의 의도를 좌절시킨다. 모욕을 주고 싶은데 상대방이 모욕감을 느끼기는커녕 모욕하는 사람을 우습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자기 자신을 작게 만드는 ‘셀프 아이러니self irony‘가 효과적이다. 상대방의 모욕적인 말을 인정하며 자신에게 적용함으로써 오히려 그 말의 위력을 떨어뜨리는것이다.

로마 제정시대 정치가이자 후기 스토아 철학의 상징인 세네카는 분노를 짧은 시간의 정신 이상"이라고 정의하면서, "인간에게 이보다 더 많은 희생을 치르게한 질병은 없다"고 단언한다.

왜 우리는 화내지 않아도 될 일에 쓸데없이 화를 내는가? 여기에 답하려면 분노가 폭력적인 성향을 띠기 시작하는순간에 주목해야 한다. 분노가 폭발하기 위해서는 감정이 장기간 누적되어야 한다. 그런데 분노를 그때그때 풀지 못하고 쌓이게 만드는 것은 ‘자존감의 손상‘이다. 다시 말해 자존감이 손상되었을 때 이를 즉각 폭력적인 방식으로 회복하고자 하는 것이 분노다. 열등감과 자괴감이 많은 사람이 자존감이 손상되었을 때 화를 해소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참으면 분노가 폭발한다. 화는 다스리는 것이지 참는 것이 아니다. 폭력적인 분노의 다른 요소는 원한을 품고 앙갚음하려고 벼르는 ‘앙심‘이다. 화를 곧바로 풀지 못하면 해소되지 못한 지속적인 분노가 특정한 계기에 엉뚱한 사람에게 폭발한다.

재바르지 못한 노예, 미지근한 음료수, 엉망진창인 침상, 형편없이 차려진 식탁. 이런 사소한 것들에 자극을 받는 것은 미친 짓이다.

사소한 일에 화를 내지 않으려면, 우리의 자존감에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일상생활에서 마주하는 하찮은 일들에 너무 많은 가치를 두지 않으면, "그까짓 일로 화낼 필요는 없잖아!"라고 웃어넘길수 있다.

삶의 목적과 의미를 성찰하는 철학 역시 이론적이기보다는 실천적이어야 한다.

누군가의 만찬에 초대받지 못했는가? 그것은 만찬 초대자에게 그 만찬에 대한 대가를 치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그 만찬의 대가가 아첨이라면, 초대받은 자는 아첨이라는 대가를 치르고 그것을 산 것이다. 그러니 내게 이익이된다면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런데 대가를 치르지도 않고 이러한 것을 얻길 바란다면, 그것은 멍청하며 욕심꾸러기 같은 심보다.

우리는 종종 ‘극좌’나 ‘극우’같이 극단적인 사람들이 없으면 훨씬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사회가 될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극단에 서 있는 사람들, 혹은 정치·사회적, 문화적 아웃사이더들은 증간에 서 있는 사람들이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이러한 극단의 시대에 삶의 양식인 라이프스타일은 점점 획일화된다. 자본주의는 개인의 개별적인 욕구를 충족해주겠다고 약속하지만 실제로는 모두의 욕구를 획일화할 뿐이다. 개성을 뽐내기 위해 새로 산 옷을 입고 매장을 나서는 순간, 똑같은 옷을 입은 다른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이 현실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고믿지만, 자본주의 체제에서 개인의 자율성은 점차 줄어든다. 결국 삶의 획일화는 개인의 삶을 파괴할 것이다. 개성을강조하는 자본주의가 개성을 파괴하는 시대의 역설로 인식되는 순간, 우리의 삶은 문제로 다가온다.

물론 이런 유용성 자체가 분노를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가해자에게 앙갚음함으로써 희생자의 손상된 도덕적 가치를 복원하려는 분노와 보복은 종종 양자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지속되면 사회관계를 더욱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한편 증산층의 붕괴는 사회적 가치를 계승할 도덕적 증심의 해체를 의미한다. 중산층은 경제적으로만 사회의 허리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오랜 기간 합당하다고 여긴 삶의 양식을 대변하는 문화적 허리이기도 하다. 증산층은 더 많은 부를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빈곤한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공감하고 연대하는 계층으로서, 사회의 상부와 하부를 연결하여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는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간다. 전후戰後의 사회적 가치를 물질 중심에서 탈물질적 가치로 전환한 ‘68운동‘이 중산층 출신의 학생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매우 시사적이다.
이런 중산층이 없다는 것은 모두가 하나의 가치를 위해 살아간다는 의미다. 하류층은 빈곤에서 탈피하고생존하기 위해 경제적 가치를 추구하고, 가진 사람들은 더 많이 갖기 위해 경제적 부를 추구한다. 돈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처럼 배금주의가 철저하게 내면화된 자본주의사회에서 ‘함께 잘 살기‘는 공허한 구호에 불과하다.


윤리적 무력감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가?‘는 본래 윤리적인 질문이었다. 이 질문에는 경제적 부가 결코 한 삶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이제 이 질문은 경제적으로만 이해되어, ‘잘 산다‘는 것은 ‘부유하게 산다’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결국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가‘라는 질문은 ‘어떻게 부를 이룰 수 있는가‘와 동의어로 여겨지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이런 과도한 자극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고, 과장된 자극은 우리의 욕망을 더욱 부채질한다. 네덜란드 생물학자 니코 틴버겐은 동물들이 짝짓기할 때 자연스러운 자극보다는 과장된 인위적 자극에 더 활발하게 반응하는 ‘초정상 자극supernormal stimulus‘ 현상을 발견했다. 예컨대 새들이 알을 품을 때 자기 알보다 훨씬 큰 인공 알을 둥지에 갖다놓으면 그 가짜 알을 품는다. 이처럼 자극을 받는 당사자가 본연의 본성을 잃고 더 강한 자극에 반응해 잘못된 행동을 저지르는 것을 초정상 자극이라고 하는데, 이 현상은 인간에게도 나타난다. 포르노는 상상을 초월하는환상적인 자극을 통해 성적 욕망을 극대화함으로써 본질적인 사랑을 잊게 만든다. 섹스를 위해 섹스를 하고, 먹기위해 쉼 없이 먹는 중독의 시대. 무엇이 정상적인 성욕이고, 무엇이 정상적인 식욕인가?

이기주의자는 이타주의자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려면 윤리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윤리적인 것이합리적인가?‘, ‘윤리적인 것이 나에게도 좋고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은가?‘ 하는 것이 문제다. 다른사람들을 돕는 이타적 기부 행위가 반드시 사회를 더 좋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공감과동정심만으로 행하는 대신 실질적으로 무엇이 사회에 좋은 결과를 가져올지 생각하는 냉철하고 합리적인태도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를 ‘효율적 이타주의 effective altruism‘ 라고 한다. 효율적 이타주의를 주장하는 철학자이자 실천윤리학의 거장 피터 싱어는 "자선 단체에 기부할 때 정서적 호소에 반응해서 기부하기보다는비용 효과적으로 생명을 살리고 고통을 줄인다고 검증된 단체에 기부해야 한다""고 말한다. 본인이 기부하고 있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끼는 대신 기부의 긍정적인 효과를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셀카’의 영어 표현인 셀피selfie는 결코 나르시시즘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왜곡된 자아self의 문제다.

셀피에서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자아다. 자신을 객관화해서 스스로 성찰하는 자기의식 대신 타인의 시선만을 중시하는 셀피는 자아를 왜곡한다.

중용은 극단의 감정에 대한 알맞은 태도다.

칭찬을 하려면 타인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고, 타인의 행위를 인지해야 하며, 좋은 것에 관한 공동의 인식이 있어야 한다.

능동적으로 생산하고 소비하라
능동은 정말 좋기만 하고, 수동은 나쁜 것인가? 현대인들은 삶의 곳곳에서 마주치는 능동성과 적극성에 대한 요구를 강하게부정하지는 않더라도 조금씩 불편하게 느끼기 시작한다. 현대사회가 능력의 한계를 무한대로 끌어올리기 위해 능동성을 강조하면 할수록, 모든 것을 스스로 해내겠다는 능동적인 동기는 더욱더 심한 좌절감으로 뒤바뀐다. 현대사회는 아무리 능동적이어도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에게 끊임없이 각인시킨다. 본래 능동적이지 않은 사람에게 능동을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다. 능동적이지만 여전히 충분치 않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경험하는 사람에게 능동을 요구하는 것은 고문이다.
능동 사회는 근본적으로 과잉 사회다. 모자람보다는 지나침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현대사회는 온갖 종류의 과잉을 초래한다.
그런데 현대의 능동 사회의 "과잉 생산, 과잉 성과 또는 과잉 소통""은 동시에 소진과 우울증을 유발한다. 끝없는 모험과 실험.
그리고 시도에 대한 사회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일탈자나 범법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벌을 내리는 것은 사회가 아니다.
우리 스스로 별을 준다. 우리는 사회의 지배 계급에 착취당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적극적으로 실행해야 한다는 강박으로자신을 착취한다. 그렇기 때문에 능동의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번아웃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모멸감을 주는 사람은 주로 낯선 타인이기보다는 가까운 친구나 친지 또는 동료다. 낯선 사람은 공격적이기는 해도 모욕을 주는 경우는 드물다. 이와는 달리 가까운 사람들은 종종 드러내놓고 모욕을 준다. 일상적인 모욕은 ‘너는 왜 그렇게 멍청하니?‘ 라는 핀잔처럼 직접적이지는 않다. 감지하기 힘들 정도로 훨씬 미묘하고 간접적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다 여러 이유로 집에 있는 전업주부에게 "넌 집에서 대체 뭘 하니?"라는 단순한 질문을던져도 모욕이 될 수 있다. 여기다가 "넌 일하지 않아서 참 좋겠다"라는 말로 염장을 지를 수도 있다. 이런 간접적인모욕은 비일비재하다.
모욕을 당하면 당연히 화가 난다. 화와 분노는 우리의 평정심을 깨뜨리는 부정적인 감정이다. 물론 모욕을 준 사람에게 보복할 수도 있지만, 보복과 응징으로 상처가 치유되지는 않는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오히려 모욕을 당할 때도화를 내지 않는 법을 발전시켰다. 우리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기는 모욕의 예리한 칼날을 무디게 하는 것이다.
모욕을 당하면, 먼저 모욕하는 사람의 말이 사실인가를 잠시 생각해본다. 어떤 사람이 ‘대머리‘ 또는 ‘뚱뚱이‘라고놀릴 때 실제로 대머리거나 뚱뚱하다면 그 사람의 말에 굳이 모욕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세네카는 "자명한사실을 말하는 것이 왜 모욕이란 말인가?"라고 되묻는다. 만약 이런 말에 쉽게 상처를 받는다면, 그 사람의 말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 때문이다. 상대방의 말에 화를 내는 대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면, 오히려 모욕적인 말을 한 사람이 쑥스러워할 수도 있다.


물론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에 쉽게 상처를 입고, 어떤 사람은 똑같은 말이라도 상처를 덜 입는다. 여기서 우리는 ‘모욕감을 느끼는 것feeling insulted‘과 ‘모욕을 당하는 것 being insulted‘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모욕감은 주관적인감정 문제이기 때문에 모욕 여부를 당하는 사람이 결정한다면, 후자에서는 사회적 관습과 규범이 모욕의 기준이 된다.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은 지나치게 예민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말로 마음이 상하지 않으려면 상대방의 의도를 잘 헤아려야 한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운명에 연연하지 않음으로써 실현할 수 있는 자유를 진지하게 성찰한다. 스토아 철학이 추구하는 내면의 평정심을 유지하려면, 우리에게 닥치는 일들에 대해 ‘운명론적인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다. 세네카는 우리 자신을 운명에 내맡기라고 말하고, 에픽테토스는 삶의 연극에서 우리의 역할을 선택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우리에게 거지 역할이 맡겨졌으면, 우리는 그 역할을 잘 수행해야 한다. 우리는 운명의 여신이 쓴 연극의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일어날 일은 어차펴 일어난다면, 일을 우리의 욕망에 맞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욕망을 일에 맞춰야 한다. 간단히 말해 "일들이 일어나는 대로 일어나기를‘ 바라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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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2 : 정 대리.권 사원 편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2
송희구 지음 / 서삼독 / 202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김부장편도 사실적 르포라기 보다는 허구가 가미된 소설이었는데, 이게 점점 판타지가 되어가는 것 같다.

정대리는 김부장과 권사원 남친의 교집합인가

지은이가 송씨인데 송과장이 유독 현자로 등장해 이상적이고 현명하게 사람들을 지도한다. 본인을 송과장으로 등판시켜 영웅으로 그리려는 수작이 아닌가 의심이 간다.

종업원은 낮은 사람, 본인은 높은 사람 다 같은 사람인데 직업으로 높낮이를 판단하는 듯한 태도가 팀원들은불편하다. - P33

"음..……… 결혼………… 결혼은 해도 합법이고 안 해도 합법이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 P160

"남자친구가 게임에 의존하고 부모님과 분리도 아직 못하고 있고, 그런 거지? 소비 습관도 이해를 못하겠고." - P163

"정 대리, 어릴때 부모님이 남들하고 비교하면 어땠어?"
"진짜 싫었죠. 그건 왜요?"
"남들과 비교당하는거 싫어했으면서 왜 지금은 본인을 다른 사람과 비교해?" - P266

"변동성이 큰 주식이랑 다르게 거래비용이 많이 들고, 오르락내리락 하는 사이클이 긴 부동산은 싸다고 바로 사는 게 거의 불가능해. 떨어지면 산다는 말은 그냥 지금 당장 생각하지 않겠다는 말이나 다를 바 없어. 어떤 면에서는 게임을 하는 것도 현실도피야. 힘들 때 잠깐 잊으려고술 마시는 사람들 있잖아. 레고도 만드는 동안에는 거기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 좋지. 내가 보기에는 전 남자친구가뭔가 불안하거나 피하고 싶은 욕구가 강했던 거 같아. 권사원 말만 들으면 그래."
"맞아요. 약간의 갈등이나 마찰, 이런 걸 못 견뎌했어요. 그냥 무조건 피하자는 주의예요. 사소한 고민거리도 부모님과 상의하고요."
"그랬구나...…." - P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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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1 : 김 부장 편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1
송희구 지음 / 서삼독 / 2021년 9월
평점 :
판매중지


처음 화제의 신간이 되었을 땐 그냥 진부하고 세속적인 서사이겠거니 싶어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우연히 기회가 생겨 읽어보니 막판에 눈물까지 훔치고 있었다.

중년의 성장기라고 할까….

통속적인 만큼 신파적이니 주의가 필요하다.

김 부장은 여러 가지로 우울하다. 김 부장을 우울하게 만든 사람은 없지만 스스로 우울감에 빠진다. 남과 비교하면서 우월감과 동시에 기쁨을 느끼며 살았던 김 부장이 이제는 남과의 비교로 우울하다. 술이 당긴다.

모르는 건 창피한 게 아니야. 모르는데 아는 척하는 게 창피한 거지.

"시험을 못 봤을 때 어떠셨어요? 학교 생활 다 망친 것 같고 세상이 끝난 것 같지만, 나중에 되돌아보면 그때 왜 그렇게고민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죠. 똑같아요. 회사에서 은퇴했다고 해서 삶을 은퇴한 게 아니에요. 사기 한 번 당했다고 해서 인생이 막을 내리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결혼생활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 아니 공부가 되었달까? 결혼이라는 게 처음에는 반반 맞춰서 하나가 되는 거라고 생각했거든. 당신한테 기대하는 게 많았고 그걸 채우지 못하니 나날이 우울하고 불행하다고 느꼈는데 그게 아니더라.
상대한테 기대하는 게 오히려 이기적인 거야. 기대를 안 한다고 해서 덜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서로한테 많은 것을 바라는 결혼은 결국 실망과 부담으로 이어지는 거야."

김 부장이 그랬다. 자기 기준에 자신보다 못한 직업을 가졌거나 별볼일없어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저도 모르게 우월감이들었고, 저절로 태도가 권위적으로 되었다. 막말을 하기도 했다. 회사 안에서와는 다른 태도였다. 최소한의 예의도 차리지 않았다.

"어. 나 같은 늙다리를 누가 받아주겠냐?"
"내가 봤을 땐 네 나이가 많아서가 아니야. 그 분야에 전문성과 노하우가 있으면 나이와 상관없이 여기저기서 모셔가. 네가 만약에 회계사, 노무사, 전기기사 같은 자격증만 있어도 어디라도 들어갔지. 또 연구소나 공장 사람들은 제품에 대한 지식이라도 있잖아. 근데 너 같은 양복쟁이들은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 너무나 많아 진짜 영업의 달인이나 마케팅의 신으로 그 바닥에서 소문나지 않는 한, 쉽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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