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기 좋은 방 - 오직 나를 위해, 그림 속에서 잠시 쉼
우지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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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도판에 대한 역사적인 의미나 작가의 개인적인 배경과 시대상을 그림과 연결시켜 설명하는 해설서는 아니다.(물론 그런 부분이 전혀 없다는 건 아니다.) 그런 책은 아무나 쓸 수 있는 책도 아닐뿐더러, 일반적인 독자들에게는 구구절절 암기하여 상식을 뽐내기위한, 그 이상의 의미도 가질 수 없는 요약서에 불과하다.

이 책은 우리가 그림을 감상하는 유익한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 책이 독자의 감상으로 작품의 의미를 찾고 해석이 더해져 풍부한 작품의 완성을 이루듯이, 그림도 마찬가지로 보는 이의 감상으로 작품이 완성된다.

저자의 그림에 관한 개인적인 감상이 에세이로 출판되어 나에게 텍스트로 와 닿고, 그림도 나만의 감상을 가질 수 있어 좋았다. 사실 그림책이지만 그림에 집중하기 보다는 저자의 감상에 집중하며 읽었고, 그 뒤에 책을 다시 한 번 훑어보며 그림을 감상했다. 나에게도 방이라는 것이 살면서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막연하지만 앞으로 어떤 사연을 가지고 살아갈지 기대가 된다.

어느 때는 내가 나의 삶을 선택하고 이끌고 지휘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나를 제어하고 움직이고 소유하는 듯하다. 나는 이제야 사람이 삶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사람을선택한다는 말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 P53

그림을 삶에 끌고 들어와 내삶을 더욱 아름답고 풍성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그림의 본질이자진정한 가치일 것이다. 그럴 때 우리의 삶 전체는 하나의 미술관이될 수 있다. - P72

휴식도 습관이고 능력이다. 쉬지 못하는 사람은 계속 쉬지 못한다. 그들은 갑작스러운 휴식에 당황하고 불안해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려보낸다. 쉬면서도 긴장을 풀지 못하고 연거푸 초조해하며 조금의 여유도 못 견딘다. 쉬어본 적도 없고, 쉬는 방법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자랑도 성실도 그무엇도 아니다.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상태일 뿐이다. 누구든 가능하나 누구나 할 수 없는 것이 휴식이다. 세상 모든 것이 그러하듯휴식에도 연습과 학습이 필요하다. 멈춰야 할 때를 아는 지혜, 과감히 내려놓는 용기, 무리하지 않는 자세, 여유를 즐기는 기술 등이 요구된다. 쉬운 것 같지만 절대로 쉽지 않은 휴식, 잘 쉰다는 것은 잘산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를 쉬지 못하게 하는 것은 얼마나 많은가. 과중한 업무, 갖은 모임, 무의미한 약속, 빼곡한 일정으로 하루하루가버겁고 숨차고 힘겹다. 쉴 시간도 없고, 쉴 곳도 없다. 쉴 수도 없고, 쉴 틈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해야 하는 것이 휴식이다. 휴식은 잔여 시간이 아니라 필수 시간이다. 시간 날 때 하는 것이아니라 시간을 내서 해야 하는 일이다. - P128

꿈은 이제 새롭게 규정되어야 한다. 꿈을 이룬다는 것은 직업의획득이 아니다. 꿈을 성패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건 꿈의 의미를 지나치게 축소하는 일이다. 꿈을 이룰 수 있을지 없을지는 우리가 결정할 수 없지만, 어떤 꿈을 꿀 것인가는 고를 수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이 마음에 든다면, 그건 이미 꿈을 이룬 것이나 다름없다. 원래꿈이란 그런 것이니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반드시 꿈을 이뤄야만 하는 것은 아님을 이루지 못한 꿈도 충분히 소중하다는 것을. 만약 가닿을 수 있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꿈꾸고 있는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응원을보내고 싶다. 꿈을 지키기 위해 버텨낸 용기는, 꿈을 이루기 위해노력한 시간은 충분히 박수 받을 만하다. 설혹 실패한다고 해도 지지할 것이다. 당신의 꿈을 꿈꾸는 당신을 - P224

종종 생각한다. 삶이란 상실을 축적해가는 일이라고 반복되는부재를 견디며 살아가는 여정이라고. 살면서 우리는 끝없는 상실을 경험한다. 만났다가 헤어지고, 기억했다가 망각하고, 채웠다가비워지고, 가졌다가 놓아주고, 왔다가 떠나가고, 얻었다가 잃어버리고, 탄생했다가 소멸한다.
산다는 건 끊임없이 이별하는 일이다. 무언가를 잃어가는 반복속에 표류하는 일이다. 세월은 자꾸 빈자리를 만들고, 빈자리는 영영 채워지지 않는다. 만물은 유실되어 사라지고, 이윽고 소멸해버린다. 사라짐이 곧 인생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사라짐의 운명이있다. - P276

어떤 일을 할 때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는습관이 있다. 쉽게 낙관하지 않고 도리어 이 일이 비극적인 결말을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하려고 노력한다. 조금 비관적으로보일 수도 있겠지만, 상황을 낙관적으로 예상하지 않는다고 해서비관주의자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긍정 유토피아라는 허황된 환상에서 벗어나 똑바로 현실을 직시하는 데서 진정한 긍정이 온다.
다소 모순적이게 들릴 수도 있으나 실제로 그렇다. 좋은 결과가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삶을 더 치열하게 만든다. 긍정이란신념이나 마법이라기보다 삶을 대하는 태도에 더 가깝다. - P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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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덩! - 완전한 휴식 속으로
우지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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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담긴 그림들이 도판으로 보기만 해도 휴식이 된다.
무엇보다 휴식을 가능하게 해준 것은 저자의 셀렉션과 편집디자이너의 능력임이 틀림없다.
손 안에 담을 수 있는 전시를 보고 난 기분이다.

휴식의 해답은 ‘현재‘에 있다. 몸과 마음과 정신을 현재에 두는 것이다. 이를테면 침대에 누워 지난날의 실수를 곱씹지 않는 것,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밀린 설거짓거리를 생각하지 않는 것,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내일의 고난을 상상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직 오늘에 충실한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몰입하고 즐기는 것이다. 몸은여기 있는데 마음이 과거나 미래에 가 있으면 오롯이 쉴 수 없다. 언제나휴식은 현재 시제에서만 가능하다. - P66

‘우울은 수용성‘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처럼 우울은 물에 녹는다. 기분이 찌무룩할 때 따뜻한 물로 샤워하면 거의 즉각적으로 기분이 달라진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욕실에 들어가기 전보다 월등히 기분이 나아진다. 집에서 샤워만 해도 그러할진대 수영장에 가면 효과는 배가 된다. 물속에서 팔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나쁜 감정들이 씻겨나가고, 이리저리 헤엄치다 보면 무거운 마음이 가벼워진다. 우울감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해도 옅은 농도로 희석된다. 물에는 그런 정화의 기능이 있다. - P80

세상의 꽤 많은 문제들은 그냥 흘려보내는 것으로 해결된다. 그러니 괜한것들에 일일이 반응하거나 동요하지 않는 것이 좋다. 안 좋은 영향을 주는 것들에 집중해 스스로를 괴롭힐 필요는 없다. 나에게 해로운 것들이 나의 세계를 뒤흔들게 내버려두지 말자. 파도가 바다를 정화하듯, 내 안에 나쁜 물이 고이지 않도록 하려면 자연스레 흘려보내야 한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가 그린 저 바다처럼.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너와 별로 상관도 없는 일에 지나치게 마음 쓰지 말도록 해라. 그리고그런 일에 자신을 피곤하게 만들지 마라." -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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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페미니스트 - 아이를 페미니스트로 키우는 열다섯 가지 방법 쏜살 문고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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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만다의 책이 나에겐 성전이 되어서 두 번 강조할 필요가 없다.

네가 네 직업을 사랑할 필요도 없어. 네 직업이 너에게 주는것만 사랑하면 돼. 일하기와 돈 벌기에서 오는 자신감과 충족감 말이야. - P17

사람들은 뭐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정당화하고 싶을 때선택적으로 ‘전통‘이라는 말을 사용하곤하지. - P17

네가 뭘 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들 돌아가면서한마디씩 하려고 하겠지만 중요한 건 너 스스로가 뭘 원하는가이지 남들이 네가 뭘 원하길 바라느냐가 아니야. 엄마 노릇과 직장 생활이 공존할 수 없다는 생각은 거부해. - P18

나는 이 분홍-파랑 이분법을 만든 마케팅 담당자의 영리함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어. 그곳에는 ‘성 중립‘ 코너도 있었는데 핏기 없는 다양한 회색으로 가득하더라. ‘성 중립‘은 바보 같아. 남자는 파랑, 여자는 분홍, ‘성 중립‘은 별도의 범주라는 생각을 전제로 하고 있잖아. 왜 아기 옷을 그냥나이로만 구분하고 모든 색깔로 만들지 않지? 어차피 아기때는 남자나 여자나 체형이 비슷한데 말이야. - P29

"명목상으로는 아버지가 우리 집의 결정권자이지만 막후에서 실질적인 결정권을 가진 건 어머니야."
그는 자기가 성차별을 반증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내 주장을 입증해 주고 있었어. 왜 ‘막후에서 ‘여야만 하지?
여자가 권력을 가지고 있을 때 왜 우리는 여자가 권력을 가졌다는 사실을 숨겨야 할까? - P39

언어는 우리의 편견, 믿음, 추측의 저장고야. 하지만 아이한테 그 점을 가르치려면 너부터 네가 쓰는 말에 의구심을 가져야 해. - P47

아이가 해야 할 일은 호감 가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충만한 사람,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동등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아는 정직한 사람이 되는 거야. ‘사람들‘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나 일을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치오마가 몇 번씩 말할 때마다 내가 얼마나 화가 났었는지 너한테 말했던 거 잊지마. 나는 늘 치오마에게서 ‘사람들‘이라고 불리는 불특정한실체를 만족시키기 위해 나를 어떤 틀에 맞게 바꾸라는 무언의 압력을 느꼈어. 내가 화가 났던 이유는, 사람은 누구나 진정한 자신이 되라는 격려를 가까운 이들에게서 바라는 법인데 그 기대가 배반당했기 때문이었어. - P61

아이를 페미니스트로 키우기위해서는 여성성을 거부하도록 강요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마. 페미니즘과 여성성은 상호 배타적이지 않아. 상호 배타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여성 혐오적인 생각이야. 유감스럽게도 여자들은 패션이나 화장처럼 전통적으로 여성적이라 여겨지는 것들을 추구할 때 수치심을 느끼고 미안해하라고 배워 왔어. 하지만 우리 사회는 남자들이 일반적으로 남성적이라 여겨지는 것들 - 스포츠카를 몰거나 특정 종목의 운동선수가 되는 것을 추구할 때 수치심을 느끼라고 강요하지 않아. - P72

숭고함은 존엄성을 위한 전제 조건이 아니야. 야박하고부정직한 사람도 인간이기에 존엄성을 가질 자격이 있어. 예를 들어 나이지리아 시골 여자들의 재산권 문제가 요즘 페미니즘계의 주요 화두인데 이 여자들이 재산권을 인정받기 위해 천사처럼 착해야 될 필요는 없다는 거야. - P99

아이에게 자신의 기준이나 경험을 절대 일반화하지 말라고 가르쳐. 그 애의 기준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지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게 아니라고 가르쳐 그 애에게 필요한 겸손은 ‘차이는 정상적인 것이라는 깨달음‘뿐이야.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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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마음 공부를 시작했다 - 전에 없던 관계와 감정의 혼란에 대하여
김병수 지음 / 더퀘스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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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정신과 의사로 일하면서 상담했던 사례들을 엮은 책이라 표본이 전부 정신과 싱담을 받을 수 있는 계층에 한정돼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그래도 본질을 모르고 고통받는 나에게 자기성찰의 메세지를 주는 부분이 많았다.

"우선 사람은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불행한 존재라는 것, 그리고 그보다 더 근본적인 사실은 성숙한 사람은 없다는 것, 두가지입니다."
긍정적인 마음을 잃지 말라는 충고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가혹한 현실을 밑바닥까지 겪은 뒤에야 비로소 삶을 긍정할 수 있는 법이니까요. 낙관적 태도는 삶에서 선험적으로 갖춰야 할 조건이 아니라 고통 뒤에 얻게 되는 사후적 가치입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시험에 대한 불안은 공부를 열심히 함으로써 떨쳐버릴 수 있다고, 불안이나 우울 같은 심리적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 불안해지는 원인만 없애려 하면 더 문제가 생깁니다. 시험 때문에 불안하다고 시험을 보지않거나 결석을 한다고 해서 행복해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지요. 시험 때문에 불안한 것은 시험을 잘 치르고 싶은 마음이크기 때문이지 시험 그 자체가 문제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당장 불안하고 힘들다고 해서 현실에서 도망가버리면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하면 당장은 편할지 몰라도 끝내는 불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정체성은 이야기입니다. 인간은 자기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자아를 통일된 단일체로 인식합니다. 자기 안에 있는 다양한 감정과 생각, 언뜻 보면 모순된 언행들을 하나의 이야기 아래 묶어 일관성을 유지하고자 합니다. 정체성은 기억에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나‘라는 사람은 기억의 결합체입니다. 기억은 끊임없이 편집됩니다. 인간에게는 자신에 대한기억을 재구성해서 일관된 이야기로 짜맞추는 무의식적인 메커니즘이 있습니다. 이야기는 과거로 돌아가 삶의 일관성을회복하려는 논리적 틀인 것이죠.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는 과거에 일어난 일을 역사로 만들 줄 아는 힘을 통해 인간은 비로소 인간이 된다.
고 말했죠. 언젠가는 사라지고 마는 나약한 존재에 불과하지만, 계속해서 흘러가는 이야기로 허무를 이겨낼 수 있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놓쳐버린 과거의 꿈을 다시 찾는 것이 아니라 미래는 과거와 다르게 살수 있다는 확신일 겁니다.

돈만 유산으로 물려주는 게 아니잖아요. 타인의 기억 속에 심어놓은 정신적 가치가 진짜 유산이지요.

마흔이 되었다면 모호함을 견디는 힘을 키워야 합니다. 방법은 딱 하나, 용기입니다. 불안하더라도 ‘지금 나에게 정말로 중요한 건 뭐지?‘라는 질문에 답하며 당장 소중한 것에 집중할 용기가 필요합니다. 불안이 내 삶을 망가뜨리게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신념이 필요합니다. 불안해도 용감할 수 있습니다. 불안과 용기는 늘 공존하는 법이니까요.

내가 겪는 고통이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주는지 고통을 통해 나에게 어떤 힘을 주는지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고통을 주는 모든 일은 나를 가르치기 위해 삶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삶의 진정한 깨달음은고통을 받아들이는 순간에 시작됩니다. 인간은 고통이 찾아왔을 때 존재의 의미를 찾게 됩니다. 고통이 품고 있는 최고의 가치는 숭고한 체험을 촉구하는 데 있습니다.

그의 마음으로 들어가보니 스트레스에 속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아내의 잔소리가 스트레스라고 했지만 사실은 콤플렉스가 원인이었습니다.

자기 안에 있는 콤플렉스를 의식화하는 것은 성숙을 위한 중요한 과제입니다. 콤플렉스는 상처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이정표입니다. 자신의 콤플렉스를 인지하면 그 안에 담긴 정신적 에너지를 건강하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콤플렉스는 성취에 필수적인 영감과 욕망의 원천입니다. 정신의 원동력이고 활력을 주는 발전소입니다. 콤플렉스를 회피하지않고 인정하고 의식화하면 그 안에서 빛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마다 스트레스받는 상황은 제각각이지만 본질은 똑같습니다. 현실을 조절할 수 있는 권한과 능력을 자신이갖고 있지 않다고 인식할 때 스트레스를 경험합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인식이 바로 스트레스입니다. 이런 상황을 두고 ‘통제 소재locus of control가 외부에 있다‘라고 합니다. 사장이 밤새도록 일하면서 받는 스트레스와 말단 직원이 상사의 지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밤새우며 느끼는 스트레스가 다른 것은, 사장은 자기 의지대로 일을 조절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지만 말단 직원은 그럴 권한이 없다고 지각하기 때문입니다.

충분히 내려놓지도 못했으면서 다 내려놨다고 하는 건 ‘내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건드리지 마라‘는 방어심리입니다. 나는 잘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과 세상이 문제라며 자기 문제를 타인에게 투사하는 겁니다. 내려놓지 못했는데내려놓았다고 믿으면 ‘나는 할 만큼 했는데, 너희가 나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라며 복수의 칼을 갈게 됩니다.

우울이라는 감정은 숨기려 하거나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두려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 내가 요즘 우울하구나‘ 하고 인정하면 됩니다. 우울한 게 이상하거나 나쁜 감정도 아닌데 못 받아들일 이유가 없습니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열심히 살다 보니 지치고 상처받아서 우울한 건데 그걸 굳이 숨길 필요가 없습니다. 그동안 내가 너무 힘들었어. 그랬더니내 감정이 나더러 쉬라고 하네‘라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마음을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라면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라고 해야 할 것 같지만 저는 오히려 이런 의견에 반대합니다. 물론 자기 마음을 제대로 보고 성찰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쌓여서 우울하고 짜증 나 있을 때 마음속으로만 파고들면 더 불쾌해집니다. ‘나는 누구인가? 왜 이렇게 스트레스받는가? 내 문제가 무엇인가?‘라는 고민만 붙들고 있으면 우울은 더 깊어집니다.
스트레스는 부정적인 생각을 부르게 마련이고, 부정적인 감정이 마음을 지배하고 있을 때 자기 문제를 파고들면 부정적인 것만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자신에 대한 성찰은 평온한 상태에서 하는 게 이롭습니다. 그래야 감정에 오염되지않은 관점으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볼 수 있으니까요.

우리가 걱정 때문에 고통받는 것은 실재의 일 때문이 아니라 가상의 생각 때문입니다. 세상 근심 걱정은 거의 대부분 상상의 산물입니다. 그러므로 걱정하는 일이 생겨도 상관없다는 마음을 가지면 오히려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두려워하고 있는 바로 그 일이 일어나기를 오히려 바란다면(어떤 경우는 그 일이 일어나도록 일부러 행동하기도 합니다), 생각의 의도가 다른 방향으로 전환되어 걱정도 사라집니다. 이런 치료법을 역설 의도paradoxical intention 라고 합니다.

회피로서의 분노도 있습니다. 진짜 감정을 분노로 덮어버리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정당성의 훼손에 따른 분노입니다. 이것은 원칙과 당위, 옳고 그름의 경계가 무너졌을 때 느끼는 분노입니다. 이것은 사회적인 이슈와도 관련됩니다.

정당하지 않은 비적응적인 분노도 있습니다. 화가 나지 않아야 하는 상황에서 분노를 느끼는 것이죠. 수단적 분노가그중 하나입니다. 대인관계에서 감정을 수단으로 활용하기 때문에 이렇게 부릅니다. 분노로 타인을 지배하고 통제하려드는 것입니다. 화를 내면 일시적으로 내가 당신보다 우월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감정적인 착각에 불과한데도 이것이 강화되면 도덕적으로도 우위에 있다는 환상에 젖습니다. 분노를 타인에게 쏟아내고는 짜릿한 쾌감을 느끼죠.

타인에게 자신의 가치관을 강요하지 않고 내 기준으로 타인을 평가하지 않으며 개인을 길들이거나 통제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그나마 갈등이 조금이라도 줄어듭니다. 누구나 한계와 약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각자 자기 삶에 만족하면 사람은 저절로 부드러워집니다. 타인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나의 행동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으며각자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심리적 거리를 지켜주어야 합니다. 팍팍한 현실에서도 타인에 대한 상냥함을 잃지 않기위해 우리가 지켜야 할 원칙은 바로 이런 겁니다.

인간이 용서할 수 있는 대상은 자기 자신뿐입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은 인간의 영역 밖에 있는, 아무런 흠결도 갖고 있지 않은 존재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용서할 수 있다는 자기애적 착각에서 벗어나야비로소 분노를 멈출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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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뿐일지 몰라도 아직 끝은 아니야 - 인생만화에서 끌어올린 직장인 생존철학 35가지
김봉석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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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뒤돌아보니 직장생활 10년 이 지났다. 저자가 직장생활에서 경험했던 감정의 흐름에 나 자신의 경험을 쉽게 투영할 수 있을 정도로 비슷한 점이 많았다. 부당함에 맞서야만 한다고 행동했던 것들, 그게 이제 돌이켜보니 나 자신의 결핍에서 발아한 자격지심일지도 모른다는후회들.
나이 들수록 세상과 타협하고 산다는데, 이게 과거에는 무슨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고, 왜 그런 기준을 갖출 자격이 있었다고 생각을 해서, 내 자존심에 상처받고 (단지 내 기준의) 부당함에 맞서 싸우고 있었던 걸까. 이상이라는 기준을 어디서 주입당한 건가.
그냥 이런 사회생활 고군분투기 같은 글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인생에 현타를 쎄게 맞고, 인생의 의미를 직업 이외의 일에서 찾고 난 이후로 인간관계에 관한 여유로움이 생겼다. 그래도 과거의 상처는 흉터로 남아서 그런지 아직 타인의 고군분투는 통쾌하고 재밌다.

나라고 귀찮지 않을 리 없었다. 번거롭고 치사해서그냥 돌아서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뭔가 보여주고 싶었다. 회사는 어떻게든 번거롭고 치사한 방법을 써서, 그만둔 직원들이 결국 밀린 임금을 포기하게끔 만들려는 게 괘씸했다. 나는 가장 야비한 방법으로사람들을 착취하는 회사가 싫었다. 그 이유가 나를 끝까지 가게 만든 화력이 되었다. 내가 피해를 입어도,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그들에게 뭔가 복수를 하고 싶었다. - P41

즉, 나만 알고있는, 나만의 독창적인 무엇인가는 여간해서 없다. 그건 천재의 영역이다. 그러나 천재는 거의 없다. 천재가아니라면? 결국은 실행력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내가 알고 있는 것, 아이디어같은 것들을 주변에도 다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가아이디어가 있다고 해도 그걸 실행하지 못하면 꽝이니까. 내가 못할 바에야 다른 누군가가 듣고 혹은 알고 실행하면 그것으로 좋으니까. 실행하지 못하는 아이디어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 P55

불만을 먼저 이야기하는 사람이 지는 게임이 있다.
보통 그렇다. 불만이 있어도 가만히 있으면서, 누군가가 먼저 나서서 싸우다가 패퇴하는 틈을 타 슬며시 이익을 챙긴다. 반면 조직이나 회사의 불합리한 면을 공개적으로 고발하거나 문제제기를 하면 대체로 당사자는 불이익을 당한다. 그런 일이 있은 후, 회사나 조직은 또다시 불만을 가진 사람이 나올 걸 대비해 조금은 좋은 방향으로 개선한다. 그렇게 조직은 앞으로 나아간다. 개인은 뒤로 가거나 추락할지라도. - P57

태도가 문제라면 누구에게나 시비를 걸 수 있다. 말이 많은 것도 문제일 수있고, 후배가 먼저 다정하게 인사하지 않는 것에 화가날 수도 있고, 회의할 때 딱딱한 말투였다며 무례하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까 태도를 가지고 시비를 건다는 건 진짜 문제를 은폐하고, 그냥 당신이 싫다는 표현이다. 직장에서 태도를 말하는 이들은 자신의 문제, 시스템의 문제를 은폐하기 위한 술책으로 모든 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사사건건 ‘태도‘를 운운하는 말에 일희일비할 필요 없다. 아, 나는 그런 더러운 어른은 되고,
싶지 않다. - P91

타인이나 외부 평가 등에 신경 안 쓴다고 너무 강조해서 말하는 사람은 오히려 휘둘리는 경우가 많다.
정서적으로도 불안하고.
나는 지금도 자존감이 없다. 내가 대단한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전히 무엇인가에 쉽게 뛰어든다. 안 되면 말고,라고 생각한다. 내가 부족하고 능력이 없으니까 언제든 실패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걸 알기위해서는 일단 해봐야 한다. 지금 내 앞에 주어진 일이라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일단 시작한다. 할 수 있기때문이 아니라, 좋아한다거나 관심이 있으니까. 그러니까 계속 갈 수 있다. 아니면 말고, 다시 시작하거나다른 길로 가면 되니까.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계속해서하다 보면 언젠가는 성사되는 일이 생길 테니까. - P133

그런데 남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꼰대가 된 상사를비웃던 이가 승진하면서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경우를 수없이 봤다. 아무리 사소한 권력이라도 일단 완장을 차게 되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군림하려 든다.
이쯤 되면 권력의 속성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이 권력을 통해서 발현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인간의 내면에 담겨 있는 야비하고 탐욕스런 본성이 권력이라는 통로를 통해서 악취를 발산하는 것이라고 믿게 된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말하는 ‘돼지‘는 인간의야비한 본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들을 조롱한다. 우리 모두가 돼지가 될 가능성은 이미 존재한다. 우리의내면에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본성을 자각하고우리 안의 돼지를 최대한 억제하는 일이다. 자신의 추악함을 인정하고 새로운 세대를 위해 길을 열어주는것이 필요하다. - P169

야마모토 나오키의 단편집 〈내일 다시 전화할게>에실린 〈전망대>에서 "꿈이구나. ‘지금보다 더 나은 인생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악몽" 이라는 말이 맞다. 그건 단순한 몽상이 아니라 악몽이다. 지금의 내가 잘못된 길에 들어서 있다고 생각하는 후회와 자책은 스스로를 피폐하게 만든다.
인생에서 잘못된 선택은 있다. 잘못된 선택으로 고통의 길에 들어서는 경우도 무수하게 많다. 언젠가 그것을 깨닫는다면 해야 할 일은 단 하나다. 그래서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
더 나은 인생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다른 과거는그야말로 평행우주의 다른 곳에서나 가능할 뿐이고,
지금 내가 사는 우주에서 더 나은 인생은, 내가 지금선택하고 만들어야 하는 나의 미래에 있다.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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