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에 따뜻함이 숨어 있다’에 수록된, 박완서의 딸 호원숙이 쓴 ‘행복한 예술가의 초상: 박완서 연대기’로부터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언급한 대목을 옮긴다.




사진: Unsplash의Tim Alex







글을 시작하기 전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의 아름다운 구절은 꼭 인용하고 싶었다.

"예술가란 아름다운 것들을 창조하는 자다. 예술을 나타내고 예술가를 감추는 것이 예술의 목적이다."

아주 오래 전 어머니가 글을 쓰기 전 그 빛바랜 책을 들고 있으면 정말 빛이 난다고 느꼈다. 어린 마음에도 언젠가는 어머니가 아름다움을 창조할 날이 올 거라고 믿었고 그 믿음은 이루어졌다. 무엇보다 어머니에 관한 글을 쓰면서 ‘행복한 예술가’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어머니에 대한 최상의 찬사라고 생각했다. - 행복한 예술가의 초상(호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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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박완서의 부엌 :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호원숙) 에 만두와 세상을 떠난 막내 이야기가 나온다. 






남동생은 한참 먹성이 좋을 때이기도 했지만 만두를 특히 좋아했다. 만두를 스물다섯 개 먹었다고 자랑하곤 했으니. 볼이 붉었던 소년, 엄마가 만든 만두라면 얼마든지 더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엄마는 그 아들의 등을 자랑스러운 듯 툭 치면서 만두 만드는 노고를 잊는 듯 허리를 펴셨다.

그 애가 세상을 떠나고 세모(歲暮)가 왔다. 어찌 그 몇 달을 지낼 수 있었을까? 나는 엄마가 쓰신 일기를 잘 보지 않는다. 너무 슬프기 때문에. 고통을 이겨내는 과정이 너무 서글프기 때문이다. 미쳐버리지 못하는 정신의 명료함을 탓하던 그 시간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만두를 얼마든지 더 먹을 수 있다던 아이. "만두 박사가 없는데 무슨 재미로 만두를 하나?" 하시면서도 그해 연말 우리가 마련한 재료로 만두를 빚으셨던 엄마. 그래서 만두를 보면 슬픔이 올라온다. 음식은 말이 없는데, 만두를 빚으면 만두 박사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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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07-24 1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만두 귀신이어요. 만두를 무척 좋아한답니다.

서곡 2023-07-24 13:28   좋아요 1 | URL
네 저도요 ㅎ 이북식 만두 전에 먹어본 적 있는데 또 먹어보고 싶어집니다

렛잇고 2023-07-24 16: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너무 슬퍼요.... 저도 저 책 읽었어요. 작가님의 저 한마디에 울컥했어요.ㅠㅠ 만두박사가 없는데..ㅠㅠ 참 너무 큰 아픔을 지고 사셨겠더라고요.

서곡 2023-07-24 16:55   좋아요 2 | URL
그러게요 ... 박완서 님은 오빠도 일찍 돌아가셨잖아요 마음이 참 아팠습니다
 


아래 옮긴 박완서의 글은 ‘모든 것에 따뜻함이 숨어 있다’가 출처이다. 막내를 잃은 후에 쓴 글로 보인다. 

사진: Unsplash의 Mark Brennan







다행히 남은 자식들이 창의 불빛을 서로 확인할 수 있는 지척에서, 수프가 식지 않을 만한 이웃에서, 이 나라 끝에서 혹은 지구의 반대 방향에서 돌봐 주고 걱정해 주어 살아가는 데 힘이 돼 주고 있다. 나는 자식들과의 이런 멀고 가까운 거리를 좋아하고, 가장 멀리 우주 밖으로 사라진 자식을 가장 가깝게 느낄 수도 있는 신비 또한 좋아한다. 무엇보다도 나에게 남겨진 자유가 소중하며 그 안에는 자식들도 들이고 싶지 않다. - 자전 에세이 「나의 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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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07-24 13: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식 잃은 것과 관련해 쓴, 박완서 작가의 글은 언제나 슬프게 느껴집니다.

서곡 2023-07-24 13:27   좋아요 1 | URL
게다가 자식이 떠난 그해에 배우자도 먼저 떠나시고...참 기구합니다
 
박경리와 박완서 / 살아 있는 날의 시작


https://blog.aladin.co.kr/790598133/14763938 박경리는 박완서의 장편 '살아 있는 날의 시작' 초판(1980) 발문에 박완서란 여성-사람으로부터 '가냘픈 선'을 발견했다고 쓴다. 박완서의 '살아 있는 날의 시작' 도입부를 보면 여주인공을 묘사하기 위해 저자 박완서는 '간결한 선'이란 말을 썼다. 가냘픈 선과 간결한 선, 이 두 개의 선이 동일하지는 않겠으나 박경리는 박완서가 창조한 소설 속 여성인물과 저자의 유사성을 어느 정도 발견한 게 아닐까.


* 박완서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60XX69700065 (장석주) '살아 있는 날의 시작' 소개가 있다. 





그 여자의 앞모습과 뒷모습은 판이했다. 군살이 붙지 않은 우아하고도 간결한 선과 자신 있고 경쾌한 걸음걸이로 하여 뒤에서 본 그 여자는 스무 살을 갓 넘어선 것처럼 싱싱해 보였다.

그러나 그 여자의 앞모습엔 분명하고도 멀지 않은 노추의 예감 같은 게 서려 있었다. 세필화처럼 공들인 화장 밑엔 물빨래해서 다림질한 비단결처럼 섬세하고 확실한 주름살이 은폐되어 있었고, 목의 주름살은 숫제 적나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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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옮긴 글의 출처는 ‘모든 것에 따뜻함이 숨어 있다’에 수록된, 박완서의 딸 호원숙이 쓴 ‘행복한 예술가의 초상: 박완서 연대기’(1992)이다.


[박완서가 회고한 고 박경리 선생의 추억] (2008) https://www.joongang.co.kr/article/3154703#home

사진: Unsplash의 José Ramos






1980년 여름 전예원에서 소설집 『살아 있는 날의 시작』을 출간했고 (중략) 그 작품집에 박경리 선생님이 발문을 써 주신 인연으로 여태껏 친분이 계속되고 있다. 박경리 선생님은 발문에서 어머니와의 첫 만남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우리와 함께 있는 작가 박완서 - 跋文에 대신하여

작가 박완서 씨를 처음 만났을 때 내 예상이 설 자리 없이 뒤집히는 것을 순간적으로 느꼈다. 지면을 통해 본 그의 글이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여성, 옥색 치마 흰 저고리를 입은 아주 작고 안존스런 주부(主婦)였다. 그런데 미숙하다 할까 그런 가냘픈 線이 신기하게도 그에게 남아 있었다.

상대방의 천착하는 눈빛과 지나치게 의식하는 몸짓에 질려버리는 것이 대개의 경우 첫 대면에서 겪어야하는 곤욕인데, 해서 엷은 외로움과 모멸의 감정도 동반하게 되는데 박완서 씨는 천연스러웠다. 나는 내심 당황했다. 나를 과대평가하는 상대, 그런 부담감 때문에 감정이 들쑥날쑥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가 주부(主婦)의 영역을 확고하게 지키고 있다는 것은 예비지식 속에 있었던 것이지만 신기하게도 남아 있는 미숙한 것 같은 가냘픈 선이 의문이었다. 그 가냘픈 선은 요새(要塞) 같은 주부의 자리에도 뚜렷이 연결이 되지 않았고 날카롭게 가차없이 몰고가는 비정(非情)의 작가에게도 뚜렷이 연결되지 않았다.

새털같이 가벼워 보이는 몸매, 가늘은 손목, 섬세한 손가락의 이 여인이 억세고 황막(荒漠)하고 감미(甘味)라곤 없는, 애증(愛憎)에는 미련한 투우같이 덤비는 경지를 통과한 뒤 조용하게 연민을 감추고 냉소를 머금은 것 같은 그 작가일까?

그러나 헤어져서 돌아오는 길에 비로소 나는 박완서씨의 가냘픈 모습에서 분명(分明)했던 것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수화기만 들면 박선생 우리 저녁이나 함께 합시다, 할 수 있을 것을, 수없이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남의 초청으로 두 번 만난 이외 아직 우리는 만나지 못하였고 전화통화조차 한번 못했다는 것은 게으름에서 비롯된 습벽은 아니다.

나를 아껴주는 분들, 내가 존경하는 분들에게 늘 이런 망각(忘却)의 형식으로 덮어두는 것은 절실한 만큼 행하지 못하는 안타까움 때문이라는 것을 박완서 씨는 알고 있는 사람이다.

1980년 7월 4일 아침

- 행복한 예술가의 초상(호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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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박완서 - 살아 있는 날의 시작 / 두 개의 선
    from 에그몬트 서곡 2023-07-21 22:20 
    https://blog.aladin.co.kr/790598133/14763938 박경리는 박완서의 장편 '살아 있는 날의 시작' 초판(1980) 발문에 박완서로부터 '가냘픈 선'을 발견, 신기하다고 쓴다. 박완서의 '살아 있는 날의 시작' 초반을 읽어보면 여주인공을 묘사하기 위해 저자 박완서는 '간결한 선'이란 말을 썼다. 가냘픈 선과 간결한 선. 이 두 개의 선이 동일하지는 않겠으나 박경리는 박완서가 창조한 소설 속 여성인물과 저자의 유사성을 어느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