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츄샤는 탄력 있고 건강한 다리로 재빨리 방향을 틀어 멀찌감치 달아났다. 그 앞으로 라일락 화단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아무도 안 보이자 카츄샤는 네흘류도프를 돌아보고는 화단 뒤에서 만나자는 뜻으로 고갯짓을 해 보였다. 신호를 알아채고 얼른 라일락 수풀 쪽으로 달려갔지만 그는 화단 뒤에 쐐기풀이 무성하게 자란 도랑이 있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그는 도랑 쪽으로 넘어져 두 손이 쐐기풀 가시에 찔리고 그새 내리기 시작한 저녁이슬에 젖어버렸다. 그는 무안한 웃음을 터뜨리며 벌떡 일어나 마른 곳으로 뛰어올랐다.

촉촉한 블랙커런트 열매처럼 검은 눈을 빛내는 카츄샤가 방긋 웃으면서 네흘류도프에게 달려왔다.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뛰어가 손을 맞잡았다.

카츄샤는 꽃이 이미 떨어진 라일락 가지 두 개를 꺾어 화끈 달아오른 자신의 얼굴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네흘류도프 쪽을 바라보았다. 카츄샤는 그를 향해 두 팔을 크게 흔들어 보이고는 획 뒤돌아 사람들이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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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난 변하기 위해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어." 그녀가 말했다. "너는 자는 것 말고 삶에서 원하는 게 대체 뭐니?"나는 그녀의 냉소를 무시하기로 했다.

나는 방어적으로 말했다. "잠시 쉬고 있는 거야. 지금은 내 휴식과 이완의 해거든."

그래서 내가 종일 잠만 자기 시작했을 때, 자기 바람대로 내가 무능한 게으름뱅이로 전락하는 모습을 보며 꽤 흡족해했던 것 같다. 나는 리바와 경쟁할 마음이 없었지만, 따지고 보면 그녀가 괘씸했고 그래서 우리는 언쟁을 했다.

어느 밤에 나는 폴라로이드로 그녀를 찍어 거실의 거울 틀에 사진을 끼워두었다. 리바는 그것을 정겨운 행동으로 여겼지만 실은 나중에 약기운에 취해 전화하고 싶더라도 함께 있으면 별로 재미없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위해 찍은 사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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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치 키스 외에 (   ) 키스라는 게 있다면, 그것은 어떤 키스일까?] 이 책의 질문지 중에 있다. 즉답이 떠올랐다. 웨일즈 스타일 키스(welsh kiss)! 영국 황태자(Prince of Wales)의 키스.

사진: UnsplashMika Baumeister


짧고 개략적이고 체계도 없는 데다 환상적인 생각과 정보로만 가득한 글이라고 해도, 그 역시 엄연한 글이다. 더욱이 최종원고에도 살아남을 강력한 부분도 그 안에 있을 확률이 높다.

그냥 생각의 흐름을 서술해보아라. "난 이렇게 생각했어, 그런 뒤 이렇게 생각했어." 이런 형태로 쓰는 것이다. 이 방법은 고약한 뒤엉킴을 푸는 데 도움이 된다. 아주 복잡한 주제에 관해 글을 쓰려고 하는데 잘 안 돼서 애를 먹고 있다면 특히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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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초반부의 ‘놀면서 지내는 삶은 이미 전생에 정해져 있다’는 의문에 해답을 제시하지 않고 그대로 남겨둔 데서 연작의 가능성을 포착한다. 연작으로 이어진「춘분 무렵까지」에서는 신분이 다른 다양한 유민이 등장한다. 이는 전작에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푸는 의미로 본다. 


고등유민의 주제로 보면 「그 후」는 텍스트의 경계를 너머 「춘분 무렵까지」로의 연작으로도 읽기 가능하며, 작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 인간성이 상실된 인물을 등장시켜 사회 비판을 한다고 해석한다.] http://www.riss.kr/search/detail/DetailView.do?p_mat_type=be54d9b8bc7cdb09&control_no=ebe923190df5dff1ffe0bdc3ef48d419&outLink=N (이혜경)


[당시의 신문 미디어에서 “고등유민”은 사회주의라는 “위험사상”을 가질 수 있는 “주의인물”로 간주되었다. 이 논문은 이 소설의 등장인물의 역할분담이 어떻게 대역사건에 대한 신문 미디어의 담론을 상기시키고 비판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분석하였다. 다음으로 이 소설이 후반부의 주인공인 스나가가 소설 속의 부르주아 신사계급의 동질성에 균열을 가하는 서사를 가지고 있다고 분석하였다. 사회주의 사상의 핵심적인 문제인 계급적 갈등을 사회주의 '겨울의 시대'에 소세키는 서사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797867 (곽동곤)


"여유라니, 자네. 난 어제 비가 오니까 날이 좋을 때 다시 와달라고 자네를 거절하지 않았나? 그 이유를 지금 말할 필요는 없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멋대로 거절하는 법이 세상에 있다고 생각하나? 다구치라면 절대 그런 식으로 거절하지 못할 걸세. 다구치가 기꺼이 사람을 만나는 게 왜라고 생각하나? 다구치는 세상에 추구하는 바가 많은 사람이라 그런 거네. 다시 말해 나 같은 고등유민*이 아니기 때문이지. 아무리 남의 감정을 상하게 해도 난처하지 않다는 여유가 없기 때문이라네."

*소세키가 만든 말로 ‘그 후’에도 나온다. 대학을 나와서도 직장을 얻으려고 하지 않고 직업 때문에 마음을 더럽히거나 안달하지 않는, 여유로운 시간을 가진 사람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그 후’의 다이스케처럼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 무리를 해서 먹고살기 위한 직업을 가질 필요가 없는 지식인을 말한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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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분 지나고까지'에 러시아 작가 안드레예프의 소설 'Gedanke(독역)'의 줄거리가 꽤 길게 소개되는데, 일본에서는 이 작품의 제목을 '마음'으로 번역했다고 한다. 안드레예프는 같은 내용으로 희곡도 썼으며 이 희곡은 '생각'이란 제목으로 우리 나라에 번역출간되어 있다. 소세키가 쓴 '마음(こころ)'에 안드레예프가 쓴 저 소설이 혹시 영향을 준 건 아닌가 추측해본다. - 안드레예프의 '마음'은 1909년에 일역되었고, 소세키의 '춘분 지나고까지'는 1912년,  '마음'은 1914년 작이다.




제목에는 게당케(Gedanke)*라는 독일어가 쓰여 있었다. 그는 러시아 책을 번역한 것이라고 가르쳐주었다.

*레오니트 니콜라예비치 안드레예프(1871~1919)의 소설 ‘생각’ 독일어번역본으로 소세키의 장서에 있다. (중략) ‘게당케(Gedanke)’의 영역은 ‘Thought.’ 우에다 빈이 번역하여 1909년 6월 ‘마음(心)’이라는 제목으로 간행했다. - P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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