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계절'에 실린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피아노'로부터 옮긴다. 주택가를 걷다가 공터에 버려진 피아노를 보고는 아무도 없는데 피아노 소리가 나 놀란 장면으로부터 이어지는 대목이다. "지난해 대지진"은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서 1924년에 쓴 글이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 Daum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14a2478a 관동대지진 당시 자경단으로 활동했고 조선인 학살을 목격했다고 한다.

사진: UnsplashIvan Kuznetsov


cf. 2024년 5월말에 출간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청춘' 목차에도 '피아노'가 보이는데 동일작일 수 있다.





그 피아노 소리에 초자연적 해석을 보태기엔 난 지나치게 현실주의자였다. 정녕 사람 그림자가 없었다고 한들 허물어진 벽 근처에 고양이라도 숨어 있었을지 모른다.

길로 되돌아가 폐허를 쭉 둘러봤다. 그제야 슬레이트 지붕에 눌린 채 비스듬히 피아노를 덮고 있는 밤나무를 알아챘다. 그건 어찌 되든 좋았다. 나는 그저 명아주수풀 속 피아노만 유심히 바라봤다. 지난해 대지진 이후 아무도 모르는 소리를 간직해온 피아노를. - 피아노 _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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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02 11: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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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02 11: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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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잔에 담긴 인문학'(황헌)으로부터 옮긴다. 언론인 출신 저자는 파리특파원을 지냈다.

By Angela Huster - Own work






뱅쇼의 ‘쇼chaud’는 ‘따뜻하다’라는 뜻을 가진 프랑스어 형용사입니다. 독일에서 먼저 시작됐다는 설도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데운 레드 와인을 ‘글뤼바인Glühwein’이라고 부릅니다.

뱅쇼를 만들려면 레드 와인 2병, 오렌지, 레몬, 사과, 파인애플 등의 비타민 C가 풍부한 과일에 마지막으로 생강과 계피까지 같이 준비합니다. 그러고는 준비한 재료를 한꺼번에 큰 냄비에 넣고 뚜껑을 덮지 않은 상태로 끓입니다. 술을 끓이면 알코올 성분이 많이 날아가기 때문에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음료가 됩니다. 취향에 따라 술기운을 즐기고 싶다면 끓이는 시간을 20분 이내로 짧게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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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겨울엔 뱅쇼를 집에서 만들지 않았다. 밖에서 딱 한 번 사 마셨구나. 오늘로 3월이 되었고 뱅쇼는 이제 다음 겨울을 기약하자.


박연준 시인이 쓴 단편소설 '한두 벌의 다른 옷'('겨울간식집' 수록)에서 그녀들은 처음 만나 뱅쇼를 마셨었다.

By Loyna - Own work, CC BY-SA 2.5







—영혜 언니와 왜 멀어졌어?

성희가 물었을 때 대답하지 못했다.

영혜와 나 사이에 큰불이 일고, 타버리고, 재만 남았을 때. 재 위에서 다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했다. 내 선택은 달아나는 거였다.

그러나 어느 겨울, 카페 앞을 지나다 누군가 유리창에 이렇게 써 붙인 글을 마주하면 울고 싶어지는 건 사실이다.

‘따뜻한 뱅쇼 팔아요. 직접 끓였습니다.’(박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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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오늘의 포스트로부터: '겨울 간식집' 수록작 '한두 벌의 다른 옷'(박연준)이 아래 글의 출처이다.

By Sabrina Spotti - Own work, CC0







성희에게 들은 이야기는 이랬다. 영혜는 우리보다 다섯 살이 많다. 몸이 약해 학교에 자주 못 나온다. 수업 중에 쓰러진 적도 있다. 영혜와 친한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 혼자 지내고, 신비감에 휩싸여 있다. 부잣집 외동딸이다. 까다롭고 고급스러운 취향을 가졌다. 진짜 문학도다. 학부 때 시 잘 쓰는 애로 유명했다.

—너가 여름이구나. 이리로 와볼래?

영혜가 웃었다. 웃을 때 코에 주름이 잡혔다. 영혜는 왼손으로는 허리를 짚고 오른손으로는 아무렇게나 토막 낸 사과와 배, 오렌지를 냄비에 넣었다.

—너네 오기 전에 완성해 놓으려고 했는데 미안. 뱅쇼를 끓이려고 하거든. 마셔본 적 있어?

영혜는 미리 따놓은 와인 두 병을 과일이 든 냄비에 쏟아부었다. 냄비 밖으로 몇 방울, 붉은 와인이 튀었다.

—사실 나 뱅쇼 처음 끓여봐. 맛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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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01 22: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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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01 22: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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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1909년 생)는 '쓰가루'(1944)에 자신의 단편 '추억'(1933)을 인용한다. '추억'은 첫 소설집 '만년'(1936) 수록작이다.

다자이 오사무 탄생 백주년 기념(2009) By Heartoftheworld - Own work, CC BY-SA 3.0






이번에 내가 쓰가루에 와서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나는 그 사람을 나의 어머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30년 가까이 만나지 않았지만 그 사람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내 일생은 그 사람에 의해 결정되었다고 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다음은 소설 「추억」의 일부분이다.

[일고여덟 살 때의 추억은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나는 다케라는 가정부에게 책 읽는 법을 배워서 둘이서 함께 여러 가지 책을 읽었다. 다케는 내 교육에 열중했다. 나는 병약한 몸이라 누워서 많은 책을 읽었다. 읽을 책이 없어지면 다케는 마을의 일요 학교 등에서 어린이 책을 연달아 빌려와서 읽게 했다. 나는 묵독하는 법을 알고 있어서 아무리 책을 읽어도 지치지 않았다.] - 쓰가루

1912년 다케가 보모로 들어옴.

1932년 7월 큰형과 함께 아오모리 경찰서에 출두, 좌익 운동에서 이탈할 것을 서약하고 보석됨.「추억(思ひ出)」 집필 시작. 12월 아오모리 검사사무국에 출두하여 좌익 운동과 절연을 맹세.

1933년 3월 동인지 『해표』 창간호에 「어복기(魚服記)」를 발표. 4월호부터 「추억」을 연재. -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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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5-02-28 17: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자이 오사무의 쓰가루는 초판본 디자인의 책도 출간된 적이 있었네요. 초판본 디자인보다 문학동네 전집의 디자인이 더 좋은 것 같아요.
서곡님, 오늘은 2월 마지막 날입니다. 삼일절연휴 잘 보내세요.^^

서곡 2025-03-01 15:05   좋아요 1 | URL
네 ‘여자의 결투‘란 책에도 쓰가루가 실려 있고요 사과가 유명한 아오모리현 지역이더라고요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 이제 삼월이네요 오늘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