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비행 (초판본 리커버 고급 벨벳 양장본) ㅣ 코너스톤 초판본 리커버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김보희 옮김, 변광배 해설 / 코너스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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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비행》을 읽으면서 생텍쥐페리가 왜 사랑받을 수 밖에 없는지 알게 되었다. 그야말로 비행으로 수놓아진 그의 삶이 가득 담긴 소설이다. [어린왕자]를 읽은 독자라면 당연한 소리를 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그는 그냥 작가가 아니다. 그리고 [야간비행]은 단순히 비행사의 일상을 스케치한 작품도 아니었다. 이작품 속에는 그의 꿈과 희망과 영혼이 다 들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작가 생텍쥐페리가 이 작품을 통해서 주인공 리비에르와 비행사 파비앵이라는 두 사람을 내세워 인간 내면과 삶에 대한 도전과 인간의 원초적 고독을 느끼게 해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소설은 생텍주페리 특유의 서정적인 문체가 정말 매력적이었다.

"흉악한 바람이 손을 댄 탓에 잔뜩 부패하고 위협적이기까지 한 밤이 되어 버렸다."-p94

또 등장인물들을 매우 섬세하게 그려내고 주었다. 마치 그들 마음 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듯 표현했다. 비행을 통해 실제로 본 아름다운 자연과 아찔한 위험성을 동시에 묘사하고, 인간이 자연에서 느끼는 경외감을 생생하게 그려놓았다. ​한마디로 그의 경험이 진짜 내가 직접 비행하고 있는 듯이 황홀했다. 그러니까 그의 작품이 지금까지도 고전으로 통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마치 내가 비행기를 조종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었고, 그의 감정묘사는 내가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나는 원래 비행기 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해외여행을 많이 해보지 않았지만 비행기를 타고 있던 순간에 늘 긴장했다. 그런데 그의 작품 [야간비행]을 통해 비행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 가셨다. "신들만이 노닐 수 있었던 공간"에 나도 함께 동참하는 기쁨과 멋진 상상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더구나 양장본으로 나온 책이 진짜 내 마음에 쏙 든다. 이제 비우는 삶을 살자고 맹세하고 책에 대해 욕심을 부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견물 생심이라서 양장본을 보고 나도 모르게 탐을 내고 말았다.

하지만 이 책을 본 딸아이가 호기심을 보였다. 자기도 읽고 싶다고 해서 얼른 주었다.

[야간비행]은 [어린왕자]와는 다른 감동을 왕창 안겨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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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선
이병순 지음 / 문이당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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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선]은 이병순 작가의 다른 작품 [죽림한풍을 찾아서]와 혼동하여 읽게 된 책이다. [죽림한풍을 찾아서]의 내용을 소개하는 글을 [태안선]을 소개하는 글이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끝까지 차분하게 다 읽어 보았어야하는데 첫음 두세줄을 읽고 '[태안선]이 이런 내용이네' 하고 읽기 시작했다.

[태안선]은 수중고고학을 전공한 송기주가 태안선 인양에 투입되어 격게 되는 이야기다.

신안 해저유물선은 중국 무역선이었고, 엄청난 유물이 인양되어 유명해졌다. 하지만 실상 우리나라 해저의 보고는 태안 앞바다라 할 수 있다.

2007년 마도 해역에서 한 어부가 주꾸미가 물고 있는 청자 접시를 건져 올렸다는 기사가 신문에 실렸다. 그 뒤 이곳에서 1만점이 넘는 수중유물을 발굴하게 된다.

태안 앞바다는 물길이 험해서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수많은 해난 사고가 발생하였다고 한다. 태안 마도 앞바다의 거센 물살에 침몰한 배가 수백척에 이른다고 한다.

서해는 삼국시대 뿐만 아니라 고려시대, 조선시대애도 무역선, 세곡선의 중요 항로였나보다. 하지만 이곳이 ‘難行梁(다니기 어려운 길목)’으로 불렸다는 걸 보면 매우 험난했다는 건 짐작하고도 남는다. 연중 거의 매일같이 안개가 끼고 복잡한 해저 지형과 급속한 조류 흐름에다 수중 암초까지 있다니 말이다. 이곳을 옛사람들은 여기서 사고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편안하고 번성하라는 뜻의 ‘안흥량’으로 바꿔 부르기도 했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난파되었다는 역사적 기록이 많이 남아 있고, 태안 앞바다에서 2007년,2009년,2015년에 침몰된 배들이 발견되었다.

아무튼 [태안선]은 이곳에 수장된 유물을 건져 올려는 작업을 리얼하게 잘 그려준 작품이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잠수사라는 직업도 알게 되었고, 진도 바다에서 사고가 난 세월호 생각도 많이 났다. 잠수사들과 수중고고학자들에게 감사하는 마음도 생겼다. 어쩌면 그들이 목숨걸고 발굴해 준 덕분에 영원히 수장되었을 귀중한 문화유산들을 볼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태안선]이라는 소설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 소재를 얻게 되어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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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겐 12척의 배가 있나이다 - 상
최인 지음 / 글여울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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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소설을 읽기로 마음 먹은 이유는 한 시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이나 임진왜란을 다룬 소설, 영화는 차고 넘친다. 장군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는 내가 어릴때 보았던 [성웅 이순신]부터 끊이지 않고 계속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장군이 참전한 해전의 이름으로 영화가 만들어졌다. [명량]과 [한산]은 보았지만 [노량]은 보지 않았다.

소설은 [칼의 노래]와 [불명의 이순신]을 읽었다. 그리고 임진왜란을 다룬 소설로는 [7년 전쟁]을 읽었고, 징비록도 읽었다. 그러니 그 당시 조선에 무슨 일이 있었고, 이순신 장군의 고뇌가 어떠했는지를 모른다는 게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 [난중일기]를 읽지 않았다.

이번에 읽게 된 [신에겐 12척의 배가 있나이다(상)(하)]는 난중일기를 해석하듯이 쓴 소설이었다. 난중일기의 내용이 그대로 들어와 있기도 하고, 난중일기에 없는 내용들은 작가가 철저하게 고증해서 첨가하고, 글의 재미를 위해서 상상의 인물까지 만들어 소설의 재미를 더했다고 한다. 솔직히 말하면 [칼의 노래]와 [불멸의 이순신]을 읽은 입장에서 이 소설이 그 소설들보다 재미있다고 말할수는 없겠다. 그러나 나는 난중일기를 읽는 것 같아서 좋았다. 새롭게 느껴졌다.

이순신 장군은 武臣이면서도 文章이 출중했다. 한마디로 문무를 겸비한 장수였다. 모든 것이 한쪽만 뛰어나서는 최고가 될 수 없다. 바둑도 이론을 공부하지 않고 실전만 하는 사람은 어느 수준이 되면 늘지 않고, 실력이 정체된다. 한 단계를 뛰어 넘으려면 바둑 이론 공부를 해야한다. 사활이든, 행마든, 포석이든!

이순신 장군이 뛰어났던 것은 武도 뛰어났지만 늘 공부해서 文으로 탄탄히 내용을 굳혔던 것이다.

[신에겐 12척의 배가 있나이다]는 난중일기의 순서 대로 임진 왜란이 일어나기 전부터 정유재란과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이 죽기까지의 이야기를 이끌고 있다. 그리고 그때 그때의 정취나 상황을 漢詩를 통해서 압축된 심리로 보여주기도 한다. 이 소설에 소개된 한 시 중에 절반은 최인 작가님이 직접 지었다고 한다. 작가님이 지은 한시를 내가 평가할 수는 없다. 평측이 맞는지도 모르겠고, 운자도 딱히 맞는 것 같지 않았다. 맞지 않는 시도 있었고, 맞는 것도 있었다. 한시에 사용된 한자가 생소하면 옥편을 찾아보기도 했다. 아예 모르면 그냥 넘어 갈 수도 있는데, 조금 안다고 모르는 걸 두고 그냥 넘겨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소설을 술술 읽지 못하고 공부하듯이 읽었다.

[신에겐 12척의 배가 있었다]는 이순신 장군을 재해석 한 소설이었다. 일기나 한시를 통해서 본 그의 심성이 잘 느껴졌다. 이순신 장군의 워낙 국민적인 영웅이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가공의 인물이 첨가된 부분이 낯설고 어색했다. 공감이 잘 되지 않고 몰입을 방해했다. 그러나 한시는 꼼꼼히 읽었다. 여름방학때 시간을 내어서 소설 속 한시를 가지고 공부를 해 볼 생각이다. 평측이나 운자도 자세히 맞추어 보고 나라면 어떤 글자를 쓸지 고민해서 한시 교재로 사용하려고 한다.

[신에겐 12척의 배가 있나이다]를 읽었더니 난중 일기 원문을 찾아 읽어보고 싶어졌다. 한시와 함께 한자공부도 더 해야할 것 같다.

이 소설은 나에게 한시에 대한 새로운 도전 의지를 불러 일으켜준 소설이었다. 한시까지 넣어서 새롭게 이순신 장군을 해석해주신 최인 작가님께 정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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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청춘 ㅣ 청춘
다자이 오사무 지음, 최고은 옮김 / 북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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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은 젊은 시절 읽었다. 못 되어도 30년은 지났을 것이다. 그때도 그의 작품을 썩 마음에 들어하지는 않았다. 내가 문학에 조예가 깊지 않은 탓도 있고, 뭔 일에 대해서 깊게 고민하지 않는 나의 기질과 잘 맞지 않는다고 느꼈다. '이 사람 뭐지?'하고 의문을 가졌지만 '이 사람 글, 참 좋네.'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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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읽게 된[다자이 오사무X청춘]을 읽으면서 그때 내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조금 이해했다. 이 사람의 글이 내 취향은 아니었던 것이다. 늘 삶을 긍정하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어쩌면 바빠서 죽을 시간도 없는 평범한 서민과는 맞지 않는 작가라고 생각했다. 그때 막연하게 '이 사람은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싸는 부류구나' 라고 단정지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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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가 글을 잘 쓰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솔직히 그가 독창적인 작가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는 대부분 자신의 경험을 글에 드러내고 있었다. [어릿광대의 꽃],[우바스테]는 완전 자기 연민에 빠진 자신의 이야기다. [달려라 메로스]가 조금 다르긴 하지만 그리스 실화를 차용해서 오마주한 작품이라서 더 독창적이지 못하다고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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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이다. 사회를 위해 '노블레스 오불리주'를 실천하는 것 까지는 아니더라도 좀 더 나은 인생을 살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나 보다. 누구의 사생활까지 들추어서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여러번의 자살을 시도해서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도 아쉽다. 죽더라도 혼자 죽지, 꼭 동반 자살을 시도하고, 결국 애인과 함께 동반자살에 성공한 것도 못마땅하다. 매우 비겁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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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나는 일본 문학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시대 상황과 젊은 작가의 고뇌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한 독자라서 그럴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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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고통에 져서 죽는 거야.~~~ 내가 나약한 게 아니라, 괴로움이 너무 무거운 거야."-p183~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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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 X 청춘]을 읽으면서 문득 든 생각은 그의 이상이 너무 높았던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자신이 계획한 일이 잘 풀리지 않았거나 사회로 부터 인정받지 못해서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던 건 아닐까?

소설 속의 그는 늘 자신에 대해서 반성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가 변명하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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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류노스케×청춘 ㅣ 청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최고은 옮김 / 북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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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몰라도 그의 작품[라쇼몬]이나 [코]는 알 것이다. [라쇼몬]은 영화로도 나왔다고 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알 것 같다. 나는 영화는 못 보고 책을 먼저 읽었다. 나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잘 모르는 중에 단편집 [라쇼몬]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라쇼몬'이 좋아서 그의 작품 중 단행본으로 나온 [지옥변]까지 찾아 읽었다.

이번에 읽게 된 단편집[아쿠타가와 류노스케X청춘]은 단편집 [라쇼몬]과 [지옥변]에서 이미 읽은 작품들이 많았다. '꿈', '신들의 미소', '갓파' 등은 [라쇼몬]에서, '게사와 모리토', '귤', '신기루', '톱니바퀴', '점귀부' 등은 단편집 [지옥변]에서 보았다.

사실 이미 읽은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제목만 보고는 어떤 내용이었는지 생각나지 않았지만 막상 읽어보니 다 기억났다. 특히 '점귀부'는 완전 자전적 내용이라서 제목만 보고도 뚜렷하게 알고 있었다.

그의 단편은 극찬을 받는 작품들이 많지만 나에게 최고 작품은 '신들의 미소'였다. 어쩌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국뽕에 차올라서 쓴 작품일지도 모르지만 자국의 문자나 모든 것을 받아들여 자기화 해버리는 민족성에 대해서 이렇게 자부심을 가지는 작가라면 국민적 사랑을 받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자를 받아들여 히라카나 가타카나라는 그들만의 문자로 만들었고, 유교,불교, 심지어 기독교까지 일본화한 자기들 신으로 바꾸어서 믿고 있으니 말이다.

'갓파'를 처음 읽었을 때, 돌킨의 '호빗'이 떠올랐었다. 그런데 이번에 읽으면서는 '돌킨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갓파'를 읽고 '호빗'을 구상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어쩌면 반대일 수도 있다. 물론 내 생각이지만, 영문학을 전공한 류노스케가 영미 문학작품에서 '호빗'을 알게 되어 자국의 미신과 결부시켜'갓파'를 지었을 수도. 어찌 되었던 나는 갓파족은 호빗족과 외형적인 면이 많이 비슷하다고 느끼며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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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작품을 참 덤덤하게 쓴다는 생각을 했다. 자전적 소설도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매우 관찰자처럼 표현했고, 다른 작품들에서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여러 심리를 객관적으로 잘 표현했다고 느꼈다.

젊은 시절에 자살함으로써 생을 마감한 것이 매우 유감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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