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 호스
마이클 모퍼고 지음, 김민석 옮김 / 풀빛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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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영국의 어느 시골 마을에 조이가 팔려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전쟁이 일어난다. 조이는 농장의 주인 아들 앨버트가 말에게 붙여준 이름이다. 앨버트는 조이를 멋진 기마로 키우고 싶지만 가난한 농장에서는 농장일을 도울 노동마가 필요하다. 앨버트는 조이에게 농장일을 하는 틈틈이 조이를 훈련시켜 멋진 기마로 키운다. 그런데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앨버트의 아버지는 앨버트와 조이가 얼마나 깊이 정이 들었는지 잘 알지만 집안 형편상 조이를 더 이상 키울 수 없어서 출전하는 군대에 조이를 팔아버린다. 뒤늦게 조이가 팔린 것을 알고 앨버트가 달려오지만 앨버트도 조이를 팔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을 알고 조이와 아쉬운 이별을 한다. 단 꼭 조이를찾으러 전쟁터로 가겠다는 말을 남기고. 그후 조이는 전장에서 용맹스럽게 활동하지만 독일군에게 잡혀가 부상병을 실어나르는 마차를 끌다가 다시 대포를 끄는 말이 되면서 그야말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린다. 그후 우여곡절 끝에 다시 영국군으로 넘어오고 자신을 찾아 군대에 입대한 앨버트와 재회하게 된다.

 

 이 책은 이야기가 그리 복잡하지않고 진행도 빨라 금방 읽을 수 있었다. 큰 감동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동물을 길러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할만한 내용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티븐 스필버거 감독이 이 책을 선택한 것은 책 내용이 감동적이어서 라기보다는 영화로 만들기에 적합한 내용이어서 인듯하다. 책으로 깊은 감동을 안겨준 책이 영화로 만들어져서 실패한 경우를 종종본다. 책이 준 감동을 영화로 담기도 어렵지만 독자의 기대에 미치기도 참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이책은 말이 화자가 되어 진행되고 있어서 인간의 애절한 마음들이 다 담겨지지는 않았다는 느낌이다. 영화로 만들때 감독의 재량에 의해 얼마든지 가감이 가능하고 감동을 만들기에 적합해 보인다. 그리고 스토리구조도 다소 간소하고 분량도 많지않아 한편의 영화에 딱 맞다. 쟝르도 소설이라기보다 동화에 가깝다.

 

 내용으로 보자면 조이가 멋진 말이라 사람들이 다 탐을 낸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건 외형적인 것이지 않은가. 주인을 살리려고 자신을 돌보지 않았다거나 주인을 찾기위해 노력했다거나 그런 것들은 하나도 없다. 단지 앨버트가 자신이 기르던 애마를 찾으려고 군마를 돌보는 병사로 입대했고 우려곡절끝에 독일군과 영국군의 완충지대를 빠져나온 조이와 다시 만나게 된다. 이소설이 전쟁의 부조리를 고발하고는 있지만 약하다. 그리고 인간과 동물의 우정에 힘을 실어보지만 역시 약다. 어쩐지 2%가 부족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요즘 하도 스팩터클한 것들이 판을 치닌 잔잔한 것들은 김이 빠지는 지도 모르겠다.

 

어제 이금이 선생님의 단편[사료를 드립니다]를 읽었다. 참 감동적이었다. [워호스]를 너무 기대하고 읽어서 실망이 컸다면 [사료를 드립니다]는 기대를 전혀 안했더니 큰 감동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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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 2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윤기 옮김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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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은 것은 대학 초년생일 때였다.

대입을 위해 치달아 왔던 지식공부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고 새로운 지식에 목말라 있을 때이기도 했다. 

그 시절 나는 키에르 케고르를 지나고 니이체를 지나고 헤르만 헤세를 지나서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만났다.

그시절 [그리스인 조르바]의 두목처럼 욕망을 억누르고 이성의 목소리에 따르는 것이 지성인의 삶이라고 철떡같이 믿고 있었으며, 그렇게 하는 것이 미덕인줄 알았다.

그런데 조르바라는 인간은 이성이 아닌 감성이 시키는 대로 살아가는 인물이었다. 자유인 조르바의 살냄새 물씬 나는 삶은 정말 매력적이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나의 사고를 만드는데 한 획을 그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늘 내 인생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독서 목록의 제일 위에 이책을 올리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감동 받았던 대목이라면 조르바가 젊은 시절 조국을 위한답시고 불가리아인, 터키인들을 무참히 죽였던 일을 이야기 하면서 "내게는 저건, 터키놈, 저건 불가리아놈,이건 그리스 놈,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두목, 당신이 들으면 머리카락이 쭈뼛할 짓도 조국을 위한답시고 태연하게 했습니다. 사람의 목도 따고, 마을에 불도 지르고, 강도 짓도 하고 강간도 하고, 일가족을 몰살하기도 했습니다. ...요새 와서는 좋은사람 나쁜사람 이런식입니다. 그리스인이든 불가리아인이든 터어키인이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나이를 더 먹으면 이것도 상관하지 않을 겁니다. 좋은사람이든 나쁜사람이든 나는 그것들이 불쌍해요.모두가 한가집니다. 태연해야지 하면서도 사람만 보면 가슴이 뭉클해요. 누군지는 모르지만 또 하나의 불쌍한 것이 있구나, 이 자 속에도 하느님과 악마가 있고, 때가 되면 뻗어 땅 밑에 널판지처럼 꼿꼿하게 눕고, 구더기 밥이 된다. 불쌍한것! 우리는 모두 한 형제지. 모두가 구더기 밥이니까." 라고 하는 곳이다. 

 자유인 조르바의 철학이 이 대사 속에 집약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2012년 새해에[그리스인 조르바]를 다시 만났다.

근30년만의 해후였다. 그시절의 그 감동을 다시 맛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아니나 다를까 감동은 없었다. 흥분도 없었다.

감동하기엔 너무 늙어버렸고, 세상에 물들어버린것이다.

 읽어가면서 나도 모르게 평을 하고 있었다. 그 시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고나 할까.

이 소설이 쓰여졌던 당시의 그리스의 국내 상황이나 그리스인의 국민적 정서를 고려해 볼때 정말 잘 된 작품이지만 지금의 시각에서 보자면,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패미니스트들에게 남성 우월주의자라며 욕을 먹었을 지도 모르고 ,지나친 여성비하로 책의 출판이 어려웠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피식 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없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자전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의 [영혼의 자서전]을 감동적으로 읽었던 생각이 살아났다. 내친김에 그 책도 찾아 읽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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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꽃처럼 - 제2판
원경 지음 / 도반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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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처럼[그대, 꽃처럼]이란 시집을 읽고 시심을 품은 행복한 겨울이었다. 나는 일주일에 한 두편씩 동시를 읽고 있다. 그러나 생활에서 시를 멀리한 세월이 참 오래다. 동시를 읽는 것도 글쓰기 모임에서 수업의 시작을 시 두편을 감상하면서 열기 때문에 거의 강제된 시읽기이다. 스스로 마음을 내어 시집을 펴 보기는 정말 오래다. 더구나 유명한 시인의 시도 아니니 ...오늘 가족들과 집에서 가까운 오봉산을 다녀왔다. 산을 오르는 초입에 정안사라는 작은 절이 있어서 하산하는 길에 경내를 돌아보고 왔다. 연세가 지긋하신 노스님만이 절을 지키고 계셨다. 제법 높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스님의 낯빛은 참 해맑아 보였다. 고요한 산사에서 수행정진에 힘써오신 연륜이 느껴졌다.  산속에 있는 작은 절 그 자체로서 시와 그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대, 꽃처럼]을 감상하면서 아름다운 시와 잘 어우러진 그림은 시화전을 감상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원경스님의 맑은 심성과 단아한 모습은 시에서 느껴지는 평안함과 닮아있었다. 산속 암자에서의 생활은 별 다른 노력없이도 그냥 수행이 되어왔던 것일까? 나는 절집에 살아본적도 없고 불교신자도 아니지만 산에 가면 절에 들러게 된다. 그리고 마음이 평화롭다. 시에 나오는 심곡암에서는 꽃피는  봄, 녹음이 우거진 여름, 단풍이 곱게 물든 가을, 눈이 소복히 쌓인 겨울이 산사의 고요에 작은 향연을 열어 평화로운 무릉도원을 만드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계절따라 열리는 산사 음악회라니!! '시도 음악이다'라는 말이생각난다. 시의 운율은 바로 음악인 것이다. 언어로 만든 음악과 소리로 만든 음악의 조화로움... 산사음악회는 회를 거듭할 수록 관객의 발길이 잦아질것 같다. 나도 서울에 살거나 가까이만 살았어도 심곡암 산사 음악회에 꼭 가 보고 싶다.

시집 끝자락의 산문 중 취봉 스님 이야기는 삶을 대하는 태도와 어떻게 살것인가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내가 애송하던 시 한편이 생각났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이형기 시인의 [낙화]라는 시중 일부분이다. 취봉스님의 삶은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생을 가볍고 깨끗하게 마무리 하시는 모습에서 이 시 자체라는 느낌이었다. 아름다운 마무리...

나는 요즘 노환으로 입원해 계신 친정어머니 때문에 병원에 늘 간다. 그곳에서 삶의 끝자락에서 생에 연연하는 노인들을 많이 본다. 재산을 끝까지 움켜쥐고 자식들이 찾아오도록 만든는 추한 모습이나 생명을 연장하는 장치를 온 몸에 주렁주렁 매달고 이생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는 노인들을 보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다짐도 해 보았다. 저렇게는 늙지 말자. 그 마음이 끝까지 변치않도록 힘쓰야 할 것이다. 뒷모습이 아름답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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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수학파일 - 세계사를 한눈에 꿰뚫는
이광연 지음 / 예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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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깊은 구절
수학은 진실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최상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수학에는 조각품이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냉철하고 엄격한 아름다움이 있다. -버트런드 러셀

  학창시절 수학을 잘 한 사람은 별로 없다. 더구나 좋아한 사람은 더욱 찾아보기 힘들다. 수학은 어렵고 지겹지만 중요과목으로 배정되어있으니 억지로 공부했다는 쪽이 대부분이다. 자녀를 둔 부모라면 자식교육중에서도 수학 점수를 올리는데 무척 신경을 쓸 것이다. 좀 심하게 말해서 수학을 잘 하면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기때문이다.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2학년으로 진급을 할때 인문반과 자연반으로 나누게 되는데 수학을 못해서 인문반을 택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수학이라는 과목이 왜 그렇게 점수를 올리기 힘든 것일까? 내가 초등학교때 처음 덧셈의 받아올림을 배웠을 때이다. 학교에서 선생님의 설명을 들을때는 참 쉬워보였는데 막상 집에서 숙제를 해보니 무척 어려웠다. 그때 나는 그 문제가 어찌나 어렵던지 참 수학이 힘들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찌어찌 고민하여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하자 엄청난 희열을 맛보았다. 그 후 나는 수학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풀어서 해결하는 쪽이었다. 그리고 성적을 잘 받아오자 어른들의 칭찬과 격려를 한몸에 받았다. 그러니 더 열심히 하고 더 잘하려고 노력했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잘하고 싶은 욕심도 생기고 잘 못했을 때에는 은근히 자존심도 상해서 스스로를 채칙질하며 열을 올렸던 기억도 난다. 그리고 중,고등학교때 수학선생님이 무척 잘 생긴 총각선생님이었는데, 외모가 출중하지못한 내가 선생님 눈에 띄려면 수학을 잘하는 수 밖에 없었다. 정말 수학을 좋아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였는지도 모른다.

 

 [세계사를 한눈에 꿰뚫는 비하인드 수학파일]을 단번에 읽었다. 손에서 책을 놓기 싫을 정도의 흡입럭을 발휘한 책이었다. 세계사 자체만으로도 흥미진진한 판에 수학적 요소까지 얽혀있다니 더욱 재미있어지지 않는가! 더구나 기원전 몇천년 전에 벌써 수준 높은 수학지식들이 곳곳에 응용되고 있었다니 정말 놀라웠다. 이집트의 피라미드건설에 이용된 작도나 라인강의 범람으로 인한 농토의 분할에 응용된 기하학은 자주 언급되어서 알고있었지만,동양수학이 서양을 앞지른 예들은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된 사실이다. 그리고 수학이 미술이나 건축에 응용된 사례들은 종종 접할 수 있었지만 음악에 까지 이용되고 있는 줄은 몰랐다. 음악가들이 의식적으로 자신의 작품에 황금비를 사용하고 있고, 피보나치 수를 작곡에 다양한 방법으로 적용하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보통 예술하는 사람들은 학문을 특히나 수학을 싫어하는 부류가 아니었나?!

 

 요즘의 수학 교과서를 보니 수학에 얽힌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종종 소개 되어있었다. 아이들에게 수학적 흥미를 유발하기위해서 참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 대다수가 수학을 싫어하고,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인내심 부족이 아닌가 싶다. 현대는 스피드의 시대이다. 정보의 속도도 엄청 빠르고 정보의 양도 엄청나다. 그리고 아이들이 하는 게임을 보면 빠르게 흐르는 화면에서 손가락을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이길 수 있다. 뭔가를 깊이 오래 생각할 여유를 부릴 수 없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러니 정보의 홍수 속에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사는 현대인들은 인내심을 가지고 진득이 해야하는 일을 싫어하는 것이 당연한 지도 모르겠다. 수학성적은 머리가 아니라 엉덩이의 무게에 달려있다는 말도 있다.

최근에는 부모들이 앞장서서 아이들을 사교육 시장으로 내몬다. 초등학교 1,2학년부터 조금만 성적이 떨어지면 학원이나 과외 선생부터 알아본다. 그러기에 앞서 아이 스스로 고민하고 해결해 보도록 기회를 주어야 할 것이다. 아이들이 수학을 잘하게 하려면 수학에 흥미를 유발시켜주는 것이 우선 과제이고, 다음은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쉬운문제부터 차근차근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세계사를 꿰뚫는 비하인드 수학파일]은 수학을 가르치는 일선 교사들과 수학을 배우는 중고생들에게 꼭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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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 읽는 옛집 -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왜 건축에 중독되었는가?
함성호 지음, 유동영 사진 / 열림원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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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태어나 평생을 살면서 한 채의 집을 짓기도 힘든다고 한다. 현대의 시각으로 보자면 집이란 재테크의 수단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부동산 불패의 신화에 집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 지금은 농경사회처럼 경제적 기반이기도 한 땅 즉, 지역을 고수 하지도 않아도 되고, 교통의 편리로 원거리에서도 얼마든지 일을 동반할 수 있기 때문에 한 곳에 머물러 여생을 보낸다는 생각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일까? 정말이지 요즘은 평생을 두고 , 또는 자손 대대로 물려 주려고 집을 짓거나 사는 사람이 드물다. 그러니 살고 있는 집에 철학이 담기기를 또는 철학을 읽기는 힘들다. 아니 불가능하다. 나는 어린시절을 생각하면 태어나 채5년도 살지 않았던  시골 집이 생각난다. 우리 집은 목수이신 아버지가 직접 지으신 집이었다. 우리부모님은 결혼 후에도 큰집에서 한동안 같이 살았다고 한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이었지만 바로 분가를 하지 않았고 남매를 낳고 난 후에 본가에서  골목 하나를 두고 떨어져 있는 작은 집으로 이사 했다가 삼촌이 분가를 하게 되자 내가 태어난 집을 지어서 이사를 하고 부모님이 처음 분가 했던 집은 삼촌댁에 주었다고 한다. 그 마을은 집집마다 배나무가 있어서 동네 이름도 배마을이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우리집에도 배나무가 있었다. 큰 배가 열리지 않고 아기주먹만한 돌배가 열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배나무 다음으로는 감나무가 많았다. 우리집 앞 마당 끝에는 작은 화단이 있었고 담이 있었다는 기억은 없다.  남향으로 ㄷ자로 앉은 우리집은 마당끝이 1미터 이상되는 언덕이었다. 마당에서 1미터 정도 아래에 넓은 밭이 있었다. 아이들이놀다가 마당에서 떨어지면 다칠 위험때문에 마당 끝에 화단을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선조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집을 지었을까?

함성호의 [철학으로 읽는 옛집]을 읽으면서 우리선조들의 자연 사랑을 마음껏 느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은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자연을 마음껏 담은 건축물이 아닐까? 거기다가 지은이의 철학까지 담겼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자신의 철학을 담아 집을 짓고 자신의 의지를 표명한 이름을 붙인 집에서 산다.  자신이 뜻을 세운데로 살수 밖에 없을 듯하다. 정말 멋진 선조들이 아닌가!

다산 정약용 편에서 자신이 머무른 오두막의 당호를 [四宜齋]했다고 한다. 마땅히 지켜야 할 네가지라는 것이다. 자신이 머무른 곳에 당호를 짓고 적극적으로 가꾸며 유배생활을 한 정약용에게서 삶을 긍정하고 적극적으로 현실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돋보인다.

 집을 지을때는 풍수지리를 많이 본다. 이사를 할때 길일을 택하고 대장군이 있는 방향을 피하고 하는 것도 일종의 풍수를 보는 관행일 것이다. 이런 관행이 서양에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동양철학이 음양오행을 중시하다 보니 풍수라는 것을 중시 했다는 생각이 든다. 송시열 편에서 우암 송시열은 풍수적으로 집터로 보여지지않는 곳에 집을 지었다. 그는 풍수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의지로 암서재를 지어서 오늘날 까지 전하며 자신의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풍수라는 것은 하나의 가설이지 절대적인 것은 아닌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윤증고택은 집이란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아야 하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철학으로 읽는 옛집]을 아주 감동적으로 읽었다. 단 p252에 송시열이 파직당한 연도의 오기 1951년과 1953년은 1651,1653으로 고쳐야 겠고, p301황명학은 양명학으로 고쳐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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