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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손
마이런 얼버그 지음, 송제훈 옮김 / 연암서가 / 2012년 2월
평점 :
"검은색에서는 어떤 소리가 나니?" 작가의 아버지가 작가에게 묻는 말이다. 아주 어릴때 청각을 잃어버린 아버지는 색깔에서도 소리가 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대학2학년때 지금의 남편이랑 선배가 아르바이트를 하던 야외 수영장에 놀러갔던 적이 있었다. 남편은 장난으로 수영을 하고 있는 나를 번쩍 안아서 물위에 내던졌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떨어지면서 수면과 오른쪽 귀가 부딪혀서 고막을 다쳤다. 귀가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고막에 천공이 생겼다고 했다. 며칠 치료를 다녔더니 아프지 않았다. 그런데 그후 감기만하면 중이염에 걸렸다. 그러기를 반복하다가 한 5년전부터 오른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 것이었다. 병원에 갔더니 중이염때문에 한쪽 고막이 다 없어진데다가 왼쪽 귀까지 천공이 생겼다면서 고막재생 수술을 권했다. 당장 귀가 잘 들리지 않으니 수술을 하기로 결정을 했다. 그런데 귀에 염증이 있으면 수술이 안된다고 했다. 그래서 수술을 할 수 있는 상태가 될때까지 계속치료를 다녔다. 그동안 잘 듣지 못해서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다.그리고 가족과도 자주 다투었다. 가족들은 한번 말해서는 잘 알아듣지 못하니 자꾸만 다시 말해야 했고 그래도 내가 알아듣지 못하면 됐다면서 더이상 대화하기를 꺼려했다. 그러면 나는 나대로 서러워서 우울증에 걸릴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그때 나는 성당의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보면서 가족들을 원망했다. 그랬더니 신부님께서 결정적인 말씀을 해 주셨다. "맹인중에서는 성자의 경지에 이른 인격이 고매하신 분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농아중에서는 유독 성격 파탄자들이 많다고 하는군요. 맹인들은 보이지 않는 세상속에서 명상하며 자신을 수양하는데 농인들은 보이는 것들에서 많은 오해를 한다는 것이지요. 자매님도 가족들의 마음을 많이 오해 하시는게 아닐까요?" 그 말씀을 듣고 난 참 많이 반성했다. 나의 불편함만 생각하고 가족의 고통은 헤아리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은 고막재생수술이 잘 되어서 잘 들리지만 그때는 참 불편했다. 내가 잘 들리지 않으니까 나도모르게 목소리가 커지면서 남들도 잘 안들리는 줄 아는 것이었다.
농아들이 성격 파탄자들이 많은 것은 제대로 의사소통을 못한데서 비롯됐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 새삼 깨달았다. 세상모든 사람들이 수화를 할 수 있다면 의사소통이 안돼서 청각 장애인들이 오해를 하는 일은 드물 것이다.
[아버지의 손]의 작가 마이런은 부모님이 청각 장애자였지만 아무런 장애가 없는 사람을 부모로 둔 사람들보다 훨씬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자식을 훌륭한 작가로 길러낸 두분이 참 대단하다. 특히 9.사랑에 빠지다 편에서 학교의 프로젝트 수업에서 친구와 공동으로 준비한 수화를 보여주는 부분은 정말 큰 감동이었다. 작가는 어린시절 부모가 농아라는 사실을 친구들에게 숨기고 싶었을 것이다. 그 시대만 하더라도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차별하고 무시하는 일이 다반사였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화로 프로젝트 수업을 했다는 것은 치부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문제를 드러내어 자신만의 개성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정말 아름다웠다.
이 책에서 작가는 수화를 그림에 비유한다. 어머니의 그림같은 이야기를 보고 있노라면 시간가는 줄 몰랐다고 표현했다.
이야기를 보고있는 것이다. 무언의 판토마임을 보는 것처럼.
- 수화는 하나의 완결체로 흡수되며 의미와 더불어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 그날 코니아일랜드 해변의 허공에 그려진 수많은 수화의 파노라마를 돌이켜보면 마치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처럼 수화가 복잡하고 다채롭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허공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였다.그리고 그 치와와의 그림은 아버지가 내게 그려준 수많은 그림들과 함께 내 마음의 갤러리에 걸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