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작품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독자 대부분은 내용에 대해 인문학적 사유를 펼치면서 감동을 주는 요인(상징)들을 찾느라 깊은 상념에 잠긴다.
용케 그런 장면을 찾으면 감탄사를 외치며 칭찬을 주체하지 못하지만, 마음에 와 닿는 부분이 없으면 멀뚱해져서 뭐 이런 것을 작품이라고 하냐며 혀를 차게 된다. 그러나 빌려 쓰는 언어로 문학이 만들어진다는 말에 동의한다면, 낱말(기호)들에서 내용을 보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이전 시대의 수많은 작가들이 같은 낱말들로 이야기들을 수없이 서술해 놓았기 때문에 또 다시 그것을 반복한다는 것은 로브그리예나 한트케 말대로 ˝낡아 버렸고˝ ˝ 서술 불능˝ 이며 ˝무미건조하고 어리석은˝ 일이다. 한트케는 그래서 관객모독의 서술방법에 대해 <나는 상아탑에 산다>라는 소론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 희곡들의 작법은 (.....) 연극 진행을 단어들로만 한정한 것이었다. 단어들의 서로 다른 의미는 사건 진행이나 개별이야기를 방해했다. 연극이 어떤 구체적인 상을 그리지도 않고, 현실을 그대로 묘사하거나 현실이 아닌 것을 현실로 착각하게끔 하지도 않으며, 오직 현실에서 쓰이는 단어와 문장으로만 구성된다는 점, 그것이 이 작법의 핵심이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방법들에 대한 거부가 내 첫 희곡의 작법이었다˝ -75쪽








페터 한트케는 오스트리아 태생 독일 작가이다.
1942년생으로 민음사판 세계문학전집 작가 중 생존해 계시는 몇 안되는 작가이다.
<소망없는 불행><페널티킥앞에선골키퍼의불안>이 책장에서 유혹했지만 꼭 이 작품부터 읽고 싶었다.
제목처럼 관객을 모독하는 작품이다.
무슨 얘기냐하면 연극공연을 하기 위한 희곡작품인데, 등장인물이나 대사가 없다.
대신 끝없이 늘어놓는 언어유희 모음이다.
마치 이상의 단편집 중 <지도의 암실>에서 아무리 꼼꼼하게 읽어도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를 정도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지만,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다는 식?
마지막엔 책의 3장 분량의 욕설 모음을 내뱉는다.
다행히도 초연은 성공리에 환영받았지만 말이다.






작품해설에 나온 이 작품의 배경은 이렇다.
작가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서독 문인들이 독일의 전쟁 범죄 행위에 속죄하는 심정으로 조금도 속이지 않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쓰겠다는 공감대 속에서 만든 문인단체 47그룹 모임에 참석할 기회를 얻었다.
(이들의 문학은 ‘신사실주의문학‘ 또는 ‘참여문학‘이라고 불린다)
당시 그 모임에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하인리히 뵐과 귄터 그라스도 47그룹 문학상을 받고 참석하였다.
요즘 읽고 있는 양철북의 작가이다.
양철북의 주인공 오스카가 세살 생일에 ‘어른들과 거리를 두기 위해‘ 성장을 멈추기로 결심하는 비현실적인 서술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쓰겠다‘는 47 그룹의 문학방향에 어긋난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출판사의 배려덕에 모임에 참여한 이름도 생소한 한트케가 그 기라성 같은 작가들과 비평가들에게 ˝서술 불능이 독일 문학을 지배하고 있˝고 그들의 문학은 ˝무미건조하고 어리석으며˝ ˝ 낡은 서술 문학에서 성장한 것˝이라고 맹공을 펼쳤던 것이다. - 70쪽









한트케는 알랭 로브그리예(질투를 쓴 작가)가 자신이 작가로서 첫발을 내딛는데 대단히 중요한 모범이었다고 한다.
로브그리예는 스위스 언어학자 소쉬르의 언어이론, 롤랑바르트 같은 프랑스 구조주의자 등에 입각해 작품을 썼던 ‘누보로망‘의 대표작가이다.
(소쉬르는 <일반언어학 강의>에서 언어를, 사회 안에서 긴 시간을 두고 축적된 언어(langue, 랑그)와 그 일부를 빌려 쓰는 개인들의 언어(parole, 파롤)로 구분하고, 진정한 언어 연구의 대상은 랑그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언어가 세상 사물과 아무 관계 없는 기호라는 새로운 이론을 제시했다. 낱말이 그 지시 대상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낱말이란 세상 사물과 아무런 관련없는 기호일 뿐이며 기호와 그 의미 관계는 단지 사람들 사이의 약속에 불과하다는 이론은 지금까지와는 너무나 다른 의식을 요구했다. 한트케가 젊은 날 심취했던 형식주의와 구조주의는 소쉬르의 이러한 이론에 기반을 둔 사조다.)
한트케는 새로운 소설을 위한 논리와 문학적 시도를 자신의 논리로 전환시켰다

‘나는 독일어권에서 프랑스 구조주의의 영향을 받은 유일한 작가였다‘라고 말한다.

언어이론,형식주의, 구조주의 등과 같은 외국 사조의 영향을 통해 형성된 그의 문학 이론은 당시 서독 문단을 주도하던 47그룹의 문학 이론과 그 토양이 전혀 달랐다. 글을 쓸때 한트케의 과심은 오직 언어에 있는 데 반해 47그룹 작가들이 열중한 것은 오로지 현실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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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모독은 관객뿐만 아니라 이 희곡이라 할 수 없는 희곡을 읽는 독자까지 모독한다.
모독받고 싶으면 한번 읽어보시라.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지. 하지만 그 모독의 크기는 60여페이지정도의 얇디 얇은 분량 덕분에 참을만하다.
사실 프랑스 구조주의라는 사조에 대해 정말 1도 몰랐다면 이 무슨...잡소리를...이라고 치부했을 것이다.
이런 독자들의 반응을 간파했는지 작품해설에서 비트겐슈타인, 소쉬르를 출동시키며 어르고 달랜다.
그러면서 고매한 지적 허영심을 불어넣어 평정심을 갖추도록 유도한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고도를 기다리며>라든지, <대머리여가수>는 그나마 희곡의 형식이나 갖추고 말장난을 하는데,
이건 뭐 아무것도 없다..그냥 단어와 문장들을 끝없이 늘어놓는다.
아..재미없다. 재미없다.



그런데 말이다....
뭔가가 내 뒤통수를 탁 쳤다.
비트겐슈타인이나 소쉬르의 주장. 뭐 그들의 저서를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아..비트겐슈타인은 서강대 철학과를 졸업한 신해철님이 만든 그룹명으로 잘 알지)
대충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안다.
그리고 ˝우린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해야 한다˝라든지, ˝언어는 만물의 척도이다˝라고 말한 비트겐슈타인이 무엇을 지향했는지 어렴풋이 느낀다.

바로 내가 느끼는 그 어렴풋한 언어학(?)을..
이 작품이 집요하게 ˝바로 이거야. 바로 이거야. 이 바보야 ˝라고 말한 것이다.

비록 재미라곤 찾아볼 수 없었지만,
˝반드시 스토리가 있고, 감흥을 불러 일으키는 것만이
문학(예술)은 아니다˝ 라는 사고의 확장을 가져다 주었다.
세계문학을 읽다보면, 얼척없이 재미없는, 단조로운, 책들을 만나게 될 때도 있다.
이 책은 그런 책들도 단숨에 내치지 않고 이건 필시 그 당시의 어떤 사조나 시대적 흐름에, 또는 주도하는 특이한 작가나 문체에 영향받은거라고 다시 한번 살펴볼 수 있는 너그러운 시선을 선물했다.

한트케야 재미는 없지만 7천원 밥값 했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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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9-16 2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프리쿠키님께서 아이와 함께 하는 열악한(?)독서 환경에서 이런 어려운 책을 읽으셨군요! 대단하십니다. 저는 아이랑 놀 때는 그냥 내려놓는답니다ㅜㅜ

북프리쿠키 2018-09-18 15:07   좋아요 1 | URL

초가을 볕에 야외에서 읽으니 기분좋네요.
아이랑 놀 때는 책 자체를 들고 가지 않아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되네요..ㅎㅎ
훌쩍 커버리기 전에 아이랑 함께하는 소중한 시간에는 책이랑 휴대폰은 가급적 안 들다봐야겠습니다..^^;

꼬마요정 2018-09-16 21: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질투> 읽다가 식겁해서 이런 어려운 책은 좀 더 내공이 쌓이면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마 평생 못 읽을지도 모르죠. 그래도 읽을 거리는 어마무시하게 많으니까요^^

아이와 새, 아이스커피, 따뜻한 라떼, 그리고 물. 너무 멋진 풍경입니다. ㅎㅎ

북프리쿠키 2018-09-20 20:59   좋아요 0 | URL
아~질투 2장 읽다가 살포시 덮어놨는데요ㅎㅎ 컨디션 좋을때 아니면 열어보기 무서운 책이네요ㅋ
꼬마요정님 내공에 어려운 책이 있을까요.ㅎ

딸애와 함께하는 이 소박한 시간이 참 좋으네요^^

cyrus 2018-09-17 12: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트케가 쓴 책은 대부분 분량이 얇아요. 그런데 내용은 재미없어요.. ㅎㅎㅎ

북프리쿠키 2018-09-20 21:01   좋아요 0 | URL
안 그래도 <소망없는 불행>읽어볼려고 펼쳐봤는데 2편의 단편이더라구요.
또 도전해봐야겠어요
읽다보면 좋아지려나~ ㅎ

카알벨루치 2018-09-17 15: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간지가 납니다 딸과 책과 라떼 거기다가 비둘기...이건 이 글을 읽는 나를 포함한 알라디너를 모독하는거 아닙니까 독서하는 장소도 완전 우아 간지 엄지척!!!!ㅋ

북프리쿠키 2018-09-20 21:03   좋아요 1 | URL
오랫만에 광합성 중입니다.
여긴 딸애가 금붕어랑 비둘기 먹이 주는 곳인데.
책 읽기에는 집~쭝이 ㅎㅎ

연국현 2019-10-15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의 건덕지를 찾아볼 수 없는 책이라 서평을 보고 안읽기로 했어요. 감사합니다.
 

지름신 영접.
간만에(늘 꾸준히 찔끔거립니다만) 질렀슴다~
겨울잠 잘려면 쟁여둬야지요 흐흐

위대한 개츠비는 문학동네판이 집에 있는데요.
더클래식판으로 읽고 문학동네판도 있는데.
왜 개츠비가 위대한지 아직 몰라서요
상실의시대에서 3번은 읽어야 된다는데
전3권 사면 되는가 싶어서~
글쎄요. 이번엔 감흥 올려는지요.

조선상고사와 한국통사는 유시민님이 <역사의역사>에서 뽐뿌질해서 구입했구요.
나머지 민음사 책은 중고책 나오는거
기다리다 늙어죽을것 같아 과감히
새책으로 질렀습니다.
뭐~민음사표지 스티커책 굿즈를 받을 목적이기도 하지만요.

이제
저 스티커를 어떻게 사용할지 고민입니다.
아껴놨다가 이사한 집에 서재꾸밀때 사용할까? 아님 우짜지? 하며 사춘기소년이 걸그룹 브로마이드 들고 어느 벽에 바를까 고민하는 것처럼 주저리주저리 궁상을 떨고 있습니다.
전 굿즈에 초연할 줄 알았는데 이 스티커는 민음사빠에게 치명적이네요

주말은 역시 궁상떠는 맛으로 보내는 게
좋은 것 아닐까요~
이웃님들도 서재에서 이 궁상, 저 궁상 떨면서
좋은 밤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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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9-15 18: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저는 쿠키님이 민음사 책을 아예 한 질 사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군요,ㅋ

저 조선상고사/한국통사는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 역사>
뭐 그런 책이었나 봅니다. 어려운 것 같아서 눈길도 주지 않았는데
언제고 읽어봐야겠슴다.^^

북프리쿠키 2018-09-20 21:08   좋아요 1 | URL
현재 총356권에서 16권이 모자르네요. 한질을 한꺼번에 사기엔 제가 좀 못살아서ㅋ
함석헌님 책 몇년째 책장에서 부동자세로 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ㅎ

어렵지 않습니다.
이분들 까칠한 분들이라 시원하이 비판하는 스타일이라 흥미로워요^^

꼬마요정 2018-09-15 18: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존재하지 않는 기사 반가워요 ㅎㅎㅎ

저도 지름신이 강림하셔서... ㅠㅠ 굿을 해야 할까요 ㅎㅎㅎ

북프리쿠키 2018-09-20 21:11   좋아요 0 | URL
이탈로칼비노님 3부작을 완성해놓고 반쪼가리자작만 읽었습니다. 나무위의 남작과 존재하지 않는 기사도 얼릉 읽고 싶어요~

지름신은 굿으로는 안되고,
살풀이 함 해야할듯 싶어요^^

단발머리 2018-09-15 19: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제목도 첨 듣는 책들이 많으네요. 너무 아름다운 책풍경인데, 그 중에서도 <조선상고사/한국통사>는
진짜 지존입니다. 너무 고급져요~~^^

북프리쿠키 2018-09-20 21:12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같이 읽어요ㅋ
동서문화사판이라 가격도 착합니다ㅎㅎ

카알벨루치 2018-09-15 2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전마니어셔요 ㅋㅋ

북프리쿠키 2018-09-20 21:13   좋아요 1 | URL
남들 다 읽은 책 이제사 이러구 있습니다.ㅎㅎ

책읽는나무 2018-09-16 07: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처음 보는 책들이 많네요.
굿즈라 하면 눈이 멀어 버리는 제게 저 스티커가 어떤 그림인지?좀 궁금했습니다.
여유있는 주말 풍경으로 비춰 제겐 주말의 궁상이 아닌 주말의 여유만발로 보여 부럽네요^^

북프리쿠키 2018-09-20 21:15   좋아요 1 | URL
아~나무님 저 스티커 민음사 356권 표지 미니하게 만든 스티커예요ㅎㅎ
저 스티커로 작가별 트리모양으로 계보함 만들어볼까 생각중입니다만, 100만년 후쯤이나ㅠ

카알벨루치 2018-09-22 23:23   좋아요 1 | URL
전 인제 문학동네 스티커북 생겨 붙이고 있습니다 ㅎ

북프리쿠키 2018-10-09 12: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알벨루치님 덕분에 .. 금기에 손을 대고 있습니다.
문학동네도..서서히 모으고 있는 중..ㅠ.ㅠ 이러다 쪽박 차는거 아닐른지...

카알벨루치 2018-10-09 13:11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

카알벨루치 2018-10-09 13:25   좋아요 1 | URL
쿠키님은 번역도 비교해보시니 그래도 될 것같네요 전 하나만으로 족합니다 ~ㅎㅎ 근데 애들 학교 안가는게 늘 느끼는 거지만 힘드네요 ㅋㅋ

북프리쿠키 2018-10-09 13:28   좋아요 1 | URL
아~아닙니다.ㅎ
민음사에 비해 문학동네 출판물이 최근작품이 많더라구요. 민음사에 없는 작품은 문학동네로ㅎ, 열린책들은 자간이 힘들어 전자책으로 ㅎ
 

 

 

2월에 읽은 책 열권중에 <알랭드보통의 영혼의 미술관>과 <순이삼촌>이 최고였지만

딱 한권만 꼽으라면 <순이삼촌>이다.

 

 

1. 새로운 인생(오르한 파묵, 이난아 옮김 / 민음사)

 

 

독서모임에서 읽은 오르한 파묵의 작품이다.

이희수 교수님의 <이슬람><이슬람학교1,2>를 읽으면서 예전부터 꼭 읽어야지 했던 작품이다.

온통 서구의 문물과 정신에 둘러싸여  "나만의 것"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고뇌를 그렸다.

내 머리속에 덕지덕지 붙은 타인들의 웅변들, 그건 내것이 아니기에

이 '가련한 생각'은 심약하고 분명치 않고, 하찮고 깨지기 쉬워서 우린 유리처럼 속이 들여다보이고 부서지기 쉬운 존재들이 아닐까 한다.

분량이 많고, 상징적인 스토리와 문장들이 많아서 읽기가 수월한 책은 아니었다.

그러기에 재독이 필요한,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2.3.4 한병철 시리즈

 

(아름다움의 구원 / 이재영 옮김)

(에로스의 종말 / 김태환 옮김)

(피로사회 / 김태환 옮김)★★★★★

 

 

 

 

- 아름다움의 구원

 

아름다움이 현대 소비문화에 와서 어떻게 변질되어가고 있는가를 통찰해볼수 있는 책이다.

미의 근원적인 이상은 소비되지 않고, 단지 성적대상의 몸으로 아름다움을 구현하여

점점 더 자극적인 매개로 종속시킨다.

 

"미는 매끄러워지고, 소비에 종속된다"

 

아름다움의 가치를 소비의 수단으로 전락시켜 원래의 "아름다움"이 과연 무엇이었는가

한번쯤 되돌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 에로스의 종말

 

"사랑이란 타자의 실존에 관한 근원적인 경험이며, 아마도 현 시점에서 사랑 외에는 그런 경험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에로스의 종말>에 알랭바디우가 남긴 서문이다.

우린 타자와 부대끼고 미워하고 사랑하며 살아가지만, 타자는 여전히 단단한 벽으로 둘러싸인 근접할 수 없는 존재이다.

그리고 실체로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끌고 다니는 육체와 정신은 타자는 절대로 경험해 볼 수 없는 것이다.

AI가 이 미지의 세계에 접속할 수 있는 미래를 열어주기 전까지 타자의 실존을 경험해 볼 수 있는 것은

사랑밖에 없다라는 말 최고로 공감한 책이다.

 

 

 

- 피로사회

 

유명한 사상가와 비평가들을 불러내어 그들의 이론에 요목조목 반박한다.

상당히 매력적이고 자극적인 책이다.

푸코, 발터벤야민,한나아렌트, 조르주 아감벤, 니체,  허먼 엘빌, 아리스토텔레스 등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저작물에 나온 주장들을 파헤쳐 뒤집는다.

어디가서 잘난척하기에 딱 좋은 책이다.

 

"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질병이 있다.(중략) 자기 착취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기본원리로서 타자착취보다 훨씬 효과적이고 더 많은 성과를 올린다. 그러한 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완전히 망가질때까지 자기 자신을 자발적으로 착취하는 것이다" -서문 6쪽

 

많은 부분 공감했다.

입문자들을 배려한 충분한 해설이 없기 때문에 축약된 한 문장을 여러번 용어나 상징들을 찾아보고 고심해야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커피시장이 이렇게나 거대한 적이 있었는가?

현대인들이 카페인에 취해 자발적으로 자기착취하게 만든 게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자발적'이란 말이 어떤 현상에서 비롯된 결론인가?

 

블리자드의 스타크래프트에서 메딕 몇마리 없이 마린이 스팀팩을 난발하며 싸우는 장면이 떠오른 건 나밖에 없었을까.

필살기를 쓰면 생명이 깎이는 걸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생명을 담보로 필살기를 쓰지 않고서는 못 버텨내는 사회를 한병철은 꼬집었으리라.

이 책에서 "자발적 자기착취"는 분명 사회를 탓하고, 남을 탓하는 습관성에 경종을 울린 문장이다. 또한 신자유주의적 착취의 형태가 이렇게 교묘해 질 수 있는가를 통찰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이다.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리는 이 책에 대해서 '불호'의 측면에서 보자면

저자의 작품들이 서로간에 중복되는 내용이 많고, 써먹어왔던 주장들을 반복해 그 감미로움이 조금씩 피로해진다는 데 있다.

또 하나, 책이 얇고 분량이 적은데도 비싼게 흠이다.

한병철 시리즈를 묶어 한권의 책에 여러편을 담으면서, 중복된 주장들을 잘 편집하면 꽤 팔리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철학사에 한 획을 그은 사상가들의 주장을 과감히 비판하고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 용기와 노력에는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5. 알랭드보통의 영혼의 미술관(알랭드보통, 존 암스트롱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이 책은 그가 말했듯이 우리를 교묘히 피해다니던 보다 신중하고 고독한 자아와 만날 기회를 가져다 주고,

예술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을 한층 평온하게 만들어준다.

예술작품을 지적 허영심을 충족하기 위해 대했던 나의 마음가짐에 잔잔한 깨달음을 준 책이다.

물론 지식이 뒷받침되면 시선은 넓어지고, 풍부하게 감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지만,

단지 그것은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우리가 사랑하는 예술은 우리 사회에서 무엇이 사라지고 있는지 알려주는 길잡이다(중략). 도덕적 메시지, 다시 말해 보다 나은 자아로 거듭나라는 메시지는 애초에 우리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듯 보이는 예술작품에서도 발견할 있다" -37~42쪽

 

 

 

 

6. 오뒷세이아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일리아스를 읽고 도전한 책이다.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가는 도중 10년 동안의 모험과 방랑을 이야기한다.

북플지기 이웃님의 글에서 오디세우스가 율리시스와 같은 동일인물이라는 걸 헷갈려했다고 읽은 적이 있다.

나도 항상 그랬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와도 헷갈리기도..

제임스조이스의 콘크리트 두께의 책<율리시스>가 책장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제자리에 꼽혀 있는 것도 6개월째이다.

이 책도 같은 운명이 될 뻔 햇지만, 함께 읽는 이들의 모임에서 선정되어 다행스럽게 읽어낸 것이다.

아마 그때의 기회가 오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는 율리시스 꼴이 되지 않았을까.

일리아스만큼의 육중함은 없지만, 소소한 에피소드가 현대에 변용되어 많은 부분을 차용해 오는 만큼

꼭 읽어야만 하는 책이 아닐까 한다.

페넬로프 물티슈를 쓰고 있는 사람은 특히나 그렇지 않을까?

 

 

 

 

7. 새로만든 먼나라 이웃나라 3 : 도이칠란트

 

 

독일 통일 이전까지는 신성로마제국이었고. 그리고 신성로마제국은 하나의 나라가 아니라 각 지역별로존재하는 지방국가의 연합체였다. 프로이센은 그 지방국가 중 하나이고.

나폴레옹의 유럽 진출로 신성로마제국이 붕괴되고, 약간의 과도기를 거친 뒤 프로이센을 주축으로 신성로마제국의 지방국가들이 하나로 통일하고 독일제국을 선포했다.
그리고 이 때 통일을 거부하고 독립국이 되기로 한 지방국가가 오스트리아이고, 이때부터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나뉜다.

 

책을 읽다보면 당시에 수많은 작은 나라로 쪼개져 있던 독일에 대해 제대로 감이 오지 않아서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읽은 책이다.

당시의 통일되기 전의 독일상황을 알아야지 인접 국가들의 상황을 알 수 있고, 당시 문학과 역사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왠만한 교양서보다 이해하기 쉽고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작품이다.

조카방에서 빌려온 책인데 아직 들고 있네. 얼른 반납할께^^;

 

 

 

 

8.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 사진의 작은 역사 외(발터벤야민 지음, 최성만 옮김)★★★★★

 

 

 

워낙 유명한 책이라 발터벤야민에 관심있는 사람은 이미 다 읽었을 것이다.

특히나 그가 만들어낸 용어 "아우라"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아우라의 파괴, 원본과 사본의 구별, 예술의 정치화에 대해 심도있게 풀어낸 글이다.

사실 이 책은 유명세에 힘입어 읽게 되었는데,

흔히들 얘기하듯이 "이 책을 읽기 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는 하나의 쐐기를 가슴속에 박았다고 할까.

유튜브에 진중권의 강의와 함께 했다.

<미학오디세이>와 궁합이 잘 맞았다.

 

 

 

 

9. 순이삼촌(현기영 / 창비) ★★★★★

 

 

 

 

두려움과 자기검열에 찌들면서 어떻게든 "아니다"라고...한 말씀이

단편 곳곳에 처절한 몸부림으로 속삭입니다.

이 책을 읽기전에 몰랐던 부분.

순이삼촌이 남자가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순이삼촌이 단편집인줄 몰랐던 사실.

 

"그 죽음은 한달 전의 죽음이 아니라 이미 30년 전의 해묵은 죽음이었다. 당신은 그때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다만 30년 전 그 옴팡밭에서 구구식 총구에서 나간 총알이 30년의 우여곡절한 유예를 보내고 당신의 가슴 한복판을 꿰뚫었을 뿐이다."

 

이 책을 읽기전, 영화 <지슬>을 보았고, 딸애와 함께 현기영 문학비를 찾았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난 후 설민석의 제주4.3사건 특강에서 설민석도 울고 나도 울었다.

다행이다. 현기영 작가님께서 누구도 입밖에 내지 못했던 빨갱이 인증 사건을 무려 30여년전에 토해내었고, 비로소 이 정권에서 제대로 가슴에 품었다.

이젠 당당히 가슴속의 응어리를 부르짖고 말하라. 옴팡밭에서 거름더미가 되어간 그들의 목소리를.

 

 

 

10. 민족이란 무엇인가(에르네스트 르낭 지음, 신행선 옮김 / 책세상)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 란 책을 읽고 이 책을 읽어보리라 했는 듯 싶다.

북플지기 이웃 겨울호랑이님의 뽐뿌질에도 일부 현혹되었다.

먼나라 이웃나라 도이칠란트 편을 읽고 읽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이 책은 르낭이 알자스, 로렌지방의 오래된 영유권을 두고 이 땅은 원래 프랑스 땅이란 걸 주장하는 내용이다.

특히 보불전쟁(프랑스와 프로이센 전쟁)이후 프로이센(현재의 독일)에게 빼앗긴 땅이 과연 누구의 땅인가 하는 것을

민족이란 개념을 갖고와서 한참을 설명하는 책이다.

책이란 건 작가의 세계관을 투영시킨 것이지만, 읽으면서 일부 아전인수격인 주장을 내세울때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세계사에서 보불전쟁은 큰 획을 그은 전쟁이란 걸 감안하면 한번쯤은 이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그 배움의 기회를 갖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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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9-15 17: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 <순이삼촌>도서관에서 오늘 봤는데 읽어봐야겠네요 앗사! 율리시스는 한 10년 묵혔네요 헤로도토스의 <역사>도 좀 읽다가 묵히고 있고 <일리아스>는 두껑도 안 뜯고 아.........님 덕에 중고책 몇권 득탬했내요 싸고 좋네요 북푸리쿠키님 라면 🍜 ㅋㅋ

북프리쿠키 2018-09-20 21:17   좋아요 1 | URL
순이삼촌 꼭 리뷰 부탁드립니다.ㅎ 사은품으로 라면을 끓..ㅎ

저도 뚜껑도 안 딴 책들이 즐비합니다.ㅎ
죽기전에 다 읽고 갑시다ㅋ
 

작가는 승리자의 편에 설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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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 빛과 색채의 조형화가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52
안 디스텔 지음, 송은경 옮김 / 시공사 / 1997년 9월
평점 :
품절


여성의 아름다움에 천연색을 입힌 화가.
작년 예술의 전당에서 르누아르 특별전을 감상했는데
책으로 보니 또 다른 느낌이 든다.
후원자(미술상)가 바뀌면서 달라지는 르누아르의 그림변화 위주로 이야기를 이끈다.

그림위주의 이야기를 원했는데
후원자와의 스토리가 많은 분량을 차지해서
아쉬웠다.
하지만 그의 대표작 외에 다양한 그림들을 보면서
기존에 갖고 있던 르누아르를 바라보는 관점이
풍부해지고, 그림뿐만 아니라 인간 르누아르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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