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에 읽은 책 열권중에 <알랭드보통의 영혼의 미술관>과 <순이삼촌>이 최고였지만
딱 한권만 꼽으라면 <순이삼촌>이다.
1. 새로운 인생(오르한 파묵, 이난아 옮김 / 민음사)
독서모임에서 읽은 오르한 파묵의 작품이다.
이희수 교수님의 <이슬람><이슬람학교1,2>를 읽으면서 예전부터 꼭 읽어야지 했던 작품이다.
온통 서구의 문물과 정신에 둘러싸여 "나만의 것"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고뇌를 그렸다.
내 머리속에 덕지덕지 붙은 타인들의 웅변들, 그건 내것이 아니기에
이 '가련한 생각'은 심약하고 분명치 않고, 하찮고 깨지기 쉬워서 우린 유리처럼 속이 들여다보이고 부서지기 쉬운 존재들이 아닐까 한다.
분량이 많고, 상징적인 스토리와 문장들이 많아서 읽기가 수월한 책은 아니었다.
그러기에 재독이 필요한,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2.3.4 한병철 시리즈
(아름다움의 구원 / 이재영 옮김)
(에로스의 종말 / 김태환 옮김)
(피로사회 / 김태환 옮김)★★★★★
- 아름다움의 구원
아름다움이 현대 소비문화에 와서 어떻게 변질되어가고 있는가를 통찰해볼수 있는 책이다.
미의 근원적인 이상은 소비되지 않고, 단지 성적대상의 몸으로 아름다움을 구현하여
점점 더 자극적인 매개로 종속시킨다.
"미는 매끄러워지고, 소비에 종속된다"
아름다움의 가치를 소비의 수단으로 전락시켜 원래의 "아름다움"이 과연 무엇이었는가
한번쯤 되돌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 에로스의 종말
"사랑이란 타자의 실존에 관한 근원적인 경험이며, 아마도 현 시점에서 사랑 외에는 그런 경험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에로스의 종말>에 알랭바디우가 남긴 서문이다.
우린 타자와 부대끼고 미워하고 사랑하며 살아가지만, 타자는 여전히 단단한 벽으로 둘러싸인 근접할 수 없는 존재이다.
그리고 실체로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끌고 다니는 육체와 정신은 타자는 절대로 경험해 볼 수 없는 것이다.
AI가 이 미지의 세계에 접속할 수 있는 미래를 열어주기 전까지 타자의 실존을 경험해 볼 수 있는 것은
사랑밖에 없다라는 말 최고로 공감한 책이다.
- 피로사회
유명한 사상가와 비평가들을 불러내어 그들의 이론에 요목조목 반박한다.
상당히 매력적이고 자극적인 책이다.
푸코, 발터벤야민,한나아렌트, 조르주 아감벤, 니체, 허먼 엘빌, 아리스토텔레스 등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저작물에 나온 주장들을 파헤쳐 뒤집는다.
어디가서 잘난척하기에 딱 좋은 책이다.
"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질병이 있다.(중략) 자기 착취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기본원리로서 타자착취보다 훨씬 효과적이고 더 많은 성과를 올린다. 그러한 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완전히 망가질때까지 자기 자신을 자발적으로 착취하는 것이다" -서문 6쪽
많은 부분 공감했다.
입문자들을 배려한 충분한 해설이 없기 때문에 축약된 한 문장을 여러번 용어나 상징들을 찾아보고 고심해야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커피시장이 이렇게나 거대한 적이 있었는가?
현대인들이 카페인에 취해 자발적으로 자기착취하게 만든 게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자발적'이란 말이 어떤 현상에서 비롯된 결론인가?
블리자드의 스타크래프트에서 메딕 몇마리 없이 마린이 스팀팩을 난발하며 싸우는 장면이 떠오른 건 나밖에 없었을까.
필살기를 쓰면 생명이 깎이는 걸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생명을 담보로 필살기를 쓰지 않고서는 못 버텨내는 사회를 한병철은 꼬집었으리라.
이 책에서 "자발적 자기착취"는 분명 사회를 탓하고, 남을 탓하는 습관성에 경종을 울린 문장이다. 또한 신자유주의적 착취의 형태가 이렇게 교묘해 질 수 있는가를 통찰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이다.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리는 이 책에 대해서 '불호'의 측면에서 보자면
저자의 작품들이 서로간에 중복되는 내용이 많고, 써먹어왔던 주장들을 반복해 그 감미로움이 조금씩 피로해진다는 데 있다.
또 하나, 책이 얇고 분량이 적은데도 비싼게 흠이다.
한병철 시리즈를 묶어 한권의 책에 여러편을 담으면서, 중복된 주장들을 잘 편집하면 꽤 팔리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철학사에 한 획을 그은 사상가들의 주장을 과감히 비판하고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 용기와 노력에는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5. 알랭드보통의 영혼의 미술관(알랭드보통, 존 암스트롱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이 책은 그가 말했듯이 우리를 교묘히 피해다니던 보다 신중하고 고독한 자아와 만날 기회를 가져다 주고,
예술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을 한층 평온하게 만들어준다.
예술작품을 지적 허영심을 충족하기 위해 대했던 나의 마음가짐에 잔잔한 깨달음을 준 책이다.
물론 지식이 뒷받침되면 시선은 넓어지고, 풍부하게 감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지만,
단지 그것은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우리가 사랑하는 예술은 우리 사회에서 무엇이 사라지고 있는지 알려주는 길잡이다(중략). 도덕적 메시지, 다시 말해 보다 나은 자아로 거듭나라는 메시지는 애초에 우리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듯 보이는 예술작품에서도 발견할 있다" -37~42쪽
6. 오뒷세이아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일리아스를 읽고 도전한 책이다.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가는 도중 10년 동안의 모험과 방랑을 이야기한다.
북플지기 이웃님의 글에서 오디세우스가 율리시스와 같은 동일인물이라는 걸 헷갈려했다고 읽은 적이 있다.
나도 항상 그랬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와도 헷갈리기도..
제임스조이스의 콘크리트 두께의 책<율리시스>가 책장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제자리에 꼽혀 있는 것도 6개월째이다.
이 책도 같은 운명이 될 뻔 햇지만, 함께 읽는 이들의 모임에서 선정되어 다행스럽게 읽어낸 것이다.
아마 그때의 기회가 오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는 율리시스 꼴이 되지 않았을까.
일리아스만큼의 육중함은 없지만, 소소한 에피소드가 현대에 변용되어 많은 부분을 차용해 오는 만큼
꼭 읽어야만 하는 책이 아닐까 한다.
페넬로프 물티슈를 쓰고 있는 사람은 특히나 그렇지 않을까?
7. 새로만든 먼나라 이웃나라 3 : 도이칠란트
독일 통일 이전까지는 신성로마제국이었고. 그리고 신성로마제국은 하나의 나라가 아니라 각 지역별로존재하는 지방국가의 연합체였다. 프로이센은 그 지방국가 중 하나이고.
나폴레옹의 유럽 진출로 신성로마제국이 붕괴되고, 약간의 과도기를 거친 뒤 프로이센을 주축으로 신성로마제국의 지방국가들이 하나로 통일하고 독일제국을 선포했다.
그리고 이 때 통일을 거부하고 독립국이 되기로 한 지방국가가 오스트리아이고, 이때부터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나뉜다.
책을 읽다보면 당시에 수많은 작은 나라로 쪼개져 있던 독일에 대해 제대로 감이 오지 않아서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읽은 책이다.
당시의 통일되기 전의 독일상황을 알아야지 인접 국가들의 상황을 알 수 있고, 당시 문학과 역사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왠만한 교양서보다 이해하기 쉽고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작품이다.
조카방에서 빌려온 책인데 아직 들고 있네. 얼른 반납할께^^;
8.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 사진의 작은 역사 외(발터벤야민 지음, 최성만 옮김)★★★★★
워낙 유명한 책이라 발터벤야민에 관심있는 사람은 이미 다 읽었을 것이다.
특히나 그가 만들어낸 용어 "아우라"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아우라의 파괴, 원본과 사본의 구별, 예술의 정치화에 대해 심도있게 풀어낸 글이다.
사실 이 책은 유명세에 힘입어 읽게 되었는데,
흔히들 얘기하듯이 "이 책을 읽기 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는 하나의 쐐기를 가슴속에 박았다고 할까.
유튜브에 진중권의 강의와 함께 했다.
<미학오디세이>와 궁합이 잘 맞았다.
9. 순이삼촌(현기영 / 창비) ★★★★★
두려움과 자기검열에 찌들면서 어떻게든 "아니다"라고...한 말씀이
단편 곳곳에 처절한 몸부림으로 속삭입니다.
이 책을 읽기전에 몰랐던 부분.
순이삼촌이 남자가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순이삼촌이 단편집인줄 몰랐던 사실.
"그 죽음은 한달 전의 죽음이 아니라 이미 30년 전의 해묵은 죽음이었다. 당신은 그때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다만 30년 전 그 옴팡밭에서 구구식 총구에서 나간 총알이 30년의 우여곡절한 유예를 보내고 당신의 가슴 한복판을 꿰뚫었을 뿐이다."
이 책을 읽기전, 영화 <지슬>을 보았고, 딸애와 함께 현기영 문학비를 찾았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난 후 설민석의 제주4.3사건 특강에서 설민석도 울고 나도 울었다.
다행이다. 현기영 작가님께서 누구도 입밖에 내지 못했던 빨갱이 인증 사건을 무려 30여년전에 토해내었고, 비로소 이 정권에서 제대로 가슴에 품었다.
이젠 당당히 가슴속의 응어리를 부르짖고 말하라. 옴팡밭에서 거름더미가 되어간 그들의 목소리를.
10. 민족이란 무엇인가(에르네스트 르낭 지음, 신행선 옮김 / 책세상)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 란 책을 읽고 이 책을 읽어보리라 했는 듯 싶다.
북플지기 이웃 겨울호랑이님의 뽐뿌질에도 일부 현혹되었다.
먼나라 이웃나라 도이칠란트 편을 읽고 읽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이 책은 르낭이 알자스, 로렌지방의 오래된 영유권을 두고 이 땅은 원래 프랑스 땅이란 걸 주장하는 내용이다.
특히 보불전쟁(프랑스와 프로이센 전쟁)이후 프로이센(현재의 독일)에게 빼앗긴 땅이 과연 누구의 땅인가 하는 것을
민족이란 개념을 갖고와서 한참을 설명하는 책이다.
책이란 건 작가의 세계관을 투영시킨 것이지만, 읽으면서 일부 아전인수격인 주장을 내세울때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세계사에서 보불전쟁은 큰 획을 그은 전쟁이란 걸 감안하면 한번쯤은 이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그 배움의 기회를 갖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