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각의 발생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편에서
하이데거는 심오한 철학자라고 여겨져, 철학도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된 지 오래이다,
그것은 사실 그가 우리가 헤아릴 수도 없는 심오한 무엇인가를 통찰했기 때문은 아니다. 하이데거는 자신의 모국어인 독일어가 가진 미묘한 뉘앙스를 가지고 사유했다. 독일어 특유의 미묘한 뉘앙스가 한국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그의 사유를 생경하고 심오한 느낌을 갖도록 만든 것이다. - 83쪽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생각‘은 오직 기대하지 않았던 사건과 조우할 때에만 발생하는 것이라고 한다.
즉, 인간은 분명 생각하는 존재이기는 하지만, 인간이 항상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평소에 습관대로 별 생각없이 하는 행동에 브레이크를 거는 사건이 발생할 때 비로소 ‘생각‘하게 된다.
우린 가끔씩 ˝넌 생각이 너무 많아˝ 라고 말하질 않는가. 때론 ˝미래에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해서 생각하지 마˝라고도 한다.
하이데거의 말이 사실이라면 우린 하루일과 중 생각하는 시간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가 보다.
<존재와 시간>에서 하이데거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낯섦이 찾아오는 바로 그 순간이 우리의 생각이 깨어나 활동하기 시작하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85쪽
하이데거의 통찰은 사물과의 관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에도 적용된다고 말한다.
책에서 강신주는 결혼한 지 오래된 부부를 예로 들고 있다. 서로가 부단히 자신을 새롭게 가꾸고 서로에게 낯섦을 선사하지 않으면 상대방에 대해서 별다른 생각이나 긴장감을 가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친숙함이라는 안정감을 훼손하는 대가를 겪더라도 서로의 존재는 기대하지 않았던 사건과 조우할 때만이라야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 말에 약간의 저항감이 들기도 하지만, 내 자신을 돌아봤을 때 남편으로서 아내에게 얼마만큼의 노력을 하고 있는지. 솔직히 미안한 생각이 든다.
책에서는 도종환의 <가구>라는 시구로 글을 맺는다.
- 가구 - 도종환
본래 가구들끼리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아내는 방에 놓여 있고
나는 내 자리에서 내 그림자와 함께
육중하게 어두워지고 있을 뿐이다.
무서운 일 아닌가? 없을 때는 찾게 되고 있을 때는 서로 무관심한 관계, 즉 가구와 같은 관계라면 말이다.-86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