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년부터 시작된 노벨문학상은 올해 2명을 선정하며 116명을 기록했다.

작년에 선정위원의 불미스러운 일로 한해 건너뛰어 2018년 수상자는 올가 토카르추크(57)이고, 2019년은 패터한트케(77)로 선정되었다.

패터한트케가 선정된 이유는 인간 체험의 뻗어 나간 갈래와 개별성을 독창적 언어로 탐구한 영향력 있는 작품을 썼다"라고 밝혔다. 또 201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토카르추크를 두고선 "경계를 가로지르는 삶 형태를 구현하는 상상력을 담은 작품을 백과사전 같은 열정으로 표현했다"며 선정 배경을 설명했다.

수상자에게는 상금 900만스웨덴크로나(약 10억9800만원)와 노벨상 메달, 증서를 준다. 시상식은 스웨덴의 발명가 겸 기업가이자 노벨상을 창설한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에 스톡홀름에서 열린다.


올해 읽을 책이 또 늘었다.

패터한트케는 <관객모독>이라는 작품으로 만나서 익숙했지만, 올가 토카르추크는 처음 들어봤다.

집에 있는 패터한트케의 책을 사진에 담아본다. 책의 두께를 보면 흐뭇할 것이다.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책 뒤쪽에 이런 글귀가 있다.

"노벨문학상을 받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패터 한트케이다"-엘프리데 옐리네크

그만큼 오랫동안 노벨문학상의 유력 후보자로 거론되어 온 작가다.







아래는 처음 들어보는 올가님의 대표작이다. 이름도 낯설지만 책도...처음 본다...

출판사의 발빠른 대응..<방랑자들> 책 날개에 벌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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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holic 2019-10-10 2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벨문학상은 늘 예상하지 못한 분들이 받는 것 같아요~~

북프리쿠키 2019-10-11 10:43   좋아요 0 | URL
2017년도 밥딜런처럼 이번에도 전혀 예상못했습니다.
그래도, 인기투표 같지 않은 점은 참 좋으네요. ^^

페넬로페 2019-10-11 0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생생하고도 빠른 노벨 문학상 정보!
감사합니다^^

북프리쿠키 2019-10-11 10:47   좋아요 1 | URL
어제 8시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업무보느라 늦게 확인했습니다.
페터 한트케라고 해서 .. 아 이분책..좀..거시기 한데..하면서도 반가웠어요..이번 기회에 읽어볼 동기가 생겼으니...올가님의 책도 문학동네나 민음사로 출판이 됐음 좋겠네요..책 표지가 많이 구리네요...ㅎㅎ

초딩 2019-10-11 0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감사합니다. 여러권 추가했습니다~

북프리쿠키 2019-10-11 10:48   좋아요 0 | URL
읽을 책이 자꾸 늘어나니..좋기도 하고 버겁기도 하고..ㅎㅎ
이렇게 즐기다 가는거겠죠? ^^ 감사합니다 초딩님.

stella.K 2019-10-11 19: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터 한트게가 받을 줄 아셨나 봅니다.ㅎ
독일 사람인 줄 알았더니 오스트리아.
올가는 저도 모르는 작간데 벌써 번역이 나와있네요.
우리나라는 언제 받아 볼까요.ㅠ

북프리쿠키 2019-10-12 12:58   좋아요 1 | URL
오스트리아에서 출생하여 독일로 이주하고 프랑스에 살고 있네요~
한트케도 한때 전후 참여문학을 주도한 47그룹을 두고 서술불능자로 비난하며 어려운 길을 걸었습니다.
문단의 혹평을 받고 그 가시밭길을 걷고자 하는 이가 많아져야 우리에게도 그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까 싶네요^^

 


영화 <조커>를 봤다.

빅토르위고의 소설 <웃는 남자>의 주인공을 모티브로 삼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슬픈데 계속 웃어야 되는 조커의 운명은 영화 속 대사 한마디에 녹아있었다.


"내 인생이 비극인 줄 알았는데, 코미디였어."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의 <파리의 우울>을 읽고 있는데, 14편 [늙은 광대]에 재미있는 주석이 달려 있다.

주지하다시피 보들레르의 파리는 화려한 중심에서 밀려난 소외계층과 경박한 향연을 벌이는 부자들이 뒤섞인 공간이다.





p. 87

그는 사회에서 버림받은 자들이나, 잊힌 자들에게 끌리는 공감을 표현하고 있으며 '가난한 사람들'앞에 보이는 시인의 관심은 위고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

이처럼 '인생의 패배자'들에 대한 그의 태도는 단순히 보호자로서의 태도가 아니다. 그의 태도는 대단히 복잡하며 특히 모호하다.

모든 불행한 자들에게 기우는 그의 관심은 그것이 자비심인지 애정인지, 때로는 잔인하기조차한 강한 호기심인지 그 한계가 분명치 않다.


p.95

시인은 파리의 거리에서 만나는 모든 '인생의 낙오자'들에게 공감하며 자신을 그들과 동류로 생각한다.

비참한 파리 시민들에 대한 그의 관심이 부유한 시민들과 대조를 이루어 부각되는 것이 그의 파리 시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다.

(...)

보들레르는 현대인의 비극을 그리기 위해 기꺼이 광대를 상징물로 사용했다.

광대의 테마는 영화에서도 발견된다.

(...)

광대의 테마는 본질적으로 보들레르의 테마다







보들레르의 파리와 조커의 고담시는 이렇게나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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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9-10-10 0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의 귀에 ‘데아’ 가 다시 울려펴지는 것 같아요. 그 바다를 향한

북프리쿠키 2019-10-10 22:16   좋아요 0 | URL
아~<웃는 남자> 뮤지컬을 보셨구나.
전 아직 못봤네요.. 보고 싶습니다..^^;
 

 

 

 

치누아 아체베(1930~2013)

 

 

 [출처:위키백과]

 

나이지리아 국적의 소설가, 시인, 교수 그리고 비평가

첫 소설이자 대표작인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1958)>은 현대 아프리카 문학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읽히는 작품이다.

 

-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1958)

- 더 이상 평안은 없다(1960)

- 신의 화살(1964)

- 사바나의 개미언덕(1987)

 

아체베는 자신의 소설들을 영어로 썼으며 아프리카 문학에 '식민침략자들의 언어'인 영어의 사용을 옹호했다.

1975년 <아프리카의 이미지:콘래드의 "암흑의 핵심"속의 인종차별>을 통하여 조지프 콘래드를 '잔인한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비판하여 논란이 되었고 2011년 런던의 가디언지는 이 책을 100편의 위대한 논픽션 중 하나로 선정했다.[출처:위키백과]

 

 

 

 

 

 

나이지리아에서 영국식 교육을 받고 자란 아체베는 콘래드의 『어둠의 중심』을 위시한 영국소설들 속 아프리카의 묘사와 재현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소설 속 흑인들은 언어도 없는 미개인이거나, 동물에 가까운 존재였기 때문이다. 서구가 그려낸 아프리카의 모습에 불만을 품은 아체베는 직접 소설을 씀으로써 왜곡된 시선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1958년, 아체베는 불과 28살의 나이로 아프리카 현대 소설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다』를 완성하기에 이른다. [출처:네이버지식백과]

 

 

 

 아체베는 후일 독자로서 "미개인에 반대하는 백인 주인공들의 편을 들었다"고 회상했다.그리고 "백인들은 좋고 합리적이며 유능하고 용기있다. 미개인들이 그들에 대항하는 것은 해롭고 멍청하거나 교활하다. 나는 그들이 몹시 싫다"고 하여 아프리카인에 대해 안 좋은 발언을 하기도 했다.[출처:위키백과]

 

 

 

 

 

 

-------------------------------------------

 

치누아 아체베의 정신 뒤에는 의외로 식민지 언어인 영어사용을 옹호하거나 백인들에 대해 호감을 갖는 발언이 눈에 띈다. 이 발언의 이면을 읽으려면 그의 일생뿐만 아니라 전체 작품을 이해해야만 논지를 읽을 수 있다.

여러 비평에서 암흑의 핵심을 비판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먼저 조지프콘래드의 <암흑의 핵심>을 탈식민주의의 관점에서 삐딱하게 들여다 보는게 중요한 것 같다. 암흑의 핵심을 읽어야지만 아체베의 소설이 보여주고자 하는 정수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으니 하~또 읽어야 할 책은 하나씩 는다.(다행히 얇습니다만)

아체베가 이 작품을 읽고 경악한 부분이 어떤 것인지를 내 스스로 실감하고 그가 아프리카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소설을 통해 어떻게 바로잡아 나가는지 초점을 맞추어야 할 듯 하다.

그저 서구 문명의 침략에 대한 원주민의 전통과 혼을 보존하고, 서구는 악, 아프리카 문명의 본질은 선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로 제3세계 문학을 이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오콩코는 아홉 마을과 그 너머까지도 잘 알려져 있었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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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경제학편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 마을 근처에 있는 월든 호숫가의 숲 속에 집 한채를 손수 지어 혼자 살고 있었다.(...) 2년 2개월을 지냈다.



비교적 자유로운 이 나라에서조차 대다수의 사람들은 단순히 무지와 오해 때문에 부질없는 근심과 심한 노동에 사로잡혀 인생의 훌륭한 열매를 딸 능력을 잃고 있다.



자기 지식을 항상 쉴 새 없이 사용해야 하는 사람이 인간의 성장에 필요한 그 무지의 자각에 어떻게 도달할 수 있겠는가?



여려분은 병들 날에 대비해서 돈을 모으려고 노력하다 병이 들고 만다.



하루종일 기를 펴지 못하고 움츠린 채 남의 눈치나 보며 막연한 불안에 휩싸인 그의 모습을 보라. 불멸이나 신성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평가, 즉 자기 행위가 얻어낸 평판의 노예가 되고 평판이라는 옥에 갇힌 몸이다. 남들의 평판은 우리 스스로가 자신에 대해 내리는 평가에 비하면 허약한 폭군에 불과하다.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것은 그 인간의 운명을 결정한다. 아니 그의 운명을 시사한다.



오늘 모든 사람이 입을 맞추어 진리라고 말하거나 묵인한 것이 내일이면 거짓으로 판명될지 모른다.



사실상 노인은 젊은이들에게 해줄 중요한 충고의 말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들의 경험은 한쪽으로 치우친 것이며, 그들의 인생은 개인적인 여러 이유로 비참한 실패로 끝났다고 스스로 믿기 때문이다.

(...)

나는 이 지구에서 30년 가량 살아왔지만 이제까지 인생 선배들에게 유익한 가르침이나 진심에서 우러난 충고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들은 적절한 말 한마디도 해준 적이 없으며, 그러고 싶어도 그럴 능력이 없었을 것이다.



역사, 시, 신화! 다른 사람의 경험에 대한 독서치고 이 세 가지만큼 경이롭고 유익한 것을 나는 알지 못한다.



사람들이 칭찬하고 성공한 것으로 생각하는 인생은 여러 가지 삶 가운데 한 가지에 불과하다.

왜 다른 여러 인생을 희생하면서 하나의 인생을 과대평가하는 것일까?



내가 월든 호수에 간 목적은 그 곳에서 생활비를 덜 들여가며 살거나 호화롭게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내 개인적인 일(소로의 처녀작 <콩코드 강과 매리맥 강에서의 일주일) 1849의 집필 작업)을 해보자는 데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이란 무엇인지를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것 같다.

그들은 이웃이 소유하고 있는 정도의 집은 자신도 가져야겠다고 생각함으로써 가난하게 살지 않아도 될 것을 평생 가난에 쪼들리며 살고 있다.



이 무렵 나는 손으로 할일이 너무 많아서 독서를 하지 못했다. 그러나 땅에 떨어진 신문지 한 조각은 그것이 물건을 쌌던 것이든 식탁보로 썼던 것이든간에 책 읽는 것만큼이나 큰 즐거움을 주었다. 사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도 같은 역할을 했던 것이다.



만일 어떤 학생이 인간이 반드시 해야 하는 육체노동을 평생 계획적으로 기피함으로써 여가를 얻고 만년에 은퇴 생활로 접어든다면, 그가 얻은 여가는 불명예스럽고 가치 없는 것이며, 그 여가를 가치 있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경험을 스스로 박탈하는 것이다.



나는 또 장사도 해보았다. 그러나 장사가 궤도에 오르려면 10년이 걸린다는 것을 알았고, 그때쯤 되면 나는 도덕적으로 파탄의 길을 걷고 있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실제로 장사가 번성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까지 하게 되었다.



간단히 말해서, 나는 신념과 경험을 통해 우리가 간소하고 현명하게 살 의지만 있다면 이 지상에서 자신을 부양하는 일은 고통이 아니라 오히려 즐거움이라고 확신한다.



사실 나는 어떤 사람이 내 생활방식을 그대로 따르기를 바라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내 생활방식을 제대로 터득하기도 전에 나는 다른 생활방식을 발견할 지 모를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되도록 많은 다양한 인간들이 각기 살아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나는 각자가 나름대로의 생활방식을 조심스럽게 찾아내어 그 길을 갈 것인지,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나 이웃이 가는 길을 좇아가지 말기를 바란다.



자네들이 가진 것이 풍부하거든 대추야자나무처럼 아낌없이 베풀어라.

그러나 가진 것이 없으면 삼나무처럼 자유인이 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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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것이 없으면 삼나무처럼 자유인이 되거라. 라는 말이 와 닿는다.

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속박받고 굴종하는 삶을 택하기 때문이다.

내 주위를 돌아보라.

지금도 충분히 많이 가지지 않았는가.

더 돋보이고, 더 세련되고, 더 감각적인 것들이 오히려 나를 초라하게 만들 수 있다는 마음가짐은 

누가 알아줘서 실천하는 게 아니다. 짜릿한 내 마음속의 평화다. 평온은 우리를 유연하고 강하게 만든다. 그래서 자존감의 상실로 허덕이는 현대인의 찌든 모습처럼 살지 않는다.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비싼 자동차와 명품 옷이 아니라 소박하고 절제하는 습관이고, 기품 있는 눈빛이다.





* 펭귄에서 나온 저 까슬한 촉감의 책. 갖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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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sbird 2019-10-06 13: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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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9-10-10 22:17   좋아요 0 | URL
공감 감사드립니다.^^;

cyrus 2019-10-07 1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돈을 벌려고 열심히 일하다가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난다면 정말 억울해요. 적당히 돈 벌면서 건강하게 살면 좋은데 풍족하게 살만한 수준의 재산을 유지하는 게 어렵네요. ^^;;

북프리쿠키 2019-10-10 22:18   좋아요 0 | URL
충분히 벌어먹고 살만하면 집대출 이자로 알바생 수준 면치 못하지요...ㅠ
적당히 돈 벌면서 건강하게 사는 건..꿈같은 일인가봐요..ㅎㅎㅎㅎ
 



p.7

특정 시대의 습한 공기로부터 충분히 건조되지 않는 책이 자기 시대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으리라.

책에 대해서 시간의 이빨보다 가혹한 형벌을 내리는 것은 책 속에 숨은 곰팡이다.

그 냄새는 죽음보다 더 불명예스러운 것이다. 영원한 젊음과 건강을 얻고 싶다면, 책은 시간에 속하지 말고 시간과 더불어 와야 한다.

영원한 젊음과 건강을 얻고 싶다면, 책은 시간에 속하지 말고 시간과 더불어 와야 한다.

그런 책들이 지금 우리가 다시 읽고 써야 할 고전이 아닌가.




p.8

내가 니체를 만난 건 그의 시대가 아니라 우리 시대이기 때문이다.

가령 "현대의 모든 철학적 사유는 정치적이고 경찰적이다"라고 니체가 말할 때, 나는 "당신의 시대에도 그랬어? 우리 시대에도 그런데"라고 하지 않는다. 나는 그냥 "정말 그래!"라고 맞장구 칠 뿐이다. 우리의 대화엔 시차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말하는 그 순간에 나도 듣는다.




p.10

정작 두려운 것은 차라투스트라의 노래가 아니라 당신이 계속 듣고 있으면서도 듣지 못하는 우리 시대의 노래이다.

정작 두려운 것은 저 먼 데서 들려오는 유혹의 노래가 아니라, 너무 중독되어 그 중독성조차 모르는 우리 시대의 소음과 습속들이다.




p.11

필요한 건 생각을 뒤집는 것, 그것뿐이다.

니체는 전체집합 U를 미지수 X로 바꾸는 데 능숙한 사람이다. 적혀 있던 답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미지수가 들어서는 것을 보며 사람들은 '위험하다'고 말한다. 미지수 X위에서 살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의문 부호를 들고 찾아온 한 사상가로 인해 우리의 삶이 대단한 위험에 빠진 듯 허둥댄다. 그러나 답이 사라질 때 오답도 함께 사라진다는 걸 알아야 한다. 삶을 꿰맞추는 건 끝났다.

이제 우리 삶을 위해 답이 수정될 것이다. 당신의 삶도, 당신이 사는 세계도 말랑말랑한 진흙덩어리로 당신 앞에 놓여 있다.






----------------------------------------------------------------------------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 작품을 읽기 위해 몇 번을 집어 들었지만, 아직 시작하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재미가 없어 보였다. 짧은 일화를 통해 경구를 전달하는 형식 또한 좋아하지 않음은 물론.

재미가 없어도 깊이가 있는 책은 잘 읽어내는데, 이 책은 그 깊이조차 가늠할 수 없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한몫했다.

종이 위에서 폴폴 날리는 가벼운 감상으로 글자만 따라가다가  "읽었다"는 자기만족으로 덮어버렸을게다.

니체를 공부하고 니체의 저작을 읽는다는 것은 사실 독서가에겐 폼잡기 좋은 일인데도 

한번도 나를 찾아온 적이 없다. 왜 그랬을까? 

책을 읽는다는 것은 책을 쓰는 작가들의 피땀어린 고뇌만큼 집중과 해석을 필요로 한다.

나의 독서란 그 고뇌만큼 깊이 내려가고 있었던 게 아니라 짐짓 엄숙한 척 무거워지고만 있었던 건 아닐까?


오답이 가득한 답안지를 걷어내고, 빈 여백으로 두자.

마킹으로 가득한 답안지에 아무리 좋은 책을 읽고 사유한 들 무엇하랴.

정해진 편견과 습속으로 무장한 채 수많은 고전에서 떠들어 온 지성의 칼들을 방패로 막아온 삶을..조금씩 변화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답이 사라질 때 비로소 오답도 함께 사라진다는 말. 너무 멋진 말이다.


"너는 너 자신을 멸망시킬 태풍을 네 안에 가지고 있는가? - 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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