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창문 너머 예술 - 창을 품은 그림, 나를 비춘 풍경에 대하여
박소현 지음 / 문예춘추사 / 2025년 7월
평점 :
" 작은 창문으로 본 세상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와닿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창문은 커지고, 시야도 넓어진다. 예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점점 눈에 들어오면서 내가 경험한 세상보다 더 큰 세상이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마침내 창문 너머에서 벗어나 진짜 세상으로 걸어 나가면, 이 방대한 세상에서 자신이 얼마나 아무것도 아니었는지 깨닫게 된다. 모든 것들에 그저 감사한 마음만 남는다. 170"
어릴 적 살던 주택의 창문은 이런저런 스티커를 붙여놓아 빛이 비스듬히 들어오는 어느 오후면 알록달록한 색이 방바닥에 번져나가곤 했다. 요즘식으로 말하면 창꾸를 했던 셈이다. 그렇게 꾸며진 창문틀은 겨울이 되면 나만의 냉장고가 되곤 했다. 창틀에 올려두어 차가워진 커피우유나 탄산음료를 따뜻한 방에서 바로 꺼내 마시는 것이 좋아 덜 닫힌 겉창으로 찬바람이 새어들어오는 것도 몰랐다. 특히 방에서 나와 부엌 냉장고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좋았다.
지금 사는 집을 보러 왔을때 바깥에서 이리저리 둘러보며 확인했던 것이 창을 통해 집안이 얼마나 잘 들여다보이는가 였다. 불 켜진 집 안은 웬만한 고층이 아니고서야 밖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의외로 훤히 들여다보이기 때문에 어떻게 조심해서 생활해야 할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창 밖의 시선이 덜 신경쓰이는 낮에는 반대로 블라인드를 열어두고 창 안에서 밖을 바라보곤 하는데 그때 보이는 풍경이 마치 그림같단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이렇듯 창을 의식하고 있었던 오래된 기억들과 일상의 순간들이 모여, 어디에든 철학이나 예술이란 말이 붙으면 괜히 더 궁금하고 알고 싶어지는 마음과 얽힌 덕분에 '창문 너머 예술'이란 제목이 한눈에 들어왔다.
혹시나 어렵거나 낯선 작품들을 만나게 될까 싶었는데, 금방 샤갈의 그림을 발견하고 그 친숙함에 반가움을 느끼며 시작할 수 있었다. 특히 그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억압을 받으며 러시아에서 파리로, 파리에서 미국으로 이동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들을 얼마 전에 읽었던 '여행 면허(패트릭 빅스비 저)'라는 책에서 상세히 봤었기 때문에 그 기억이 되살아 나 도움이 되었다. 더불어 요즘 한가람 미술관에서 샤갈의 특별전*도 진행하고 있으니 '창문 너머 예술'을 인상깊게 본 독자라면 발걸음을 옮길 곳이 분명해질 것이다.
" 마티스는 아멜리의 초상화도 여러 번 그렸지만 한 번도 그녀의 마음에 들게 그린 적이 없었다. 자신의 본모습보다도 못하게 묘사되는 초상화를 보면서 어쩌면 남편이 자신을 아름답게 여기지 않거나, 혹은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78"
사진을 잘 찍는 법에 대해 말할 때 대상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꼽는다. 물론 기술과 타고난 미감, 마땅한 순간을 찾는 인내같은 점들도 중요하겠지만 애정을 바탕으로 대상의 장점을 끌어내야 함을 강조하는 가르침은 잘 알려져있다. 현대의 사진처럼 과거 그림으로 대상을 표현하던 때에도 비슷한 요소들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남편이 그린 자신의 초상화를 보고 애정을 의심하던 아멜리의 마음이 짐작된다.
고등학교 시절 미술 시간 두명이 짝을 지어 상대방의 얼굴을 그리는 실기 과제가 있었다. 내 짝은 그리 친하지 않았지만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귀여운 미인이었는데, 그 애의 얼굴을 최대한 비슷하게 그려냈더니 '지나치게 예쁘게 그렸다'는 이유로 그리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그 애를 예쁘다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예쁜 모델이었는데 예쁜애를 예쁘게 그렸다는 이유로 점수가 깎였던 것이 꽤 분했던 앙금이 있다.
점수야 어찌되었든 그 애는 자신을 그린 그림을 마음에 들어했었고, 고마워했었다. 그 애의 이름은 잊었어도 그때 그림을 그리기 위해 유심히 바라보았던 그 얼굴만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마티스 역시 아멜리와의 불화, 사소한 다툼들은 시간이 지나 잊었어도 그녀를 그리며 바라봤던 얼굴, 그 날의 공간들은 계속해서 기억하지 않았을까. 예쁘게 그렸다고 점수를 깎일 일도 없는데 왜 굳이 아내의 얼굴을 실물보다 더 못나게 그렸는지 그 마음은 모르겠지만.
'창문 너머 예술'은 저자의 일상과 다양한 생각들이 작품과 엮여 마치 일기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그림과 예술작품에 대한 설명만이 주를 이루는 형식이 아니고 방송과 관련된 일을 해온 사람이라 SNS와 유명인, 대중들과 관련된 생각을 담아낸 내용들도 자주 등장한다. 어떤 문장에선 적지 않은 압박감과 괴로움이 아직도 풀어지지 않은 채 고스란히 묻어나는 듯해 많은 생각이 오갔다.
" 누군지도 모르는 존재들에 휘둘려 내 마음을 감옥으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제 발로 그 감옥에 들어가기도 하고, 몇 글자의 댓글로 누군가를 그 감옥으로 보내 버리기도 한다. 의도가 의심스러운 한심한 댓글을 보며 비웃다가도,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구나 싶은 마음에 우쭐해지기도 한다. ...중략... 가감 없이 감정을 표출하는 사람들은 상처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투사처럼 보인다. 위로받으려고 올린 글에도 돌을 던지는 사람들, 누군가를 흠집 내려고 올린 글에 신나서 몰려드는 사람들, 그런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건지, 그걸 읽는 나도 있긴 하지만. 누군지 모르는 존재들에 끊임없이 휩쓸린다. 가끔은 나도 그들과 우르르 몰려다니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섬뜩하다. 39"
" 우리는 매일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세상과 소통한다고 믿지만, 그 안에만 머물기에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 온 셈이다. 59"
아무런 이름도 대단한 방문자들도 없는, 별 볼일 없이 소소한 나의 SNS에도 본인의 오해로 굳이 무례하고 원색적인 말을 남겨두는 사람이 간혹 있다. 하물며 더 많이 불특정한 타인에게 노출되고, 관심에 기민히 반응 해야하는 이런 유명인들은 또 얼마나 고단한 일들을 겪었을까 싶었다. 요가(145)를 통해 자신의 몸을 일깨우고, 그림을 보고 글을 쓰는 시간을 통해 내면을 살펴보며 채워온 시간들이 책에 함께 녹아있어 공감하며 읽었다.
책에서 소개된 수많은 작품들 중 가장 마음에 남은 작품은 빌헬름 하메르스회의 <햇살에 춤추는 먼지 티클>이란 그림(105)이다. 왜 이 그림이었을까 생각해보니 책을 읽는 동안 반복된 '우리는 어떤 공간을 꿈꾸는가? (180)', '"어떤 풍경을 마음속에 품고 살아가는가?"라고 하이데거가 물었다. (177)'는 질문에 대한 답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듯 하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 물건들로 차있지 않은 넓고 조용한 공간에 대한 바람이 투영된 끌림이었다.
<햇살에 춤추는 먼지 티클>은 그저 창과 창을 통해서 들어오는 빛이 그려진 그림인데, 사실적인 빛에 대한 묘사도 좋았지만 그 공간이 비어있다는 점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그가 표현한 다른 실내 공간들도 정적이고 정갈한 것을 보면, 미니멀리스트의 삶을 추구했는지 모르겠다. 또다른 작품인 <달빛, 스트렝게제 30번지>는 햇살이 들어오던 창의 그림과 같은 공간을 두고 시간적 배경이 달라진 것만으로도 한층 무거운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다른 인상으로 공간의 감상을 변주하는 점이 재밌다.
'창문 너머 예술'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다양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 내용이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예술 작품과 예술가에 대해, 그리고 저자의 생활까지 함께 녹아들어간 글이라 부담없이 감상을 나눌 수 있는 책이다. 예술이란 말에 거리감이 느껴져 망설이던 독자라도, 그저 어느 날 블라인드를 걷어 창문 밖을 바라보듯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시선으로 책장 안의 예술 작품들을 넘겨 보아도 좋겠다.
*마르크 샤갈 특별전: BEYOND TIME 5월 23일(금) ~ 9월 21일(일) 한가람미술관 제1,2전시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