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국의 어린이들
이영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5년 8월
평점 :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 '어린이'에 대한 인식이 태동하기 시작했던 것에 비해, 지금은 어떠한가. 우리 사회는 그보다 훨씬 발전하고 윤택해졌지만 어린이에 대한 의식은 다시 퇴보하고 있다. 오히려 어린이의 미성숙함에 대한 몰이해,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양육관, 복지의 사각, 노키즈 존, 일관성 없는 교육 정책, 폭력/선정적 콘텐츠에 무분별한 노출 등 사회 안에서 어린이를 방치하고 지우는 것에 더욱 몰두하고 있는지 모른다. '제국의 어린이들'을 보며 왜 지금 다시 '어린이'이고 '강점기의 어린이들'인가를 생각했다. 특히나 광복 80주년을 기념하는 시기에 "일본인 어린이들 글에서는 전쟁이라는 국가의 짐을 내려놓은 모습이 보일 것이고, 검열을 마친 조선인 어린이들 글에서는 민족 해방이라는 짐을 내려놓은 모습이 보일 것(32)"이라는 시선의 진위여부와, 방향성이 납득 가능한 것일까 의문을 가진 채 읽었다.
전쟁과 식민지배와 같은 현실은 '아무 죄 없는 아이들'과는 별개의 문제로 봐야함이 맞을까. 일반 시민의 삶은 세상의 거대한 흐름에 그저 휩쓸릴 수 밖에 없다는 것에는 공감한다. 어린 아이라면 더욱더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속한 세상의 현실을 일상과 생각을 표현한 글에 담아내지 않고 있다면 그것이 과연 "완전한 '개인'의 형성을 목표로 '어린이다운 표현'에 중점을 둔(32)" 결과물이 맞을까. 가장 우수작으로 선정된 [수업료]마저도 일본에서는 식민지 조선 아이만을 대상으로 수업료를 걷는다는 차별성 때문에 드러내놓고 소개하기를 꺼렸다고 하는데, 글이 쓰여지는 과정에서 선정되는 기준에서 추구하는 주제의식이 오히려 더 분명하지 않았을까. 이 경연대회의 진의가 불미스러운 차별과 억압이 존재하는 식민지 현실을 외면하기 위한 수단이었는지 혹은 이미 세뇌되어 인식조차 되지 않음인지 살피며 읽었다. 어쩌면 이를 의식하는 것은 현재의 독자가 강점기를 역사적 관념으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고, 과거의 아이들 세계에는 그를 초월하는 순수성이 살아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기획인지 알고 싶었다.
" 물론 조선총독상 글짓기 경연대회에서 조선인 어린이들이 출품한 작품들이 일본인 어린이들의 그것보다 훨씬 더 '착하고 어른스러워' 보이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 아이들이 열등한 식민지인의 콤플렉스를 일찌감치 내재화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저 선생님의 사랑을 얻고 싶었을 수도 있다. 혹은 이 대회 심사위원들이 이런 주제 의식을 가진 작품들만 가려 뽑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62" 책에서도 같은 부분을 지목하고 있지만 두 나라 아이들의 글을 통해 생활상을 비교 분석하는 내용을 보며 불쑥 공감하기 어려운 마음이 들 때가 종종 있었다. 특히 " 일본의 패전은 그동안 일본인과 조선인 사회를 하나로 묶어 왔던 제국의 이념과 가치관을 한꺼번에 무너트렸고, 이 변화는 조선 반도에 커다란 혼란을 가져왔다. 패전을 며칠 앞뒀을 때부터 하얀 옷을 입고 길거리를 당당하게 걷던 조선인들을 보며 불안을 느끼던 재조 일본인들은 두려움 속에서 숨죽여 지내다 일본으로 돌아가야 했다. 312" 같은 내용은 남의 땅을 식민지 삼아서 배불리고 살다가 패전 후에 살아서 돌아갈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다행일텐데, 두렵고 어쩌고 얼마 되지 않는 재산만 가지고 돌아가야 했다는 구구절절이 읽는 마음을 더 좁아지게 만들기만 했다.
'제국의 어린이들'은 과거 어린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시대와 생활을 엿볼 수 있다는 장점과 성숙하고 순수한 표현이 돋보이는 글짓기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는 매력을 가졌다. 하지만 글 하나하나를 살피는 동안에도 눈 앞에 펼쳐진 장면 밖의, 숨겨지거나 생략된 배경을 짐작해 그려보려는 시도를 멈출 수는 없었다. 일본 아이들에게 패전 이후 반성과 교육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지난날의 과오에 대한 인정과 사과, 책임이 없고, 조선 아이들에게 광복 이후 '파시즘적으로 주입된 식민지 의식 교육(227)'과 친일행위자들에 대한 제대로 된 청산이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도 잡음이 나오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곱씹게되었다. 우리의 광복에 대해서도 일본인들은 원폭피해와 패전으로 기억할 뿐, 전쟁과 식민지배 가해자로 인식/인정하지 않고 있지 않은가. 저마다의 마음을 담은 아이들의 소담한 글을 기껍게 읽으면서도 세상의 어두운 부분에서 시선을 옮길 수 없었던 것은 아쉬웠다. 문득 지금 시대의 아이들은 어떤 글을 쓸까 생각하게 되었다. '한국의 어린이들'이란 공모가 있다면 여전히 놀랄만한 순수와 예상치 못한 감동을 줄 수 있을까 궁금함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