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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시대 - 독립을 넘어 쇄신을 꿈꾼 식민지 조선 사회주의 유토피아
박노자 지음, 원영수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평점 :
'붉은 시대'는 확실히 어렵다. 다만 극우 민족주의와 결합한 자본주의의 종말을 내다 본 4장에서의 '박치우'와 관련된 내용이 아니라면, 끝내 그 어떤 흥미를 갖지 못한 채 책을 덮었을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전작 중 인물들에 대한 탐구를 한 '조선 사회주의자 열전'이 떠올라 지난 저작이 독립과 사회주의에 힘쓴 인물들을 조명했다면, 이번 '붉은 시대'는 그 시대의 흐름 자체- 사상 분파 궤적과 조선 시대의 전반적 사회분석 등 폭넓고 깊게 접근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개인적으로는 민족 개념에 대한 정리가 되어있고 현재의 남한과 북조선의 상황이 담겨 있는 5장의 내용이 가장 접근하기 좋았기 때문에, 혹 '붉은 시대'를 시작하려는데 벽이 느껴지는 독자라면 5장의 내용으로 책을 시작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1898년 민족이란 단어가 들어온 이후 "민족이 국민보다 더 넓은 개념, '국민'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여성과 청소년도 포함하는 개념(198)"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은 인상적이었다. 지금과는 결이 다른 주제가 되었지만, 민족 간 결혼의 적합성에 대한 시선이 같은 민족주의 사상가들 사이에서도 서로 다른 견해를 보이는 내용도 흥미로웠다.
현재 동아시아 국가간의 관계가 어찌되었든 한국의 '붉은 시대'를 이야기함에 있어 일본, 중국, 러시아 등 각 국가별 상황에 대한 내용이 빠질 수는 없었다. 시대적으로 1900년대 초중반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일본과 강점기 상황의 특수성이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지만, '6장 1945년, 김사량의 중국 해방구 관찰'과 '7장 조선인 여행자의 눈에 비친 붉은 수도 모스크바' 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 중 7장 러시아에 대한 내용이 새로웠다. 인종, 문화적으로 일본이나 중국보다 더 차별적이기도 하고 특히 성평등의 관점에서 차이가 두드러져 흥미로웠다.
" 조선인 목격자들의 관점에서 일부 주목할 만한 변화는 남녀 관계의 영역에서 일어났다. 공산주의에 경도된 목격자들은 여성이 작업장에서의 자기실현과 모성을 결합시킬 수 있도록 고려한 모성 보호 제도와 사회화된 어린이 보육 시스템에 찬양을 아끼지 않았다. 258" 는 내용이나 "소비에트는 남녀 모두에게 선거권을 부여했다. 264"는 내용과 더불어 성노동자에 대한 제도와 문화적 차이가 함께 설명되어 페미니즘의 시류와 여성의 인권이 어떻게 다뤄지고 있었는가 생각해보게 되기도 했다.
책장 안에서 한참을 골몰하다 보면 저자에 대해 생각이 미치고, 읽는 동안 역사와 사회에 대한 이해도가 왜 이토록 낮은가 자괴감이 드는 동시에 왜 독자들에게 이런 괴로움을 안겨주는가 고민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해방과 건국 당시 새로운 한국 사회를 형성하는데 있어 큰 틀을 차지했던 공산주의운동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부족했음을 절감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을 접하기에 앞서 도움이 되는 평을 구하고 감상을 나누기 위해 글을 살폈을 독서가들에게, 배워가는 마음으로 천천히 읽어나가는 과정에서 남기는 후기의 부족함에 양해와 더불어 도움의 첨언을 바란다.
전세계적으로 심각한 극우화 현상이 나타나고 혐오와 차별의 정서가 만연해지는 근래의 분위기는 언급된 1919년과 또 다른 '전 지구적 반란의 해(14)'가 아닐까 싶다. " 대공황과 또 한번의 세계전쟁이 분출한 인종-민족주의적 "전체주의"의 광풍 속에서 객관성과 보편성을 강조하는 진보적 근대 문화 전체의 소멸(31)"을 지켜보던 1940년대 임화의 상황과 위태로운 지금의 국제정세는 비슷한 불안감을 야기한다. 때문에 왜 지금 '조선의 붉은 시대'를 재조명하는가 다시 돌아보면 '과거는 현재를 구할 수 있는가'를 묻는 질문에 대한, 자본주의의 위기와 극우화를 향한 쇄신의 길을 제시하려는 저자의 답변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