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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환
앨러스테어 레이놀즈 지음, 이동윤 옮김 / 푸른숲 / 2025년 7월
평점 :
"당신도 거기 있었고, 나도 거기 있었고, 다른 사람들도 거기 있었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었습니다." 222
읽는 동안 손에 쥐었다고 생각했던 티켓이 이게 맞았는지 몇번이나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책을 읽기 전에 나도 책을 읽고 나서 다음 탑승자들을 유혹할 수 있는 세이렌이 되어 보겠다 했는데, 그게 복선이었을까. 우주로 나갈 것이라 생각했는데, 탑승하고 보니 배였다. 어긋나는 디테일과 어딘지 모르게 찜찜한 대화들 속에서 성격이 급한 사람은 책장이 느리게 넘어가는 것만 같아 조급했다. 이게 넷플릭스라면 배속을 했을텐데, 궁금한 마음을 읽는 속도가 따라가지 못해 원통했다. 먼저 '대전환'을 읽은 사람들의 후기를 보면서 정말, 그렇게 재밌다고? 싶었는데 흐름의 '대전환'을 맞이하는 순간부터 정말, 그렇게 재밌어졌다.
"이번에는 그 때문에 죽을 것 같지 않습니다." 155
세계의 균열을 몇번이나 반복하는 동안 기묘한 불쾌감이 신경을 자극한다. 처음엔 타임리프 장르일거라 생각했는데, 게임 속 가상 현실인가 싶기도 했다. 게임을 많이 해보지 못해서 잘 모르지만 이야기 흐름이 있고 캐릭터가 퀘스트를 따르며 엔딩을 깨는 류의 게임에선 자유도에 따라 멀티 엔딩을 볼 수 있는 게임이 있는데, '캐릭터-사일러스'가 죽으면 새로 이야기가 반복되면서 진 엔딩을 향해 전개되는 것이 비슷하게 느껴졌다. 그도 아니라면 여러번 반복되며 업을 끊어야만 벗어날 수 있는 삶의 윤회인가 싶기도 했다. 한명씩 같은 것을 느끼는 인물을 골라내고, 단어 하나가 다르게 쓰인 대사를 골라내면서 이들의 차이점이 뭘까, 구조물과 반복 사이에는 대체 어떤 연결점이 있는 것일까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궁금했다.
이 세계의 반복과 변주는 멀티버스 세계관을 보여주는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떠올리게 한다. 각기 다른 멀티버스에 존재하는 사일러스들의 파멸을 지켜보다, 세계의 '균열'과 함께 느껴지는 위화감이 다층구조가 아닌 [매트릭스]**의 가상현실 속에 있는 것 같은 의심을 품게 한다. 사일러스를 끊임없이 자극하는 불편함-코실과 위화감-라모스의 존재가 무의식을 일깨우며 독자를 향해 메시지를 보내오는 것도 같다. 이 반복은 무엇을 위한 장치일까? 진실로 인도하기 위해서? 진실을 가리기 위해서? 진실을 파헤쳐가는 항로 위에서 독자는 진실 그 자체를 의심한다. 같은 것을 보고도 우리는 다르게 해석한다. 내가 보는 것과 남이 보는 것이 반드시-대부분 일치하지 않는다. 진실은 그대로이지만 진실을 해석하는 시선에 따라 달라진다. 다만 같은 것을 보고 있다는 믿음-합의가 이 왜곡을 왜곡하여 같게 만든다. 심지어 요즘 사용하기 시작하는 챗gpt의 인공지능마저 자신의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거짓 정보***를 섞는다. 대전환 안에는 그런 오류와 오작동이 들어있다. 그리고 책에서 주는 정보를 독자가 해석하는 동안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한다.
내용을 잘 모르고 읽을수록 재미가 보장되리라 확언할 수 있는 것이, 우주선 티켓인줄 알았는데 타고보니 배여서 어리둥절했다가 '아!'하는 순간부터 싸악 도파민이 돌았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지는 사람은 바로 그 마음 그대로 '대전환'을 읽어보길 바란다. 바라기로는 반드시 영화로 만들어졌으면 좋겠는 영화 2025년 선정 세 손가락 안에 꼽는다. 이 내용을 영화로 만들지 않으면 대체 무슨 작품을 원작으로 삼아 영화를 만들겠는가. 탄탄한 스토리에 영상으로 만들었을때 매력이 더욱 살아날 상황들이 많고 한국인 관객들이 좋아할만한 요소가 가득이라, 이건 된다 싶은데 책표지에 영화화 관련 문구가 없어서 오늘부터 영화화 확정되길 기도 시작하기로 했다. 같이 기도할 파티원 구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말 못하니 빨리 '대전환'하시길.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2022
**매트릭스 The Matrix, 1999
***인공지능 환각 AI Hallucination 인공지능이 실제 데이터나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정보를 생성, 제공하는 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