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그 너머로 - 지구와 태양계, 그리고 블랙홀까지 우주를 가로지르는 아찔하고 흥미로운 지적 모험
닐 디그래스 타이슨.린지 닉스 워커 지음, 김소정 옮김 / 현암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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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탐험과 탐사가 불러오는 필연적인 결과는 아는 것과 아직 발견 하지 못한 것을 구분하는 미지의 경계가 점점 더 넓어진다는 것이다. 현재 인간은 우주 깊숙한 곳에 머물고 있다. 그 우주를 다채로운 내용물과 완전히 텅 비었다 말할 수 없는 공간이 채우고 있다. 그러나 그 우주 밖에 있는 광활하고 경이로운 미개척지에는 여러 기이함과 함께, 인간이 모의실험 중인 우주에서 살고 있는지, 우리 우주가 무수히 많은 다중 우주 가운데 하나인지 같은 질문에 대답해 줄 지식이 있다. 수수께끼는 계속 늘어가고 이 미개척지에는 경계가 없다. 우주로 가는 여정은 끝나지 않는다. 279"

 
누군가 나를 붙잡아두고 가르쳐주지는 않지만 영화나 텔레비전의 강연 등을 보면서 접하게 되는 알듯 말듯한 우주의 세계는 언제나 매혹적이었다. 끝이 없이 광활한 공간을 조금씩 개척하고 파악해나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이, 그럼에도 앞으로 더 밝혀내야할 미지가 남아있다는 것이, 그렇기 때문에 언제든 우리는 우리가 내놓은 오답을 수정할 수 있도록 여백을 남겨두어야 한다는 것이 좋았다. '무한 그 너머로'는 어려운 이론은 애초에 포기했지만, 이 매혹에 빠지기를 주저하지 않는 문과들에게 '천체물리'를 떠먹여 주기 위한 입문서임을 밝히고 있다. 마치 날 위해 준비해놓은 상차림 같아 마음에 든다. 문과여도 가능한, 문과의 속도에 맞는 지적 모험이 '무한 그 너머로'에 담겨 있다.
  
책은 재밌다. 읽다보면 술술 다음장으로 넘어갈 수 있다. 과학적인 내용이 줄줄 이어지면 어렵거나 지루하게 느껴질지 모른다는 걱정이 들겠지만, 흥미를 일으키고 마음을 움직이는 소재들과 함께 풀어내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정보를 접하게 된다. 사소하게는 열기구는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이 되기도 하고(모든 열기구에는 더는 올라가지 못하는 한계 고도가 있다. 44), 어린 시절부터 태양을 노랑과 빨강으로 그렸었는데 사실 흰색이다(110)는 내용에 깜짝 놀라고 만다. 고래들이 만들어내는 소리가 먼 곳에 있는 친구에게 닿을 수 있는 이유(221)를 읽다보면 음파가 공기 속보다 물속에서 이동할 때 4배 정도 빠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문과 친구들이 놀라지 않게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우주와 과학이야기가 좋았으면 이과를 갔어야하지 않느냐는 의심에 대해 항변하자면, 이 문과 출신 과학좋아 성향의 사람들은 그 안에 담긴 '이야기와 낭만'에 빠져드는 것이다. 태양의 둘레에는 이제 여덟 개 행성이 남았다(111)는 문장에 20세기를 함께 했던 아홉 개 행성 시절이 막을 내렸음에 마음이 무거워지고, 라이카- 우주로 돌아오지 못할 여행을 떠난 이름을 불러보기도 하고, 각국의 언어로 인사말을 담아 미지의 문명에게 우리의 존재를 알리려 한 황금 레코드판(96)의 어색하게 녹음된 목소리를 떠올려보기도 하는 인프피 성향은 차가운 이성만 가득할 것 같은 과학 안에 담긴 쓸쓸함에, 시공간을 이동하는 이론이 품고있는 환상에 매료되는 것이다. 

그래서 '무한 그 너머로'에서 천왕성과 해왕성은 묶어서 소개되고 명왕성이 따로 한 단락을 차지해 분량 싸움이나마 이긴듯해 위로를 받기도 하고, 목성은 행성으로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음을 칭찬해 주어야 한다(178)는 말에 시기질투를 하기도 한다. 책에서 "시간 여행을 계산할 때는 지구의 자전 효과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315" 달인 비법 같은 시간 여행 계산법이 나와서 분위기를 깰 때도 있지만, 시간선을 바꾸는데 결국 실패*하게 되는 예로 소개해준 영화 <타임머신>을 두고 작년에 보았던 영화 <첫 번째 키스>가 떠올리며 안타까웠지, 떠올리는데에 그 즐거움을 둔다. 다세계 해석 가설(364)에서 왜 에에올이 소개되지 않았지 궁금해하기도 하고, 우주와 건포도 머핀(255)의 비유를 보며 겸손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마음 속에 품으며 즐기면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요즘 미래를 위한 두 키워드를 꼽으라면 AI와 우주가 아닐까 싶은데, 진행중인 26 서울국제도서전에서도 AI에 대비해 창작이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인간선언>으로 다루고 있었고 마침 우주에 관한 새 책 두 권이 눈에 띄여 반가운 마음으로 '무한 그 너머로'부터 읽어보았다. 어렸을 적부터 반짝이는 것들을 좋아했는데, 밤하늘에서 빛나는 별들도 까마귀 성향의 좋아하는 것들 목록에서 빠질 수 없었다. 지금이야 밤하늘에서 별 몇개 헤아려보기 어렵지만(246) 어린시절 살던 집 옥상에는 넓다란 평상이 있었고 모깃불을 피운 여름밤 그 위에 누워 하늘을 보면 요즘 도심에서와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많은 별들이 보였다. 빛나는 별을 바라보는 것을 여전히 좋아하지만, 어른이 된 나를 사로잡은 것은 우주에 대해 알게 되는 불가해한 이론들이었다. 이런 낭만과 공상의 기대를 품고 우주 안으로 들어가보고 싶은 독자에게 '무한 그 너머로'는 다정한 인도자가 되어주었다. 


*부트스트랩 역설 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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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균열내기 - 뒤라스, 카뮈, 에르노를 지나 다만 내가 되기 위해
신유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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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장 떠날 수 없는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숨 쉬는 것뿐이다. 숨을 내뱉는다. 지금 내가 뱉어내야 하는 것은 숨만이 아니다. 그 숨을 꼭 쥐고 있으려 하는 '나'라는 자아, 그것을 함께 비워야 한다. 내 안에서 내가 천천히 빠져나갈 때까지.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텅 빈 나는 폐허가 아니다. 모든 것을 다시 받아들일 수 있는 '투명한 방'이다. 51" 

이상한 책이다. 평소에 생각이 많은 편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따져보니 진짜 생각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동안 해왔던 생각들은 지금 이렇게 가벼운 것들, 그날 밥은 무엇을 먹을지, 미리 준비해두어야 할 것은 없는지, 어디를 가고 싶다거나, 누가 보고 싶다거나 하는 일상적인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가끔은 저 사람은 왜 저럴까, 나는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 조금 먼 미래에는 이런 점을 고치고 더 먼 미래에는 어떤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깊지는 않다. 그런데 '나를 균열내기' 속의 생각은 다르다. 저자는 이런 생각들을 평소에도 하면서 살고 있을까, 궁금해질 정도로 달랐다. 그동안 내가 복잡하게 머리를 굴리던 것들은 대부분 잡생각이고, 뭔가를 생각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사고의 흐름에 붙여야 했구나 싶었다. 왜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까, 마치 내일 점심은 뭘 먹을까 같은 생각은 좀처럼 해본 적도 없을 것처럼 멋있게. 

'나를 균열내기' 안에서 어떤 사람과는 부엌에서 마주하고 마르그리트 뒤라스, 누군가와는 옷장을 뒤져 방 안을 난장판으로 만들기도 하고 프랑수와즈 사강, 함께 외국어를 배우기도 아고타 크리스토프, 집도 나가고 아니 에르노와 에두아르 루이, 같이 늙어가는 처지도 되고 다니엘 페나크, 지금도 좀 더 책의 매력을 잘 살리는 '전략'적 글쓰기를 염두에 두게 되기도 밀란 쿤데라, 연극을 관람하고 장 뤽 라가르스, 사강과 함께 어질렀던 집 안을 둘러보며 정리하기도 하고 조르주 페렉, 내가 왜 그녀 대신 그라고 쓰기를 하고 있는지 설명해주기도 하고 엘렌 식수, 얼마 전 읽었던 바바라 몰리나르의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를 다시 찾아보게 만들기도 했다. 왜 이렇게 늘어놓냐면, 이 중에 당신의 마음을 흔들 주제나 이름이 분명 튀어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나는 이 만남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왜 사강을 사랑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한번은 모어를 두번은 적어(외국어 64)를, 말을 가르치는 곳에서 일을 했던 경험 탓인지 아고타 크리스토프를 통해 들여다 본 언어가 인상적이었다. 당연한 수순처럼 모어는 미성년을 대상으로 했고, 적어 분야는 성인이 대상이었다. 재밌게도 미성년들은 모르는 모어의 단어를 적어를 이용해 물어보는 일이 잦았는데, 물론 모어를 통해 문학적 감각을 배우는 곳이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실제로 그네들에게 있어 내가 규정하는 모어와 적어의 경계나 구분이 매우 흐릿해져 있었다. 프랑스어를 배운지 20년이 넘은 저자가 그럼에도 적어가 자연스럽지 않고, 그 기간만큼 모어의 울타리가 무너지고 있음을 고백할 때(65) 그 아이들을 떠올렸다. 모어와 적어를 그들이 기억하는 가장 어린 시절부터 동시에 쌓아가던 잘 교육받은 아이들은 어느 한 곳에 속한다는 감각을 느낄까? 그 안에 세계가 공존하고 있다면 그것은 상처없이 확신된 존재의 증거가 될까? 

잘 돌보아지는/교육받은/만들어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떠올리다보니 '돌봄'과 내 안의 불씨에 대해 화두를 던졌던 레일라 슬리마니(123)의 질문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내 안의 불씨를 확인하기 위한 체크리스트 132]의 질문들을 들여다보면 생각에도 말문이 막히는 순간들이 온다. 내가 외면한 것들, 미적지근한 삶의 온도는 타인 뿐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해서도 '이만하면 됐다'는 태업을 미필적 고의로 행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고개를 돌렸던 자리에는 양심이 죄책감과 뒤엉켜 부채를 쌓아두고 있었다. 더불어 언제나 어려운 이해보다 쉬운 비난이 가깝도록, 사건의 한 면만을 보는 일에 익숙해진 시선을 그대로 놔두지 않는다는 점이 불편하게 다가오는만큼 매혹적으로 느껴져 <달콤한 노래>에 대한 궁금함이 커졌다. 

<달콤한 노래> 안의 루이즈가 품은 두려움은 자신이 속한 곳에서 "일원이 아니라 언제든 같아 끼울 수 있는 부품에 불과하다는 사실(125)"이다. 마치 무대 위에 오른 배우가 "마지막 대사를 내뱉고 나면, 온 마음을 다해 연기한 인물이, 그의 세상이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리는 것이 두려워 도망치고 싶(136)"어지는 것처럼, 루이즈도 자신이 이 가정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이 교체/삭제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단적으로 방어한다. 이은경의 <어른이 되는 법>에 "어른다운 관계 형성은 상대방이 너무 멀어지면 버림받을까 봐 두렵고 상대방이 너무 가까워지면 빠져들까 봐 두려운 마음이 들어도 거기에 휘둘리지 않고 관계에 헌신하는 능력에 달려있다. 언뜻 보기에는 이런 두려움이 상대방의 행동에서 비롯된 것 같지만 사실 이런 두려움은 망상이다. 우리에게 상처를 준 것은 이미 사라졌는데도 여전히 우리를 자극한다." 는 내용이 있다. 루이즈가 품은 두려움 중에는 극복되지 못한 상처도 섞여있었으리라. 

" 막을 쓰고, 나를 접어두는 이유는 두렵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 나에 대한 평가, 물론 그런 것들도 두렵지만 내가 진짜 두려운 건 나 자신인지도 모른다. 내가 정말 어떤 사람인지, 얼마큼 울퉁불퉁하고 모난 사람인지 스스로도 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오직 모르는 것만을 두려워한다. 6" 

저자에게 있어 생각은 스스로를 균열내는 자극의 과정이었다. 이 균열은 낡은 의식을 벗어내 새 의식의 몸으로 다시 성장하는 탈피와 같다. 타인의 내면에서 퍼올린 조각들이 단단히 다져진 것을 보고 자신을 돌이켜보니 그동안 성숙된 사고를 위해 내면을 닦기는 커녕 몸의 살을 찌우려는 생각 밖에 하지 않았던 셈이라 무엇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에서 부터 시작해보기로 했다. 그 길을 좇다보니 거기엔 먼저 자신이 있었다. 나를 알기 위해 어떻게 해야할지 익숙하지 못해 어색한 시작에 따라해보기라도 하고 싶어서 저자는 그동안 스스로와 어떤 식으로 마주했을까 궁금해졌었는데,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을 만나는 과정이 자신을 마주하기 위한 것과 다르지 않았겠구나 싶었다. 깊게 생각하는 것이란 무엇인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따라해보고 싶은 나를 균열내는, 균열내보자는 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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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과 함께하는 민주주의 이야기 ㅣ 창비청소년문고 47
최태현 지음 / 창비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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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토론을 위해서는 서로의 선의를 믿고 이야기를 해 나가야 합니다. 민주주의의 강화니 회복이니 하는 말들은 거창해 보이지만, 그 실천은 작은 곳에서 시작해요. 우리가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든 자유롭게, 그리고 안전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우리 마음을 그렇게 먹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실천으로 가는 길이에요. 127" 

교육현장에서 멀어진지 많은 시간이 지났음을 새삼 느끼는 요즘이다. 청소년 시절에 학교에서 배우며 체득했던 역사와 사회 문화의 정서가 요즘 일부 청소년들의 것과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어느 한쪽만이 무조건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그대로 두고 보는 것이 맞는가 싶은 부채감, 의문이 든다. 아이들은 유튜브나 SNS 같은 매체에서 주장하는 왜곡된 역사관과 이념, 정서적 양극화를 부추기는 자극적인 내용들에 너무 쉽고 가볍게 노출되고 있다. 독립 운동가에 대한 근거없는 비방과 역사적 사건들의 진위와 의미조차 염두에 두지 않은 날조와 비방이 확대 재생산 되고 있는 문제적 상황이다. '청소년과 함께하는 민주주의 이야기'가 아이들에게 비판적인 시각으로 콘텐츠를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심어주고 건강한 사고로 스스로의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읽어보았다. 

'청소년과 함께하는 민주주의 이야기'는 문답형식으로 되어 있다. 수빈, 지수, 민서 그리고 선생님이 서로 대화하며 민주주의에 대해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며 이야기를 나눈다. 진짜 인물들은 아니지만 수빈, 지수, 민서가 하는 질문들이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찌르기도 하고, 대신 궁금한 부분을 풀어주기도 하는데 이렇게 다양하고 깊이 있는 질문들이 나온다고? 싶어서 내가 너무 당연시하고 제대로 배워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구나 반성도 되었다. 어른도 이런 생각을 하며 책을 읽게 되니 청소년들이 공연히 박탈감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 물론 어른은 반성하며 읽어야겠지만.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잘못된 역사인식과 반사회적인 태도에 경도된 아이들에게 어떤 식으로 진실을 알려주고 생각을 전환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줄 수 있을지 고민되었기 때문이다. 자극적인 내용으로 인물을 희화하고 역사를 왜곡하고 갈등을 심화시키는 콘텐츠들이 많다. 접근을 무조건 막을 수도 없고, 제대로 반박하여 설득하지 않으면 쉽게 잘못을 짚어내기 어려울만큼 어긋난 논조의 주장을 강하게 하기 때문에 어려움을 느꼈다. 그래서 '청소년과 함께하는 민주주의 이야기'를 읽어서 스스로도 배우고, 아이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랐다. 

책을 읽으며 한 세대에게 있어 큰 상흔을 남기는 사건들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노년층에는 전쟁이었을 것이고 중장년층에는 민주화운동, 중년으로 접어드는 세대는 IMF와 백화점, 다리 붕괴 사고, 청년층에게는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 코로나가 있을 것이다. 청소년들은 두 번의 탄핵과 코로나를 꼽게 되지 않을까. 책에서도 지난 탄핵 집회 때 반대 지지층이 성조기를 두르고 미국을 지지하는 현상을 예로 들어 설명해주었던 것처럼(76) 각자 경험한 시대와 사건들이 다르기 때문에 입장의 차이는 있다. 비록 일부 종교나 경제적, 정치적 이점을 위해 이를 이용하려는 의도가 있을 수 있지만, 사실 길 위에 나서는 평범한 우리들의 갈등과 분열에는 자신의 신념 안에서의 '애국'을 담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지금 한참 월드컵으로 국가 간의 경쟁을 하고 있는 때여서 애국심이 어떻게 스포츠 경기와 문화 콘텐츠와 연결되어 있는지(141) 생각해 볼 수 있기도 했다. 또한 [대의제, 대표를 통해 참여하기(191)] 같은 내용은 '애국'과 '보수'를 주장하는 일부 무리의 지역 점거로 갈등을 유발하고 있는 상황이 시작된 '선거'에 대한 개념을 정리하며 함께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는 계기로 삼기 충분했다. 우리가 경험할 사건들을 지나치게 가깝거나 먼 거리감을 두고 보지 않도록, 또 잘못된 방향으로 이용되지 않기 위해 경계하도록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점은 책을 읽으며 배워나간 내용을 [함께 생각해 봅시다]와 [다음의 책들을 추가로 읽어 보세요]하는 정리 구간을 통해 직접 생각하고 궁금하거나 부족하다고 느꼈던 부분을 더 알아보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배려해놓았다는 것이다. 이 질문들은 알게 된 내용을 확인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하고 '카페에 갔는데 빠른 주문을 위해 메뉴를 통일하자고 하면 어떤 기분일까?' 같은 질문(134)으로 통일성과 다양성의 균형에 대해 접근할 수 있는 일상적인 상황을 비유해 어려움을 낮추고 재미있게 생각을 말할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 가짜 뉴스에 속을 뻔한 경험이 있는지(251) 묻는 질문도 재미있었다. 워낙 거짓된 정보가 많고 진위를 따지지 않은 채 확대, 재생산되기 쉬운 구조의 인터넷 플랫폼들이 많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정리된 내용을 읽을 때는 다 이해해서 알 것 같았다가도 다음 내용으로 그냥 넘어가면 금새 잊어버리게 되는데, 질문을 통해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조금이라도 틀을 잡을 수 있게 도와 단단한 받침을 만드는 역할을 해주었다. 

" 우리는 옳음을 포기해서도 안 되지만 사람을 포기해서도 안 돼요. 제도를 넘어 삶의 양식으로서 민주주의는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땅의 모습일 뿐, 먼저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그런 민주주의는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 마음속에 있어요. 물론 우리의 마음속에는 다른 것들도 있죠. 사랑도 있고, 두려움도 있어요. 관용도 있고, 혐오도 있지요. 우리 내면에 서로 갈등하는 목소리들이 있어요. 우리 마음 자체가 광장인 거죠. 284" 

천천히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마음으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어떤 발자국을 남기며 발전해왔는지 알아볼 수 있었다. 소개되는 사건들에는 배운 것들도 있지만 직접 경험했던 사건들도 있어서 나라는 사람도 우리나라의 역사적 순간들의 목격자로, 시민으로 성장해 온 어른이 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역사적으로 앞선, 그리고 함께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무엇이 옳은지, 불의 앞에서 어떻게 행동하기를 결의했는지 목도할 때면 자부심, 감동, 두려움, 분노와 부끄러움 같은 다양한 감정이 들곤 한다. 청소년들도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 때 직접 그 현장을 살아냈던 역사적 사건들 안에서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했었는지 돌이켜보았을때 부끄러움이 없도록 더 많이 배우고 존중하는 태도를 가지게 된다면 좋겠다. 



>>>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게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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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노이즈
김현철 외 지음 / 황금가지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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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호가 왔대요."
"무슨 신호요?"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미친놈이 하는 소리를......" 12 잔존의 신호" 

요즘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해가 안되는 일이 있을 때, 평범한 인간의 사고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때, 이렇게 생각한다. '미친사람이 왜 그러는지 알면 내가 미쳤게...' 그럼 답답함도 울화도 세상을 반으로 나눠 갈라쓰고 싶다는 비이성적인 충동과 소망도 조금은 옅어진다. 정신과 마음이 무너지지 않기 위한 비급인 셈이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조난이라도 당한 양 구는 사람들의 거룩함이 꼴보기 싫어도, 저란 생각을 하고나면 좀 낫,긴 개뿔이 대체 미친사람들은 무슨 신호를 받는걸까 모르겠다. 아무튼 '한여름의 노이즈'를 읽는 시간은 이런 식이다. 사사롭고, 괜히 뭔가 분하고, 혼자 웃기고, 왠지 묘하다. 인상적이었던 단편들만 골라서 따로 추천해본다. 

잔존의 신호
현실적이라 어딘지 모르게 속이 불편해져 온다. 엉망이 되어버린 차와 아무런 보상도 받을 수 없는 간접 피해자의 억울함, 하지만 피해자의 심정을 생각하면 차마 제 분함은 더 꺼내놓을수도 없는 밀려남이 잡힐 듯이 그려졌다. 가해자는 교도소에서 히죽대고(20)있을텐데 피해의 선 안에 들어간 사람들만 사과하고 후회하는 모습을 보인다. 무겁게 가라앉아 버릴 수도 있는 이야기를 살짝 가미된 추리와 추적이 전환점이 되어준다. 괜찮은 시작이었다. 

소원
읽다가 진짜 소름 돋았던 순간은 " 오래도록 너희를 그리워했단 것도 모르나 봐. 한 해에 두어 번 보는 것도 어렵나 봐. 직접 너희에게 날아가고 싶어도, 썩어 가는 육체에서 스스로 떨어질 수 없다는 것도 모르나 봐. 더는 묻을 땅덩어리가 없다고, 신발장만 한 선반 속에 우리를 처박아 두기 시작했을때, 우리가 얼마나 분노했는지도 모르나 봐. 100" 하는 내용을 읽을 때였다. 아니 조상님 납골당은 뭐 한두푼 하는 줄 아십니까. 산 사람도 좁아터진 아파트에 층간소음 시달리며 삽니다. 훨훨 날아가고 싶으면 갈 것이지 어딜 찾아오고, 뭐가 얼마나 그리워서 한 해에 두어 번이나 보자고 하시는지, 이정도면 굿해서 성불시켜 드려도 무방해보이는데 갈 때 가더라도 로또 번호나 알려주고 가세요.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결국 화장해서 자유롭게 보내달라는 요구였으니 불만이 좀 가라앉았으나 조상님들이 앞길을 잘 닦아주지 못할 망정 이런 식으로 나오면 좀 곤란하지 않은가. 내세에 좋은 연을 이어갈 생각을 하셔야지. 

신사기옥
" "네? 자, 잠깐만요. 그게 저랑 무슨 상관입니까! 아니, 사람이 죽은 건 안타깝지만 그게 왜  제 탓입니까!" 126"
우리나라는 참 사기에 관대하다. 심지어 속은 사람이 잘못이라는 적반하장 격의 잣대로 심판관 노릇을 하는 집구석 대법관들도 수두룩하다. 그래서 신사기옥의 "사기 피해액을 피해자의 시간으로 환산......'사기특별법' 본회의 통과. 127" 라는 설정을 봤을때 그래, 평생을 감옥에서 썩게 만들어라! 하고 콧김을 내뿜었다. 하지만 20만원을 위해 하루 100원씩 용돈을 모았던 피해자의 절박한 사정에도 형량은 총 2000일, 5년 6개월 밖에 안나왔던 것이다. 대실망.
게다가 가해자 손상희는 선고를 받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뜨렸다. 20만 원. 고작 소고기 한 접시 사 먹은 돈의 대가가 5년 6개월이라니. 세상에서 가장 부조리한 코미디였다. 128"고 소회한다. 반성과 갱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목숨에는 목숨이 가장 좋은 처벌 방법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신사기옥의 노동 감형 체계는 뭔가 사람의 도파민을 자극하는 면이 있어서 다시 수감되어도 게임에 로그인하는 느낌으로 수감생활이라는 퀘스트를 깨려고 들지 않을까 싶었다. 가장 흥미로운 단편이었다. 도박묵시록 카이지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오징어게임을 보는 것 같기도 한, 병신같지만 있을 법한 인물들이 그럴싸한 밑바닥 개싸움을 보여준다. 재밌었다. 

케이준 라이스와 종말의 맛
'켄치(214)' 얘기를 할 때 눈치챘어야 했는데, 모두가 맥날이라 부르는 맥도날드를 혼자 맥이라고 불렀던 사람은 이 이야기가 오타쿠적 마인드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닫고 이마를 쳤다. 아아, 오타쿠가 또. 지나온 모든 길을 파괴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봤지만 언급하는 모든 것을 소생시키는 사람의 불운한 이야기는 처음이다. 좀 더 극단으로 치달았어도 재밌었을 것 같았는데 흐름이 갑자기 변하고 빠르게 정리 되어버린 느낌이라 아쉬움이 있었다. 마지막 단편이었던 탓에 빵하고 터져나갈 순간에 갑자기 불발로 그쳐버린 불꽃을 손에 들고 어스름하게 해가 진 바닷가에 혼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다만 미련없이 모래사장을 걸어나와 근처 파파이스 매장으로 찾아가 그 케이준 라이스인지 뭔지에 케챱을 비벼 먹겠지. 아직 파는 것 같다. '한여름의 노이즈' 읽을 때는 꼭 파파이스 가서 케이준 라이스 사와서 먹어보기로 하자. 

요즘 텔레비전들은 얇아서 수신이 불안정하거나 갑자기 작동이 잘 안될 때 '때려서 고친다'는 가정 내 기술자들의 손맛을 보여줄 방법이 없다. 브라운관을 통해 본다는 말이 이제는 사어가 되지 않았을까. 어쨌든, '한여름의 노이즈'는 가끔씩 몇 대 때려서 화면을 맞춰줘야 했던 그 옛날 티비의 노이즈, 갑자기 잡힌 해적 방송의 조악하고도 비현실적인 면모를 맛 보여 준다. 브라운관 티비 모르면 어쩔 수 없고. 생각해보니 뮤비같은데 레트로 한 맛으로 종종 나와서 다들 알 것 같다. 이제 아무도 쓰지 않을 것 같은 고장나지 않은게 용한 오래된 티비에 나오는 믿거나말거나 한 재연 프로그램에 문득 시선을 빼앗기듯 보게 되는 책이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이냐면, 읽어보면 공감할 것이다. 부담없이 취향따라 긴 여름동안 한번쯤 읽어볼만한 작품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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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두고 간 세계 - 돌봄과 상실 너머, 다시 시작된 사랑의 모험
천희란 지음 / 김영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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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는 다시 인간과 인간을 잇는다. 그렇게 고양이가 떠난 자리에도, 여전히 고양이는 존재한다. 137" 

어렸을 때는 뭘 몰랐고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나서 오히려 자꾸만 '비인간 동물'과 함께 살고 싶어졌다. 이쯤되면 책임을 질 수 있을 것 같았고, 솔직하자면 빈 마음을 다른 존재로 채우고 싶은 그런 때였다. 얼마나 잘못된 생각이었는지는 너무나 잘 체득하게 되었다. 물론 친구처럼 가족처럼 함께하며 행복이 채워지는 경험을 하기도 했지만 또다른 상실이 반드시 있을 것이란 걸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결정이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 지나고 남은 것은 두 번 다시는 나와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친구들과는 함께 살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나보다 앞서가는 친구들이 날 떠나가며 남은 상처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졌다. 좋아해서 종종 듣긴 하지만 가을방학의 <언젠가 너로 인해>라는 노래를 차마 부르지는 못한다. 노래방에서 갑자기 눈물이나 흘리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테오를 만나 보기 위해 조심스럽게 메시지를 보내는 부분(31)에서는 이상하게 울컥해졌다. 그 조심스럽고 복잡한 마음이 구구절절하게도 정말 구질구질하게도 훅 와 닿았다.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아서 그 솔직함에 마음이 뭉그러졌다. 너와 같은 혹은 너처럼 사랑할 다른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까. 닮은 강아지들은 수도 없이 많다. 연예인이나 다름없이 유명한 강아지들도 있고, 잘 훈련받아 똑똑한 강아지들도 많지만 너만큼 예쁘고 특별하고 멍충하고 귀여운, '우리 강아지'는 없었다. 키워보고서야 알게 된 이런 종류의 이별. 물론 고맙게도 이런 종류의 사랑이 있다는 것도 배웠지만 사랑이 큰 만큼 슬픔도 크기 때문에, 마음이 좁은 사람은 도저히 더는 용기가 나지 않는다. 결심은 확고했지만 반려동물을 들이게 된 계기나 더이상 들이지 않기로 결심한 까닭같은 것들은 종종 나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했다. '고양이가 두고 간 세계'는 이 죄책감, 상처 같은 것들을 최대한 이해해주는 내용을 담고 있어, 때로 정곡을 찔린듯 하면서도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다. 

" 디오는 미친놈이었다. 도저히 대체할 수 있는 단어를 찾을 수가 없다. 디오는 보통 미친놈이 아니었다. 166" 

고양이가 열어준 세계 속에는 이별의 눈물바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깽이 디오와 만나 함께 살기를 시작하는 이야기는 혈기왕성한 아깽이답게 이리저리 튀는 에너지가 느껴졌다. 특히나 테오가 공동육묘를 하는 모습은 당황스러울만큼 놀랍기도 했다. 저도 응석받이이면서 어느날 들이닥친 갓난쟁이 동생을 어떤 마음으로 보살피기 시작한 것일까. 게다가 제가 나서서 디오를 돌보기 시작했으면서도 창가에 가서 깊은 한숨을 내쉬는 것(177)으로 육아 스트레스를 달랬다고 하니, 사람에게서 말을 배운 어린 고양이(193)의 엉뚱한 울음소리처럼 사람같은 비인간 동물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읽다가도 갑자기 웃음이 난다. 

이런 비인간 동물들의 인간적인 면모에 웃음이 나지만 그들을 인간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는 것에는 항상 경계심이 남는다. 책을 읽다 가장 마음이 쓰였던 부분 중 하나는 다시 소변 실수를 하게 된 루이에게 눈맞춤을 하지 않는 교정 방법을 썼던 때(67)였다. 나이 먹은 고양이가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용변 실수를 하게 된 것이 고양이적으로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눈물이 났다. 용변 실수를 하고 수치스러웠을까, 실패에 괴로웠을까, 일부러 그랬다는 오해를 받아 억울했을까, 주인이 눈을 맞춰주지 않아 속상했을까, 어쩌면 고양이는 뭐 그럴 수도 있지 했을까. 나이 든 고양이의 이야기를 눈물로 해석하는 것도 인간의 입장에서 고양이를 오해하는 방식일까. 

" 분명 인간이 고양이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지식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지식이 유통되는 과정은 훌륭한 보호자라는 고정된 이미지를 생산하는 한편, 반려하기 수월한 이상적인 고양이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 같기도 하다. 198" 

저자 역시 인간에 의해 인간의 영역에서 함께 살아가게 된 비인간 동물 친구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깊이 고민한 티가 났다. 인간의 생에서도 사고나 질병으로 긴급한 수술과 연명치료가 필요할 때 어떤 선택이 더 존엄을 고려한 것일까 의견이 분분한데, 하물며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지 못하는 비인간 동물들의 생을 어떻게 존중할 것인지는 더더욱 어렵다. 비인간 동물에 대해 말하지만 사실 인간이라는 동물의 세계에서도 같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잘 이루어지지 못한다. 이 냉혹하고 잔인한 셈 아래에서 같은 인간조차 거래와 학대의 대상이 되는 일이 존재한다. 그러니 이런 인간들이 만들어놓은 세상 안에서 비인간 동물들에 대한 인식과 처우, 권리와 생존의 합의를 논하는 길은 멀어보인다. 

" 비인간 동물이 거래되지 않는 세상, 학대받지 않고 본능에 가깝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은 아직도 요원하지만, 적어도 그러한 세상이 도래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는 존재한다. 50" 

" 고양이는 인간과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주위에서는 당연히 답을 알 길은 없다. 죽음이라는 관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고양이가 스러져가는 몸을 인식하며 죽고 싶다거나 살고 싶다는 의욕을 느낄 가능성은 없으리라 추측할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에게 모든 결정권이 주어졌다 믿어도 되는 걸까. 45" 

하지만 갈수록 인식이 달라지고 있고, 한번 비인간 동물과 함께 살며 세상이 바뀌는 경험을 한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모르는만큼 다른 만큼 더 많이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려는 변화가 생기고 있다. 애완이었던 대상이 반려하는 존재로 인식의 변화가 생긴 것도 유의미하다. 오죽하면 반려동물들이 한마디 말을 할 수 있다면 어떤 것을 고를 것이냐는 질문에 나의 만족감을 채울 수 있는 사랑한다는 말을 듣기보다 상대의 안위를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도록 아프다는 표현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답이 더 많겠는가. 

욕심껏 '고양이가 두고 간 세계'를 엿보기 위해 책을 꺼내들었지만, 어쩌면 나는 이 책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만큼의 극복은 실패한 사람일 것이다. 종종 귀여운 비인간 동물들에게 온통 시선을 빼앗기곤 하지만, 길을 걷다가도 불현듯 어딘가에 있는 비인간 동물들의 존재를 감지하고 대뜸 핸드폰 카메라를 들이대기도 하지만, 그 이상으로 마음을 줄 용기는 내지 못한다. '고양이가 두고 간 세계'를 앞에 두고 나만 고양이가 없다며 박탈감에 부들부들 떨면서도 핸드폰 속에 저장해 둔 길에서 만난 고양이들의 사진으로 귀여워하고 싶은 욕망을 달랠 뿐이다. 이 욕망은 책임보다 나약한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책임을 다하는 반려인간들과 함께 살아가는 배려를 보여주는 비인간 동물들 모두에게 깊은 경외를 보낸다. 무슨무슨 법으로 사진 매일 열장씩 자랑해주기를, 버려지고 학대 당하는 비인간 동물들이 없도록 세상이 달라지기를 함께 바란다. 



>>>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게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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