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노이즈
김현철 외 지음 / 황금가지 / 2026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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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호가 왔대요."
"무슨 신호요?"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미친놈이 하는 소리를......" 12 잔존의 신호" 

요즘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해가 안되는 일이 있을 때, 평범한 인간의 사고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때, 이렇게 생각한다. '미친사람이 왜 그러는지 알면 내가 미쳤게...' 그럼 답답함도 울화도 세상을 반으로 나눠 갈라쓰고 싶다는 비이성적인 충동과 소망도 조금은 옅어진다. 정신과 마음이 무너지지 않기 위한 비급인 셈이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조난이라도 당한 양 구는 사람들의 거룩함이 꼴보기 싫어도, 저란 생각을 하고나면 좀 낫,긴 개뿔이 대체 미친사람들은 무슨 신호를 받는걸까 모르겠다. 아무튼 '한여름의 노이즈'를 읽는 시간은 이런 식이다. 사사롭고, 괜히 뭔가 분하고, 혼자 웃기고, 왠지 묘하다. 인상적이었던 단편들만 골라서 따로 추천해본다. 

잔존의 신호
현실적이라 어딘지 모르게 속이 불편해져 온다. 엉망이 되어버린 차와 아무런 보상도 받을 수 없는 간접 피해자의 억울함, 하지만 피해자의 심정을 생각하면 차마 제 분함은 더 꺼내놓을수도 없는 밀려남이 잡힐 듯이 그려졌다. 가해자는 교도소에서 히죽대고(20)있을텐데 피해의 선 안에 들어간 사람들만 사과하고 후회하는 모습을 보인다. 무겁게 가라앉아 버릴 수도 있는 이야기를 살짝 가미된 추리와 추적이 전환점이 되어준다. 괜찮은 시작이었다. 

소원
읽다가 진짜 소름 돋았던 순간은 " 오래도록 너희를 그리워했단 것도 모르나 봐. 한 해에 두어 번 보는 것도 어렵나 봐. 직접 너희에게 날아가고 싶어도, 썩어 가는 육체에서 스스로 떨어질 수 없다는 것도 모르나 봐. 더는 묻을 땅덩어리가 없다고, 신발장만 한 선반 속에 우리를 처박아 두기 시작했을때, 우리가 얼마나 분노했는지도 모르나 봐. 100" 하는 내용을 읽을 때였다. 아니 조상님 납골당은 뭐 한두푼 하는 줄 아십니까. 산 사람도 좁아터진 아파트에 층간소음 시달리며 삽니다. 훨훨 날아가고 싶으면 갈 것이지 어딜 찾아오고, 뭐가 얼마나 그리워서 한 해에 두어 번이나 보자고 하시는지, 이정도면 굿해서 성불시켜 드려도 무방해보이는데 갈 때 가더라도 로또 번호나 알려주고 가세요.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결국 화장해서 자유롭게 보내달라는 요구였으니 불만이 좀 가라앉았으나 조상님들이 앞길을 잘 닦아주지 못할 망정 이런 식으로 나오면 좀 곤란하지 않은가. 내세에 좋은 연을 이어갈 생각을 하셔야지. 

신사기옥
" "네? 자, 잠깐만요. 그게 저랑 무슨 상관입니까! 아니, 사람이 죽은 건 안타깝지만 그게 왜  제 탓입니까!" 126"
우리나라는 참 사기에 관대하다. 심지어 속은 사람이 잘못이라는 적반하장 격의 잣대로 심판관 노릇을 하는 집구석 대법관들도 수두룩하다. 그래서 신사기옥의 "사기 피해액을 피해자의 시간으로 환산......'사기특별법' 본회의 통과. 127" 라는 설정을 봤을때 그래, 평생을 감옥에서 썩게 만들어라! 하고 콧김을 내뿜었다. 하지만 20만원을 위해 하루 100원씩 용돈을 모았던 피해자의 절박한 사정에도 형량은 총 2000일, 5년 6개월 밖에 안나왔던 것이다. 대실망.
게다가 가해자 손상희는 선고를 받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뜨렸다. 20만 원. 고작 소고기 한 접시 사 먹은 돈의 대가가 5년 6개월이라니. 세상에서 가장 부조리한 코미디였다. 128"고 소회한다. 반성과 갱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목숨에는 목숨이 가장 좋은 처벌 방법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신사기옥의 노동 감형 체계는 뭔가 사람의 도파민을 자극하는 면이 있어서 다시 수감되어도 게임에 로그인하는 느낌으로 수감생활이라는 퀘스트를 깨려고 들지 않을까 싶었다. 가장 흥미로운 단편이었다. 도박묵시록 카이지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오징어게임을 보는 것 같기도 한, 병신같지만 있을 법한 인물들이 그럴싸한 밑바닥 개싸움을 보여준다. 재밌었다. 

케이준 라이스와 종말의 맛
'켄치(214)' 얘기를 할 때 눈치챘어야 했는데, 모두가 맥날이라 부르는 맥도날드를 혼자 맥이라고 불렀던 사람은 이 이야기가 오타쿠적 마인드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닫고 이마를 쳤다. 아아, 오타쿠가 또. 지나온 모든 길을 파괴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봤지만 언급하는 모든 것을 소생시키는 사람의 불운한 이야기는 처음이다. 좀 더 극단으로 치달았어도 재밌었을 것 같았는데 흐름이 갑자기 변하고 빠르게 정리 되어버린 느낌이라 아쉬움이 있었다. 마지막 단편이었던 탓에 빵하고 터져나갈 순간에 갑자기 불발로 그쳐버린 불꽃을 손에 들고 어스름하게 해가 진 바닷가에 혼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다만 미련없이 모래사장을 걸어나와 근처 파파이스 매장으로 찾아가 그 케이준 라이스인지 뭔지에 케챱을 비벼 먹겠지. 아직 파는 것 같다. '한여름의 노이즈' 읽을 때는 꼭 파파이스 가서 케이준 라이스 사와서 먹어보기로 하자. 

요즘 텔레비전들은 얇아서 수신이 불안정하거나 갑자기 작동이 잘 안될 때 '때려서 고친다'는 가정 내 기술자들의 손맛을 보여줄 방법이 없다. 브라운관을 통해 본다는 말이 이제는 사어가 되지 않았을까. 어쨌든, '한여름의 노이즈'는 가끔씩 몇 대 때려서 화면을 맞춰줘야 했던 그 옛날 티비의 노이즈, 갑자기 잡힌 해적 방송의 조악하고도 비현실적인 면모를 맛 보여 준다. 브라운관 티비 모르면 어쩔 수 없고. 생각해보니 뮤비같은데 레트로 한 맛으로 종종 나와서 다들 알 것 같다. 이제 아무도 쓰지 않을 것 같은 고장나지 않은게 용한 오래된 티비에 나오는 믿거나말거나 한 재연 프로그램에 문득 시선을 빼앗기듯 보게 되는 책이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이냐면, 읽어보면 공감할 것이다. 부담없이 취향따라 긴 여름동안 한번쯤 읽어볼만한 작품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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