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주의 인사 소설, 향
장은진 지음 / 작가정신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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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면서 책을 정리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에 대해 생각했다. 인생의 일부를 정리한다는 의미일까. 필요 없는 것들을 버리고 잊어서 새출발을 하겠다는 뜻일까. 무슨 일이 있으면, 어떤 마음이 생기면 필요한 게 아무것도 없는 인생이 될까. 39" 

 헤어진 전 연인이 내 집 현관문 비밀번호를 기억하고 들어왔었다는 시작은 불쾌함을 주었다. 훔쳐간 것은 없고 도리어 놔두고 간 것이 있었다고 해도 불쾌감은 여전했다. 헤어진 지 일 년이나 지났다니, 게다가 떠넘기듯 줘버린 것도 아니고 '부탁'한다니 언제고 되돌려받을테니 보관해달란 것일까. 무단침입으로 신고를 당해도 모자를 판에. 자유의 보장을 부르짖던 세주는 타인의 권리나 의사같은 건 발뒤꿈치로도 안 볼 자유도 포함해두었나 싶었다. 거기에 더해 이른바 '엑기스'인 책(18)을 두고 갔다고 " 나랑 다시 잘해보고 싶다는 뭐 그런 뜻일 수도 있을까. 21" 생각하는 동하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해시태그를 붙여 'ㅁ'으로 시작하는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을때는 그래서 너희 둘이 사귀었었구나,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 뭐하냐너희들' 그래, 비밀번호 안바꿀때 알아봤다. 불만스럽고 의심스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세주가 없는 시간이 지나갔다. 

 세주없는 세주의 시간들 속을 동하는 천천히 거닌다. 밑줄 그은 책을 보며 누군가를 알아가는 일은 도서관에서 마주치면 화가 나겠지만 혹시,싶은 전 연인의 흔적이라면 다른 의미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왜일까 이유와 의미를 찾는 공백에서 동하는 자신 기억 속의 세주를 채운다. 누군가가 남긴 것들을 찬찬히 살피며 시간을 들여본 적이 있었나 생각해보니 딱히 떠오르는 사람도 물건도 없었다. 흔적은 커녕 대상마저도 그렇게나 열심히 들여다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어쩌면 나 자신도 그렇게 들여다보지 못했다. 거울 앞에서 주름이나 기미를 찾아보았던 것 말고는. 다 헤아리기도 어려운 많은 것들에 둘러싸여 지내면서 내가 무엇을 가졌는지, 왜 가지고 있는지 정리할수도 설명할수도 없었다. 미니멀한 삶의 방식이 유행할 때도 따를 수 없었던 버리고 줄이기를 냉장고에 담겨 입양된 세주의 책들을 보며 가늠해본다. 안되겠다. 

 동하와 세주가 연인으로 함께 한 6개월의 시간은 서로의 차이만 보였는데, 세주가 남긴 책과 화분으로 시작된 시간은 왜 서로가 달랐었는지를 헤아려 볼 수 있는 거리가 생겼다. 세주가 자신의 삶에서 언제든 한 번은 떠나야 했던 것처럼, 서로를 바라볼 수 있으려면 그만큼의 거리도 필요했었다는 듯이 서로가 없는 자리에서 밑줄과 사진, 시계나 케익을 통해 상대방을 바라보고 어긋났던 순간들을 이해한다. 처음엔 그런 둘의 모습이 꼴사나웠는데 세주의 집들이를 통해 그들이 함께한 시간동안 주고받은 것이 '다름'만은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비밀번호를 알고 있어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라서, 헤어진 사이인 것을 신경쓰지 않아서 라는 이유를 붙여도 왜 '엑기스'를 남기고 간 것이 동하였는지, 헤어진지 일년만인 상대의 무단침입에도 비밀번호를 왜 바꾸지 않고 '의미'를 찾았는지. 짜장면 냄새로 기억될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이해하고 스스로의 상처를 조금 더 돌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진 것 같아 결국엔 두 사람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책을 덮을 수 있었다.   

 " 그러나 막상 그 끝에 도착해 몇 달 살아보니 떠나왔나 싶을 정도로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세주는 늘 세계의 끝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떠나지 않았다면 자신이 머무는 곳이 끝이란 걸 몰랐을 테니 언제든 한 번은 떠나야 했다. 그러니 찾아 떠났던 그 험한 길과 시간이 전혀 의미가 없다고 할 수는 없었다. 많은 걸 잃고, 그것도 모자라 일부러 버리고도 후회하지 않는 건 그 때문이었다. 61" 

 쇼펜하우어는 불행은 우리가 외부에 의지하기 때문에 발생하며 진정한 행복은 스스로의 내면에서 찾아야 한다고 했다. 외부의 조건은 불안정하며 불완전하다. 어떤 경우엔 그 의지처 자체를 잃게 되는 일도 생긴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고 오래도록 상실에 잠겨 있던 세주는 세계의 끝에서 외부가 아닌 내면을 향해 살아가야 함을 깨닫는다. 우리는 때로 낯선 여행지에서 자신만의 파랑새를 발견하기를 기대하며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우리가 찾던 것들, 채워야할 빈 공간이 생겨난 곳은 여행지가 아니라 떠나온 곳이다. 여행을 통해 다른 무언가로 채워 대체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잃어버린 것'을 찾을 수 있는 곳은 잃어버린 장소뿐이라는 사실을 파랑새와 세계의 끝을 통해 다시금 깨닫는다. 

 요즘은 사랑보다 이별이 더 쉽고, 누군가를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보다 구분짓고 단절하는 일이 더 빈번하다. 세주와 동하도 그렇게 헤어졌다. 하지만 각자의 방향으로 향하는 마지막 헤어짐에서 둘 사이에 남은 것은 단절이 아닌 이해였다. 'ㅁ'을 주고받을 때는 남들 다 보는데에서 이러지말고 갠톡을 하던 dm을 보내던 둘이서 하세요, 싶었는데 마지막이 되고 나니 'ㅁ'이 갑자기 내 앞에도 놓여진 듯 했다. 어떤 'ㅁ'을 남겨야할까, 어떤 '마음'을 남겨야할까. '세주의 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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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보와 볼보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90
김혜연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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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고 슬퍼라, 책장을 덮으려니 소리보다 눈물이 먼저 나왔다. 정해진 상처가 눈앞에 보이는데도 그저 조금 어떤 인물인지 더 알게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동수에게 너무했다 싶었다. 조금 덜 아픈 인물로 그려주었어도 좋았을텐데, 세상에 아픈 일들이 너무나 많은데 차마 건축가를 꿈 꿀 줄도 몰라 포클레인 기사가 되고싶었던(142) 소년에게, 오래도록 누군가를 기다리느라 불조차 들어오지 않는 방에서 온종일 굶어도 가만히 있는 것 밖에 할 줄 몰랐던 어린아이였던(135) 소년에게 참 너무했다. 처음엔 애꿎은 포클레인에 돌을 던지던 주현이가 안타까웠는데 나중엔 나도 어딘가를 향해 돌을 던지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졌다. 

 " 그날 주현은 어른이 되는 장거리 경주에서 동수가 막 자신을 추월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고 3이 되자 동수는 운 좋게 일찌감치 지역의 작은 건설 회사에 현장 실습생으로 취업했다. 그런데 그게 운이 좋았던 걸까?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동수의 첫 근무지는 아파트 건설 현장이었다. 거기서 쥐꼬리만한 실습비를 받은 날 주현에게 치킨을 사 주었다. 53" 

 처음 일을 시작했을때, 정말 얼마 되지 않는 월급을 받는 날이면 가족들을 불러모아 먹고 싶은 것을 고르게 했었다. 월급이 적으니 큰마음을 먹었어도 사줄 수 있는 음식은 고작해야 치킨이며 피자나 중식 요리 정도였었다. 몇만원을 계산하면서도 가끔은 손을 떨어야했는데 그때 마음은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이상하게도 지금은 수입이 생겼다고 해서 누군가와 함께 먹을 음식을 사지 않게 되었다. 그때보다 훨씬 더 비싼 식당에 가서 밥을 사도 그만큼 뿌듯한 기분이 들진 않는다. 그래서 동수가 쥐꼬리만한 실습비를 받은 날 주현이에게 치킨을 사주었다고 했을 때,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오래전의 내 모습이 떠올랐던 것처럼, 또 어떤 어리고 꿋꿋한 사회초년생들이 작고 소중한 월급을 받는 날이면 적금, 교통비, 식비, 학자금, 공과금, 월세 사이에서 몇만원을 살짝 빼들고 한턱 낼 것이다. 소중한 사람들이 둘러앉아 맛있게 먹는 모습에 어깨를 으쓱하며. 

 " 그날 밤 한나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나 당신에게 진심으로 부탁하러 간 거야. 용기가 필요했어. 당신 말대로 일을 더 크게 벌이는 게 위험한 거 아닌가, 싶기도 해. 그래도 해 보고 싶어. 당신이 가까이에 있으면 덜 무서울 것 같아.
그는 메시지를 읽고는 휴대폰 화면을 손가락으로 가만히 쓰다듬었다. 130" 

 보통의 어른이 되는 일은 모두에게 숙제다. 주현이나 동수, 은수처럼 어른이 되어가는 길을 찾아가는 아이들에게도, 길 위에 서서 여전히 이 길이 맞는지 제각각의 방향을 찾아 헤매는 어른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볼보와 볼보'가 좋은점 중 하나는 어른이 된 인물들의 시간도 진솔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한나와 헤어지고 혼자가 된 종훈이 느끼는 외로움과 혼란도 다른 아이들의 사정과 다르지 않게 숨김없이 드러내어 종훈이 동수를 일방적으로 구원해주는 완벽한 인물로 그리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은수의 삼촌도, 느닷없이 아이를 집 밖으로 뛰쳐나가게 만들었던 괴물같던 은수의 아빠도, 홀로서기를 시작한 한나도 나이를 먹고 저절로 어른이 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들도 세상 앞에서 여전히 흔들리고, 다시 단단해지기 위한 시간과 의지처가 필요한 사람들임을 말한다.  

 친구를 두고 혼자만 어른이 될 수 없어 방황하던 주현이도, 세상과 부딪혀 영혼이 다치고 혼자가 된 종훈도, 친구에게도 제 속내를 털 어놓지 못하던 은수도, 한때는 누군가의 꿈을 위한 표가 되어줄 수 있었던 은수의 아빠도 모두가 삶을 살아내기 위한 통을 겪어낸다. 알고보면 나쁜 사람은 없다고,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결국은 모두를 이해할 수 있어서 하나같이 애틋해진다.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몫만큼만 해내고 싶었을 뿐인데 그 '보통의 어른'이 되는 일이 가끔은 이렇게 멀게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동수가 닫았던 마음을 열고 다시 주변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처럼, 종지부를 찍었던 종훈과 한나가 다시 새로운 관계로 나아가기로 마음 먹은 것처럼, 방황하는 주현이에게 기회와 지지를 보내주는 가족이 있어준 것처럼, 은수가 친구에게 솔직해질 수 있었던 것처럼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길은 있음을 보여준다.  

  처음 어린시절 너무나 좋아했던 '클라우디아의 비밀'이 나왔을 때(15) 반갑고 슬펐다. 몇번이고 다시 읽었던 그 책을 언제부터 책장에 꽂아둔 채로 다시 열어보지 않았을까. 분수대에 들어가 몸을 닦으며 사람들이 던져둔 동전을 줍던 장면을 누군가는 여전히 사랑하고 아껴주겠지,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볼보와 볼보'도 성숙하고 치열한 인물들이 유리창이 깨진 볼보 포클레인과 털이 잔뜩 엉킨 강아지 볼보를 두고 조심스럽게 얽혀 결국 서로의 방향이 되어주고 더 아래로 주저앉지 않도록 안전망이 되어 주는 관계성에 위로받고 공감해줄 것이다. 모두가 애틋해서 한참동안 표지를 눈으로 덧그렸다. 어린아이가 색연필로 그린 것 같이 빼곡하고 순수한 표지의 그림이 볼수록 여러 감상을 불러일으켰다. 마음을 울리는 맑고 투명한 감성의 청소년도서를 만나보고 싶다면 '볼보와 볼보'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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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덕목 - 존경받는 리더는 무엇이 다른가, 2018 노틸러스도서상 은메달 리더 시리즈
에드거 샤인.피터 샤인 지음, 노승영 옮김 / 심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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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요즘 두드러지는 현상으로 조직은 구성원을 기능에서 인간으로 보기 위해 노력하는 변화를 보이고 있지만, 오히려 구성원은 조직 안에서 인간보다 기능으로 머물기를 바란다. 말하자면 조직은 2단계, 전인적 관계(61)를 지향하지만 구성원은 1단계인 업무적 관계(55)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조직 시스템의 변화가 구성원의 태도보다 더 낫다는 의미가 아니라, 기나긴 소통의 단절과 인력을 소모품으로 착취하는 노동문화가 고착화 된 탓에 퇴근 시간이 되면 일이 진행 중이어도 자리를 정리하고 퇴근하는 '돈 받은 만큼만 한다' 직장 사람들과 대화는 커녕 인사도 나누지 않는 '일하러 왔으면 일만 한다' 는 태도가 합리적이고 편하다는 세대가 등장한 것이다.

 과거 직장에 뼈를 묻으면 정년과 노후가 보장되었던 세대는 지나갔다. 조직은 오히려 직원이 뼈라도 묻을까봐 조직 안에서 안정을 찾은 인원들에게 희망퇴직 같은 이름을 붙여 내보내기 급급했다. 직원들은 더 많은 권한과 급여를 받기 위해 승진을 하려고 노력하기 보다 승진에 따르는 업무적 부담을 먼저 고려한다. 차라리 주어진 일만 처리하고 정해진 급여를 받는 것에 만족한다. 문제를 제기하면 해결 방안을 요구하고, 기획을 제안하면 업무를 떠넘기며, 조직 내에서 관계를 원만히 유지하려 하면 호의를 이용하려 하는 기존의 틀을 거부하는 것이다.

 조직이 유지되는데에는 제 몫을 수행하는 구성원들이 필요하지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비전과 열정을 가지고 조직과 함께 발전해나가려는 의지를 가진 구성원들 또한 필요하다. 하지만 반감과 불신으로 굳어진 조직문화에선 성장의 원동력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를 바꾸고 조직원들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 '리더의 덕목'을 조직심리학의 거장이자 50년 경력의 MIT 슬론 경영대학원 석좌교수인 에드거 샤인이 피터 샤인과 함께 남긴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다. '리더의 덕목'은 '존경받는 리더는 무엇이 다른가'는 질문을 통해 리더십을 관계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제시해준다.

 처음 직장 생활을 시작할 무렵은 -1단계(53)나 다름 없는 조건이었다. 어리숙한 초년생에게 업무에 대한 책임을 빌미로 6개월에 한번 정해진 시점에만 퇴사가 가능하다는 계약서를 내밀었을 정도였다. 시간이 지나고 다른 직장들을 거쳐 마침내 수평적 기업 문화를 추구하는 조직에 이직했을때 자율과 복지를 보장하는 시스템을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제도를 이용하는 조직원들이 생겨날 것임을 확신하고 기업은 이 손실을 지탱해낼 수 없을 것이라 여겼다. 자발적으로 간수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 위치에 서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 리프레시 공간을 두고, 조직원 개인의 문제를 상담, 지원해주는 제도를 마련해두고, 업무 일정을 승인받는 것이 아니라 공유하는 유연성은 높은 자유도와 함께 책임과 몰입을 가져왔다. 프로젝트의 리더에게 업무 지시를 받는 것이 아니라 목표점을 찾고 진행 상황을 논의하며 협력한다. 이런 경험을 통해 새로운 조직 문화와 이를 이끌어나가는 리더 역할의 중요성을 체감하고나니 조직원의 위치에서도 '리더의 덕목'이 흥미롭고 궁금했다. 조직이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을 더 깊게 이해하고 싶어진 것이다.  

 대부분의 내용을 흥미롭게 읽었는데, 레몬 연습(228)같은 부분은 본질적인 의도를 놓고 보아도 다소 난감했다. 레몬 연습을 받아들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가 어려울 것이라 생각되는데 문화적 차이 때문인지, 좀 더 적극적으로 열린 마음을 갖지 못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조직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봐야 할 책이지만 조직원의 입장에서 자신에게 '리더의 덕목'을 읽어볼 필요성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몸담고 있는 조직을 혹은 추구해야 할 조직의 기업문화란 어떤 것인지 이해하기 위해서, 다양한 사례와 우화를 통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내용으로 되어 있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본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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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완성 수프 도시락 - 쉽고 간편한 수프 레시피 60가지
아리가 카오루 지음, 이은정 옮김 / 푸른향기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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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안에 흐르고 있는 한국인의 피가 붉고 진한 맛이 예상되는 수프 위주로 침샘을 자극하길래, 처음 계절과 재료별로 나눠진 제목을 살펴봤을때 '마파가지 수프(94)'가 맛있어 보여서 먼저 조리법을 찾아봤다. 마침 마파두부 소스를 사둔 것도 있었기 때문. 그런데 사진을 보니 예상했던 마파소스의 색감이 아니었다. 고추기름을 사용하는 것은 맞는데 색이 맑다. 맑은 수프라니, 이 책 보통이 아니다. 다시 책을 덮었다. 표지에 나온 붉고 맛있어보이는 수프 사진을 보고 또 생각했다. 설마, 이 표지까지 한국의 독자를 사로잡기 위해 안배한 것이라면 정말 이 책 보통이 아니겠다. 

 '수프'라고 하면 크림, 감자, 옥수수, 버섯, 브로콜리, 토마토로 정형화 된 대표적 수프를 떠올릴 것이다. 식품 회사에서 판매하는 인스턴트 수프도, 음식점에서 선택할 수 있는 수프의 종류도 저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10분 완성 수프 도시락'에도 흔히 떠올릴 수 있는 쉽고 간편한 조리법들이 있지만 맑은 국같은 수프나 처음 보는 재료를 사용한 개성있는 수프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개성있고 생소한 재료들이 수프의 영역을 확장해주는 점이 좋았다. 책에서 나온 조리법을 그대로 따라해보는 것도 좋겠지만 더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재료로 바꿔서 친숙하게 만들어도 '수프에 넣어도 되는' 재료임을 알려주기 때문에 부담이 적어진다. 예를 들면 소송채 대신 청경채나 얼갈이배추 같은 것을 넣어 만들어도 맛이나 식감에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저자가 일본인이기 때문에 호지차를 국물에 사용한다던가 오크라 같은 식재료를 쓰는 것도 독특하다. 샐러드 치킨은 정확히 어떤 부위나 조리가 된 닭고기인지 모르겠다. 닭가슴살이나 닭껍질을 따로 표기한 것을 보면 체중조절용으로 판매하는 익힌 닭가슴살 같은 것을 말하는건가 싶다. 보리나 현미를 같이 넣어 끓인 것들은 리조토라고 이름붙여져 있지만 한눈에 보기에 국밥같다. 대파 돼지김치 수프(44)는 김치국이나 조금 더 연하게 끓여낸 김치찌개나 다름 없는데, 이걸 수프로 부르는 것은 외국인이기 때문에 가능한 듯 하다. 한국인 독자들은 여기에 두부도 넣고 참치나 햄을 넣는 등 자연스럽게 요리를 완성하게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로는 채소를 많이 먹을 수 있는 요리법이란 점이다. 거기에 단백질 섭취를 도와주는 재료들도 하나씩 들어가있어 따뜻하고 속이 편한 식단이 되어준다. 하지만 맑은 국물보다는 카레나 토마토, 데미글라스 소스 등을 넣은 살짝 자극이 가미된 수프들에 더 관심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재료로 햄이 들어가는 수프들이 처음엔 수프와 햄의 조합이 뭔가 어색하다고 생각했는데 부대찌개에 햄을 넣는 것처럼 활용했다고 생각하면 맛이 상상된다. 조리법과 더불어 수프 용 보온도시락 통에 대한 설명도 나오는데 꽤 세심하다. 다만 이렇게 조그만 통이 한끼가 될 수 있을까, 크기가 두배는 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읽으면서 수프를 따라서 만들어봐야지 했는데, 너무 게으른 나머지 제대로 만들어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다만 '10분 완성 수프 도시락'을 참고하여 두부와 새우, 토마토를 넣고 가쓰오 국물로 끓인 나름의 수프를 함께 소개한다. 가쓰오 농축액으로 간을 한 끓는 물에 모든 재료를 넣어 익힌 다음 후추를 조금 넣었다. 담백하고 감칠맛이 나는 수프로 두부가 들어가 포만감을 준다. 이렇게 있는 재료로 간단하게 만들 수 있으니 하루 한끼를 가볍고 건강하게 만들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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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할 토마토, 기막힌 가지
박찬일 지음 / 창비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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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식과 음식의 철학은 도시의 식탁 위에서 이루어지는 담론이다. 생산자는 철저하게 배제된다. 생산자들을 만나러 농어촌에 가면 더러 밥상을 받게 되는데, 제일 먼저 듣는 인사가 "좋은 건 다 팔아치우고 우리는 이렇게 소박하게 먹어요. 미안해요"다. 도시의 미식을 떠받치는 생산자들이지만, 정작 그들은 도시인의 시각에서 보면 가장 낮은 단계의 미식을 누리고 산다. 6"

 약 10년 전 '뜨거운 한입' 초판 출간 이후 개정판이 나오며 바뀐 제목이 '망할 토마토, 기막힌 가지'라고 한다. 전보다 더 과격해진 제목이지만 확실히 눈길을 사로잡는다. 제목을 보자마자 떠오른 생각이 토마토와 가지에 가격이 990원에서 2890원까지 오르내리는 웃기는 애호박만 곁들이면 라따뚜이를 만들겠구나 였다. 참고로 오늘의 애호박 시세는 1190원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우리의 생활과 관심사는 먹고 사는 것으로 채워져있다. 잘 먹고 잘 사는 법은 여러 범주에서 강조되고 있다. '망할 토마토, 기막힌 가지'는 그 중, 먹는 일을 다루니 자연스럽게 삶이 따라온다. 식재나 음식과 관련된 내용의 글들이 묶여있다보니 읽으면서 할 말도 많고 먹고 싶은 것도 많아지는 책이다. 십년 전에는 왜 몰랐을까 아쉬울 정도로 매력 넘치는 내용들이 많다. 

 미역냉국에 가지가 들어 있던 어린 시절(28)을 이야기할 때 놀랐다. 오이가 아니라 가지라니. 낯설다. 어린시절부터 가지볶음을 좋아했던 가지사랑단원인데도 냉국에 들어간 가지를 떠올리면 가지헤이터들의 마음이 조금 이해도 갈 것 같다. 미역냉국에 가지를 넣으시던 저자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나오는데 쌀이 없어 우동으로 저녁밥을 해먹는 형편을 이웃에게 알리기 싫어하셨다는 가오(65)와 콩나물 50원 어치씩 나눠사기 전략(37)은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즐거움이었다.  

 식재와 관한 일화 중 유순히 읽어넘기지 못한 것 중 하나가 닭껍질(54)이다. 바삭하게 익혀진 전기구이 같은 껍질은 모르겠지만, 백숙의 껍질을 떠올리면 물컹하고 닭살이 돋아난 껍질이 상수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비슷한 생각은 비계(138)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굽기라도 할라치면 온 주방을 기름 자국 가득히 만드는 물컹한 비계가 억울할게 뭐가 있어!싶은 것이다. 하지만 얇은 삼겹(대패로 하면 편하겠지)으로 닭을 감아 오븐에 구워내는 이탈리아 닭요리는 도전해보고픈 '천국의 맛'이다. 

 맛이 아닌 통각(144)의 식재료인 마늘에 대한 내용에선 결혼을 했더니 시댁에 가는 날이면 마늘과 고추를 사다두고 손질을 시켜 며칠을 붓고 쓰린 손가락에 고생했다는 도시괴담 같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양파를 썰면 눈물이 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마늘과 고추의 매운 기운이 화상과 같은 자극을 피부에 일으킨다는 것을 그때 처음 들었다. 이밖에도 감각으로 맛을 더하는 심지가 살아있는 리조토(39), 목구멍을 치고 넘기는 맛의 소바(79), 후각을 때려오는 홍어(123)의 소개도 인상적이다. 

 재료와 음식을 이야기하다 보면 그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들이 빠질 수 없다. 재밌는 것은 압구정은 맥도날드(215)가 차지했다. 그 1호점이 압구정에서 시작했단 것이 이유인데, 과거 친구들이 롯데리아에서 첫 아르바이트를 했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내용이기도 했다. 국밥을 이야기할 때 전주(168)가 등장해 돼지국밥과 순대국밥 애호가들은 섭섭했을지도 모르나 '손님이 주무시는 시간에도 육수는 끓고 있다'는 전주의 콩나물국밥을 좋아하는 입장에서는 반가운 등장이었다. 하지만 부대찌개(186)는 자고로 의정부식이 제일이라 꼽는다.
    
 누군가가 물으면 어김없이 요리가 싫다고 한다. 물론 요리는 때로 재밌다. 하지만 그에 따라오는 정리의 과정이 요리를 바라보는 눈을 감게 만든다. 마트와 시장을 돌아보며 재료를 사는 것, 책이나 유튜브 같은 것을 보며 과정을 따라해가는 재미는 좋지만 기름 튐, 연기와 냄새, 설거지, 남은 식재료 보관과 소진같은 것들이 날 지치게 한다. 게는 남이 발라준 게살이 가장 맛있고, 대기업에서 배합한 양념장에 높은 신뢰도를 보내고, 음식은 사먹는 것이 최고라고 외치는 사람은 입으로만 음식을 즐기다 '망할 토마토, 기막힌 가지'를 통해 직업과 삶으로서의 음식을 배우게 되어 좋았다. 요리와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망할 토마토, 기막힌 가지'가 입맛에 맞을 것이다. 반드시 맛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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