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뉴스로 출근하는 여자 - 빨래골 여자아이가 동대문 옷가게 알바에서 뉴스룸 앵커가 되기까지
한민용 지음 / 이야기장수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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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호기심이었다. 책이 가지고 있는 이름들이 눈길을 끌었다. '최연소 여성 메인앵커', '최초의 여성 메인앵커' 같은 수식도 멋있지만 '빨래골 여자아이가 동대문 옷가게 알바에서 뉴스룸 앵커가 되기까지'라는 문구도 궁금했다. '빨래골'이 어디야? 

이런 호기심은 금새 실망을 불러왔다.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궁금했던 것이 이런 장치들이 이야기를 위한 이야기로 소모된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배경이 나의 것과 비슷해서 더욱 그랬다. 유년시절을 모두 한 곳에서 보냈다(13)는 이유로 자신의 내면이 빨래골에서 물든 것들로 채워졌다는 문장을 읽으며 어색했다. 같은 산자락의 다른 골을 끼고 있는 동네에서 30년쯤 살아왔던 나에게선 어떤 냄새가 날까. 고향을 떠올려보니 우습게도 그의 말에 틀린 것이 없었다. 내가 어디에 있건 나의 뿌리는 바로 그 동네였다.
다소 차가운 시선으로 책을 읽어나가다 맥주 판촉 아르바이트를 하고, 동대문에서 옷을 팔았던 이야기에서 어떤 깨달음이 번뜩였다. 이런 순간들을 불편과 극복으로 여겼기 때문에 더 나아가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사람이었구나, 그 순간을 그냥 다들 그러는 것으로 흘려보낸 사람과는 당연히 다르구나. 우린 서로 다른 사람들이니 타인의 경험을 나와 비교하려 들지 말고 그의 것으로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다시 새겼다. 한 번 생각이 바뀌니 작고 단단하게 뭉쳐졌던 마음이 풀어졌다. 
선배의 조언(68)을 보며 정말 괜찮은 사람들을 만나왔구나 싶었다. 그 뒤로 이어지는 만남들을 지켜보면서 저자가 주변 사람들을 좋게 보는 마음을 가졌구나 하고 생각을 고쳤다. 풀어진 마음은 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말랑해졌다. 처음 비뚤었던 시선은 홀랑 사라지고 읽을수록 점점 저자가 마음에 들어왔다. 게다가 2부에 들어서면서 경찰서에서 버티기를 하며 지내는 '하리꼬미' 시절이 재밌었다. 기자들은 이런 생활도 하는구나, 몰랐던 뒷이야기를 알게 되는 호기심도 채워지고 JTBC로 옮기면서 달라지는 환경에 대한 이야기들도 특유의 불퉁한 속마음을 볼 때마다 공감되고 웃겼다. 
전체적인 톤을 무겁지 않게 썼기 때문에 재밌는 부분도 있고 읽기도 편하다. 하지만 매일 보는 기사 내용들을 떠올려보면 알다시피, 그가 초년생에서 직업인으로 성장해나가는 동안 겪었던 사건들이 우리 사회에도 큰 상처를 남긴 일들이라 다시 보기 괴로운 부분들도 있었다. 게다가 책을 쓰는 과정에서 123이 벌어졌으니, 광화문 촛불 시위를 이야기하며 지난 안부를 묻다가 난데없이 마침표를 지워야하는 사족이 붙기도 한다.(176) 책을 내는데도 중간에 속보를 띄워야하는 일이 생기는 기자/앵커 답다고 할까. 

기사로 자신을 말한다는 그의 답이 '아이들'이었을 때 마침내 대단한 사람에서 좋은 사람으로 인식이 바뀌었다. 도토리와 감자를 소중히 품은 첫 여자 앵커라는 사실은 대단한 사람의 도전만이 아니라, 그의 삶에서 존중받아야할 당연한 흐름으로 여겨졌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그를 만나볼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 검프처럼이 아니라 그 자신대로, 그만의 길을 걸으며 지금처럼 꿈꾸는 또 다른 이들에게 길이 되어준다면 반갑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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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홀가분하게 살고 싶다 - 소란한 삶에 여백을 만드는 쉼의 철학
이영길 지음 / 다산초당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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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에 앞서 61쪽 1장의 끝부분에 있는 '쉼 결핍 증후군 자가 진단 체크리스트'를 먼저 해보길 권한다. 이유는 이런 자가 진단을 해보는게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상태인지 한번쯤 생각해보게 만들어서 재밌기 때문이기도 하고, 특히 2번과 10번 질문에 답을 하면서 큰 공감을 했는데,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 먼저 확인해보니 책에 대한 관심과 필요가 더 커졌기 때문이다. 책 내용 곳곳에 이런 자가 진단 테스트가 몇 가지 더 있는데 해당하는 장의 마지막 부분보다 맨 앞에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6장과 7장의 뒷부분에 자가 진단이 있으니 원한다면 진단을 먼저 해보고 읽어도 좋겠다. 

" 우리가 진지하게 물어야 할 건 '당신에게 시간이 얼마나 많은지'가 아니라 '당신의 삶이 얼마나 다채로운지'이다. p16" 

처음 '나는 홀가분하게 살고 싶다'는 책의 제목을 통해 삶의 물리적 '여백'을 먼저 떠올렸지만, 책의 내용은 심리적 여백 '쉼'을 먼저 권하고 있었다. 얼핏 다른 것 같지만 결국은 같은 목적지를 향한 것이라 개의치 않고 반기며 읽었다. 게으른 성격 탓에 나는 잘 쉬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쉰다고 생각하는 시간을 오늘 하루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낭비'했다고 은연 중에 가책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다면 정말 잘 쉬고 있는 것일까? 하얗게 비워진 여백이라 생각했던 공간이 사실은 까맣게 채워진 상실과 부채였던 것은 아닐까? 쉼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그려나가야 좋은 것일까? 책은 스스로에게 의문을 갖게 만들고 또 답을 구하도록 유도한다. 

저자는 일과 휴식/멈춤과 욕망, 웃음/기쁨, 속도/조급함, 사랑 등 다양한 관점으로 우리 삶에서의 쉼을 재조명하고 있다. 다른 것보다 4장의 내용 '내일의 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사회(115)'이 항상 의견이 분분한 주제와 닿아있고, 개인적으로도 중심을 어느 한 곳에 두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삶을 긴 호흡으로 바라보고 미래를 위해 현재를 투자해야 하는 것도 맞지만, 불확실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오늘의 행복을 뒤로 미룬채 앞으로 달려나갈 수 만은 없는 것도 맞다. 어떤 것이 맞고 그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삶을 살아갈 것인가, 매 순간 적절한 절제와 쉼을 유지할 수 있도록 더 많이 읽고 배우고 생각하며 현명하게 헤쳐나갈 수 있기를 바라게 된다.   

요즘은 5장에서 다룬 '욕망'에 대해 자주 생각하고 있어서 특히 관심있게 읽었다. 특히 소비를 하는 과정에서 필요와 욕망, 소비행위를 비교하며 고민하곤 한다. 소비행위 자체를 하고 싶어서, 그저 가지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필요하지 않은 것'에 시간과 돈과 공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한다. 대체로 감각을 자극하는 동기가 사고를 마비시키는 일이 더 많이 일어나곤 하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한 '절제(146)'에 대한 내용을 읽다보니 직접 체득한 실전 자기 조절 능력과 절제 방법이 떠올랐다. 바로 마트에 가기 전에 밥을 먹고 가는 것이다. 나만의 경우인지 모르겠는데 공복 상태로 장을 볼 때와 배부른 상태로 장을 볼 때 충동적으로 구매하는 상품의 양이 달라진다. "제대로 쉰 사람은 배부르게 먹고 잠든 아이처럼 만족스럽고 평온한 상태가 된다.(149)"는 책의 내용처럼 결핍이 없는 상태에서 더 절제를 하기 쉬워지는 것을 직접 경험해왔기 때문에 확 와닿는 내용이었다. 

책의 좋은점은 쉼이라는 주제로 그동안 유지해 온 삶의 방식에서 한 걸음 떨어져 스스로를 점검해보고 새롭게 환기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다는 것도 있지만, 소소하게는 각 단락마다 유명인들의 격언을 하나씩 담아 놓아 눈길을 끄는 요소들도 있다. "사람들이 자신이 사랑하게 될 기술이 그들을 파괴하리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_올더스 헉슬리(87)"의 날카로운 격언이나 "우리는 항상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점점 더 혼자다.(54) / 우리는 관계를 가졌다고 느끼지만, 사실은 대화를 잃고 있다. 우리는 연결되었지만, 고립되었다.(224) _셰리 터클[외로워지는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문구처럼 마음에 들거나 인상 깊은 내용을 따로 적어두기에 좋았다. 

자신도 의식하지 못했지만 아마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졌던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바쁘고 밀도있게 하루를 보내면 오늘을 충실히 잘 보냈다며 만족스러워하고, 해야 할 일을 미루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대에서 5미터 이상 떨어지는 일 없이 하루를 보낸 날은 즐겁지만 한편으론 괜한 죄책감이 들곤 했다. '번아웃'이라는 말이 일상으로 통용되고, 자신을 돌보는 일에 지쳐버린 젊은 세대에게 특히 많이 나타나는 '쓰레기집' 현상이 새로운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현실에서, 늘 뭔가를 하고 채워지는 삶을 살아야한다는 생각이 스스로에게 걸어둔 압박이나 조급함은 아니었을까 '나는 홀가분하게 살고 싶다'를 읽는 동안 찬찬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덧붙여 책에도 여러번 언급되어 있지만 한병철의 [피로사회]를 함께 읽는다면 더 좋은 감상이 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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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스토어로 월 매출 5,000만 원 만들기 - 부업으로 시작해 퇴사까지, 돈 버는 실전 가이드
김대영 지음 / 푸른향기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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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마트스토어로 월 매출 5,000만원 만들기' 정말 솔직하자면 이런 류의 가이드 책을 볼 때 의심의 눈을 장착하고 읽는다. 정말 진짜 고급 정보라면 이렇게 전부 다 공개하겠어? 결국 다 비슷비슷한 조언을 늘어놓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들고, 이런 정보를 가지고 호기롭게 도전한다고 해도 결과는 사람과 제품, 시기에 따라 다를텐데 싶기도 하다. 실제로 한달에 로또 5천원 맞기도 어려운 로또는 믿으며 구매하면서 월 매출 5천만원을 달성하게 만들어준다는 이야기는 신포도 취급하는 것이다. 

 귀여운 아이콘 디테일을 가진 '스마트스토어로 월 매출 5,000만원 만들기'를 한 번 쓱 훑어보고 창업이나 판매자로서의 관점보다 구매자의 방향에서는 알지 못했던 스마트스토어의 구조를 만나볼 수 있었던 점이 흥미로워 열심히 읽게 되었다. 월 매출 5천은 모르겠지만 월 소비 오만원, 오십만원은 다달이 지출할테니까. 책이 알짜 정보를 잘 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 요소 중 하나가 큐알코드로 넣어놓은 부록인데 핵심 내용을 잘 정리해둔 내용을 엑셀로 볼 수 있게 해두었다. 이런 코드를 사용해서 독자의 경험을 확장시키는 요소들은 매번 신기하고 마음에 든다. 

 이 책 한 권과 본인이 하고자 하는 사업구상이 있다면 스마트스토어를 만드는데 무리가 없을 정도로 상당히 자세하게 되어 있었는데, 읽으면서 가장 관심이 갔던 부분 중 하나가 '스토어명 정하기(62)'의 내용이었다. 굉장히 짧은 단락이긴 한데, 주변에 창업을 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고민하고 다른 요소들에 비해 주변의 의견을 많이 반영하는 것이 상호이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국 본인의 마음대로 하긴 하지만. 본인은 주변인 창업 때 상호 공모에서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선정된 이력과 로고(80)제작 초안에 참여하여 밥을 얻어먹은 경력이 있다. 
  
 다른 것들은 장바구니에 담긴 애매하고 언젠가 필요하면 구매하려고 눌러두었던 '찜 해두기(156)'가 스토어에도 도움이 되는 포인트로 반영된다는 것과 '블로그체험단(250)'에 대한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체험단은 말도 탈도 많은 홍보 수단인데 특히 주변에 이 체험단을 잘 이용하는 블로거 지인과 맛집을 검색했을때 체험단 후기가 많으면 그 가게는 절대 이용하지 않는다는 지인이 극명하게 나뉘어져 있어서 흥미롭게 읽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체험단의 후기를 신뢰하기 어렵기 때문에 거른다는 지인의 입장이 이해가지만, 확실히 자세한 정보를 담은 체험단 후기를 검색해서 볼 때 도움이 되는 면이 있기 때문에 판매자의 입장에서는 좋은 홍보가 된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생각 나는 지인이 있어 이 책을 선물로 줄 계획이다. 가게를 운영하면서 스마트스토어를 병행하려고 만들어 둔 지인이 있는데 판매물건은 초기에 올려둔 제품 딱 2개 뿐이고 기본 스토어명 그대로 바꾸지 않은 채 방치하다시피 운영하고 있다. 가게를 하면서 둘다 병행하기 어렵다는 고충을 토로한 적이 있다. 그래도 정말 드물게 주문이 들어올 때가 있어 본인도 신기하다고 했는데, '스마트스토어로 월 매출 5,000만원 만들기'가 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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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땀 소설향 앤솔러지 1
김화진 외 지음 / 작가정신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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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땀]은 악마같은 소설이다. [초록 땀]을 읽기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독자의 평온은 깨어진다. 작가는 평범한 소설의 도입부인척 위장하여 숨을 쉬는 것, 침을 삼키는 것, 혀의 위치같이 그 전에는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행하던 기능을 단번에 부자연스럽게 만드는데 성공한다. 의식하고 싶지 않은 모든 것을 귀신같이 골라내 숨 쉬고 침 삼키고 혀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책을 눈으로 읽는지 코로 읽는지 모르게 만든다. 이 부자연스러움은 반대로 책으로의 몰입을 유도한다. 읽다보면 다시 자연스럽게 숨쉬고 침을 삼키고 입안에 어정쩡하게 굳어있는 혀를 잊겠지 바라며, 읽는 것에 몰입하게 된다. 잊었던가? 

나만이 가진 작은 어떤 것을 담아두고 사는 모든 사람들은 아마 이 소설에 빠져들게 되지 않을까. 대체적으로 세상 사람 모두일테다. 책을 덮고 내 삶에 생겨나던 그 작은 것을 나는 누구와 은밀히 공유했을까 생각해본다. 어느 날 몰래 빠져나온 야자시간에 단짝친구의 옆얼굴에 속삭이던 때도 있었다. 술에 취했다는 핑계로 주정처럼 늘어놓던 때도, 퇴근하고 돌아와 입을 꾹 다물고 냉장고 안의 야채들을 잔뜩 꺼내 깍뚝 썰며 카레를 한솥 만들고 지쳐 잠들 때도, 그러려니 하고 창밖을 한 번 보고 하던 일이나 마저 하는 때도 생겨났다. 발각되거나, 조용히 말라 없어질 때까지 우리 모두 그저 혼자 품고 지내는걸까, 이 작은 것들을 우리 삶에서. 

이 작은 것들은 때로 조금 불편하고 때로는 조용히 잠못드는 더운 밤처럼 지긋지긋해도 그 이상으로 두드러지지 않는다. 잠을 잘못 잤는지 며칠 전부터 왼쪽 목 뒷부분이 뻐근하게 아팠다. 공교롭게도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무렵부터인데 근육통, 벌레 물린데, 어디든 좋대서 사온 그린오일을 발라보아도 싸한 냄새만 오래갈 뿐 목의 통증은 줄어들지 않았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거나 꺾을 때마다 급소를 눌린 것 같은 통증이 밀려와 고개를 젖혀 머리를 감을 때 조차도 멈칫거리기 일쑤였다. 이 통증은 남에게 발각되지도 않고 조용히 지금까지도 내 왼쪽 목에 붙어 있다. 남들에게 자연스럽지만 나에게만은 부자연스러운 것을 찬찬히 음미한다.  

" 그런데 나는 왜 여기에 있지? 70" [초록 땀]이 내부를 바라본다면 [나쁜 여행]은 외부를 훑는다. 관계 맺기의 어색함이 고스란히 드러난 글을 앞에두고 자신의 비겁함을 떠올리며 읽었다. 치앙마이 한달살기 같은 요소는 이제 지나치게 흔해서 시작을 조금 아쉽게 느꼈는데 읽을수록 불편함이 느껴지는 소설이어서 흥미롭기도 했다. [빛과 빗금]에서는 더 확장된 외부의 균열이 드러나는데, 지난 123 이후로 더욱 선명하게 그어진 선 앞에서 나도 불편해져서 그만 눈을 돌리고 싶은 내용이었다. 가까운 사람들 사이의 대립이 지나치게 날 것 같으면서도 이 조차 우회하고 싶어지는 현실감, 무력함 같은 것들이 느껴졌다. 남이 볼까 혹은 누구와 언쟁이라도 섞게될까 '초록 땀'을 재빠르게 훔쳐내는 것처럼 색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자신이 있다.

김사과의 소설은 외부에서 다시 내면으로 시선을 돌린다. '유행'이라서 유행인 것들 사이에서 유행을 따라하기도 이해하기도 포기하고 나니, 그럴 필요가 없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유행을 받아들이고 좋아하는 일이 자연스러운 때에는 그것을 이해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그게 시선을 끌고 좋아서 저절로 그 흐름 속에 섞여들어간다. 더이상 유행이 좋아보이지 않아 왜라는 질문이 머리 속을 스치는 때가 되면 그건 그냥 그대로 좋아하는 사람들의 몫을 두어야 하는 때인 것이다. 물론 아직도 대체 그게 왜 좋을까 호기심에 넷플릭스에 들어가보곤 한다. 과연 어떤 것들은 좋고 어떤 것들은 좋아지지 않는다. 그게 나의 욕망을 자극하는 것이 맞을까, 요즘은 천천히 생각해보곤 한다. 그렇지않으면 타인의 욕망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고 살게 된다. 

얼마 전 집에 친구를 초대하면서 한가지 먼저 이야기해 둔 것이 있었다. 혹시 집에서 좋지 않은 냄새가 난다면 실례될까 염려말고 부디 말해달라는 것이었다. 후각은 익숙한 것에 둔해서 의외로 자신과 집에서 나는 냄새를 본인은 모르고 있는 경우가 있다. 벌써 개봉한지 5년이 넘은 영화 [기생충]에서 언급된 '집의 냄새', 그 날 것의 충격이 선명했는데 [이사]를 읽으며 나는 그 냄새를 떠올렸다. 아마 [이사]에서 냄새는 덮어두고 외면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면, 나의 냄새는 자신의 맨 얼굴과 같은 삶의 너절함이 숨겨지지 않고 드러나는 것으로 풍겨난다. 내 집에선 어떤 냄새가 날까 내가 느낄 수 없는 그 냄새를 맡아줄 사람을 찾았는데, 글쎄 그가 무슨 말을 했더라. 

'초록 땀'은 끊임없이 감각을 자극하는 독특한 주제가 인상적인 단편집이었다. 이 첫 시도가 독특해서 반가우면서 지나치게 예리하게 벼려져 때로는 불편함을 숨기지 못한 채 읽었다. 어떨 땐 빨리 마지막 장까지 달려가 금방 책을 덮고 싶었는데, "우리 삶의 방향과 소설이 향하는 곳을 함께 읽고 쓰고 그려나가고자"하는 이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으니 다음을 대체 누가 어떻게 풀어나갈까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금새 기다리게 된다. 읽는 동안 소진되는 감각들을 달래 줄 좋아하는 차, 마음에 드는 소품, 아껴 뿌리는 향수같이 자신만의 것들을 곁에 두고 읽으면 더 완벽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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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무죄 세계의 사랑법 - 범죄 너머에서 발견한 인간에 대한 낙관
정명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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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소장의 세계에서 범죄사실의 다정한 도입부가 끝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없다. 관계에서 비롯되는 범죄들의 끝은 주로 관계의 파멸로 마무리된다. 그래서 첫 문장의 관계가 돈독할수록, 범죄는 잔혹하고 애잔하다. 17"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 범죄수사와 관련된 내용을 담은 것들은 항상 인기가 많다. 어떤 사건에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하고 보는 이로 하여금 경각심도 가지게 하며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며 사회 안전망에 대한 신뢰를 쌓고 죄를 지은 사람은 댓가를 치른다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무엇보다 매체에서 접하는 사건들은 자극적이다. '유무죄 세계의 사랑법'에도 그런 요소들이 담겨있다. 거기에 인간미와 삶에 대한 사유를 한꼬집 더 첨가한 시선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알고싶다] [용감한 형사들] [궁금한 이야기] [사건반장] 같은 프로그램을 자주 챙겨보는 사람이라면 텔레비전을 왜 보나, '유무죄 세계의 사랑법' 읽으면 되는데. 

저자의 의도가 어느 부분에 더 중심이 맞춰져 있든, 읽으면서 솔직히 좀 웃겼다. [싸움의 기술 54] 같은 편에서 왜 남자들은 싸울 때 웃통을 벗는가에 대한 심도있는 고찰이 이루어지거나, 주민등록이 3으로 시작하는 피고인의 사건에 운을 떼면서 뒷자리 아니고 앞자리다. 42"하고 강조하는 부분에서는 웃음이 터졌다. 진짜 이상하고 상식에 맞지 않아 웃기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이런 사람들을 실제로 마주하면 웃기는 것을 넘어 공포스럽겠지만. 웃음이 지나는 길에는 눈물도 같이 흐른다. 얼마의 돈을 횡령했는가는 답하지 않아도 두부 만드는 과정은 설명하는 피의자(76)를 만나고, 우연히 이끌린 한 사건을 외면하거나 덮지 않고 10년을 고스란히 쏟아부어 마주한 선배 검사의 '쌩고생담'(129)을 소개한다. 웃다가 놀라다 바쁘게 읽다보면 어느 순간 마음이 따뜻해진다. 

" 공판검사는 세상의 끝으로 밀려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맞은편에 서 있다. 거기에서 항변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본다. 세상의 질서에 어긋나는 행위를 했다고 기소된 사람들의 자백하거나 후회하거나 항변하거나 회피하는 얼굴을 탐구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인식한다. 층층의 지층 속에서 지구의 역사를 읽는 지질학자처럼 인간의 사랑과 욕망과 감정의 역사들을 읽는다. 120" 

1부의 내용이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건들로 이루어져 있다면 2부는 좀 더 감성적인 터치가 들어간다. 1부에서 느꼈던 자극이 줄어들어 좀 심심해지나 싶을 때 '덜 녹아든 소금 입자가 팍 터지는 슈팅스타 볶음밥(179)'처럼 진솔한 삶의 매력이 마음에 울림을 준다. 3부는 저자의 삶에서 주변으로 시선이 이동한다. 읽다보면 상주에는 다 이렇게 사람 마음을 들었다놓는 '심쿵요정(233)'들만 있나 싶어 상주에 가보고 싶어진다. 10월 말이면 요양원에 누워있던 노인마저 동원되어 곶감 만드는 일에 진심(242)이 되고, 사건 이름 마저도 어떻게 '노루궁뎅이버섯 사기 사건(253)'인, 상주 홍보나 다름없는 내용을 읽다보면 언젠가 중앙시장에 가서 남천식당 우거지국밥을 먹으리라, 후식으로는 징검다리를 건너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겠노라고 특별히 밑줄을 그어두게 된다. 해외여행 너무 먼데 상주엘 가야지, 가서 긴 천을 따라 걸으며 곶감 맛을 봐야지 다짐해본다. 

검사라는 직업이라고 하면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천하무적으로 사건을 해결하거나 악의 세력과 결탁하여 타락하는 뭔가 보통과는 거리가 있는 삶을 살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장화를 새로 사면 전문가인 엄마의 평을 기다리기는 애송이 구매자(278)이기도 하고, '암흑 같은 상사(163)' 때문에 할말은 많지만 하지 않기도 하는, 후배 앞에서 '비주류(168)'라서 쪽팔리기도 한, 춤에 너무 진심(197)이라 읽는 사람이 어쩐지 민망해지는, 회식 자리에서 술 따르느냐 마느냐로 무려 2부에 걸친 고민(그 시절, 우리가 술잔에 담았던 것들1,2)을 하는 어디서 본 것 같은 비슷한 시간을 보내는구나 싶기도 했다. 다만 하나 궁금한 것은 저자에게 고등어란 무엇인가. 고등어 삼촌(61)부터 진술을 고등어 뒤집듯(102)할 때, 고등어 대신 문어가 등장했어야 더 맞지 않겠는가. 그랬더라면 문어론이 존재론적 반론에 부딪쳤던 과거(151)도 위로가 되었을텐데 싶었다! 

" 인간의 법정이 내어줄 수 있는 답은 유죄 아니면 무죄이지만, 그것으로는 다 담지 못하는 거대한 생이 있다는 사실 앞에 우리는 자주 좌절한다. 122" 

날이 더워 차가운 물을 틀어두고 얼굴을 닦다 잠시 멈췄다. 수도의 방향을 가장 차가운 방향으로 돌려둔 것이 무색하게 물은 차갑다기 보다 시원했다. 겨울에 틀어두었던 차가운 물을 떠올려보면 너무도 다르다. 같은 물을 계절에 따라 다르게 느끼는 것인지, 어떤 차가움은 주체에 따라 다르게 여겨지는 것인지. 마침 읽고 있던 '유무죄 세계의 사랑법'을 생각했다. 어떤 사건도 이 물처럼 상황이나 사람에 따라 다르게 읽힐 수도 있을 것이고, 차가우리라 예상했던 물이 그렇지 못했던 것처럼 생각과는 다를 수도 있을테다. 이 차가움을 내 예상보다 더하거나 덜하다고 속단하거나 불평하지 않는 사람으로 계절을 보내야겠단 생각을 했다. 내 나름의 사랑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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