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호기심이었다. 책이 가지고 있는 이름들이 눈길을 끌었다. '최연소 여성 메인앵커', '최초의 여성 메인앵커' 같은 수식도 멋있지만 '빨래골 여자아이가 동대문 옷가게 알바에서 뉴스룸 앵커가 되기까지'라는 문구도 궁금했다. '빨래골'이 어디야? 이런 호기심은 금새 실망을 불러왔다.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궁금했던 것이 이런 장치들이 이야기를 위한 이야기로 소모된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배경이 나의 것과 비슷해서 더욱 그랬다. 유년시절을 모두 한 곳에서 보냈다(13)는 이유로 자신의 내면이 빨래골에서 물든 것들로 채워졌다는 문장을 읽으며 어색했다. 같은 산자락의 다른 골을 끼고 있는 동네에서 30년쯤 살아왔던 나에게선 어떤 냄새가 날까. 고향을 떠올려보니 우습게도 그의 말에 틀린 것이 없었다. 내가 어디에 있건 나의 뿌리는 바로 그 동네였다. 다소 차가운 시선으로 책을 읽어나가다 맥주 판촉 아르바이트를 하고, 동대문에서 옷을 팔았던 이야기에서 어떤 깨달음이 번뜩였다. 이런 순간들을 불편과 극복으로 여겼기 때문에 더 나아가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사람이었구나, 그 순간을 그냥 다들 그러는 것으로 흘려보낸 사람과는 당연히 다르구나. 우린 서로 다른 사람들이니 타인의 경험을 나와 비교하려 들지 말고 그의 것으로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다시 새겼다. 한 번 생각이 바뀌니 작고 단단하게 뭉쳐졌던 마음이 풀어졌다. 선배의 조언(68)을 보며 정말 괜찮은 사람들을 만나왔구나 싶었다. 그 뒤로 이어지는 만남들을 지켜보면서 저자가 주변 사람들을 좋게 보는 마음을 가졌구나 하고 생각을 고쳤다. 풀어진 마음은 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말랑해졌다. 처음 비뚤었던 시선은 홀랑 사라지고 읽을수록 점점 저자가 마음에 들어왔다. 게다가 2부에 들어서면서 경찰서에서 버티기를 하며 지내는 '하리꼬미' 시절이 재밌었다. 기자들은 이런 생활도 하는구나, 몰랐던 뒷이야기를 알게 되는 호기심도 채워지고 JTBC로 옮기면서 달라지는 환경에 대한 이야기들도 특유의 불퉁한 속마음을 볼 때마다 공감되고 웃겼다. 전체적인 톤을 무겁지 않게 썼기 때문에 재밌는 부분도 있고 읽기도 편하다. 하지만 매일 보는 기사 내용들을 떠올려보면 알다시피, 그가 초년생에서 직업인으로 성장해나가는 동안 겪었던 사건들이 우리 사회에도 큰 상처를 남긴 일들이라 다시 보기 괴로운 부분들도 있었다. 게다가 책을 쓰는 과정에서 123이 벌어졌으니, 광화문 촛불 시위를 이야기하며 지난 안부를 묻다가 난데없이 마침표를 지워야하는 사족이 붙기도 한다.(176) 책을 내는데도 중간에 속보를 띄워야하는 일이 생기는 기자/앵커 답다고 할까. 기사로 자신을 말한다는 그의 답이 '아이들'이었을 때 마침내 대단한 사람에서 좋은 사람으로 인식이 바뀌었다. 도토리와 감자를 소중히 품은 첫 여자 앵커라는 사실은 대단한 사람의 도전만이 아니라, 그의 삶에서 존중받아야할 당연한 흐름으로 여겨졌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그를 만나볼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 검프처럼이 아니라 그 자신대로, 그만의 길을 걸으며 지금처럼 꿈꾸는 또 다른 이들에게 길이 되어준다면 반갑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