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땀 소설향 앤솔러지 1
김화진 외 지음 / 작가정신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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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땀]은 악마같은 소설이다. [초록 땀]을 읽기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독자의 평온은 깨어진다. 작가는 평범한 소설의 도입부인척 위장하여 숨을 쉬는 것, 침을 삼키는 것, 혀의 위치같이 그 전에는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행하던 기능을 단번에 부자연스럽게 만드는데 성공한다. 의식하고 싶지 않은 모든 것을 귀신같이 골라내 숨 쉬고 침 삼키고 혀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책을 눈으로 읽는지 코로 읽는지 모르게 만든다. 이 부자연스러움은 반대로 책으로의 몰입을 유도한다. 읽다보면 다시 자연스럽게 숨쉬고 침을 삼키고 입안에 어정쩡하게 굳어있는 혀를 잊겠지 바라며, 읽는 것에 몰입하게 된다. 잊었던가? 

나만이 가진 작은 어떤 것을 담아두고 사는 모든 사람들은 아마 이 소설에 빠져들게 되지 않을까. 대체적으로 세상 사람 모두일테다. 책을 덮고 내 삶에 생겨나던 그 작은 것을 나는 누구와 은밀히 공유했을까 생각해본다. 어느 날 몰래 빠져나온 야자시간에 단짝친구의 옆얼굴에 속삭이던 때도 있었다. 술에 취했다는 핑계로 주정처럼 늘어놓던 때도, 퇴근하고 돌아와 입을 꾹 다물고 냉장고 안의 야채들을 잔뜩 꺼내 깍뚝 썰며 카레를 한솥 만들고 지쳐 잠들 때도, 그러려니 하고 창밖을 한 번 보고 하던 일이나 마저 하는 때도 생겨났다. 발각되거나, 조용히 말라 없어질 때까지 우리 모두 그저 혼자 품고 지내는걸까, 이 작은 것들을 우리 삶에서. 

이 작은 것들은 때로 조금 불편하고 때로는 조용히 잠못드는 더운 밤처럼 지긋지긋해도 그 이상으로 두드러지지 않는다. 잠을 잘못 잤는지 며칠 전부터 왼쪽 목 뒷부분이 뻐근하게 아팠다. 공교롭게도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무렵부터인데 근육통, 벌레 물린데, 어디든 좋대서 사온 그린오일을 발라보아도 싸한 냄새만 오래갈 뿐 목의 통증은 줄어들지 않았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거나 꺾을 때마다 급소를 눌린 것 같은 통증이 밀려와 고개를 젖혀 머리를 감을 때 조차도 멈칫거리기 일쑤였다. 이 통증은 남에게 발각되지도 않고 조용히 지금까지도 내 왼쪽 목에 붙어 있다. 남들에게 자연스럽지만 나에게만은 부자연스러운 것을 찬찬히 음미한다.  

" 그런데 나는 왜 여기에 있지? 70" [초록 땀]이 내부를 바라본다면 [나쁜 여행]은 외부를 훑는다. 관계 맺기의 어색함이 고스란히 드러난 글을 앞에두고 자신의 비겁함을 떠올리며 읽었다. 치앙마이 한달살기 같은 요소는 이제 지나치게 흔해서 시작을 조금 아쉽게 느꼈는데 읽을수록 불편함이 느껴지는 소설이어서 흥미롭기도 했다. [빛과 빗금]에서는 더 확장된 외부의 균열이 드러나는데, 지난 123 이후로 더욱 선명하게 그어진 선 앞에서 나도 불편해져서 그만 눈을 돌리고 싶은 내용이었다. 가까운 사람들 사이의 대립이 지나치게 날 것 같으면서도 이 조차 우회하고 싶어지는 현실감, 무력함 같은 것들이 느껴졌다. 남이 볼까 혹은 누구와 언쟁이라도 섞게될까 '초록 땀'을 재빠르게 훔쳐내는 것처럼 색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자신이 있다.

김사과의 소설은 외부에서 다시 내면으로 시선을 돌린다. '유행'이라서 유행인 것들 사이에서 유행을 따라하기도 이해하기도 포기하고 나니, 그럴 필요가 없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유행을 받아들이고 좋아하는 일이 자연스러운 때에는 그것을 이해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그게 시선을 끌고 좋아서 저절로 그 흐름 속에 섞여들어간다. 더이상 유행이 좋아보이지 않아 왜라는 질문이 머리 속을 스치는 때가 되면 그건 그냥 그대로 좋아하는 사람들의 몫을 두어야 하는 때인 것이다. 물론 아직도 대체 그게 왜 좋을까 호기심에 넷플릭스에 들어가보곤 한다. 과연 어떤 것들은 좋고 어떤 것들은 좋아지지 않는다. 그게 나의 욕망을 자극하는 것이 맞을까, 요즘은 천천히 생각해보곤 한다. 그렇지않으면 타인의 욕망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고 살게 된다. 

얼마 전 집에 친구를 초대하면서 한가지 먼저 이야기해 둔 것이 있었다. 혹시 집에서 좋지 않은 냄새가 난다면 실례될까 염려말고 부디 말해달라는 것이었다. 후각은 익숙한 것에 둔해서 의외로 자신과 집에서 나는 냄새를 본인은 모르고 있는 경우가 있다. 벌써 개봉한지 5년이 넘은 영화 [기생충]에서 언급된 '집의 냄새', 그 날 것의 충격이 선명했는데 [이사]를 읽으며 나는 그 냄새를 떠올렸다. 아마 [이사]에서 냄새는 덮어두고 외면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면, 나의 냄새는 자신의 맨 얼굴과 같은 삶의 너절함이 숨겨지지 않고 드러나는 것으로 풍겨난다. 내 집에선 어떤 냄새가 날까 내가 느낄 수 없는 그 냄새를 맡아줄 사람을 찾았는데, 글쎄 그가 무슨 말을 했더라. 

'초록 땀'은 끊임없이 감각을 자극하는 독특한 주제가 인상적인 단편집이었다. 이 첫 시도가 독특해서 반가우면서 지나치게 예리하게 벼려져 때로는 불편함을 숨기지 못한 채 읽었다. 어떨 땐 빨리 마지막 장까지 달려가 금방 책을 덮고 싶었는데, "우리 삶의 방향과 소설이 향하는 곳을 함께 읽고 쓰고 그려나가고자"하는 이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으니 다음을 대체 누가 어떻게 풀어나갈까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금새 기다리게 된다. 읽는 동안 소진되는 감각들을 달래 줄 좋아하는 차, 마음에 드는 소품, 아껴 뿌리는 향수같이 자신만의 것들을 곁에 두고 읽으면 더 완벽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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