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나쁜 무리
예소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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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왜 여사는 그렇게 살아?"
"나는 그러지 않고 살기가 힘들어. 너는 그러지 않고도 살 수 있으면 좋겠고." 99 

세상에는 아주 독특한 사람들이 있다. 물론 사람에게는 각자 저마다의 개성이 있긴 한데,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 개성이 주머니 속의 가시처럼 가려지지 않고 드러날만큼 도드라지고 어떤 사람들은 바닷가에서 내도록 쓸려 반질반질한 돌멩이나 다름없이 모나지 않게 다듬어져 있다. '너의 나쁜 무리'를 읽는 동안 이렇게 개성이 강한 인물이어야 이야기가 시작되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평범성을 확인받는 기분이랄까.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지? 와 이게 무슨 일이야? 를 오가는 동안 자연스럽게 저런 사람에게 관심이 가고, 저런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것이구나 싶었다. 

책을 읽기 전에 '너희 엄마가 훔친 금두꺼비'에 대한 전화를 받는 한 인물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짧은 추천 영상을 봤다. SNS에서 요약해준 내용이 뒷 이야기가 궁금해지게 호기심을 자극하다가 끝까지 설명하지 않고 끊어버린 것이 야속했는데, 그 책이 바로 '너의 나쁜 무리'였다는 것을 알고 단숨에 읽기 시작했다. 금두꺼비로 시작된 자극은 뒤로 갈수록 점점 더 강해져 나중에는 금두꺼비 같은 것은 생각도 잘 나지 않게 된다. "너희 할멈 아랫도리가 그렇게 저렴하단다(78)"며 할머니 남자친구의 아내가 쫓아와 머리채를 잡는다는데 금두꺼비가 다 뭐란 말인가. 

"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더럽고 내밀한 이야기들에는 이상한 중독성이 있어 점점 그런 이야기 없이는 살 수가 없어지고 결국 그 이야기의 생산자가 되며 다른 사람까지 그런 이야기의 세계로 끊임없이 포섭하게 된다는 것이다. 80 너의 나쁜 무리" 

책 자체가 '더럽고 내밀한 이야기들의 이상한 중독성'을 고스란히 증명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떤 관계들은 남들이 보기에 아무 의미도 없고, 때로는 한심하고, 그래서 뭐 어떻게 하고 싶은 것은지 답이 나오지 않는다. 모두에게 그럴지 모르겠지만 이 나쁘거나, 아무런 사이를 지속하고 싶은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꼭 생산적이고, 깊이 있고, 뭐가 되어야만 하지 않은 것이 주는 감각들. 어딘지 비뚤고, 불경하고, 분방한 데에서 오는 배덕하고 은밀한 즐거움이 여기 있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은 새로운 길티플레져를 찾은 듯 몰래몰래 남의 일기장을 훔쳐보듯 읽었다. 

과연 책 속의 인물들은 어딘지 불편하고 이상했다. 남들이 사서 놀다가 버린 메추리들을 주워다 파출소에 가져다주는 것으로 사명감을 대신(42)하던 중일이 친구의 목을 졸라 영구적인 신체 손상을 입힌(65), 그 작은 메추리를 사서 굶기고 옥상에서 떨어트렸던(70) 비인도적이고 폭력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문화 시민으로서 걸맞지 않은 행동임을 알면서도 자전거를 탈 때 스피커로 음악을 크게 틀고 다니는 것(143)처럼, 방금까지 시터와 같이 화투를 치고 놀다가도 한겨울에 설거지나 빨래를 할 때 찬물만 쓰게 하는 것(198)처럼 뒤틀림을 경고하는 감각들이 오갔다. 

" 누군가는 지속적으로 폐를 끼치고 누군가는 극도로 폐를 끼치지 않게 노력하고. 그건 어쩐지 좀 이상했다. 공평의 문제라기보다 경계의 문제에 가까운 것 같았다. 어떤 사람이 아주 별일이라고 생각하는 무엇이 누군가에게는 그다지 별일이 아닐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문제라는 게 발생하는 것이다. 167_소란한 속삭임" 

그러다 어느 순간 독특한 인물들만이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던 생각이, 위험하고 이상한 감각이, 거리를 좁혀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처럼 다가오는 계기가 있었다. 제법 입소문이 난 영화를 보러 찾아간 극장은 평소보다 사람이 많고 복잡했다. 극장 내부의 불이 꺼지자 여기저기서 밝기를 조금도 줄이지 않은 핸드폰 불빛이 환하게 퍼져나갔고, 이따금씩 영화음악 대신 벨소리가 울렸다. 정적인 장면에 "그래서 어떻게 된다는거야?"하는 대화 소리가 오가고, 상영 중간에 라이트를 켜고 자리를 찾아들어온 다른 영화 예매자의 등장까지 빌런들의 집합소였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지?, 이게 무슨 일이야?' 싶은 별일이 별일도 아닌 것처럼 2시간 동안 이어졌다. 영화를 보는 2시간여 동안 꼼짝없이 그 빌런들 사이에 앉아서 결국 눈을 치뜨고 다른 사람을 째려보며 불쾌해하기를 포기하면서 "불가피하게 한통속으로 얽히고 마는" 자신을 깨달은 것이다. 나 혼자 집에서 넷플릭스를 보는 것처럼 조용하고 어떠한 방해도 없는 환경 속에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관객들로 가득한 극장 안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이런 것이었지, 이 모든 것을 감수하고 함께 앉아있기를 선택한 이들을 이해하기로 한다. 

빌런들이 더이상 빌런이 아니게 여겨지게 되는 것, 다른 이의 모남을 내가 조금 이해하기로 하고 나의 의도치 않은-혹은,- 부족함도 이해받으리라 여기는 관용을 경험하게 되었다. 팝콘 씹는 소리를 좀 내면 어떤가, 누구는 통화도 하는데. 그렇게 완벽한 한패, 나쁜 무리가 되어 본 영화는 불쾌하지만 유쾌했다.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내어주게 되는 계기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는 것. 핸드폰에 저장된 내 번호가 아줌마라고 되어 있는지, '희지(209)'하고 이름으로 되어 있는지 그런 사소함으로 달라지게 된다는 것처럼 그날의 2시간을 어떻게 느낄지 바꾼 것이다. 

그래 삶이 세상이 사람이 결국은 이렇게 어쩔 수 없이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호오와 시비와 상관없이 얽혀 가는 것이라는 걸 2시간동안 책을 읽고, 2시간동안 세상 속에서 사람들에게 시달리며 얻어졌다. 이것이구나. 미움과 화를 접고 스스로의 평범성을 확신하지 않기로 한다. 나 역시 지질하고 구차하고 못난, "세계를 상대로 아주 오랫동안 저질러 온 실수(283)"가 있을지도 모른다. '너의 나쁜 무리'를 통해 세상과 한패가 되는 법을 하나 배운다. 세상이 왜 이러나 싶을 때보다 조금 더 든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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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없는 세상의 아들들
고혜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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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의 중심에 무엇이 있는가, 여러 요인들이 있겠지만 요즘 가장 자주 눈에 띄는 것은 102030세대의 남성들이다. 30은 제외해야 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데 이 젊은 남성 세대는 정치, 경제, 사회, 세대, 성별을 아울러 갈등의 한편에 존재하고 있다. 특히 이들의 새로운 점은 같은 성별 안에서도 세대를 나눠 또렷이 자신들과 구분짓고 있다는 것인데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를 영포티라는 밈/혐오 역시 그들에게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새로운 세대의 남성들, 그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까. 이들의 등장과 시대의 흐름에 대해 '아버지 없는 세상의 아들들'이 어떤 답이 되어주지 않을까 기대해보았었다. 

책은 어느 정도 궁금증에 대한 답이 되어주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넓은 인간사를 포함하고 있었고, 또 그를 위해 그만큼 깊이 신화 속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그리스 신화로 읽는 현대 남성 내면의 원형들'이란 부제에서 책을 읽기 전에는 뒷부분에 시선을 두었었는데 읽고 나니 앞부분에 더욱 큰 무게가 있었음을 느꼈다. 하지만 가장 처음 만나게 되는 신, 제우스와 우라노스 관계에 관해서는 확실히 기존 세대에 대한 저항과 거부가 담겨있다. MZ세대를 두고 '부모 세대보다 못사는 첫 세대*'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더 나은 삶을 살 것이라는 희망이 노력과 노동의 결과로 보이지 않을때, 상승 욕구가 좌절된 벽 앞에서 이들은 이미 부의 기틀을 쥐고 있는 기성세대에 공격성을 드러낸다. "신화의 친부 살해가 필연적으로 통과해야 하는 관문(36)"이라는 것처럼 그들의 규칙과 문화에 반대하고 저항한다. 

이 기존세대와의 갈등은 중년의 위기를 다룬 헤르메스의 내용과 이어지는데, 새로운 인생의 전환기를 맞은 중년 세대가 '익숙한 방법으로 위기를 극복해 보려(207)'다 무기력하고 서툰 실패의 모습을 보인다. 새로운 세대에게 이는 경기가 좋았던 시기에 운 좋게 부를 축적한 세대의 무능이 드러나는 순간이며, 이들이 답습하려 한 익숙한 방법은 현재엔 통하지 않는 라떼의 유산일 뿐이다. 중년 세대가 완숙의 시기로 나아가야 함을 받아들이고 자신과 세상의 재배열을 모색하지 않고 기존의 방식을 강조할수록, 혹은 이 전환기를 앞두고 정신적 성숙의 길을 모색하지 않고 아직 젊고 시대를 이끌어나가는 주된 힘을 가지고 있음을 피력할수록, 이들의 위기 극복은 요원하고 이들에 대한 젊은 세대의 거부감은 커진다. 

제우스와 헤르메스의 이야기가 왜 새로운 세대의 남성들은 구세대의 남성들을 배척하는가에 대한 틀이 되었다면 이어지는 헤파이토스와 아폴론에 대한 관점은 여성과의 관계 맺기의 원형을 보여준다. 아폴론의 구애 좌절을 통해 젊은 여성들이 왜 비연애/비혼을 택하는지 떠올린다. 내면에 '여성적인 것에 대한 두려움과 배타성(162)'을 품은 아폴론의 구애는 위협과 공포가 된다. 본능적이고 충동적인 구애를 하는 그의 내면에 상대에 대한 존중과 인정이 부재함을 본능적으로 느낀 여신들 헤스티아, 시빌라, 카산드라, 다프네는 이에 대한 거부와 반발로 영원히 처녀로 살 것을 맹세하거나, 구애를 피해 달아나고, 저주를 받는 길을 택한다. 현실의 여성들도 마찬가지로 여성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없는 상대와의 관계맺기를 거부한다. 

또다른 남녀갈등의 원인 중 하나로 일부 남성들이 여성을 자신이 겪은 어려움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 삼으려 하는 생각이 있다. 사회가 요구하는대로의 단계를 밟으며 살면 그에 따른 이상적 삶이 보상으로 주어지리라 믿었는데, 자신이 준수해온 규칙과 가치와 상관없이 여성의 선택은 다른 남성이 차지하는 현실이 부당하다는 것이다. 결국 자신을 내치고 버린 세상에 대한 저항과 위협으로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아내로 맞게 된 헤파이토스의 결혼은 이들의 젊고 아름답고 온순한 여성-성녀-에 대한 선망 그 자체이자, 그녀가 잘생기고 건강한 아레스를 애인으로 두겠다는 조건을 내세운 것까지 그들이 '퐁퐁'이라 이름붙인 두려움과 닮아있다. 

놀랍게도 이들의 결합은 결국 헤파이토스가 아프로디테와 아레스의 부정을 덮쳐 다른 신들을 불러모아 그들의 부정을 함께 욕하고 조롱해주기를 의도했다는 점에서 커뮤니티 공론화와 비슷하고, 그 시도가 오히려 아내의 부정을 막지 못한 무능한 남편을 조롱하거나 여성의 외모에 초점을 맞춰 관심이 옮겨가는 결과를 낳으며 뜻처럼 이루어지지 않다는 점에서 더욱 현실적으로 보인다. 게다가 파국을 앞둔 관계에 있어 남성이 여성에게 "그동안 내가 네게 주었던 것들을 모두 돌려 달라는 이런 '물품 반환 의식'(111)"의 원형까지 보여준다는 점이 신화와 현실 사이의 격차를 더욱 없애준다. 

책을 통해 새로운 세대의 남성들은 왜 다른지,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는데, 가장 오래된 신화 속에서 이들의 모습을 겹칠 수 있었다는 것이 의외였다. 시대와 표현 방식이 달라졌을 뿐 남성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의식은 결코 달라지지 않았던 것일까. 어쩌면 달라진 것은 남성이 아니라 여성인 것이 아닐까. 여전히 남성은 여성을 성녀와 창녀로 구분하고 있을 뿐이지만, 여성이 기꺼이 그들 기준의 성녀 자리에서 내려와 창녀-이들이 혐오하는 늙고 못생기고 공격적인 여성-가 되기를 개의치 않게 되었는지 모른다. 여성이 달라지자 남성을 읽는 시선이 달라졌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여신들을 다룬 내용의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다음을 기대하며 감상을 마친다. 


*[장기불황시대를 사는 2030 리포트]`부모보다 못 사는 첫 세대` 꼬리표 붙은 2030 젊은이들의 고군분투 삶 / 매일신문 / 20190506
한국인 60% 자식이 부모보다 못 살 것…역대 최대 / 한국경제 /2021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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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탐구 생활
이다 지음 / 창비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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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탐구해야 한다고? 나도 어린이였던 적이 있는데 내가 그걸 몰라? 나 정도면 잘 이해하고 있는 편인데, 그걸 꼭 연구씩이나 해야 아나? 싶었다. 순간 반발심이 들었던 것이다. 어른인 내가 이미 겪어봤고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완전함에서 누가 몇 조각을 뺏어가 불완전하게 만들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아직 젊다고 생각하는 영포티스러움을 넘어 어린이성/어린이다움/어린이스러움 까지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잠깐 과열된 생각을 멈추고 스스로에게 찬물을/아아를 주입한다. 정신차려, 어른이랍시고 주제넘다. 알고 있다는 착각 대신 주제넘게 굴지말라는 채찍을 휘두르며 '어린이 탐구 생활'을 읽었다.  

유행했던 말들 중에 '*린이'라는 표현이 거북했다. 유행하는 말들이 으레 그렇듯 또 그때는 그 표현이 가장 찰떡같이 붙어 대체할만한 다른 말이 마땅히 없는 것 같아 보이는데, 그래도 초보/신입이라는 말을 굳이굳이 붙여서 피해다닐 정신은 남아있었다. 그 말이 왜 거북했냐면 카페나 음식점 같이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공간마저도 성인이용자의 편의와 쾌적함을 위해 노키즈존을 해도되네 마네 하는 말들로 피곤했던 상황과 겹쳐, 생활 공간에서 아이/어린이를 몰아내고 싶어하면서 자신의 미숙함이나 부족함을 이해받고 싶은 욕망에는 어린이를 끌어다붙이는 어른의 이기심이 껄끄러웠기 때문이다. 이제 초보로 시작했으면 한거고, 지가 못하면 지 실력이 부족한거지 뭘 거기다 어린이를 가져다붙인담. 

그리하여 '어린이 탐구 생활'을 읽는 것은 가졌기 때문에 안다고 착각했던 것들에 대해 깨부수는 깨달음의 과정이자, 내 마음과 추억의 방을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어린시절의 나를 떠올리는건 재밌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 잊힌 부분도 많고, 과거에 대한 미화와 추억 보정으로 인해 공정치 못한 기억들만 남았다는 부작용도 있었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에는 이불을 걷어차지 않고는 버티기 힘들만큼 수치스러운 기억만 갑자기 생각나던데, 일부러 추억을 떠올리면 꼭 나만한 어린이/청소년도 없었지 싶은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SNS에 '라떼' 얘기를 할 때면 꼭 묻지도 않은 제 자랑을 늘어놓나보다. 

주인공인 '이다'의 이야기를 읽다가 벼락같이 어떤 기억이 떠올랐다. 다리를 벌리고 앉아있다가 어른에게 혼이 나서 난데없이 억울했던 어떤 날, 같이 있던 친구가 너는 무슨 다리를 그렇게 벌리고 앉아있냐며 이상한 듯 거북한 표정으로 한마디했던 묘한 순간의 기억(55)이었다. 나도 마찬가지로 치마도 아니고 바지를 입고 있는데 왜 그러지? 뭐 어때? 하고 속으로 생각했었던 것 까지 묻어두었던 언젠가가 불러오기 한 것처럼 기억 속에서 튀어올라왔다. 옆사람을 불편하게 만들 정도로 넓게 벌린 것도 아닌데 여자가 다리를 모으지 않고 앉았다는 이유로 받았던 시선과 불편한 기분이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 영향을 준다는 것이 찜찜했다. 

읽으면서 과감하고 파격적인 내용이라 놀라웠던 '이상하고 아름다웠던 꿈(72)'은 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9세가 그런 꿈을 꿀 수 있다니, 정말 성은 본능의 영역이란 말인가? 궁금하면서 내심 당황스럽기도 했다. 더불어 이렇게까지 솔직한 내용을 담아두다니 당시 부반장이었던 친구가 만약 어린이 이다와 동창이었던 과거를 떠올리며 책을 읽다 놀라는 것은 아닐까 혼자 대리 수치를 고민했다. 나만 놀라고 민망하고 부산한 와중에 저자는 이것만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듯이 '내가 반장'이었음을 밝힌다. 그래서 결국 피식 웃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싶어지는 순간이었다. 

책을 덮으며 10계명(102)까지는 아니어도 나는 어린이를 위한 어떤 존중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함부로 신체를 만지지 않을 것, 외모에 대한 언급, 칭찬도 하지 않을 것, 반말을 하지 않을 것, '*린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을 것 등이었다. 작가가 꼽은 다섯개의 조항(66)들도 다 괜찮았는데 그 중 몇 살이냐는 질문은 예상 외였다. 특히 어린 나이 대 중에는 습관적으로 저는 몇살이고요, 저는 몇학년이에요. 하는 소개가 나오는 어린이들도 많아 예민하게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였는데 앞으로는 한 번 더 생각해보고 대화를 해야겠다 마음먹었다. 

어른의 눈으로 볼 때는 어린이었던 지난 날에 대한 추억을 펼쳐보게 되는 순간들이 있어 종종 책을 읽다 멈출만큼 좋았는데, 어린이의 눈으로 '어린이 탐구 생활'을 읽는다면 어떨까? 공감하는 부분들이 있을까? 예전의 어린이와 지금의 어린이들은 생각도 행동도 생활도 너무나 달라보인다. 요즘 어린이를 이해하고 존중하고자 하는 이 노력도 '어르신들은 옛날에 이런 생각을 하셨구나' 선조들의 뗀석기 간석기 진화를 존중하듯 멀리 떨어진 거리감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 처음엔 어린이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을수록 어린이를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생각을 하고, 뭘 좋아하고, 어떨 때 싫고, 어떤 사회구성원으로 존중받고 싶은지 이해가 부족했다. 

나 어릴 적엔 어땠더라 추억도 떠올려보고 요즘 애들은 어떻지 가벼운 관심으로 시작했는데 '어린이 탐구 생활'을 앞에 두고 생각할수혹 어른이라는 이유로 더 많은 결정권을 가지고 보편의 규정과 편의를 당연시하지 않아야겠다는 반성이 되었다. 미성숙이 받는 배려와 편의는 챙기고 싶고 미숙함과 차이점은 배척하고 싶어하는 못난 어른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이 책이 어린이와 어른이 서로를 더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고, 특히 어른에게 자극과 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는 도움으로 연결된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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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나쁜 무리
예소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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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럽고 내밀한 이야기들의 이상한 중독성‘, 우리의 새로운 길티플래져 <너의 나쁜 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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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여기에 있어 창비청소년문학 146
전성현 지음 / 창비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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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해서 어려움에 직면하는 부모님을 보고 있으니 언제까지 힘들게 살아야 하는 건가 싶었다. 삶이라는 건 선택과 그에 대한 책임을 끝까지 감당해 내는 일의 연속인 모양이었다. 52 아직 여기에 있어" 

소설집 '아직 여기에 있어'는 독특하다. 이 다섯편의 짧은 이야기들이 종이로 이루어진 책으로 나와있다는 사실이 마치 오파츠*를 발견한 것처럼 느껴진다. 단편 '스페이스 크랙'처럼 다른 세상과의 틈에서 끌어온 듯한 묘한 이야기를 읽다보면 손을 댈 수 없는 홀로그램이나 오래된 신기루를 통해서 들여다봤어야 맞지 않나 싶어진다. 현실 감각을 잊게 만드는 이야기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서늘함, 불안정한 감각은 역설적이게도 현실을 자각하는 과정에서 피어오른다. 비현실적인 상황은 환상적이고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다른 한 편으로 이어진 현실과의 연결이 끊어질 듯 위태로워질 때마다 팽팽한 긴장감이 돈다. 

언젠가 식물이 비정상적인 속도로 자라나 그 줄기가 인간에게 위협이 되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 것만 같았다. 가장 마음이 울렁였던 것은 '나무의 시간'을 읽는 동안이었는데, 울창한 식물과 그 왕성한 생명력에 대한 두려움이 사람의 마음 속에 심어져 있는 것일까. 사람은 자연을 함부로 훼손하고 인간의 뜻대로 이용할 수 있다는 듯이 굴지만 한편으로는 그 앞에 무력할 수 밖에 없다는 경외 역시 품고 있는 것 같다. 이와 더불어 식물들도 화학신호와 뿌리, 미생물 등으로 의사소통을 주고 받는다는 것에 영감을 받은 듯 했다. 나무들이 갑자기 말라버리거나 모여드는 장면들을 보면서 나무가 울창한 숲길에서 하늘을 보면 서로의 가지와 잎이 옆 나무의 공간으로 넘어가지 않고 빛과 바람을 나눠 받을 수 있도록 서로 거리를 둔다던 '수관기피'현상도 떠올랐다. 재미있는 단편이었다. 

" 수지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부서진 물품 상자를 열어 보았다. 안에 담긴 감정 키트 한 귀퉁이에 사랑이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엘은 한 달 전부터 사랑 감정을 구독하고 있었다. 그전까지는 슬픔과 절망을 장기 구독해 국가 보건국의 관리 대상이었다. 123 감정 구독자" 

실제로 그 안으로 들어가보고 싶다고 생각한 단편은 '감정 구독자'였다. 들어가보고 싶다,기 보다는 감정을 구독한다는 것에 대해 가장 많이 상상해 보았다. 만약 나라면 어떤 감정을 구독할까, 가장 많이 신청된 감정은 뭘까, 한가지 감정만을 골라 오래도록 구독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누구도 구독하지 않는 감정이 있다면 뭘까, 구독하는 감정마다 값을 달리한다면 원하는 감정이 비쌀 때 사람들은 그 대체로 어떤 감정을 구독할까, 모두가 감정을 구독해야 알 수 있는 세상이라면 아이에게 가장 먼저 무슨 감정을 접하게 해줄까, 어떤 감정도 구독하지 않는다면 그럴 땐 어떤 기분일까. 이렇게 깊게 그 안으로 파고들어가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면 아직은 덮어두고 싶었던 단편도 있었다. '이별 박물관'이 그랬는데, 실제적인 사건을 떠올리게 만드는 면이 있어 읽는 동안 마음이 괴로웠다.  

'아직 여기에 있어'를 읽는 동안 오래도록 마음 속에 품어온 미래를 조심스럽게 펼쳐내보인 듯한 섬세함이 엿보였다. 이 상상력이 청소년 독자들에게 새로운 자극과 동기가 되어줄 것이다. 나를 둘러싼 세계에서 벗어나 세상을 살짝 비틀어 바라보고 싶다면 '아직 여기에 있어'를 추천한다.


*오파츠 'Out-Of-Place Artifact s'를 약칭하여 '시대를 벗어난 유물들'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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