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없는 세상의 아들들
고혜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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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의 중심에 무엇이 있는가, 여러 요인들이 있겠지만 요즘 가장 자주 눈에 띄는 것은 102030세대의 남성들이다. 30은 제외해야 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데 이 젊은 남성 세대는 정치, 경제, 사회, 세대, 성별을 아울러 갈등의 한편에 존재하고 있다. 특히 이들의 새로운 점은 같은 성별 안에서도 세대를 나눠 또렷이 자신들과 구분짓고 있다는 것인데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를 영포티라는 밈/혐오 역시 그들에게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새로운 세대의 남성들, 그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까. 이들의 등장과 시대의 흐름에 대해 '아버지 없는 세상의 아들들'이 어떤 답이 되어주지 않을까 기대해보았었다. 

책은 어느 정도 궁금증에 대한 답이 되어주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넓은 인간사를 포함하고 있었고, 또 그를 위해 그만큼 깊이 신화 속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그리스 신화로 읽는 현대 남성 내면의 원형들'이란 부제에서 책을 읽기 전에는 뒷부분에 시선을 두었었는데 읽고 나니 앞부분에 더욱 큰 무게가 있었음을 느꼈다. 하지만 가장 처음 만나게 되는 신, 제우스와 우라노스 관계에 관해서는 확실히 기존 세대에 대한 저항과 거부가 담겨있다. MZ세대를 두고 '부모 세대보다 못사는 첫 세대*'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더 나은 삶을 살 것이라는 희망이 노력과 노동의 결과로 보이지 않을때, 상승 욕구가 좌절된 벽 앞에서 이들은 이미 부의 기틀을 쥐고 있는 기성세대에 공격성을 드러낸다. "신화의 친부 살해가 필연적으로 통과해야 하는 관문(36)"이라는 것처럼 그들의 규칙과 문화에 반대하고 저항한다. 

이 기존세대와의 갈등은 중년의 위기를 다룬 헤르메스의 내용과 이어지는데, 새로운 인생의 전환기를 맞은 중년 세대가 '익숙한 방법으로 위기를 극복해 보려(207)'다 무기력하고 서툰 실패의 모습을 보인다. 새로운 세대에게 이는 경기가 좋았던 시기에 운 좋게 부를 축적한 세대의 무능이 드러나는 순간이며, 이들이 답습하려 한 익숙한 방법은 현재엔 통하지 않는 라떼의 유산일 뿐이다. 중년 세대가 완숙의 시기로 나아가야 함을 받아들이고 자신과 세상의 재배열을 모색하지 않고 기존의 방식을 강조할수록, 혹은 이 전환기를 앞두고 정신적 성숙의 길을 모색하지 않고 아직 젊고 시대를 이끌어나가는 주된 힘을 가지고 있음을 피력할수록, 이들의 위기 극복은 요원하고 이들에 대한 젊은 세대의 거부감은 커진다. 

제우스와 헤르메스의 이야기가 왜 새로운 세대의 남성들은 구세대의 남성들을 배척하는가에 대한 틀이 되었다면 이어지는 헤파이토스와 아폴론에 대한 관점은 여성과의 관계 맺기의 원형을 보여준다. 아폴론의 구애 좌절을 통해 젊은 여성들이 왜 비연애/비혼을 택하는지 떠올린다. 내면에 '여성적인 것에 대한 두려움과 배타성(162)'을 품은 아폴론의 구애는 위협과 공포가 된다. 본능적이고 충동적인 구애를 하는 그의 내면에 상대에 대한 존중과 인정이 부재함을 본능적으로 느낀 여신들 헤스티아, 시빌라, 카산드라, 다프네는 이에 대한 거부와 반발로 영원히 처녀로 살 것을 맹세하거나, 구애를 피해 달아나고, 저주를 받는 길을 택한다. 현실의 여성들도 마찬가지로 여성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없는 상대와의 관계맺기를 거부한다. 

또다른 남녀갈등의 원인 중 하나로 일부 남성들이 여성을 자신이 겪은 어려움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 삼으려 하는 생각이 있다. 사회가 요구하는대로의 단계를 밟으며 살면 그에 따른 이상적 삶이 보상으로 주어지리라 믿었는데, 자신이 준수해온 규칙과 가치와 상관없이 여성의 선택은 다른 남성이 차지하는 현실이 부당하다는 것이다. 결국 자신을 내치고 버린 세상에 대한 저항과 위협으로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아내로 맞게 된 헤파이토스의 결혼은 이들의 젊고 아름답고 온순한 여성-성녀-에 대한 선망 그 자체이자, 그녀가 잘생기고 건강한 아레스를 애인으로 두겠다는 조건을 내세운 것까지 그들이 '퐁퐁'이라 이름붙인 두려움과 닮아있다. 

놀랍게도 이들의 결합은 결국 헤파이토스가 아프로디테와 아레스의 부정을 덮쳐 다른 신들을 불러모아 그들의 부정을 함께 욕하고 조롱해주기를 의도했다는 점에서 커뮤니티 공론화와 비슷하고, 그 시도가 오히려 아내의 부정을 막지 못한 무능한 남편을 조롱하거나 여성의 외모에 초점을 맞춰 관심이 옮겨가는 결과를 낳으며 뜻처럼 이루어지지 않다는 점에서 더욱 현실적으로 보인다. 게다가 파국을 앞둔 관계에 있어 남성이 여성에게 "그동안 내가 네게 주었던 것들을 모두 돌려 달라는 이런 '물품 반환 의식'(111)"의 원형까지 보여준다는 점이 신화와 현실 사이의 격차를 더욱 없애준다. 

책을 통해 새로운 세대의 남성들은 왜 다른지,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는데, 가장 오래된 신화 속에서 이들의 모습을 겹칠 수 있었다는 것이 의외였다. 시대와 표현 방식이 달라졌을 뿐 남성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의식은 결코 달라지지 않았던 것일까. 어쩌면 달라진 것은 남성이 아니라 여성인 것이 아닐까. 여전히 남성은 여성을 성녀와 창녀로 구분하고 있을 뿐이지만, 여성이 기꺼이 그들 기준의 성녀 자리에서 내려와 창녀-이들이 혐오하는 늙고 못생기고 공격적인 여성-가 되기를 개의치 않게 되었는지 모른다. 여성이 달라지자 남성을 읽는 시선이 달라졌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여신들을 다룬 내용의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다음을 기대하며 감상을 마친다. 


*[장기불황시대를 사는 2030 리포트]`부모보다 못 사는 첫 세대` 꼬리표 붙은 2030 젊은이들의 고군분투 삶 / 매일신문 / 20190506
한국인 60% 자식이 부모보다 못 살 것…역대 최대 / 한국경제 /2021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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