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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나쁜 무리
예소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평점 :
"근데 왜 여사는 그렇게 살아?"
"나는 그러지 않고 살기가 힘들어. 너는 그러지 않고도 살 수 있으면 좋겠고." 99
세상에는 아주 독특한 사람들이 있다. 물론 사람에게는 각자 저마다의 개성이 있긴 한데,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 개성이 주머니 속의 가시처럼 가려지지 않고 드러날만큼 도드라지고 어떤 사람들은 바닷가에서 내도록 쓸려 반질반질한 돌멩이나 다름없이 모나지 않게 다듬어져 있다. '너의 나쁜 무리'를 읽는 동안 이렇게 개성이 강한 인물이어야 이야기가 시작되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평범성을 확인받는 기분이랄까.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지? 와 이게 무슨 일이야? 를 오가는 동안 자연스럽게 저런 사람에게 관심이 가고, 저런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것이구나 싶었다.
책을 읽기 전에 '너희 엄마가 훔친 금두꺼비'에 대한 전화를 받는 한 인물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짧은 추천 영상을 봤다. SNS에서 요약해준 내용이 뒷 이야기가 궁금해지게 호기심을 자극하다가 끝까지 설명하지 않고 끊어버린 것이 야속했는데, 그 책이 바로 '너의 나쁜 무리'였다는 것을 알고 단숨에 읽기 시작했다. 금두꺼비로 시작된 자극은 뒤로 갈수록 점점 더 강해져 나중에는 금두꺼비 같은 것은 생각도 잘 나지 않게 된다. "너희 할멈 아랫도리가 그렇게 저렴하단다(78)"며 할머니 남자친구의 아내가 쫓아와 머리채를 잡는다는데 금두꺼비가 다 뭐란 말인가.
"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더럽고 내밀한 이야기들에는 이상한 중독성이 있어 점점 그런 이야기 없이는 살 수가 없어지고 결국 그 이야기의 생산자가 되며 다른 사람까지 그런 이야기의 세계로 끊임없이 포섭하게 된다는 것이다. 80 너의 나쁜 무리"
책 자체가 '더럽고 내밀한 이야기들의 이상한 중독성'을 고스란히 증명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떤 관계들은 남들이 보기에 아무 의미도 없고, 때로는 한심하고, 그래서 뭐 어떻게 하고 싶은 것은지 답이 나오지 않는다. 모두에게 그럴지 모르겠지만 이 나쁘거나, 아무런 사이를 지속하고 싶은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꼭 생산적이고, 깊이 있고, 뭐가 되어야만 하지 않은 것이 주는 감각들. 어딘지 비뚤고, 불경하고, 분방한 데에서 오는 배덕하고 은밀한 즐거움이 여기 있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은 새로운 길티플레져를 찾은 듯 몰래몰래 남의 일기장을 훔쳐보듯 읽었다.
과연 책 속의 인물들은 어딘지 불편하고 이상했다. 남들이 사서 놀다가 버린 메추리들을 주워다 파출소에 가져다주는 것으로 사명감을 대신(42)하던 중일이 친구의 목을 졸라 영구적인 신체 손상을 입힌(65), 그 작은 메추리를 사서 굶기고 옥상에서 떨어트렸던(70) 비인도적이고 폭력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문화 시민으로서 걸맞지 않은 행동임을 알면서도 자전거를 탈 때 스피커로 음악을 크게 틀고 다니는 것(143)처럼, 방금까지 시터와 같이 화투를 치고 놀다가도 한겨울에 설거지나 빨래를 할 때 찬물만 쓰게 하는 것(198)처럼 뒤틀림을 경고하는 감각들이 오갔다.
" 누군가는 지속적으로 폐를 끼치고 누군가는 극도로 폐를 끼치지 않게 노력하고. 그건 어쩐지 좀 이상했다. 공평의 문제라기보다 경계의 문제에 가까운 것 같았다. 어떤 사람이 아주 별일이라고 생각하는 무엇이 누군가에게는 그다지 별일이 아닐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문제라는 게 발생하는 것이다. 167_소란한 속삭임"
그러다 어느 순간 독특한 인물들만이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던 생각이, 위험하고 이상한 감각이, 거리를 좁혀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처럼 다가오는 계기가 있었다. 제법 입소문이 난 영화를 보러 찾아간 극장은 평소보다 사람이 많고 복잡했다. 극장 내부의 불이 꺼지자 여기저기서 밝기를 조금도 줄이지 않은 핸드폰 불빛이 환하게 퍼져나갔고, 이따금씩 영화음악 대신 벨소리가 울렸다. 정적인 장면에 "그래서 어떻게 된다는거야?"하는 대화 소리가 오가고, 상영 중간에 라이트를 켜고 자리를 찾아들어온 다른 영화 예매자의 등장까지 빌런들의 집합소였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지?, 이게 무슨 일이야?' 싶은 별일이 별일도 아닌 것처럼 2시간 동안 이어졌다. 영화를 보는 2시간여 동안 꼼짝없이 그 빌런들 사이에 앉아서 결국 눈을 치뜨고 다른 사람을 째려보며 불쾌해하기를 포기하면서 "불가피하게 한통속으로 얽히고 마는" 자신을 깨달은 것이다. 나 혼자 집에서 넷플릭스를 보는 것처럼 조용하고 어떠한 방해도 없는 환경 속에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관객들로 가득한 극장 안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이런 것이었지, 이 모든 것을 감수하고 함께 앉아있기를 선택한 이들을 이해하기로 한다.
빌런들이 더이상 빌런이 아니게 여겨지게 되는 것, 다른 이의 모남을 내가 조금 이해하기로 하고 나의 의도치 않은-혹은,- 부족함도 이해받으리라 여기는 관용을 경험하게 되었다. 팝콘 씹는 소리를 좀 내면 어떤가, 누구는 통화도 하는데. 그렇게 완벽한 한패, 나쁜 무리가 되어 본 영화는 불쾌하지만 유쾌했다.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내어주게 되는 계기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는 것. 핸드폰에 저장된 내 번호가 아줌마라고 되어 있는지, '희지(209)'하고 이름으로 되어 있는지 그런 사소함으로 달라지게 된다는 것처럼 그날의 2시간을 어떻게 느낄지 바꾼 것이다.
그래 삶이 세상이 사람이 결국은 이렇게 어쩔 수 없이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호오와 시비와 상관없이 얽혀 가는 것이라는 걸 2시간동안 책을 읽고, 2시간동안 세상 속에서 사람들에게 시달리며 얻어졌다. 이것이구나. 미움과 화를 접고 스스로의 평범성을 확신하지 않기로 한다. 나 역시 지질하고 구차하고 못난, "세계를 상대로 아주 오랫동안 저질러 온 실수(283)"가 있을지도 모른다. '너의 나쁜 무리'를 통해 세상과 한패가 되는 법을 하나 배운다. 세상이 왜 이러나 싶을 때보다 조금 더 든든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