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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여기에 있어 ㅣ 창비청소년문학 146
전성현 지음 / 창비 / 2026년 3월
평점 :
" 계속해서 어려움에 직면하는 부모님을 보고 있으니 언제까지 힘들게 살아야 하는 건가 싶었다. 삶이라는 건 선택과 그에 대한 책임을 끝까지 감당해 내는 일의 연속인 모양이었다. 52 아직 여기에 있어"
소설집 '아직 여기에 있어'는 독특하다. 이 다섯편의 짧은 이야기들이 종이로 이루어진 책으로 나와있다는 사실이 마치 오파츠*를 발견한 것처럼 느껴진다. 단편 '스페이스 크랙'처럼 다른 세상과의 틈에서 끌어온 듯한 묘한 이야기를 읽다보면 손을 댈 수 없는 홀로그램이나 오래된 신기루를 통해서 들여다봤어야 맞지 않나 싶어진다. 현실 감각을 잊게 만드는 이야기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서늘함, 불안정한 감각은 역설적이게도 현실을 자각하는 과정에서 피어오른다. 비현실적인 상황은 환상적이고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다른 한 편으로 이어진 현실과의 연결이 끊어질 듯 위태로워질 때마다 팽팽한 긴장감이 돈다.
언젠가 식물이 비정상적인 속도로 자라나 그 줄기가 인간에게 위협이 되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 것만 같았다. 가장 마음이 울렁였던 것은 '나무의 시간'을 읽는 동안이었는데, 울창한 식물과 그 왕성한 생명력에 대한 두려움이 사람의 마음 속에 심어져 있는 것일까. 사람은 자연을 함부로 훼손하고 인간의 뜻대로 이용할 수 있다는 듯이 굴지만 한편으로는 그 앞에 무력할 수 밖에 없다는 경외 역시 품고 있는 것 같다. 이와 더불어 식물들도 화학신호와 뿌리, 미생물 등으로 의사소통을 주고 받는다는 것에 영감을 받은 듯 했다. 나무들이 갑자기 말라버리거나 모여드는 장면들을 보면서 나무가 울창한 숲길에서 하늘을 보면 서로의 가지와 잎이 옆 나무의 공간으로 넘어가지 않고 빛과 바람을 나눠 받을 수 있도록 서로 거리를 둔다던 '수관기피'현상도 떠올랐다. 재미있는 단편이었다.
" 수지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부서진 물품 상자를 열어 보았다. 안에 담긴 감정 키트 한 귀퉁이에 사랑이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엘은 한 달 전부터 사랑 감정을 구독하고 있었다. 그전까지는 슬픔과 절망을 장기 구독해 국가 보건국의 관리 대상이었다. 123 감정 구독자"
실제로 그 안으로 들어가보고 싶다고 생각한 단편은 '감정 구독자'였다. 들어가보고 싶다,기 보다는 감정을 구독한다는 것에 대해 가장 많이 상상해 보았다. 만약 나라면 어떤 감정을 구독할까, 가장 많이 신청된 감정은 뭘까, 한가지 감정만을 골라 오래도록 구독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누구도 구독하지 않는 감정이 있다면 뭘까, 구독하는 감정마다 값을 달리한다면 원하는 감정이 비쌀 때 사람들은 그 대체로 어떤 감정을 구독할까, 모두가 감정을 구독해야 알 수 있는 세상이라면 아이에게 가장 먼저 무슨 감정을 접하게 해줄까, 어떤 감정도 구독하지 않는다면 그럴 땐 어떤 기분일까. 이렇게 깊게 그 안으로 파고들어가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면 아직은 덮어두고 싶었던 단편도 있었다. '이별 박물관'이 그랬는데, 실제적인 사건을 떠올리게 만드는 면이 있어 읽는 동안 마음이 괴로웠다.
'아직 여기에 있어'를 읽는 동안 오래도록 마음 속에 품어온 미래를 조심스럽게 펼쳐내보인 듯한 섬세함이 엿보였다. 이 상상력이 청소년 독자들에게 새로운 자극과 동기가 되어줄 것이다. 나를 둘러싼 세계에서 벗어나 세상을 살짝 비틀어 바라보고 싶다면 '아직 여기에 있어'를 추천한다.
*오파츠 'Out-Of-Place Artifact s'를 약칭하여 '시대를 벗어난 유물들'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