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인 낙관주의자 - 심플하고 유능하게 사는 법에 대하여
옌스 바이드너 지음, 이지윤 옮김 / 다산북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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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적인 낙관주의자' 안에 담긴 내용이 내 인생을 "다른 사람보다 한발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도록 "인생 기술"을 알려주진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어떤 계발서나 코칭북도 그렇게 만들어 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본인 스스로가 실천하지 않는 이상. 다만 이 책이 남긴 것이 몇 가지 있다면 하나는 낙관주의와 비관주의에 대해 명확히 정리하고 생각해보는 시간을 주었고, 하나는 자신은 어떤 사람인가 되새겨보는 시간이 되었다.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리뷰가 될 것이다.

 

 자신은 어느 쪽에 속하느냐면 지금은 덜하지만 전에는 주변으로부터 비관주의자라는 말을 뼈있는 웃음과 함께 들었던 편이다. 회의에서 새로운 안건이 나오면 '필요한가' '가능한가' '실행 시 발생할 문제상황은 무엇일까' '얼마나 더 업무를 분담해야 하는가' 같은 계산부터 돌아간다. 침묵은 금이요 참여는 추가업무라는 회의에서, 심지어 윗선의 안건에 딴지를 건다는 것. "네 알겠습니다" 라고 해도 부족할 일에 '그런데, 만약에, 혹시, 제 생각은' 과 같은 말을 붙이는 것이다.

 

 사실 이런 말들을 입밖으로 내봤자 자신이 낸 계획에 도취되어 있는 낙관주의자들에게 "넌 왜 그렇게 비관적/부정적이야?" 라는 말밖에 더 들을 것도 없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나는 스스로를 비관주의자라 생각했다. 그들의 무신경한 목표와 부주의한 안건에 도움을 주고 피해를 줄이고자 경고했을 뿐인데. 아마 이런 일들로 자신을 비관주의자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사람들이 더 있을 것이다. 사실 이런 말을 듣는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도 낙관주의자다. 세상은 망해버릴거고, 내 인생은 쓰레기처럼 될거고, 차라리 태어나질 말았어야 했어. 라고 진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단순히 딴지 조금 건다고 해서, 계획의 실패를 먼저 예상한다고 해서 당신이 비관주의자인 것은 아니다. 그저 14403332번의 미래를 보고 성공하는 하나의 경우를 찾으려는 닥터 스트레인지 같은 사람일 뿐인 것이다. 책에서 말하듯 '결국 성공하는 것은 낙관주의자다.' 라고 하지만 매사 그들이 내놓은 기획을 보완하고 완성시키는 것은 비관주의자라 치부된 사람들의 부정이다. 미리 떠올려 본 수많은 문제상황들이 실제적인 사고에 대처 가능하도록 도움이 된다.

 

 다만 낙관주의를 열성 숭배하는 이 책의 과격한 표현은 나를 움츠리게 만들었다. 초반부터 비관주의자들을 철저히 패배자처럼 보이게 만들고 교묘한 방법으로 그들을 배제하는 것까지 정당화하는 한편, 낙관주의에 점철해 둔 멋진 수식들을 바라보며 불편함을 느꼈다. 그런데 이를 넘어서 "유사성 원리의 활용 p,194" 와 같은 부분을 보면 "중화 기술"이 언급되는데, 내용을 읽다보면 말하고자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조차 의문이 들게 만든다. 게다가 p.44 의 두번째 문단과 같은 내용도 읽어 넘기기에 지나치다.

 

 왜 이런 껄끄러운 부분들이 있는 것일까 생각해니 이 책은 단순히 삶의 자세를 낙관적으로 취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취지를 넘어서 목표를 지나치게 '성공'을 강조하였다. 저자는 왜 이런 표현과 방식을 말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막히는 길이 많았는데, '성공'에 대한 강박이 다른 무엇보다 강하게 박혀있어서 였다는 것을 알고 나니 보였다. 책을 읽으면서 이 점이 가장 많이 아쉬웠다.  

 

 긍정의 힘이 중요하다는 것은 안다. 어느 멋진 책의 유명한 문구가 그러하듯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도와줄 것'이라고 하지 않은가. 바라는 것에 대한 긍정과 추구가 곧 자신을 그 길로 데려다 놓는다는 내용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낙관주의의 필요성도 이를 강조하기 위한 폭력성을 덜어내고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생각한다면 처음에 품었던 불만에 가까운 마음도 조금은 상쇄된다.

 

 '지적인 낙관주의자'를 읽는 일은 쉽지 않다. 약간의 지루함을 잘 참아낼 수 있는 보통의 독자라면 자기계발서, 코칭북 같은 류의 책 한 권 정도는 쉽게 읽어낼 것이다. 반나절이면 읽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낙관보다는 비관주의자에 조금 더 가깝다면 이 책을 읽는 시간은 당신이 비관적인만큼 더 늘어날 것이다. 진짜로 일이 바빴다는 이유 외에, 읽다 정신적으로 지나치게 피로해져서 혹은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들에 대한 생각이 많아져서 쉬게되는 시간이 생길 것이다.

 

  물론 물 흐르듯이 그보다 더 유연하게 이 책을 읽을수도 있다. 아마 당신이 낙관주의자라면. 당신은 기쁜 마음으로 공감하며 읽었을 것이다. 마치 혈액형이나 별자리에 자신의 유형을 맞춰보듯이. 다만 당신이 얼마만큼은 비관적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책에서 표현하는 것 만큼이나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이 책을 읽으며 당신이 어떤 사람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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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크맨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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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주의하게 책을 집어들고 읽기 시작했다. 초크맨의 인상은 조금 이상하게도, 지금 배가 고파서일지 모르겠지만- 땅콩버터를 발라 살짝 겉을 구워낸 토스트를 먹는 것 같다. 알러지만 없다면 누구나 알고 좋아할 것 같은 기호성. 크게 베어먹듯 덥석덥석 단숨에 읽어나갈 것 같은 몰입도. 그러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친숙한 느낌. 파운드를 쓰는 영국 배경인데도, 미국의 정키함이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오후에 집어든 책을 저녁까지 읽는 도중에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샤워를 했다. 차가운 물에 머리속이 조금 시원해졌을때 문득 떠올린 생각이 '스티븐 킹의 느낌이 나는데'였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얽힌 사건의 장막이 조금씩 벗겨지는 것과, 마을의 구성원들을 훑듯이 소개해오는 점이 특히 그랬다. 혼자 그런 생각을 하다 거실로 돌아와 탁자에 놓아둔 책을 보니 띠지에 스티븐 킹의 강력한 추천을 받았단 말이 적혀있었다. 그래서 그랬구나 싶었다. 이제 막 초크맨으로 첫 책을 내놓은 작가가- 누구라도 당연하겠지만, 그동안 어떤 작품들을 봐왔을지 짐작이 되었다. 이것도 예단이 되려나. 어쨌든, 초크맨은 꽤 괜찮다. 피넛버터 샌드위치 싫어하는 사람 별로 없듯이.

 

 하얀 분필로 그려진 그림, 백색증의 외지인, 연달아 일어나는 잔인한 사건들을 두고 '초크맨'이라는 살인마의 존재를 부각시킨다. 에디 먼스터, 뚱뚱이 개브, 메탈 미키, 호포 그리고 니키. 다섯 친구들이 어린시절 겪었던 사건이 30년 뒤에 서서히 밝혀지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흰 분필로 그려진 표식을 따라가다 보면 토막난 소녀의 몸이 차례로 발견된다. 소녀를 죽이고 흰 분필로 절단된 신체 위치를 표시한 사람은 누구일까. 다섯 아이들이 각각 가지고 있는 분필은 색이 있었다. 그걸 이용해 누군가 아이들을 불러내고 숨겨진 시체를 찾게 만들었다. 언뜻 불가사의한 존재같기도 한 초크맨의 정체를 분필로 사인을 주고 받는 놀이를 알려준 핼로런 선생이 아닐까 쉽게 의심하게 만든다. 그는 흰 분필로 그린 그림처럼 온몸이 하얀 백색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겨우 그런 요소들로 그를 의심할 수 있을까. 게다가 우리가 따르는 에디의 시선이 그에게 변함없는 신뢰를 보낸다. 그일까 아닐까.

 

 장르소설은 그만의 색이 있고 또 그것을 좋아하는 독자층이 있다. 고전이라 불리는 타고난 이야기꾼들의 작품들을 좀 읽다보면 어쩔 수 없이 독자의 눈치도 빨라진다. 작가가 뿌려놓는 간단한 밑밥을 물지 않도록 주의하며 책장을 넘긴다. 작가가 읽은만큼, 혹은 고민하는 만큼 안에 숨겨진 악의와 거짓을 뚫어보려 노력한다. 독자는 끊임없이 주어지는 정보를 의심하고, 인물을 재며 읽어내다가 결국엔 전혀 예상할 수 없이 교묘하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인 사건이, 내면의 어두운 욕망과 맞닿은 동기로 벌어졌을때 감탄하며 책을 덮는다. 그럼에 있어서 초크맨은 다소 헐거운 연결고리가 눈에 띈다. 특히 메탈 미키가 연관된 사건에서 설명이 좀 부족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에디가 그랬듯, 메탈 미키에 대해서 작가도 그를 좋아하지 않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소설을 아우르는 재미라는 요소가 전체적인 만족감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단단히 지탱한다.

 

 주말의 하루쯤은 전기세도 아낄 겸 텀블러와 책을 들고 대형 커피숍 구석진 자리에 틀어박혀 한나절을 보낼만한 책이다. 평소에 장편을 읽지 않았더라도 어렵지 않게 읽어낼만한 밀도다. 간만에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며 책을 읽었는데, 가끔은 이런 시간도 필요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영화 '그것 It'을 재밌게 봤거나, 평소 추리, 스릴러, 스티븐 킹의 작품 등을 좋아했다면 즐겁게 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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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1 : 태조 - 혁명의 대업을 이루다 조선왕조실록 1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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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이라는 거대한 기록 앞에서 당연하게도 위축됐다. 먼 옛날 국사 공부를 했던 기억을 떠올려보면서 '아마 난 안될거야, 틀렸어.'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이 참 이상한게 그때 못했으면서 왠지 지금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때는 그저 막막했다지만, 이제는 머리 속으로 이래저래하면 이렇게 될 거라는 예상 지도가 훤하게 그려져서 실천도 쉬울 것이라 착각하나 보다. 나 자신은 그대로인데. 그래서 예전에는 국사가 어려웠어도 지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실록을 읽기만 하는 거니 괜찮겠지 하고 책을 잡았다. 세월이 지나면서 나도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나란 인간 참 그대로구나. 반갑다, 나 자신아. 아무리 공부하는게 아니더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쉽지 않다. 초심자와 호기심은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지 말 것.

 

 1권을 읽었는데, 전 10권에 달하는 내용 중 당연하게도 이 첫권의 내용이 가장 친숙하다. 이런저런 에피소드가 많이 알려진 세종을 제외하고, '국사 공부를 시작해볼까'라고 마음 먹었을 때 조선을 건국한 태조 부분만 공부하고 그 뒤로 흐지부지 된 경험이 축적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조선왕조실록 시리즈를 10권까지 다 읽지 못하고 포기한다면 태조만 보고 그 뒤는 역사의 소중한 한 페이지로 남겨둔 사례가 또 한 번 남겨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예감이 꽤나 강렬하다. 눈에 띄었던 점은 태조가 차지하는 분량이다. 태조가 1권의 모든 분량을 혼자 소화하는 반면 다른 왕들은 둘, 평균적으로 셋씩 뭉쳐 한 권을 이룬다. 앞으로 나올 세종의 분량이 생각보다 적다는 게 의외였다. 태조에 대해 실록에 남아있는 부분이 그만큼 많았던 것인지 조선 건국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일부러 더 많은 분량을 할애한 것인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과정을 거쳐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혁명을 일으켰는지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조선 왕조 건국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한 분배가 아니었을까 싶다.

 

 다만 개인적 경험으로 어린시절 정몽주에 관한 위인전은 읽고 태조에 관한 위인전은 읽지 못했었다.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번씩 외웠다는 만인의 시조 단심가도 마음에 걸리고, 태조와 이방원, 정도전에 관한 인상이 그리 좋지 못하다.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내심 승자의 입장에서 쓰여진 역사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변방의 무장 이성계가 창업군주가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겸손과 섬김의 리더십이 있다. 일곱 살 어린 정도전을 스승으로 삼았고, 혁명에 반대한 이색도 끝까지 우대했다."는 소개에서도 정몽주 위인전을 읽고 자란 키드가 가지는 위화감이 느껴졌다. 어린시절 읽었던 책에서는 정몽주가 충절과 이성의 상징이었고 이방원은 잔인한 무뢰한처럼 그러졌기 때문이다. 그 책만 그런건가. 하지만 이성계 측에 선 시선으로 자세히 적힌 글을 오랜 시간 읽다보니 과거에 느꼈던 반감이 좀 사라짐을 느꼈다. 이래서 양쪽말을 다 들어보고 판단해야 된다고 하나보다. 위인전에서 정몽주를 다뤘으면 이성계도 같이 썼어야 했다. 특히 어린 시절에 읽는 것이니 더욱 양쪽 입장을 알 수 있게.

 

 생각보다 읽기 쉬웠다. 여름밤은 덥고, 잠이 쉽게 오지 않아 마실 것 하나를 만들어 한참을 아무 생각없이 몰두할 수 있었다. 여름방학 동안 할일이 없다면 조선왕조실록을 읽어봐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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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친절한 문학 교과서 작품 읽기 : 고대 가요.향가.고려 가요 편 이토록 친절한 문학 교과서 작품 읽기
하태준 지음 / 다산에듀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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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과서에 수록된 문학 작품들을 읽어본 적이 언제였던가 생각해본다. 생각보다 가깝다. 애들 가르치면서 읽어봤다. 읽기만 했나, 외우고 분석하고 수업도 하고 문제도 내고 학교 다닐 때보다 더 열심히 팠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건 읽은 것이 아니었다. 읽지 않고, 외우고 분석하고 수업도 하고 문제도 냈던 거다. 그래서 언제 읽었더라 하고 내면이 진실된 반응을 먼저 한 것이다. 학생 때는 그렇다. 작품을 읽지만 읽는다기 보다는 해체한다. 교과서에 나온 지침대로 이 단어에는 이 의미가, 이 부분에는 이 기능이 있다는 것을 외운다. 그렇다면 과연 이 책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매력적인 터치의 삽화가, 친절한 설명이, 함께 넣어 놓은 핵심 정리가, 문학 작품을 공부하지 않고 읽도록 해줄 수 있을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교과서'란 단어가 들어갔기 때문에 문학 작품으로서 작품들을 바라볼 수 있도록 두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아쉽지만, 생각해보면 교과서에 나온 작품들을 좀 더 쉽게 마스터하기 위한 기능적인 부분을 뺄 수 없음에 공감도 된다. 다만 삽화들이 주는 안정적 분위기와 작품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좀 더 천천히, 풍요로운 감상으로 작품을 읽어볼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책이 참 괜찮아서 아쉬웠던 점이다. 딱히 문학 교과서 작품 읽기라고 제목이 붙여져 있지 않았다면 오히려 시리즈 별로 챙겨두기 더 좋았을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이 삽화가 가볍지 않고 전체적으로 색감이며 분위기가 좋다. 지금은 고대 가요, 향가, 고려 가요 편으로 나왔지만 좀 더 친숙한 현대시나 소설 쪽으로 넘어온다면 책 읽고 모으기 좋아하는 어른들의 눈에도 들 것 같다. 하지만 제목에 문학 교과서 작품 읽기로 되어 있다면 매력적인 책임에도 중학생 조카 읽어보게 권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책 내용은 마음에 들지마는. 그리고 이 지점에서 또 하나의 의문점이 고개를 든다. 과연 이 책을 실용적 측면에서 고전 문학을 '그림으로 마스터하'기 위해 읽는 중고생이 있는가.

 

 물론 있기는 할 것이다. 공부하랬더니 책상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한참을 있기에 뭐하나 보면 교과서가 아닌 책을 읽고 있던 과거의 나와 같은 학생. 공부는 뭐 그냥 그래도 책 읽는건 했던 유형이라면 "엄마 이거 문학 공부하는 책이야!" 하면서 하기 싫은 공부는 안해도 책은 읽을테니. 그렇지만 그런 타입은 대개 이런 풀이 없이도 대부분의 고전 문학 작품을 -시험 위주의 교과서 해석 방식으로- 이미 이해한다. 이 책을 읽는다면 그저 재미로 읽을 뿐. 다만 이런 친절한 그림으로 고전 문학을 마스터해야 하는 유형의 아이들은, 또 딱히 이런 자상한 책에 관심이 없고 그나마 한문제라도 더 맞히려면 핵심만 달달 외우는 공부법이 실용적이다. 책은 참 좋은데 과연 주요 독자층에게도 매력적으로 다가올지 의문이 든다. 안그래도 공부하느라 바쁜 우리의 10대가 과연 책을 얼마나 읽을 수 있겠는가! 

 

 예전에 외국에서는 문학 시간에 단기간에 최대한 많은 작품을 가장 효율적으로 분석하여 외우는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듣고 놀랐다. 학기를 통틀어 여러 작품 중 한 권의 책을 선정하여 모두 함께 읽고 대화를 나누며 공부한단다. 토론도 하고 에세이도 쓰고. 우리가 손들어 정답을 외칠때 걔들은 의견과 감상을 말한댄다. 힘들겠지만 우리도 그런 수업시간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친절한 작품집도 더 많이 읽히겠지. 어른이지만 그래도 삽화와 함께 찬찬히 읽어봐도 좋겠다. 학생 때 읽었던 것과는 다른 마음으로 다른 감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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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로니아공화국
김대현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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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하기로는 장편을 읽은 게 오랜만이었다. 사실 한동안 뭔가를 읽지 않았다. 한동안이라고 해도 한달이나 이주 정도 되려나. 날이 점점 더워져서,는 핑계이고 스마트폰 중독 때문이다. 급기야 최근들어서 말하다 단어가 도통 떠오르질 않아 "그게 뭐였더라?"만 댓번 하고마는 일이 생겼다. 이러다 영영 장편은 못 읽게 되는거 아닌가 싶은 불안에 잠길 때 '나의 아로니아 공화국'을 만났다. 의식적으로 피해왔던 장편에 400쪽 정도 되는 분량이 두려웠다. 스마트폰만 주구장창 보다가 뇌가 망가져버리면 어떻게 된다던데 어떻게 된다더라? 스마트폰 하다가 본 내용이라 많은 정보를 얻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요지의 내용의 글이었는데 정확한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맙소사. 내가 만약 아로니아 공화국에 한자리 차지한다면 스마트폰 사용 제한을 강력하게 주장하겠다. 이거 정말 심각한 문제네.

 

 어쨌든 나의 중독 고백은 이쯤하고, '나의 아로니아 공화국'으로 돌아가본다. 우선 다행이도 꽤 짧은 시간에 완독할 수 있었다. 읽는 중간에 일상이 끼어들어 공간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한번 잡으면 백여쪽의 분량은 훅 읽을 수 있을 재미가 충분했다. 처음에 유명한 사람들이 써놓은 추천사를 보고 이게 뭔 내용이래 재미없을 것 같아 싶었다. 원래대로라면 스포일러 밟을까봐 그냥 넘겼겠지만, 이 마음조차 조금이라도 분량을 줄여 읽으려는 수작인가 싶어 '어머, 이것도 스마트폰 중 증세 아니야?'하고 마음속 경각심을 떠올려 읽기로 했다. 굳이 읽고 시작한 것 치고는 읽기 전에 별 도움 안되는데 읽고 난 다음에 다시 보니 좀 낫다. 발상이 좀 엉뚱해서 과정을 보고 난 뒤에야 확실한 느낌이 오게 된 것이다.

 

 장편 못 버틸까봐 염려했던 중독자의 걱정을 씻어준 것은 고마운데, 사실 어딘지 모르게 꿈꿈하다. 이 꿈꿈함은 첫째로 재밌게 느꼈던 문체에서 온다. 얼마 전에 읽었던 성석제의 단편집에서 봤던 혹은 박민규, 김중혁의 소설들을 떠올리게 한다. 읽으면서 아는데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이 문체는 상황과 인물들을 세세하면서도 집요하게 설명한다. 실제로 존재하는 지명, 사건, 인물들과 허구를 넘나들며 사실적으로 느껴지는 실제감을 준다. 사건이 이어지며 어디까지나 유머와 위트를 잃지 않고 내용이 전개된다. 이래저래 썼지만 사실 뭔가 병맛을 느끼게 하는 재미가 있다. 이게 가장 깔끔한 설명이 되리라. 그리고 이러한 특징이 재밌긴 하지만 또 이런 스타일인가, 싶은 생각도 들게 한다. 물론 내용에 깊이 빠져들기 전인 초반에 했던 생각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신림 일대를 삥뜯고 다니던 김강현의 미약한 시작을 낄낄 거리다 끝내 아로니아 공화국의 대통령 로아 킴이 된 건국신화를 따라가다 보면 이 허무맹랑한 이야기도 그럴싸하게 믿게 되는 거다. 

 

 다른 하나의 꿈꿈함은 젠더적 문제인데 좀 긴가민가 하다. 한번 더 읽어야 정체가 밝혀질 것 같다. 워낙 예민한 문제니 말을 아끼고 싶은 이유도 있다. 330쪽에 있는 아로니아 시민 선발 조건이 슬슬 떠오른다. 장마철이니 꿈꿈함은 어쩔 수 없지 하고 그런 것들은 차치하고 보면 이 소설은 꽤 재밌다. 나름 왜 써야 했는가에 대한 의식도 담겨있고, 읽고 난 다음까지 확실히 "재밌게 읽으셨다면 다들 좋아요 한번씩 눌러주세요" 하고 광고하는 것처럼 '한일공동개발구역 JDZ' 상기시켜주는 마무리까지 한다. 시키는대로 좀 찾아봤는데 "제발 관심 좀 가져주세요" 라는 말과 함께 안그래도 더운 여름 열불나는 상황이 줄줄이 딸려나와 분노하게 됐다. (왜 일본이 싫고 한국 정부가 무능한가)의 전형적인 예시가 아닐까. 게다가 '7광구'라는 영화는 또 뭔지...말을 줄입니다... 

 

 책 한 권 재밌게 읽어놓고 뒤늦게 찾아오는 이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다, 작가의 인품에 새삼 놀랐다. 이 얼마나 평화적인 '한일공동개발구역 JDZ'에 대한 관심 유발과 문제 제기인가. 인터넷을 도배하는 워리어가 되지 않고 어디까지나 유머와 희망을 잃지 않는 글을 써서 사람들에게 읽히다니. 여기, 저기를 향한 답답한 마음을 욕지거리로 승화하여 표출하지도 않고. 다만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는다면 좋겠다. 내가 그랬다고 해서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한일공동개발구역 JDZ'에 대한 문제에 정말 무지했고 무관심했다가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흥하게 된다면 더 많은 관심이 모여 방안을 촉구할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을까. '나의 아로니아 공화국'을 통해 뜻밖에 문학이 가진 기능과 힘을 엿봤다. 괜찮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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