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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 있는 모든 순간
톰 말름퀴스트 지음, 김승욱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12월
평점 :
" 지금은 딱 세 가지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아주 중요한 세 가지. 그가 말을 하면서 자세를 바꾸고는 아주 단호하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첫째, 잠을 잔다. 제대로 자지 않으면 버텨낼 재간이 없습니다. 둘째, 먹는다. 먹는 걸 잊어버리면 기운을 낼 수 없습니다. 셋째,
최대한 자주 병원을 벗어난다. 그러지 않으면 점차 머리가 이상해질 겁니다. _ p.49 "
나의 감성은 지금 어디를 헤매고 있는지 혹은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 생각해본다. 제목부터 감상적인 이 책을 내내 건조한 시선으로 훑어내리면서
조금 답답했다. 두서없이 적혀 내려가는 상황이 생생하게 전달되는 느낌은 받았지만 깊이 공감하며 몰입하기 어려웠다. 서사에서 상황 전달만이
뚜렷하고 살을 붙여나가는 흐름이 부족했다. 글의 성향으로 본다면 남성독자에게 더 공감을 얻을만하지 않을까 싶었다. 예전에 '아버지'라는 소설이
그러했듯, 부성이란 이런 것이다 라는 어필이 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내 마음이 감동으로 물들지 못한 것은 한국식 신파에 지나치게 익숙해서
일지도.
모두의 상황과 가치관은 다르겠지만, 이 책을 읽으며 결혼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아이가 태어나고 예기치 못한 상황이 생기며 연인을 잃고 난
뒤에 발생한 문제를 보니 문득 예전에 어딘가에서 '너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연락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로맨틱한
표현으로 결혼이라는 제도의 필요성을 어필한 문구를 본 기억이 났다. 그때는 제법 로맨틱하고 또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그 표현을 현실적
상황에 대입시킨 결과물이 이 책이겠구나 싶었다. 그렇지만 작년말 기사로는 우리나라도 동거내지는 사실혼 관계도 법적 가족 인정하는 법제화를
추진시킨다고 하니, 이 책을 읽고서도 결혼이 더 메리트있다고 여겨지지는 않을 것 같다.
그나마 조금 마음을 움직인 것은 따로 옮겨온 저 세 가지 주의사항이 주는 현실감이다. 잠자리도 불편하고 입맛도 없어지는 병원 생활을
하면서 지키기 어렵지만 장기전을 대비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라 인상적이었다. 머리가 이상해지기 보다는 우울감이 커지거나 알게모르게 체력을
떨어뜨리는 요소다. 그나마도 아픈 사람 앞에서 티낼수도 없는 변화이고. 누군가 간병 생활을 하고 있다면 때때로 찾아가 병원밖으로 데리고 나와
바람을 쐬이고 먹을 것을 사주시라. 병원으로 찾아와 위로와 격려를 건네주는 것도 고맙지만 그를 환기시키기엔 조금 부족할 것이다. '환기'는 설령
그가 원치 않더라도 그에게 필요한 일이다.
간만에 감동적인 책을 읽고 눈과 마음을 촉촉히 적시는 후기를 써보고 싶었는데 아쉽게 되었다. 다른 리뷰를 보니 좀 더 깊이 공감하며
감동적으로 읽은 사람들이 많아 이 책을 감상하는데는 그 글들이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나와는 맞지 않았을 뿐이라고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