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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오딧세이 - 한 끼에 담아낸 지속 가능성의 여정
김태윤.장민영.황종욱 지음 / 을유문화사 / 2025년 9월
평점 :
'흑백요리사'라는 프로그램에서 나온 말 중에 가장 인상깊은 것은 최현석 셰프가 한 "주방에서 셰프보다 더 높은 것이 재료다"라는 말이다. 제철의 좋은 재료가 음식의 완성도를 높여주기도 하고, 그 좋은 재료를 구하는 것마저 셰프의 능력이기도 하다. 요리에 있어 그만큼 재료가 중요한데, '로컬 오딧세이'는 재료에 대한 깊은 탐구를 담고 있어 흥미롭다. 계절과 지역을 뛰어넘는 접근성과 새로운 농법, 실험실에서 만들어지는 배양육, 고기를 대체하는 채식 재료, 기후 변화로 인해 달라지는 환경이 우리의 식탁 앞에 다가오는 지금 그럼에도 근본이 되는 제철, 특산의 식재료가 우리 식탁과 사회, 삶에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맛볼 수 있는 책이라 기대되었다.
재밌는 점 중 하나는 식재료를 소개하면서 이 식재료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고민하며 소비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희망만 품은 내용처럼 보이지만 반세기가 지나면 사라지게 될지도 모를 식재료 다양성에 대해 고민하거나, 솎아내 버려지던 재료를 새롭게 활용하고, 소비함으로써 생태계 유지에 더 도움이 되는 것들도 있다는 것을 짚어주는 노력이 엿보여 특별했다. 그 중 하나로 '다 자란 생선 먹기(371)'의 내용이 인상적이었는데 금어기를 정하거나 알을 밴 개체, 미성숙한 개체를 잡지 않도록 하여 자원을 보호하려는 노력에도 굳이 불법적인 소비를 하는 사람들에 대한 문제를 보았던 기억이 났다.
홍게(93)를 소개하면서 어획금지 기간을 명시하고 있지만, '빵게'라는 표현을 처음 듣게 된 것도 불법 소비 문제 제기를 하는 기사 덕분이었다. 알을 밴 암컷 게를 뜻하는 빵게는 어족자원보호를 위해 엄격히 소비, 유통이 금지되어 있는데 이를 별미로 여겨 알음으로 몰래 거래를 하거나 외국에서 수입해오는 방식으로 방향을 바꾼다는 내용이었다. 특별한 맛을 찾는다는 이유로 무분별하게 소비되는 것은 단순 수산물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이기도 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책에서는 홍게와 함께 칠게(168)를 소개했는데, 최근 들리는 말로는 동남아에서 많이 잡히는 블루크랩(청색꽃게)이 수온 변화로 제주도에서도 심심치 않게 잡힌다고 한다. 땅 위에서도 사과, 배 등 오랜 시간 지역명과 함께 붙어오는 익숙했던 특산물 지도가 변화하고 있는 요즘, 책에서도 제주 바다의 변화(220)에 대한 우려를 드러낸 것처럼 바다 생태계의 변화도 성큼 다가오고 있음이 체감된다.
게에 대한 이야기에 덧붙이자면 일식당에 밥을 먹으러 갔을 때 가장 재밌게 들었던 메뉴 소개 중에 남발게가 있다. 오늘은 특별히 게 중에서 가장 맛있는 게를 준비했다고 너스레를 떨며 게요리를 내어주었는데, 처음 들어보길래 뭐냐고 물으니 기다렸다는 듯이 남이 발라준 게 아니겠냐며 답해와 웃었던 기억이 있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라 게는 역시 남발게가 최고라고 농담같은 진심으로 동의했다. 그 뒤로 게만은 제철이나 로컬보다 남이 발라준 것을 일등으로 치게 되었다.
인상깊은 다른 재료 중 하나는 제주에서 발굴한 식재료로 나온 메밀(222)이었다. 메밀과 제주, 사실 메밀이라 하면 강원도를 먼저 떠올리게 되어서 의아했는데, 찾아보니 우리나라의 메밀 최대 생산지역이 제주도로 되어 있었다. 강원도의 메밀 생산량은 줄어들고 있는 추세라 제주도에서 생산한 메밀을 강원도에서 가공하기도 한단다. 한번 지역 특산품으로 깊게 인식이 된 탓에 제주도에 가서 넓은 메밀밭을 여러번 구경하기도 했음에도 고정관념이 되어 생각지 못했던 사실인데, 여기엔 [메밀꽃 필 무렵]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고급으로 여겨지는 귀하고 좋은 재료가 많지만 괜히 파인다이닝 같은 식당에서 계절별로 메뉴에 변화를 주는 것이 아닐 것이다. 오마카세 같은 곳도 마찬가지다. 계절별로 초밥의 재료가 다르게 나온다. 이는 메뉴 구성에 변화를 주어 방문객들의 재방문을 유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가장 최상의 맛을 낼 수 있는 재료를 때에 따라 구해 제공하기 위해서이다. 굳이 비싼 값을 내야하는 식당들이 아니더라도, 제철의 음식을 챙겨먹는다고 하면 여름의 빙수, 겨울의 붕어빵 같은 간식거리들도 때에 맞춰 먹었을 때 가장 맛이 좋지 않은가. 미식은 이처럼 가까운 곳에 있다.
'로컬 오딧세이'는 이 가까움을 생생한 현장감으로 바꾸어 전달하고 있는데 재료와 지역, 생산자에 대한 풍부한 소개가 매력적이다. 기장의 말미잘(44)에 대해 소개할 때는 익숙하지만 낯선 재료에 대한 당황과 구도의 자세가 재밌었고, 의외성으로 이것도 먹나 싶었던 것은 말미잘보다 오히려 송순(128)이었다. 솔잎이나 송홧가루는 알려져있지만 송순은 처음 들어보았다. 아말피 레몬(194)에 대한 소개는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의 다양성과 변화를 통해 탄소발자국이 줄어드는 긍정적인 현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리하여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우리의 식탁이 지구를 구할 수 있을까?'를 마주해보면, 사실 여전히 회의적이긴 하다. 지구의 지속가능성은 그보다 더 넓고 다양한 범위에서 우리의 예상보다 가파른 속도로 훼손되고 있고, 식탁의 변화는 그보다 더디고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를 버티게하는 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움직임이 있다는 사실은 고무적인 영향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함께 밥을 먹는 사람들에게 '로컬 오딧세이'를 소개하고 싶어진다. 적어도 한 식탁에 앉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음식만이 아니라, 재료와 시대에 대한 인식과 연대가 함께 공유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더불어 '먹고 사는 일', 이 가장 평범하고 일상적인 영역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이 책을 추천한다. 무엇을 먹을지, 어떻게 먹을지 예사로이 넘겼던 사소함에서 새로움을 발견하고 세상을 향해 직접적으로 실천하고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방향을 찾아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