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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의 기분 - 한문학자가 빚어낸 한 글자 마음사전
최다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평점 :
" 책장에 꽂힌 가지각색의 책들과, 그 책을 쓴 작가 한 명 한 명은 모두 나름의 얼룩을 말의 무늬인 문장으로 새겨 책을 지었다고 할 수 있다. 서로 모양은 달라도 저마다 얼룩진 삶을 애써 꾸려가고 있음을, 우리는 문학 읽기를 통해 알게 된다. 개인의 얼룩이었던 문학은 홀로 웅크린 타인의 삶에 위안을 건네며 반경을 넓힌다. 작가가 겪어낸 슬픔과 고민의 흔적이 아름다운 무늬의 문장으로 기록됨으로써, 비슷한 결의 고통을 겪고 있는 누군가에게 닿아 응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개인의 무늬는 문장에서 문학으로, 나아가 문화의 형성으로까지 번질 가능성을 품고 있다. 58"
얼마 전 생각나지 않는 단어를 기억해내기 위해 몇 시간 동안 애를 먹었던 일이 있다. 사실 원하는 단어나 책의 제목 같은 명칭들이 갑자기 기억이 나지 않는 일은 몇년 전부터 종종 있어왔는데 이번에는 유독 기억의 끄트머리에서 생각날 듯 명확히 떠오르지 않는 단어에 약이 올라 쉽게 포기가 되지 않았다. 네글자로 된 단어와 비슷한 상황을 검색창에 몇번이고 찾아보기도 했는데 결국 하루가 지나고 나서야 알아냈다. 다시 기억난 단어는 이게 왜 이렇게 생각이 안났을까 싶게 자연스러웠다.
왜 굳이 기억나지 않는 단어를, 다른 비슷한 단어들로 대신하지 않고 생각해내려 했냐면 왠지 모를 오기도 있었지만 글을 쓸 때 가급적이면 외국어-특히 영어-로 바꿔 쓰지 않고 반복적이지 않게 정리된 흐름으로 쓰려고 하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한 문장을 이렇게 길게 늘이고 있어 그 노력이 온전히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의식이라도 없으면 더 엉망일 것이라 웬만하면 지양하고 있다. 어쨌든 단어의 의미와 기억에 대해 의식하고 있는 차에 만난 '한자의 기분'은 같은 결을 공유하는 사람과 닿은 것 같았다. "기분을 말해줄 정확한 언어를 찾는 것만으로 덜 외로울 수 있다. 10" 는 첫 시작처럼 '정확한 언어를 찾는 것'에서 공감은 시작되었다.
'한자의 기분'을 읽다보니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는 싯구로 널리 알려진 김춘수의 [꽃]이 떠올랐다. 한자 단 한글자 안에 담긴 의미를 하나씩 풀어 그 이름안에 담긴 뜻을 알아봐주는 저자의 글에는 다정한 애착이 묻어난다. 학교를 다닐 적 쪽지시험 때문에 무작정 달달 외우기만 했던 한자 안에 담긴 뜻을 찬찬히 읽어내려 가다보니 새삼스러웠다. 이렇게 한자를 배웠더라면 더 흥미를 가지게 됐을까 싶은 마음과 정말 아무런 의문이 없이 그냥 하라는 대로만 했구나 싶은 생각이 교차했다.
저자가 풀어준 것 중 가장 마음에 드는 한자 하나는 '좌(坐) 22'였다. 두 사람이 땅 위에 앉아있다는 풀이를 가진 한자인데, 지난 봄 친구와 여행을 갔을 때 주춧돌만 남은 옛 성터를 구경갔다가 맨 땅이나 다름없는 그 위에 드러누웠던 적이 있다. 그때 친구는 재촉하거나 싫은 내색 하나 없이 '너 덕분에 이런데 누워도 본다'며 옆에 누워 사위는 하늘을 함께 바라봐주었다. " 나랑 같이 앉아 있어준 그 사람을 조금 더 좋아하게 되었다. 22"는 문장으로 끝나는 장을 읽으며 아마 이런 기분을 공유했으리라 짐작해보았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를 만나서, 가누기 어려울만큼의 기쁨을 느낀다(遇知音 不勝歡). 182'는 문구가 새겨진 문진에도 이런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황(黃) 38' 땅의 색, 모래와 사막을 떠올리다 한 청나라 시인의 싯구에서 언젠가 다녀온 사막이 그 배경임을 알게 된 일이 적혀있었다. 언젠가 내가 읽고 보면서 머릿속으로 그려만 보았던 것들을 우연히 마주하게 되는 때가 있다. 환상이나 다름없던 것이 하나씩 현실로 재인식되는 벅차고 놀라운 순간을 경험하게 될 때가 있는데 그 몇 없을 순간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 새로운 뭔가를 읽고 보고 알아가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아는만큼 더 보이고 더 즐거울 수 있는 순간이 있으니까. 그 순간에 대한 이야기가 '황'에 있었다.
" 나이가 이만큼 든 게 신기하다. 아득한 과거를 모두 지금의 내 안에 품은 채로 시간이 또 흘러가는 것. 나는 점점 알록달록한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 색의 혼합은 결국 검정으로 수렴하겠지만, 살아 있는 동안만큼은 더욱 다채로운 색깔의 인간이 되고 싶다. 87"
'로(老) 87'의 시작이다. 색의 혼합이 결국 검정으로 수렴한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나이를 더 먹을수록 색 대신 빛으로 혼합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마찬가지로 " 또다시 생활을 집어삼키려는 기분 앞에서, 기분의 해명이라도 세세히 들어보자는 심정으로 매일 한자 한 글자씩을 골라 일기를 써보기로 247"마음 먹었다는 저자에게도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을테지만 색이 아니라 빛의 혼합을 추구하면서 나이들어가자고 말해보고 싶어진다.
자꾸만 기억에서 하나씩 사라졌다 나타나는 단어들을 생각해본다. 당연히 쌓여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들을 청소하기 시작하는 머리에서 어쩔 수 없는 세월의 흐름을 느낀다. 어쩌면 내가 기억하기를 소홀히 했을수도 있고. '한자의 기분' 글자 안에 담긴 것, 또 담을 수 있는 것들의 의미를 헤아리며 천천히 사탕 한 알을 녹여내듯 읽어나가는 동안 주위로 눈 대신 글자가 내려와 쌓이는 것 같았다. 연말 동안 글자가 쌓이는 조용하고 깊이있는 시간을 경험해보고 싶은 사람에게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