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말로 사랑할 시간 - 분열의 시대에 도착한 새 교황, 레오 14세
크리스토퍼 화이트 지음, 방종우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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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되고 하니, 나만의 시상식 후보들을 꼽을 때가 되었다. 친구와 만난 자리에서 올해의 영화 중 추천해줄만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최근 개봉한 작품들 사이에 비교적 연초에 보았던 '콘클라베'를 끼워넣었다. 영화에 대한 관심과 함께 실제로 이 의식이 이루어지게 되면서 현실과 영화 사이의 간극에 대한 증언에도 불구하고 꽤나 깊은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특유의 엄숙하고 아름다운 영상도 괜찮았고. 비종교인에게도 이례적으로 종교 안의 일에 큰 관심을 갖게 된 해였기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사랑할 시간'에 그 관심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다른 추천 영화는 사람과 고기, 국보, 여행과 나날) 

'지금이야말로 사랑할 시간'은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과 그 뒤를 이은 레오 14세에 대해 설명하며 분열의 시대에 교회가 어떤 문제들을 끌어안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하는지 알리고 있다. 가톨릭의 영향이 미치는 모든 곳이 전세계와 다름 없기 때문에 단순히 종교의 문제로 치부될 것은 아니지만 비종교인의 입장에서는 사실 그리 큰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 건너다 보듯 하는 거리감이 있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더 이해하게 되는 부분도 있고 이 역시 사람의 일이기 때문에 흥미와 재미를 느끼게 되는 요소들도 있었다. 예를들면 '콘클라베'에 대한 설명을 읽으며 빠른 결정을 유도하기 위해 빵과 물 그리고 와인만을 제공했다(78)는 내용에서 그 와중에 와인을 챙긴 것이 양인들 답구나 싶어 재밌었다. 빨리빨리의 민족에게 1006일을 넘어서는 미결 상황이 생겼다면-생길리가 없겠지만- 밥과 물 그리고 간장만이 제공됐을 것이다. 

흥미를 느낀 부분은 동성애와 이혼, 여성의 사제 서품에 관한 변화가 아직도 진행중이라는 보수적인 면면이었다. 이 더딘 변화에 과감한 행보를 보인 것이 "제가 감히 어떻게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Who am I to judge?)21" 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대답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리는 변하지 않고 다만 더 열린 태도로 환영할 것(198)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는 것은 아이러니했다. 이 문제들에 대해서 외부인의 시선으로도 정해진 미래처럼 보이는데 특히 LGBTQ과 관련된 입장이나 여성의 사제 서품 허용은 투표권 같은 문제처럼 결국은 풀려나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세상의 절반을 구성하는 신도를 일부라도 잃을 가능성에 대해 고려해야 하기 때문일이다. 

마찬가지로 '교회와 사회가 변했고 과거처럼 문화를 통해 신앙이 전승되지 않으므로, 오늘날의 사회에 맞는 교회를 통해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는 새로운 기회와 방식을 제공해야 한다고(53)' 이 지점에서 현대 종교들이 가지고 있는 위기를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와 비슷한 어쩌면 이보다 더 심각한 절벽 앞에 불교가 놓여 있다. 절을 찾아야하는 거리적 부담, 가족의 핏줄로 이어지지도, 사회 공동체 안에서 어리고 새로운 신자를 얻기 위한 장치도 부족한 이 종교는 과거 세대의 믿음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의 틀을 깨고 근래의 '힙한 불교'에 대한 여유롭고 파격적인 마케팅이 젊은 세대에게 소비되기 위한 장치로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이게 불교가 선택한 '새로운 기회와 방식'으로 보인다. 비단 이것이 불교만의 위기가 아니라면 지금 시대에 있어 종교가 과거에 비해 어떤 의미와 영향력을 가질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새 교황 레오 14세에 대한 이야기에 '미국'이라는 키워드가 가장 크게 들어가 있는데 그 키워드의 강렬함을 지우려고 시도한 모든 사례들이 오히려 더 진하고 선명하게 크기를 키우는 듯 했다. 영어를 사용할 것인가(144) 같은 사사로운 것에 의미를 두는 것조차 만약 한국인 등 오히려 다른 출신이었다면 그런 의미에서의 관심을 두는 일은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미국이 끼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위협으로 느끼고 있는 지점이 있기 때문에 더 주의깊게 바라본 것이 아닐까. 이쪽의 입장에서 본다면 폴란드, 독일, 아르헨티나로 이어지는 비이탈리아인(135) 교황이나 이탈리아, 미국 출신의 교황 모두 그쪽 판 위에서의 일로 느껴지는 면이 있다.  

'지금이야말로 사랑할 시간'을 통해 가톨릭 세계를 살짝 엿볼 수 있었다. 전혀 모르던 세계에 대한 접근이기 때문에 깊이 있는 이해나 공감은 어려웠지만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소설과 영화로 '콘클라베'를 접했던 것이 인상적이었다면 '지금이야말로 사랑할 시간'까지 이어지는 연결이 의미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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