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지와 왕국 알베르 카뮈 전집 개정판 4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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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지와 왕국'은 카뮈의 유일한 소설집이다. 총 6개의 단편이 실려있는 '적지와 왕국'의 독특한 제목은 부조리로 가득한 ‘적지’에서 자기만의 ‘왕국’을 좇는 현대인의 삶을 그린다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이 제목이 가장 크게 와닿았던 두 작품이 [손님]과 [요나 혹은 작업 중인 예술가] 였다. 

 " 그는 불을 켜고 아랍인에게 식사를 갖다줬다. "자, 먹어." 아랍인은 전병 한 개를 집어 들고 부리나케 입으로 가져가다가 멈추었다. "너는?"하고 그는 말했다. "먼저 먹어. 나도 곧 먹지." 아랍인은 두툼한 입술이 약간 벌어지더니 잠시 망설였다. 이윽고 결심한 듯 전병을 덥석 깨물었다. 식사가 끝나자 아랍인은 교사를 건너다봤다. "네가 재판관이야?" "아니야. 내일까지 널 데리고 있을 거야." "왜, 그럼 나와 같이 식사하는 거지?" "배고파서." -손님 119"

 " "왜? 먹어." 
정우성 국수를 허겁지겁 먹는다. 함께 국수를 먹던 곽도원 수갑을 차고 불편하게 국수를 먹는 정우성을 본다. 
"손 줘봐." 
정우성의 수갑 한쪽을 풀어 자신의 팔에 채우는 곽도원.
"같은 편이다? 같은 편이야!" -영화 강철비 중"

 이 뒤로 이어지는 장면은 곽도원이 정우성의 팔에 남은 수갑마저 아예 풀어주는 모습이 나온다.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에는 이런 교류가 존재한다. 다뤼의 마음을 거북스럽게 했던 그 친밀감이 영화 [강철비]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결국 자신이 가야할 길을 가는 아랍인을 바라보는 다뤼의 마음처럼, 분절된 세계의 두 사람이 연대와 고독을 보여주던 영화의 내용도 비슷한 결말로 흘러갔음은 우연일까. 

  " 그때까지 살아온 것에 비하면 사막이나 무덤 속처럼 느껴지는 이 희미한 정적, 그리고 어둠 속에서 그는 스스로의 심장이 뛰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다락에까지 이르는 소리들은 그를 향해서 나는 것이었으면서도 이제는 그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집에서 깊이 잠들어 있다가 홀로 죽는다. 아침이 되어 전화 벨소리가 텅 빈 집 안에서 영원히 귀가 먹어버린 몸뚱어리 위로 요란하고 끈질기게 울려댄다. 그는 마치 그런 사람들과 같았다. 그러나 그는 살아 있었다. -요나 혹은 작업 중인 예술가 176"

 요나는 다락으로 들어간다. 그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고, 그를 방해하는 모든 것들에서부터 다락으로 벗어날 수 있었다. 요나의 화폭에 적힌 단어, 카뮈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고독 혹은 연대 어쩌면 그 둘 모두가 이 단편 안에 드러나 있다. 그리고 요나의 이야기 중 또 하나 그냥 지나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 요나의 제자들은 요나가 그린 것을, 그리고 그것을 그린 이유를 그에게 오랫동안 설명하곤 했다. 그리하여 요나는 작품 속에서 스스로 생각해도 약간 뜻밖인 여러 의도와, 자기는 담아놓은 일이 없는 많은 것들을 발견했다. 그는 자신을 빈약하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제자들 덕분에 돌연 풍부해진 자신을 발견했다. -요나 혹은 작업 중인 예술가 149"

 최승호 시인의 일화가 떠올랐다. 그는 2004년 자신의 시로 출제된 수능 모의고사 문제를 풀었다 틀린 일화로 유명한데, 그의 작품 ‘북어’ ‘아마존 수족관’ ‘대설주의보’ 등은 수능 모의고사 등에 단골로 출제 돼 왔었다. 의도주의적인 해석이 무조건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의도와 다르게 오독되거나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 쓴웃음을 짓게 하는 일이긴 하다.

 작품이 읽힌다는 것은 읽는 사람과 만나 새로운 시각을 통해 저마다의 생각으로 의미를 낳는 과정이라 생각했는데, 문득 그 안의 의도 역시 전달되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특히 이렇게 긴밀한 연결이 폭 넓은 이해와 사유를 거치길 필요로 하는 글에서는 더욱 그렇다. '적지와 왕국'의 후기를 적고 있는 동안에도 일방적인 의미 붙이기나 마찬가지의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하니 씁쓸하기도 하다.

 좋은 기회를 통해 알베르 카뮈의 '적지와 왕국'의 개정판을 먼저 만나볼 수 있었다. 출판사 책세상에서 카뮈의 전집을 개정판으로 출간하며 [시지프 신화]와 [반항하는 인간]의 북펀딩을 진행하고 있다. 국내 알베르 카뮈의 최고 권위자인 김화영 교수가 그 전권의 번역을 맡아 전세계 유일 한 명의 번역자가 번역한 판본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특별하고 매력적이다. 11일이 마감인 펀딩은 이미 400% 가까운 금액을 달성할 정도로 관심을 끌고 있으니 서둘러 확인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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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몽골 - 고비사막, 타왕복드, 홉스골, 사진작가 시즈닝그라피의 몽골 여행
차은서 지음, 김창규 사진 / 푸른향기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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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사막 타령은 십년이 넘었다. 사실 그 사막 타령의 근본은 n십년전 이집트부터 시작되었는데, 몽골은 그 사막 타령의 가장 현실적인 목적지가 되었다. 비슷한 타령으로는 극지방 타령, 오로라와 펭귄 타령이 있다. 이 타령이 너무 오래되어서 이제 목적지에 다녀온 사람들을 보면 너무너무 부러워서 질투가 날 지경이다. 일곱번의 몽골 여행이라니, 몽골 여행 총량이 이란 것이 있어서 한 사람이 일곱번 몽골을 다녀오면 나머지 여섯명은 혹시 못가게 되는 것일까. '그럼에도 몽골'의 표지만 봐도 질투를 안할 수가 없었다. 몽골에 다녀온 것도 부러운데 이 포토제닉한 낙타라니. 나만 없어 낙타. 

 여행은 수학여행 이후로 자유여행 외엔 단체 행동을 쳐다도 보지 않았었는데 몽골,하면 가이드가 함께하는 단체 여행 말고는 생각해본적이 없다.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감각이었을까, 책을 보다 놀랐다. 제네바 협약과 비엔나 협약(19)이 이런 큰 차이를 가져오는 것이었다니. 저자가 제시하는 몽골 여행의 기본 조건들을 하나하나 따져보면 역시 딱 나야 중얼거리면서도 몽골에 대해 뭐 하나 아는 것이 없었구나 싶기도 했다. 다른 사람의 여행기를 읽는 것을 그리 선호하는 편이 아닌데 초반에 낯선 사람들에게 엉덩이 까이는 생리현상에 대한 얘길해서 일까, '그럼에도 몽골'을 너무나 새롭고 재밌어서 자꾸만 다음 페이지로 시선이 옮아갔다. 

 '너에게 당연한 게 나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것이야'는 말이 종종 나오는 상황들도 재밌다. 당연히 몽골에서의 생활과 많은 것이 다르겠지만 '화장실에서 노래를 불렀어야지(45)', 하거나 먹고 남은 과자를 잘 정리해두지 않으면 회색 손님이 찾아온다거나(83), 대부분 결혼을 일찍한다는 것이(268) 두드러졌다. 하지만 닮은 점들도 있었다. 우리 농가에서 어린 소에게 옷을 입혀주는 것처럼 옷을 입은 하네크들을 만난 이야기(282)나 고시레와 비슷하게 술을 마시기 전 땅에 몇방울 흘리는 것, 이름에 쓰는 돌림자(209)도 비슷하다. 더불어 몽골 사회에 여기저기 스며든 한국문화가 반갑고, 무엇보다 우리와 다르지 않은 친숙한 외모가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몽골'을 읽으면 읽을수록 몽골이 더 가보고 싶어지고 좋아졌다. 몽골의 풍경들이 멋진 탓도 있지만 사진을 잘 찍어서 몇배로 멋져보인 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몽골을 이만큼이나 많이 다녀온 작가도 아직 몽마르다고 하는데, 원래부터 몽골에 가보고 싶었던 몽골 타령인의 마음은 얼마나 몽골몽골 해졌겠는가. 몽골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던 사람이라도 '그럼에도 몽골'을 몇 장 넘겨보면 점차 빠져들게 될 것이다. 몽골 특별 사진집이나 다름 없는 멋진 몽골 여행기 덕분에 반드시 몽골을 가보기로 마음 먹는다. 기다려, 몽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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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보그 가족의 밭농사 - 조기 은퇴 후 부모님과 함께 밭으로 출근하는 오십 살의 인생 소풍 일기, 2023년 국립중앙도서관 사서추천
황승희 지음 / 푸른향기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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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고, 늙고 힘들어서 농사 못 헌다고 시골마다 땅을 내논다는데, 시상에... 팔순 너머에 농사를 한다고 그걸 또 사는 사람이 있네. 아부지한테 늙어 편하게 사시라구랴. 머더러 힘들게 농사를... 쯧쯧. 농사 지긋지긋혀." 61" 

 남 일이 아니다. 함께 늙어가는 부모님과 밭농사라니. 그것도 칠할 정도를 살아온 동네를 벗어나 낯선 동네로 거처를 옮겨서. 있는 땅도 헐값이든 제값이든 팔아 없애라고 성화를 부리고 있는 나와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나와 비슷한 세대에게는 그 분포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부모님 세대에는 귀농이나 전원생활이라는 비슷한 황혼기의 로망이 있는 듯하다. 평생을 한동네에서 떠나본 적이 없는 아빠가 느닷없이 차로 두시간쯤 떨어진 곳에 땅을 샀다. 본인 계획대로라면 아마 지금쯤 그곳에서 노년을 보낼 것이었겠지만 삶이 뭐 어디 계획대로만 흘러가던가. 노년은 되었지만 집과 땅을 오가며 두배로 바쁜 삶을 살고 계신다. 애물단지나 다름없어 보이는 땅을 정리하고 좀 편히 지내시라고 몇년 전부터 권유하다못해 진절머리를 내는 자식에게 부모님은 그저 묵묵부답이다. 생활반경에 모든 필요한 편의시설이 존재해야 함을 주장하는, 편의시설은 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는 성향인 사람과 길이 다르기 때문일까. 자연으로 돌아가길 결심하는 사람들은 그 안에서 뭘 키워내고 싶은걸까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뱉으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 아빠는 누구보다 나를 사랑한다는 완벽한 사실, 나를 전적으로 믿고 내 선택과 인생을 소중하게 생각해주시는 아빠인데 말이다. 엄마를 구해야 한다는 만화 같은 마음이 언제 나에게 있었나 싶게 어쩌면 당연하게도 그 만화는 나에게 아득해졌다. 아빠에 대한 두려움이 차차 무뎌진 건 사실이다. 119" 나이를 먹을수록 이상하게도 나는 아빠와 가까워지고 있다. 아주 잘 맞는 사이는 아니지만 나는 가족 중 아빠와 성격이나 외향이 가장 많이 닮았다. 내가 가진 성질머리도 친근한 사람들 앞에서 내보이는 유머감각도 불규칙해서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치열도 짙은 쌍커풀이 있는 눈매도 아빠에게서 가져온 것이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대화를 나누고 이해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나이를 먹을수록 더 쌓여서인지 모르지만 아빠는 나에게 가장 많은 참을성을 보인다. 아빠와 의견 차이가 생길 것 같은 문제를 두고 협상과 회유 테이블에 가장 많이 올라가는 것은 내가 되었다. 이와 비슷한 관계의 모양이 책에서 보일 때가 종종 있었다.  

 비슷한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사이답게 '다인 가정'을 선택한 친구와의 일화(149)도 재밌게 읽었다. 인터넷에도 그런 불만은 종종 올라온다. 나는 친구를 만나서 대화하고 싶은 것이지 친구의 남편이나 아이를 함께 부르는 것은 아니라고. 결혼한 친구의 삶에서 자기는 없어지고 남편과 아이로 중심이 옮겨가는 것 같아 아쉽다고. 저자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고, 1인 가족을 선택한 자신의 삶과 다를 뿐 틀린 것은 아니라는 이해와 더 다양한 친구맺기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자꾸만 생일이 기대가 되지 않는 변화도, 폐경이 오길 바랐다는 얘기도, 심지어 요즘 더워할 때마다 증상으로 의심받고 있는 갱년기도, 부모님이 갈수록 여기저기 아픈 곳이 생겨난다는 것도 전부 공감가는 것들이었다. 사는 일이 다 똑같구나 싶어진다. 어떤 날은 나만 이렇게 사는가 싶은데 이렇게 문득 다 비슷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면 묘하게 안도하게 된다. 남들과는 다르게 살고 싶고 남보다 더 잘 살고 싶어서 아등바등 했던 것도 같은데, 인생이라는 큰 흐름 안에서 각자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 왜 위안이 될까. 

 그렇다고 우리가 모든 면에서 비슷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 이혼한다 하면 열이면 열 명이 왜? 라고 묻지만 결혼한다 하면 왜? 라고 묻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215"는 말에 결혼한다 하면 왜?하고 묻는 사람도 많다는 생각을 했다. 그 중 하나가 나다. 요즘은 더 많은 사람들이 왜인지 묻겠지만, 난 전부터 궁금했다. 어떤 점이 결혼을 결심하게 만들었을까, 그 쉽지 않은 결심을 하게 된 이유를 물어보곤 했는데 저마다 내놓는 답을 들어도 매번 궁금하고 신기하긴 했다. 그 밖에도 에어컨에 대한 이야기(197)나 예쁜 여자애는 꼭 못생긴 애들과 친한 법(226)이란 말들은 가까이 다가서러던 마음을 주춤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 나에게도 누군가가 다가오려다가도 발걸음을 돌리게 될 만한 점들이 있겠지 생각이 번져나가면서, 뭐 어떤 면들은 나랑 좀 다를 수도 있지 싶어졌다. 그보다는 평범하고 따뜻한 사람이라는 점이 더 크게 다가왔다. 

 '사이보그 가족의 밭농사'는 이런 삶도 있다고 말해준다. 인간극장이나 자연인 같은 프로그램에 나올 것만 같은 독특함을 가지고 있는데 읽고 나면 나와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결론을 맺는다. 남들은 대체 어떻게 삶을 견디고 있는지 궁금해질때, 인스타그램 밖에서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엿보고 싶을 때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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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개가 왔다
정이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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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는 지리산 언저리의 보호소에서 혈혈단신 서울로 왔다. 살기 위해 왔다. ...중략... 내 두려움이 아무리 컸대도 녀석의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어린 개의 필사적인 용기에 대해, 하루하루의 그 마음에 대해 이제야 나는 헤아려본다. 14" 

 손수건을 준비하고, '어린 개가 왔다'를 손에 드세요. 저는 미리 경고했습니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참 눈물날 일도 많다. 이런 말을 주위 사람들이 들으면 믿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어린 개가 왔다'는 그저 눈물 버튼이다. 개를 학대하고 버리는 사람의 대다수가 개를 좋아한다며 키우는 사람들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믿을 수 밖에 없는 사실이었다. 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개를 키우려하지 않고, 키우지 않는 개는 버리고 싶어도 버릴 수도 없다. 버려진 개들은 누군가의 가족이었다. 나에게도 개가 한 마리 있는데 그 애를 키우며 다짐했다. 다시는 살아있는 동물을 들이지 않기로.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고 책임지는 것에는 차원이 다른 무게가 존재한다. 생명이 너무나 무겁고, 나의 사랑함과 개의 사랑함은 비할 바가 되지 않는다는 걸, 그애를 통해 자격없음을 배웠다.  

 가장 기대하고 재밌어 한 것은 역시나 '산책'이었다. 중대형 이상의 개들에게 특히 더 마음이 가는 탓에, 특히나 진도가 최애이기 때문에 그들의 성격 상 실외배변은 필수라 똥책 아니 산책은 웃음버튼이다. 수많은 견주들이 장마철과 태풍, 폭설이 오는 날이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산책을 나간다. 사랑 듬뿍 받은 개들은 날씨가 궂은 날에 똥자리가 마음에 안들거나 털이 젖는게 싫으면 어린아이가 투정 부리듯 견주에게 성질도 낸다. '너가 나오자며!', '제발 빨리 싸고 들어가자' 이 귀여운 승질머리들을 붙잡고 견주들이 진심으로 사정하는 모습은 봐도봐도 재밌다. 작가가 오자마자 '배변 천재(43)'였다던 루돌이를 데리고 실외배변을 결심하는 순간부터 정해진 미래 앞에서 웃음을 참지 못했다. 

 또 하나는 루돌이의 응급실 방문기(206)들이다. 루돌이에겐 아주 위험한 순간임에 틀림없지만 언젠가 외국의 토크쇼에서 먹어서는 안 될 것을 먹은 개와 주인 이야기를 본 이후로, 산책하다 쥐랑 뽀뽀한 개가 주인에게 잔뜩 혼나면서 벅벅 닦여진 영상을 본 이후로 이 또한 의도치 않게 웃음버튼이 된 것이다. 이 두 영상은 유명하기도 하고 재밌고 귀여우니 안 본 사람들은 꼭 찾아보길 바란다. 초콜릿 먹은 개의 이야기는 코난쇼에 나온 미국 스탠드업 코미디언 루이스C.K 편이고, 쥐 때문에 멍빨 당하는 개는 대박이이다. 개들은 집에서 온갖 것을 물어 사고를 치기도 하지만, 똥책 중에 뭘 준 적이 없는데 갑자기 개가 우물우물 하고 있어서 사람들이 길에다 먹다남은 갖가지 음식물들을 함부러 버린다는 것을 체감한 견주들의 분통도 웃픈일이다. 

 물론 루돌이의 모든 이야기가 행복하고 웃음 가득하지만은 않다. 손수건 준비하라는 경고부터 시작한 것은 그만큼의 눈물과, 또 손수건을 반으로 나눌 수 있을만큼의 분노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루돌이도 진도들과 비슷하게 중대형에 속하는 체구인데, 이 친구들이 여성 견주와 산책할 때 겪어야 하는 무례들이 너무나 익숙해서 지금도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진도를 키우는 여성 견주들이 '우리 개는 안 물어요, 내가 물지!'하는 전사, 파이터, 공익신고자 그러나 열혈인 존재로 진화하는 과정을 숱하게 보았다. 시고르자브종인 루돌이에 대한 무례한 질문들도 그렇지만, 진도라는 종이 있어도 만만치 않은 편견과 오해를 받는 것은 마찬가지라 견주들이 마치 경찰 바디캠처럼 증거 영상을 찍으며 산책하는 것은 물론이요, 개는 정상인데 사람이 미친 경우를 참 많이 봤다. 

 그리하여 이 어린 개가 15킬로그램 쯤 되는 중대형견으로 자라난 것이, '반려견 동반 가능(155)'마저도 어떤 개들에겐 해당되지 않음을 함께 겪는다는 것이 미안하게도 고마웠다. 누군가는 목소리를 좀 내줬으면, 목줄 안하는 소형견들은 보이지 않고 입마개 의무 대상도 아닌 개에게 흰눈을 뜨는 사람들도 한번씩 지적해줬으면 했다. 심지어 법적으로 출입보장을 받는 안내견들도 식당에서 자기 때문에 주인이 출입거부를 당하면 눈치를 채고 위축된다는데, 10키로 미만의 동물만 친화적인 공간들 앞에서 루돌이도 이 차별을 눈치채면 어쩌지 싶었다. 거부하려거든 귓속말이나 글씨를 써서 해주는 배려심을 보여주길. 애초에 모든 동물들에게 친화적이라면 더 좋겠지만. 

 저자는 안간힘을 다해 개와 자신의 세상이 분리되어 있었음을 주장한다. 무시무시한 '습관성 식물 킬러(12)' 출신이며 '고양이 알레르기(20)' 특성 보유자이고 '가족 중 25퍼센트(24)'를 담당하는 (불)균형의 소유자임을 계속해서 알렸다. 개를 키우며 식물 이야기를 하는 작가 마일로의  만화를 얼마 전에 열심히 봐서 일까, 같은 연쇄살식마 출신이어서 일까, 이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궁금하게 만들어주는 면모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 개가 온 이후로 이전의 세계는 붕괴되어 버렸다. 가족 중 가장 먼저 '발라당(85)'을 선보여 준 강아지 앞에서 "이 개는 내 개야"(189)라고 소리치는 견주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 밖에. 훌륭한 견주의 모습으로 책을 마무리짓는 과정을 즐겁게 지켜볼 수 있어서 좋았다. 게다가 오죽하면 책까지 내는 이 얼마나 성덕인 견주인가.
  
 물론 모든 내용이 다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 보호소에서 혼자 남은 작고 안쓰러운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온 작가는 좋은 사람일지도 모르지만, 범법자이기도 하다. 무슨무슨 법에 의해서 가나디 사진 최소 열 장 이상 함께 보여줘야 하는데 읽어도 읽어도 그림만 있고 사진이 없다. 훈련받고 장염 왔을 때 강아지똥 사진도 계속 찍어서 기록하셨으면 그거라도 공개하셨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진짜 마지막까지 루돌이 실물이 없을지는 전혀 몰랐다. 믿었어요, 전. 믿었다구요, 작가님. 누가 '반려견 행동심리학 - 개의 행복을 위한 가장 과학적인 양육 가이드(93)'에 개에 대해서 뭔가를 하려면 사진 같이 올려야 한다는 내용 넣어서 개정판 발행하도록 해주길. 

 강아지였던 개와 함께 사는 견주들과 나만 없어 갱얼지, 하며 눈물 짓는 강아지사랑단들이 읽는다면 반드시 공감도 하고, 내 옆의 작은 생명체가 기특해 눈물도 나고, 자신도 모르게 잇몸이 드러날 책이다. 작가 정이현과 강아지와 함께하는 일상을 주고받을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내가 저를 향해 웃었기 때문일까, 루돌이의 고개가 옆으로 갸우뚱 기울었다. 절묘한 각도였다. 너도 나에게 무언가 궁금하구나. 내가 너를 알고 싶은 만큼 너도 그렇구나. 너도 나를 알고 싶구나. 그렇구나. 나는 그의 마음을 가만히 받아들였다. 우리에겐 주고받을 게 아주 많이 남아 있음을 알았다.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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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언니 2025-06-17 09: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같은 마음으로 <어린 개가 왔다>를 읽고 반가운 마음에 댓글 남깁니다. 루돌이 인스타 계정 있어요! https://www.instagram.com/rudol.puppy?igsh=NDAxc2xjOTNoYjhx 그림과 똑같습니다 ㅎㅎ

테일 2025-06-20 20:3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루돌이 실물 궁금했어요!! 같은 마음으로 읽으셨다니 더더 반갑고 따뜻한 마음 써주셔서 감사드려요🫶
 
창조적 영감에 관하여 - 천천히 사유할 때 얻는 진정한 통찰의 기쁨
머리나 밴줄렌 지음, 박효은 옮김 / 다산초당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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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책을 읽으려고 자리를 잡고 앉아서 쉴 새 없이 딴 짓을 하는 자신을 보며 성인 ADHD가 아닐까 의심하고 있다. 내가 이렇게 집중력이 없고 산만하다니. 오히려 어렸을 때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이게 다 핸드폰 때문이다. 내가 보내는 한가로운 시간은 아무 의미도 없이 지나가버리는 것 같은데, '집중과 몰입의 시간(55)'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겠다. 아르키메데스가 욕조에서 "유레카"를 외칠 수 있었던 것은 답을 찾기 위해 몰입해온 잠깐의 '빈틈'에서 생각의 전환이 발생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책의 시작에 앞서 게으름과 산만함, 걷는 시간과 여유, 재충전과 환기를 말하는 사람들에게 그건 당신들의 이름 옆에 붙는 수식-교수, 소설가, 시인, 크리에이터 등등-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가치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나약한 생각으로 책 안의 모든 내용을 신포도 보듯이 할 수는 없다. 책에서도 " 어떤 이들은 '유익한 산만함'은 한가한 철학자들이 꿈꾸는 허상이며, 권리가 아닌 특권에 불과하다고 반박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자크 랑시에르는 '유익한 산만함'을 오직 '소수 특권층'의 전유물이라 여기는 회의론자들의 주장에 강력한 반증을 제시했다. 131"고 나와 같은 사람들의 접근을 차단한다. 그리고 이 살짝 비뚤어진 시선이 책을 읽어나가며 점차 풀려짐을 느낄 수 있었다. 

 초반 다윈이 말하는 과도한 몰입에 따른 '쾌감상실증(33)'이란 것을 최근 읽은 "프랑켄슈타인"에서도 보았다. 빅토르가 생명을 창조하는 연구에 몰입한 나머지 주변사람들도 챙기지 못하고 감정이 둔화되는 부분이 나온다. " 하지만 나는 꽃이 피거나 나뭇잎이 우거진 광경을 보지 못했다. 예전에는 그런 풍경을 보고 기쁨을 느끼곤 했는데, 이제는 홀린 듯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었다.(69. 프랑켄슈타인, 책세상) " 절망감에 매몰된듯한 빅토르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었는데 외골수적인 집중력이 우울감과 고립감을 주었다는 다윈의 사례를 통해 다시금 인물을 한층 더 이해하게 되었다. 

 현대의 우리 역시 원인은 다르지만 증상은 비슷한 중독을 가지고 있다. 2배속과 15~30초 정도의 짧고 직관적인 콘텐츠들을 통해 느끼는 자극에 익숙해져 긴 호흡으로 복합적인 감상을 스스로 이끌어내야 하는 콘텐츠들은 외면 받고 있다. '뇌의 스위치(39)'를 끄지 못하고 계속해서 핸드폰을 통해 이리저리 어플을 뒤적이는 일에 여가를 소모하고 있는 것이다. 수전 손택은 이를 핸드폰에 몰입하는 '주의력 과잉 장애'라 진단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콘텐츠의 시간이 길어지는 것을 참지 못하는 집중력 부족과 끈기없음이 더 두드러진다 여긴다. 이 주의력 결핍 장애는 느긋한 사색을 방해하는 지나친 흥분 상태(40)에 빠지게 만들 뿐이다. 

 가장 매력적으로 느꼈던 것은 책의 중간중간 짧게는 한쪽, 혹은 과감히 양쪽의 모든 면을 들여 실어둔 흑백 사진이었다. 처음 나는 이 사진들이 그리 맥락에 맞지 않아 흐름을 끊고 전체적인 분위기와도 어울리지 않다고 여겼다. 세번째 사진과 마주했을때 쯤 의도적으로 사진이 끼어들어와 집중을 깨고 정적이고 흐릿한 공간을 잠시간 바라보며 머리를 비우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느꼈다. 책을 읽으며 나에겐 집중이 부족하다고 여겼는데 사진이 등장할 때마다 어느 순간 몰입을 방해받고 있단 불편함을 느낀 것이다. 이 작은 장치로 몰입 사이에 틈을 만든 점이 흥미로웠다. 

 " 그런데 인류학적 관점에 따른 산만함에 대한 설명이 아무리 설득력이 있다고 해도,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이 주의력 결핍을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는 마당에 과도한 집중을 비판한 흄의 주장을 지지하거나 산만함을 옹호할 수 있을까? 112" '창조적 영감에 관하여'를 읽으며 반복해서 해온 행동이 있다. 다리떨기다. 긴 시간동안 다리떨기는 산만함과 복나감을 이유로 핍박 받아온 행동양식이다. 하지만 지금, 다리떨기에 대해 밝혀진 진실은 어떠한가? 스트레스 감소, 운동 효과 심지어 집중력에도 도움이 된다는 갖은 장점이 드러났다. 단점은 보기에 안좋다는 것 뿐. 다리떨기와 흄, 집중과 산만함에 대한 고정관념을 보여주는 좋은 예시가 되었다.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책이다. 언뜻 진부한 내용을 담고 있을 것 같지만 왜 '게으름에 보내는 찬사'라는 문제적 강의명을 달고 등장할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됐다. 핸드폰을 손에 쥐고 시간을 이렇게 써도 괜찮을까 염려되거나, 주의력 결핍 장애인가 걱정되거나, 어린시절부터 부모님 손에 이끌려 바둑이나 서예학원을 등록한 이력이 있거나, 지금 다리를 떨고 있다면 혹은 집중력이 좋은 편이라 한번 몰입하면 주변 상황이나 소리가 차단된다는 사람이라면 '창조적 영감에 관하여'를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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