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로 마음먹은 당신에게 - 나를 활자에 옮기는 가장 사적인 글방
양다솔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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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방에서의 시간은 작가가 되기 위한 연습, 책을 쓰는 과정이라기보다 한주간 맹렬히 삶과 싸운 누군가가 보고 들은 것들을 목격하는 일에 가까웠다. 글자들이 살아 있다 못해 그 자리에서 내가 그 사람의 삶을 겪는 것만 같았다. 누군가의 얼굴을 읽는 기분이 들었다. 5" 

 글쓰는 삶을 살아가고 꿈꾸는 사람들은 많다. 챗GPT가 사진만 쥐여주면 무슨무슨애니메이션 풍 그림을 재현해내는 것이 유행했을때 멀거니 세상 참 좋아졌구나, 했는데 문체를 몇 개 학습시키고 이러저러한 내용을 넣은 글을 써달라고 하니 금새 제법 읽을만한 글을 뽑아냈다는 말은 어라, 싶었다. 그렇다면 쓰는 사람들은 무엇에 마음을 두고 계속해서 써나가야 할까. 쓴다기 보다는 읽기에 더 가까운 편이지만 문득 덜컥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쓰기'에 대한 의미를 찾아보고 싶어 책을 펼쳤다. 
 이 정중하고도 가혹한 관리자는 챗GPT에게 글 하나 써와보라고 명령하는 사람보다 더하다. 힘드신가요? 쓰세요. 떨리나요? 쓰세요. 어렵나요? 쓰세요. 뭐하세요? 쓰세요. 응원합니다, 쓰세요. 기다립니다, 쓰세요. 그냥, 쓰세요. 모든 말이 '쓰세요'로 귀결된다. 게다가 얼마나 냉혹한지 "내 글을 읽는데 차마 너무 흉측해서 도저히 읽을 수 없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글이 늘었다는 증거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보이는 것마다 다 뜯어 고치세요.(181)한다. T인가 싶다. 

 "같은 시공간 안에 있어도 같은 이야기를 공유하지는 않습니다. 57"는 문구는 무려 올해 초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일과 일치했다. 친구와 전처럼 자주 만나게 되지 않으니 만나게 된 날에 있었던 일과 생각을 친구가 기록하는 것처럼, 나는 나대로 적어보면 어떨까 생각했었다. 그리고 연초에 그 말을 친구에게도 직접 해놨는데 아직 지켜지지 않았다. 생각이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고, 벌써 반환점을 돌아 7월. 2025년 이대로 괜찮은가 잠시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넘어져서 무릎을 다쳤을 때, 다쳤다는 슬픔과 고통보다 무릎에 대한 자각을 앞세우는(114) 사람이어서 새로웠다. 압구정 로데오 한복판에서 넘어져 무릎을 다쳤을 때, 나는 창피했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무릎을 꿇은 자세로 넘어져 기어이 바지에 구멍을 낸 채로 피를 흘리고 있으면서 고통과 함께 쪽팔림이 밀려오던 그날을 떠올렸다. 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생각을 하는구나, 하면서. 

 '타인이라는 바다로 입수하기(152)'에 이르러서야 글감을 발견한 듯 했다. 몇해 전 친구와 서로의 얼굴을 그려주었던 일이 떠올랐다. 우리는 서로 자신의 미술적 재능이 좀 더 낫다고 주장했는데, 시간이 지나고보니 역시 내가 좀 더 나았던 걸로 확신하게 되었다,고 다시 주장해본다. 어찌되었든 그때 유심히 바라보고, 뚫어지게 관찰되던 시간이 익숙했던 누군가를 새롭게 바라보는 경험이 되어 기억에 남아있다. 인터뷰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한 번 글감을 발견하고 나니, 어떤 주제들 앞에서는 오랫동안 멈춰있게 되었다. 거짓말과 어린시절에 대한 주제가 연달아 나왔을 때(234,240)나 '행복한 가정은 서로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각자 자기 방식으로 불행하다.'는 [안나 카레니나]의 유명한 문장을 떠올리게 한 불행에 대한 주제(270)들이 그랬다. 신화와 꿈이라는 주제, '당신이라는 신화(287)'에서는 태몽이 글감이 되면 어떨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책을 읽기만 해볼거야, 난 뭔가를 쓰는 성향은 아니야'하고 생각하다가도 이렇게 갑자기 쓸만한 주제를 만난 것처럼 책을 읽다 문득 눈길이 가고 머리속에서 떠오르는 뭔가가 생긴다면 놓치지 않고 쓰기에 도전해보면 좋겠다.  

 읽으면서 아쉬웠던 것이 수신자들의 답장이 어땠을까,하는 궁금증이 점점 커지는데 채워지지 않은 채 끝맺었다는 점이다. '사랑을 사랑 없이 말해볼게요'라는 주제(124)를 마주했을때, 인터넷에서 본 '양말에 구멍이 났다.를 구멍이란 단어없이 다시 써보기 도전'을 떠올렸다. '어쩜 가난이란 것은 발끝까지 옮는지'라고 적은 문장이 인상적이어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사랑을 사랑없이 말해보는 주제는 어떤 답들이 나왔을까 궁금했다. 
 서간문으로 되어 있는 책은 오랜만에 만나본 것 같은데, 이 다정한 권유이자 능글맞은 압박을 받은 '쓰기로 마음먹은 당신'들이 어떤 글을 썼을까 궁금한 독자들을 위해 어떤 답장을 보냈는지, 혹은 참여자들이 작성했던 글이 아니더라도 인터뷰 형식으로 편지를 받았을 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 함께 볼 수 있었다면 더 재밌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 여러분은 이제 '쓰는 것의 필연성' 앞에 섰습니다. 쓸 것이냐 말 것이냐는 이 책을 펼치기 전까지의 질문입니다. 여러분 앞에는 이제 그저 '무엇을 쓸 것인가'만 남아 있습니다. 질문이 한 걸음 앞으로 이동한 것입니다. 쓸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하던 힘이 무엇을 쓸까로 옮겨왔을 때 어떤 힘을 발휘할지, 저는 기대됩니다. 91" 

 '쓰기'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책이 전해주는 다양한 글감과 약간의 압박감이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쓰기로 마음먹은 당신에게'는 읽어보라 추천하지 않고 이 책을 써보라(이용해보라) 권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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