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 없는 마음 - 양장
김지우 지음 / 푸른숲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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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애가 있는 나도 성공하는 것을 보여 주겠다, 그런 마음은 없었다. 한 푼만 줍쇼. 준다면 떠나겠습니다. 이 마음에 더 가까웠다. 7" 

 그녀가 극복 서사를 풀어나가거나 여행 바이블의 더미에 책 한 권-그러나 조금은 새로울-을 더하려는 것은 아닐까 예상했던 마음이 나에게 있었다. 첫 시작에 자각조차 하지 못했던 그런 시선들을 향해 '아니'라고 분명한 선을 긋고 나섰다. 선이 그어지고 나서야 그 선이 나에게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로는 조심스럽게 선 안으로 발을 들여 새로운 세계에 빠져들어가는 일만이 남아있었다. "아주 커다란 돌이 천천히 굴러가기 시작했(15)"던 그 순간, 이 사소한 이야기들에 정말로 빠져들었음을 느꼈다. 마음에서부터 올라온 신호가 목과 코끝을 타고 찡하며 울렸다. 

 '현장에 가서 잘 안 풀리면 박박 우(23)'기겠단 전략으로 날아간 타지에서 유쾌한 면모를 보여주는 소소한 사건들을 보며 즐거웠다. 특히 니야와의 트램 여행 무임승차 사건의 '겁나 많은 벌금...' '젠장...'(127)같은 소소한 대화나 독일 욕탕에서 노인들의 체조(101)를 보며 느낀 익숙함 같은 것들이 재밌었다. 바덴바덴이란 지명도 덕분에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았다. 그러나 가장 웃겼던 것은 여의도 불꽃 축제에서 인파에 갇혀 화장실도 못하고 널브러졌을 때 옆자리 아주머니가 강아지 소변 패드를 건네 주는 친절(144)을 보여줬던 사건(쓰진 않았다고 주장한다)이었다. 역시 한국인의 정이 제일이다. " '엄마 나 횡단보도에서 어떤 아저씨가'까지만 보낸 메시지에 현미가 '망할 놈이'라고 답장한 일은 두고두고 나의 웃음 포인트다. 96"라고 한 부분에서도 많이 웃었다. 

 "우리로 묶일 수 없는(51)" 자유롭고 개개인이 그저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는 분위기의, 하지만 그 자유로움이 불규칙함으로 이어지는 제멋대로의 도시인 파리. "아니, 이런 일은 생겨선 안 돼(107)" 하고 작은 어긋남 조차 용납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는 독일. -괜찮다고 말하는 저자에게 건네진 역무원의 단호한 말에 이 문장을 듣기 위해 여태 여행한 것 같았다는 저자의 말도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하고 싶어?(132)" 할 수 없을 것이라 자신조차 접었던 도전을 할 수 있다로 바꾸어 주고 의심하지 않는 마음을 알려준 호주.
나라마다 저마다의 특징과 매력을 잘 살려 보여준 내용들에 함께 빠져들어 읽었다. 

 읽으며 가장 좋았던 부분은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54)'의 내용이었다. 잔잔한 일상이 그려지면서 낯섦과 다름도 없이 평범하고 평온한 풍경이 이어질 것만 같은 느낌이 잘 전달되어 읽는 동안 편안했다. 어떤 난감하고 말도 안되는 일이 생기거나, 어려운 순간 예상치 못한 선의에 감동을 받는 내용들보다 더 인상적인 것이, 그녀가 온전히 자신으로서 존재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장소처럼 느껴졌다. 파리에서 시작된 책은 미국에서 마무리된다. 글로벌하다. 그리고 '굴러라구르'라는 이름처럼 그녀가 멈추지 않고 나아가고 있다는 신호가 되어준다. 

 "한국으로 돌아갈 때이다. 앞으로 만날 시간에서 어떤 나는 작아지고 어떤 나는 커질까. 지금은 내 몸 전체를 차지하는 어떤 내가 어느 순간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하겠지. 내가 사랑하는 나의 부분이 희미해지기도, 외면하고픈 어떤 부분이 거대해지기도 하면서. 그 새로운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또 어떤 관계를 맺을까. 새롭게 더 자랄 내가 기대되었다. 동시에, 다시는 만나지 못할 이 순간의 내가 그리웠다. 196" 

 책을 통해 저자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세바시 강연이나 다양한 활동을 활발히 하는 열정적인 활동가였다. 인터넷 검색 창에 저자를 검색해보면 열심히 바퀴를 굴려 앞으로 나아가려 노력한 활동들을 만나볼 수 있다. 앞으로의 자신을 기대하는 모습이 풋풋하고 예쁜만큼 기대되기도 했다.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확신하지 못하고 방황하게 되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면 '굴러라 구르'가 보여주는 선명하고도 확실한 세계, '의심없는 마음'을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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