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서울 - 공간·사람·정치로 빚어낸 김진애의 도시 이야기
김진애 지음 / 창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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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인인 나에게도 서울은 익숙하다. 살아온 시간의 절반 정도는 경기도와 서울을 오가며 길 위에서 지내왔으니 나름대로 익숙하고 애착이 가는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스스로를 서울사람으로 규정짓는 사람들의 서울 사랑 앞에서는 묘한 느낌이 들곤 한다. 어디까지나 일부겠지만 서울사람이라는 것이 마치 자신을 드러내주는 고급 상표인양 드러내보이는 이들을 경험해보았다. 서울에 필요한 모든 것이 다 있기 때문에 모임 장소는 서울인 것이 당연하고, 편도 30분 이상의 거리는 너무 멀고, 이 경험은 서울부터 먼저 제공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비서울출신은 모를것이고, 하다못해 기프티콘을 선물할 때도 매장이 없을 수 있는 지방의 사정은 남의 나라처럼 멀게 말한다. 이런 은근한 태도가 서울출신만의 것인가 하면 또 개인마다 다른 부분인데, 이 쎄한 느낌을 주는 것은 또 서울출신이 도드라진다. 대체 서울이, 그리고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는 것이 뭐길래 싶어진다. 물론 니가 서울 사람이 아니라 괜히 열등감이나 피해의식이 있어서 그렇다는 지적도 받아들일 수 있다. 그 지적에도 그 묘하고 은근하고 쎄한 것이 담겨있겠지만. 어쨌든 서울을 좋아하면서도 어딘지 그 안에 온전히 속하지는 못하는 사람의 눈으로, 이 서울 찬가나 다름없는 책을 집어들었다. 역시나 싶은 느낌도 있고, 이렇게나 서울을 사랑한다고? 싶은 부분도 있었다. 누군가 내게 경기도 같은 사람이라고 하면 그저 그게 뭐 어떤건데 싶어서 뭔 소린가 싶을텐데 '서울을 보니 널 알겠다(7)'는 말에 자랑스러움과 기쁨을 섞어 곱게 담아두는 마음이 인상적이었다. 약간 '너 아이폰 쓰게 생겼어' 같은 말을 들은 느낌인건가 싶기도 했다. 이런 생각이 "서울 사람 이미지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서울 사람이란 말이 그렇게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291"며 '이토록 서울'안에도 드러나 있다. 

책을 읽기 전에 저자의 '서울 그리는 법(340/356/359)'에 대한 짧은 영상*을 본 적 있는데 쉽고 유용했다. 한강을 느슨하게 그리고 주요한 산을 콕 찝어 위치를 잡는다. 사대문 안을 표시하는 성곽을 두르고 오래되고 주요한 길을 찾아 표시한다. 꼭 알아둬야 할 것은 아니지만 생활 반경 안에 서울이 있다면 언젠가 어디에서든 누군가에게 한번쯤은 아는 척 잘난 척 해볼 수 있을 팁이 될 것이다. 이 내용은 책에도 담겨 있는데 글로 보는 것보다 영상을 참고하는 편이 백배 이해가 쉽고 재밌다. '이토록 서울'에 대한 관심이 그 영상을 계기로 좀 더 높아질 정도로 흥미로웠다. 이렇게 그릴 수 있고, 그리는 방법을 쉽게 알려줄 정도라는 점에서 정말 서울을 아끼는구나 싶었다. 

책에는 애정을 담아 서울 곳곳의 풍경을 찍은 사진이 여럿 실려 있는데, 대부분 익숙하게 느껴지는 장소들이었다. 생활권 안에 서울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아마 한눈에 알아볼만한 곳들일텐데, 문득 이곳저곳 두루 돌아다녔구나 싶어진다. '이토록 서울' 안에서 가장 공감한 부분 중 하나는 광화문광장에 대한 내용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를 꼽으라고 하면 광화문 일대가 상당할 것이다. 광화문에서 종각으로 이어지는 일대에서 느껴지는 개방감과 전통과 현대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풍경, 산과 천을 앞뒤로 두고 어쩐지 좋은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나 역시 끌려한다. 강남이나 홍대, 이태원, 상수 일대가 유행처럼 들끓어도 그 거리 안에서 어딘지 섞여들지 못하는 느낌을 받는데 반해 똑같이 정신없고 사람 많은 서울이어도 광화문 일대는 불편함이 없다.  

" 용산은 마치 알록달록 조각보 같다. 색깔 다른 동네와 길들이 마치 조각보처럼 꿰매져 있다. 별로 크지도 않은데 어쩌면 찾아볼 데가 이렇게 많은지, 어떻게 이렇게 색깔이 다른 동네와 길이 이어지는지 신기할 정도다. 132" 

서울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읽는 내내 아끼는 마음을 담은 시선이 보이는데, 의외로 강남쯤가면 들끓던 애정이 조금 식은 느낌이 든다. 요즘 서울의 중심을 꼽으라면 광화문, 종로 일대를 두고 강남을 꼽는 사람들이 많아졌을만큼 비중이 커졌는데 강남 부분은 읽으면서 심심한 느낌이 들었다. 또 하나 산본에 대한 이야기가 더해진 것도 책의 큰 흐름 안에서는 좀 튀는 부분이 아니었나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의미 있는 도시에 대한 내용이었겠지만 왜 산본이 이런 비중을 차지하는가, 생각해보면 일산, 부천, 분당, 평촌 같은 다른 도시들도 함께 엮었더라면 더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싶다. 

유학 시절 서울에 대한 꿈을 자주 꿨다(364)고 하는데서 저자의 근본이라고 해야하나, 정신적 고향은 서울이구나 싶었다. 꿈의 배경이 어디인가에 대해 전부터 생각했던 점인데, 거주지를 옮긴지 10년이 넘었어도 항상 집에 대한 꿈을 꾸면 전에 살던 집이 나온다. 그럴 때마다 내 뿌리는 아직 그곳에 있구나 싶었는데, 저자 역시 산본 출생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유년 시절 자라온 동네나 학창시절을 보낸 곳이 전부 서울이다보니 꿈의 배경이나 자신의 뿌리라 여길만한 곳이 서울일 수 밖에 없겠다 이해된다. 집에 대한 꿈을 꿀때면 항상 같은 공간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더 있다면 이런 생각에 공감하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서울 사람에 대한 불평이 조금 곁들여지긴 했지만, 서울은 매력적이고 심지어 어떤 환상적인 과거의 이미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나홀로 집에>를 보며 90년대의 미국에 대한 아네모이아**를 품던 것처럼 서울에 대한 비슷한 동경과 향수를 가지고 있다. 삐딱한 태도가 있긴 했지만 분명한 애정도 가지고 있단 뜻이다. 그렇지 않은 독자들에게도 워낙 상징적인 도시인만큼 '이토록 서울'이 두루 매력적으로 읽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저자만큼 서울을 충만히 사랑한다면 더할나위 없이 만족스럽겠지만, 굳이 서울러가 아니더라도 흥미롭게 읽어볼만한 서울 찬가였다.  


* 창비블로그 [3분만에 서울 제대로 파악하기]
https://blog.naver.com/changbi_book/224126586837
또는 https://www.youtube.com/watch?v=iPBwkdY7oXg 12분 20초 

** 아네모이아(anemoia)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시절의 분위기와 문화요소 등에 그리움을 느끼는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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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독한 별처럼
이케자와 하루나 지음, 서하나 옮김 / 퍼블리온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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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벚꽃에 향기가 있었던가? 81" 

봄이 되면 찾아오는 프랜차이즈 커피숍의 체리블라섬 메뉴를 볼 때 마다 떠올린다.  벚꽃향이 뭘까,하고. 나의 둔감함에도 불구하고 벚꽃향을 모티브로 한 상품들은 다양하게 나오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이게 벚꽃향이지,하다가 사실 잘 모르겠단 의문을 품곤 했다. '나는 고독한 별처럼'의 내용도 '이런 세상으로 변할지도 몰라'하고 수긍하다가 사실 잘 모르겠다고 머릿속에서 뻗어나가던 상상을 지우는 일의 반복이었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친밀하면서 독특한 소재는 잠깐 어떤 내용인지 훑어보려다 푹 빠져들어 읽게 만든다.  

" 이러한 상황에서도 그 길은 일방통행이었다. 감염된 사람은 타인과의 친화성을 얻었다. 그러면서 점차 세상은 안정을 되찾았고, 사람들은 뇌근균을 받아들였다. 18" 

표지에 있는 푸르스름한 버섯 그림을 보다가 버섯을 고르는 일이 이렇게 낭만적이어도 되는가 싶었다. 누군가와 더욱 깊고 친밀하게 교감하기 위해 단 하나의 버섯을 골라야 한다는 말에 어떤 버섯은 인생에 딱 한 번만 먹을 수 있다는 농담을 떠올렸다. 이 농담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인 것만 같아 웃음이 나왔다. 이 중요한 선택을 사춘기 시절에 해야 한다니 너무 무거웠다. 적어도 성인이 되고 나서야 자신을 알고, 책임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어떤 버섯을 고를지 생각해봐도 망설여지는데 중학생인 나에게 평생의 선택을 맡기다니 가장 소름돋는 부분이었다. 

'어쩌면 지방으로 가득한 우주'에서는 히스테릭한 공감대를 공유했는데 결국 마지막에 남은 것이 스콘을 먹을 때 클로티드 크림과 잼 중에서 뭘 먼저 바르는지에 대한 궁금증 뿐이었다. 처음엔 클로티드 크림과 잼(137)이라고 했는데 나중엔 잼과 클로티드 크림(210)이라고 해서 추정도 어려웠다. 먹보들은 아무래도 이 문제가 가장 중요하니까. 물론 안정감을 위해서 데본식*이 좋다고 생각한다. 2040년 북극의 얼음이 다 녹아서 없고, 호랑이도 멸종되었다(84)는 문장을 읽다 불쑥 너네가 우리나라 호랑이 다 잡았잖아,하는 생각이 끼어든다. 허술한 생각들 사이로 표제작인 '나는 고독한 별처럼'의 빛이 선명하게 들어온다. 

누군가가 태어나면 별이 하나 생기고, 그 사람이 죽으면 별도 같이 지는 세계를 읽으며 아름답지만 달갑지는 않단 생각을 했다. 가끔 누군가와 영원한 이별을 하고 나면 혹은 다시 만나지 않는 오래된 인연을 떠올릴 때면 나와 닿지 않더라도 어디선가 잘 지내고 있을거라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나는 고독한 별처럼'과 같은 세계라면 그 사람의 별이 지고 없다는 사실을 매번 확인하게 될 것 같아 상실을 대체할 길을 찾지 못하는 것이 유감이다. 더는 만날 수 없다는 부재와 공백(264)에 예니가 무너졌듯 평생 남을 외로움이 밤하늘에 항상 있다면 남은 별들도 그리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일본 작가의 SF소설집이라는 소개만 보고 궁금한 마음이 들어 읽어보았는데 우주, 기계, 과학 같은 코드보다 좀 더 사람의 마음에 닿아있는 지점이 있단 느낌이었다. '나'를 생각해보게 만드는 SF소설을 읽어보고 싶은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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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아웃 보이 문지 푸른 문학
정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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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까, 나는 누군가에게 특별한 사람, 누군가의 단 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130" 

전부터 읽어보고 싶었는데 몇 번 기회를 놓쳤다. 아니, 이런 식으로 말할 수는 없다. '포커스아웃 보이'와 싱크가 맞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을 뿐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나니 그 전에 미리 만나지 못했던 시간이 아쉬움에서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어긋난 시간으로 의미가 달라졌다. 결국 와 닿았구나. 

감성적인 내용의 달고 쌉싸름하고 가끔은 목이 메고 또 헛숨을 들이켜는 그런 소설이다. 주인공인 정진은 얼굴 생김이 언제나 흐릿한, 누구에게도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도 제대로 인식되지 않는 '포커스아웃 보이'다. 부모님은 정진의 얼굴이 로딩되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언젠가 로딩이 끝나는 때가 올거라 믿으며 진이의 얼굴을 바라보는 대신 손끝으로 헤아린다. 

" "인생의 계획을 바꾸면 되지. 꿈을 바꾸는 건 불법이 아니야."
"갑자기 생각난 건데 질문 하나만 해도 돼?"
"응."
"솔직하게 얘기해줘."
"응. 누군가와 실시간 대화가 가능한 이 소중한 시간에 거짓말 할 새가 어딨어."
"나 잘생겼어?" 75" 

그런 진이와 난생 처음으로 눈이 마주친 사람은 스스로를 '싱크아웃 걸'이라 말하는 소녀, 유리였다. 세상의 시간과 조금은 어긋난 순간을 살아가는 유리는 진이의 얼굴을 볼 수 있고, 유리의 시간은 진이와 함께 하는 때만큼은 어긋나지 않고 제대로 연결된다. 진이는 이런 두 사람의 만남을 운명처럼 여기고 의미를 부여하지만 유리는 유일한 존재를 절대적으로 여기지 않는다. 

두 사람 사이에서의 미묘한 어긋남은 진이의 마음을 자극하고 방황하게 만들지만, 한편으로는 성장할 수 있도록 해준다. 온통 세상에서 소외된 채 스스로도 자신을 제외시키는 것 말고는 방법을 몰랐던 진이 등수 안에 끼어들어가기도 하고, 관계 속에서 외로움, 질투, 갈망, 두려움 혹은 이름 붙이지 못한 감정들(126)을 느끼며 자신의 얼굴도 마주하게 된다. 

" 지구 위엔 제각기 다른 80억 명의 사람이 있다. 그중엔 언제나 얼굴이 흐릿한 사람도 있고 어떻게 해도 늦기 마련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이 있고 저런 사람도 있고 우리는 늘 그렇게 스쳐 지나다닌다. 잠시 눈이 마주치는 순간도 있겠지만, 각자의 길을 따라 우리는 그렇게 스쳐 지나간다. 130" 

세상에 오직 상대방만이 나를 알아보고, 나의 존재가 상대방에게 특별하리라 믿는 관계가 우리의 삶 속에도 찾아온다. 진과 유리의 만남을 두고 사랑이란 단어를 자주 떠올렸다. 사랑에 빠질 때 '잠시 눈이 마주친 순간'처럼 연결되었다가, '각자의 길을 따라 결국 스쳐 지나'가는 과정처럼 이별을 하게 되지 않던가. 성장이자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같아 읽는 동안 풋풋했다. 

2006년에 찍었다던 단편 영화와 2018년의 장편소설 안에서는 포커스아웃 된, 싱크아웃 된 인물들이 어떻게 그려졌을지 궁금해졌다. 작가는 왜 오랜 시간 동안 이 이야기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어쩌면 매번 다른 모습으로 세상과 대면한(163) 순간들을 기록해왔는지도 모른다. 이들의 뒷 이야기가, 혹은 또 다른 인물들로 그려낼 변주를 기대하게 된다. 

하늘이 온통 파랗고 너무 높아 눈을 크게 뜨고도 시야를 다 채우지 못한 것 같은 날, 거리를 스쳐지나가는 사람마저도 영영 잃어버리는 것 같아 바람이 시린 계절에, 하늘을 투명하게 채워줄 감성적인 이야기를 만나보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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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날 서재에 2025 서재의 달인 표가 달렸다. 

...달력... 편지... 다이어리 ... 나도 받고 싶다.. 궁금하다... 

물어보고 싶은데 괜히 물어봤다가 붙여준 표도 착오라고 떼갈까봐 그냥 가만히 있었는데

궁금은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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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다스리는 민주주의 - 정치 없는 치유, 치유 없는 정치를 넘어서
김찬호 지음 / 김영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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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교양 서적은 항상 책을 앞에 두고 긴장하게 만든다. 책장을 펼쳐봐야 아는 일이지만 짧은 생각으로 담긴 깊이를 재는 것이 벅찰 것이라는 부담이 있다. 다행이도 각 장마다 주제어가 달라지면서 교과 과목이 달라지는 수업을 듣는 듯한 기분으로 '고통을 다스리는 민주주의'를 읽을 수 있었다. 한 권을 통으로 이어낸다는 부담을 덜고 쉬는 시간을 가져가며 읽은 탓에 감상도 매끄럽지 못하지만 쉬운 접근이 필요하다면 이렇게 나눠 읽듯이 다가가도 좋겠다. 

극우가 파생되는 것의 밑바탕에 현대인의 외로움과 소외감이 있다(64)고 짚어냈는데 반면 광장과 집회의 경험은 타인과의 유대, 그 안에서 느낄 수 있는 소속감과 참석만으로도 서로 연결되었다는 감각을 남기는 체험(98)으로 새겨졌다고 보고 있다. 정확히 서로 반대되는 지점을 추구하는 집단으로 대비되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런 대비는 증오와 적개심을 매개로 선동하는 태극기의 광장과 나눔과 연대로 서로를 묶어내는 응원봉의 광장(105)에서도 드러난다. 지난 12.3 이후 나타난 응원봉과 촛불의 연대가 저자에게 큰 인상을 남겼음이 잘 곳곳에 드러나 있지만 한편으로는 겨울밤을 지새우던 키세스와 최애에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마음을 담은 응원봉의 주체가 지워지고 혐오의 대상으로 소비되고 있는 현실이 마음에 걸린다. 

가장 흥미로웠던 주제는 가장 탐탁지 않은 주제 안에 있었는데, 4 정치인의 내용 중 " 다른 분야에 있다가 정계에 들어가 정치인으로 몇 해 활동하고 나면 얼굴이 확 바뀌는 사람들 120" 특히 포악스러운 인상으로 바뀌는 경우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내용이다. 일견 웃음이 나는 얘기이지만 실제로 '저 사람 인상이 왜 좀 바뀐 것 같지?' 하는 생각을 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라 재밌기도 하고, 근거라고는 관상도 과학이다라는 말밖에는 없을 것 같은 주제가 이렇게 보니 관상도 통계라는 주장이 맞는 것 같아 웃기기도 해서 열심히 읽었다. 내면이 외양에 드러나니 좋은 마음으로 늙어가라는 듯한 내용은 '현생의 외모를 전생까지 탓하게 만들어 불교가 제일 밉다'는 말을 남긴 신부님(홍창진 신부님 SBS 3인3색 종교인 대담)의 억울함을 떠올리게 만드는 면이 있다. 

사실 가장 접근이 어려웠던 것은 5 교육의 내용이었다. 이 전의 교육 환경이 옳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요즘의 교육 환경이 그보다 더 낫다고 단언하기도 어려운 세상이다. 학교 안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다른 누구도 아닌 교사에게서 나오고 있다. '교실에서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내고 온전한 만남을 이끌어내(156)'는 것은 교사들이 서로의 잠재력을 북돋고 상호작용을 위한 노력을 하는 것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아이들은 세상의 유해함에 쉽게 노출될 수 있게 된 반면, 이에 대한 시비를 가리도록 훈육하기 위한 방편이나 필요성은 그보다 소극적으로 느리게 제시되고 있다. '두려움 시스템(197)'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존중과 내가 아닌 외부에 대한 경외가 기반된 배움이 기본되기 위한 바탕이 절실해보인다. 

지나치게 온건하고 포용적인 시선이 아닌가 싶은 지점은 교육 뿐 아니라 " 계엄을 찬성하고 탄핵에 반대한 사람들을 모두 적대시해서는 안 된다. 지지하는 정당이 달라도 친구가 될 수 있고 공동체도 이룰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186"는 부분에 이르러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교육에서 약간의 생각이 다른 부분은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존중할 수 있었는데, 계엄과 탄핵과 관련된 내용이야말로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 (179)'는 기조로 선을 그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172)'지만 한 계엄을 해결하기 위해서 온 국민이 필요했던 춥고 지난했던 시간들을 떠올려보자, 2016년, 2024년 왜 자꾸만 거리로 나와야 하는 사람들이 매번 힘겨운 싸움을 해야만 하는가. 단순 지지하는 정당이 다른 문제와 계엄과 탄핵은 구분되었으면 했다. 

" 행복에만 가치를 두는 사회에서는 고통을 회피하기에 급급하고, 고통의 의미를 무시하게 된다. 고통을 통해 성장하고 다른 사람들과 더욱 깊게 연결될 수 있는 통로가 좁아진다. 고통은 각성, 창조, 저항의 원천이다. 예술, 철학, 혁명, 연대는 고통에서는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부정적 경험이 제거된 세계에서는 현실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지 않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탐색도 이뤄지지 않는다. 208" 

고통의 부재가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여겨졌다. 젊은 세대는 너무나 많은 압박과 좌절을 통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지만 사실 고통에 대한 예방, 학습이 없이 성장해온 탓에 자신이 받게 되는 고통의 벽을 넘지 못하고 안으로 파고들어 단절을 선택하거나 고통의 원인을 외부로 돌려 타인과 세상에 불만을 표출하는 사건이 생겨나고 있다. 미래 세대에게 태어나 겪게 될 고통, 경쟁과 결핍 등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사유가 저출생의 결과로 나타나기도 한다. '낳음당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마음의 병(209)마저 취약점이 될까 드러내지 못하는 분위기에서 고통에 대한 부정적 시각과 회피는 마땅히 겪어가며 극복해나갈 성숙의 과정마저 제거해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 정치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 가지를 말할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고통을 줄이는 것이 아닐까. 14" 하는 문장을 떠올린다. 인간사의 필수불가결한 고통을 의미있는 경험과 성장으로 이어 사회 안에서 순기능하도록 다스리는 것이 민주주의의 방향성이라 본 것이 아닐까. 그동안 우리가 경험한 정치가 그 궁극적 목표에 닿으려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민주주의가 자리잡기 위해 '성인을 향해 정진(19)'하려한 시대의 흐름은 분명히 존재해왔다. 이 과정을 지켜본 저자의 솔직한, 그러나 세상을 향한 온기를 잃지 않은 시선이 담긴 '고통을 다스리는 민주주의'를 통해 지난 10여년 간의 세상을 정리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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