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다스리는 민주주의 - 정치 없는 치유, 치유 없는 정치를 넘어서
김찬호 지음 / 김영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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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교양 서적은 항상 책을 앞에 두고 긴장하게 만든다. 책장을 펼쳐봐야 아는 일이지만 짧은 생각으로 담긴 깊이를 재는 것이 벅찰 것이라는 부담이 있다. 다행이도 각 장마다 주제어가 달라지면서 교과 과목이 달라지는 수업을 듣는 듯한 기분으로 '고통을 다스리는 민주주의'를 읽을 수 있었다. 한 권을 통으로 이어낸다는 부담을 덜고 쉬는 시간을 가져가며 읽은 탓에 감상도 매끄럽지 못하지만 쉬운 접근이 필요하다면 이렇게 나눠 읽듯이 다가가도 좋겠다. 

극우가 파생되는 것의 밑바탕에 현대인의 외로움과 소외감이 있다(64)고 짚어냈는데 반면 광장과 집회의 경험은 타인과의 유대, 그 안에서 느낄 수 있는 소속감과 참석만으로도 서로 연결되었다는 감각을 남기는 체험(98)으로 새겨졌다고 보고 있다. 정확히 서로 반대되는 지점을 추구하는 집단으로 대비되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런 대비는 증오와 적개심을 매개로 선동하는 태극기의 광장과 나눔과 연대로 서로를 묶어내는 응원봉의 광장(105)에서도 드러난다. 지난 12.3 이후 나타난 응원봉과 촛불의 연대가 저자에게 큰 인상을 남겼음이 잘 곳곳에 드러나 있지만 한편으로는 겨울밤을 지새우던 키세스와 최애에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마음을 담은 응원봉의 주체가 지워지고 혐오의 대상으로 소비되고 있는 현실이 마음에 걸린다. 

가장 흥미로웠던 주제는 가장 탐탁지 않은 주제 안에 있었는데, 4 정치인의 내용 중 " 다른 분야에 있다가 정계에 들어가 정치인으로 몇 해 활동하고 나면 얼굴이 확 바뀌는 사람들 120" 특히 포악스러운 인상으로 바뀌는 경우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내용이다. 일견 웃음이 나는 얘기이지만 실제로 '저 사람 인상이 왜 좀 바뀐 것 같지?' 하는 생각을 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라 재밌기도 하고, 근거라고는 관상도 과학이다라는 말밖에는 없을 것 같은 주제가 이렇게 보니 관상도 통계라는 주장이 맞는 것 같아 웃기기도 해서 열심히 읽었다. 내면이 외양에 드러나니 좋은 마음으로 늙어가라는 듯한 내용은 '현생의 외모를 전생까지 탓하게 만들어 불교가 제일 밉다'는 말을 남긴 신부님(홍창진 신부님 SBS 3인3색 종교인 대담)의 억울함을 떠올리게 만드는 면이 있다. 

사실 가장 접근이 어려웠던 것은 5 교육의 내용이었다. 이 전의 교육 환경이 옳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요즘의 교육 환경이 그보다 더 낫다고 단언하기도 어려운 세상이다. 학교 안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다른 누구도 아닌 교사에게서 나오고 있다. '교실에서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내고 온전한 만남을 이끌어내(156)'는 것은 교사들이 서로의 잠재력을 북돋고 상호작용을 위한 노력을 하는 것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아이들은 세상의 유해함에 쉽게 노출될 수 있게 된 반면, 이에 대한 시비를 가리도록 훈육하기 위한 방편이나 필요성은 그보다 소극적으로 느리게 제시되고 있다. '두려움 시스템(197)'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존중과 내가 아닌 외부에 대한 경외가 기반된 배움이 기본되기 위한 바탕이 절실해보인다. 

지나치게 온건하고 포용적인 시선이 아닌가 싶은 지점은 교육 뿐 아니라 " 계엄을 찬성하고 탄핵에 반대한 사람들을 모두 적대시해서는 안 된다. 지지하는 정당이 달라도 친구가 될 수 있고 공동체도 이룰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186"는 부분에 이르러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교육에서 약간의 생각이 다른 부분은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존중할 수 있었는데, 계엄과 탄핵과 관련된 내용이야말로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 (179)'는 기조로 선을 그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172)'지만 한 계엄을 해결하기 위해서 온 국민이 필요했던 춥고 지난했던 시간들을 떠올려보자, 2016년, 2024년 왜 자꾸만 거리로 나와야 하는 사람들이 매번 힘겨운 싸움을 해야만 하는가. 단순 지지하는 정당이 다른 문제와 계엄과 탄핵은 구분되었으면 했다. 

" 행복에만 가치를 두는 사회에서는 고통을 회피하기에 급급하고, 고통의 의미를 무시하게 된다. 고통을 통해 성장하고 다른 사람들과 더욱 깊게 연결될 수 있는 통로가 좁아진다. 고통은 각성, 창조, 저항의 원천이다. 예술, 철학, 혁명, 연대는 고통에서는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부정적 경험이 제거된 세계에서는 현실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지 않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탐색도 이뤄지지 않는다. 208" 

고통의 부재가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여겨졌다. 젊은 세대는 너무나 많은 압박과 좌절을 통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지만 사실 고통에 대한 예방, 학습이 없이 성장해온 탓에 자신이 받게 되는 고통의 벽을 넘지 못하고 안으로 파고들어 단절을 선택하거나 고통의 원인을 외부로 돌려 타인과 세상에 불만을 표출하는 사건이 생겨나고 있다. 미래 세대에게 태어나 겪게 될 고통, 경쟁과 결핍 등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사유가 저출생의 결과로 나타나기도 한다. '낳음당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마음의 병(209)마저 취약점이 될까 드러내지 못하는 분위기에서 고통에 대한 부정적 시각과 회피는 마땅히 겪어가며 극복해나갈 성숙의 과정마저 제거해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 정치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 가지를 말할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고통을 줄이는 것이 아닐까. 14" 하는 문장을 떠올린다. 인간사의 필수불가결한 고통을 의미있는 경험과 성장으로 이어 사회 안에서 순기능하도록 다스리는 것이 민주주의의 방향성이라 본 것이 아닐까. 그동안 우리가 경험한 정치가 그 궁극적 목표에 닿으려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민주주의가 자리잡기 위해 '성인을 향해 정진(19)'하려한 시대의 흐름은 분명히 존재해왔다. 이 과정을 지켜본 저자의 솔직한, 그러나 세상을 향한 온기를 잃지 않은 시선이 담긴 '고통을 다스리는 민주주의'를 통해 지난 10여년 간의 세상을 정리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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