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아웃 보이 문지 푸른 문학
정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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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까, 나는 누군가에게 특별한 사람, 누군가의 단 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130" 

전부터 읽어보고 싶었는데 몇 번 기회를 놓쳤다. 아니, 이런 식으로 말할 수는 없다. '포커스아웃 보이'와 싱크가 맞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을 뿐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나니 그 전에 미리 만나지 못했던 시간이 아쉬움에서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어긋난 시간으로 의미가 달라졌다. 결국 와 닿았구나. 

감성적인 내용의 달고 쌉싸름하고 가끔은 목이 메고 또 헛숨을 들이켜는 그런 소설이다. 주인공인 정진은 얼굴 생김이 언제나 흐릿한, 누구에게도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도 제대로 인식되지 않는 '포커스아웃 보이'다. 부모님은 정진의 얼굴이 로딩되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언젠가 로딩이 끝나는 때가 올거라 믿으며 진이의 얼굴을 바라보는 대신 손끝으로 헤아린다. 

" "인생의 계획을 바꾸면 되지. 꿈을 바꾸는 건 불법이 아니야."
"갑자기 생각난 건데 질문 하나만 해도 돼?"
"응."
"솔직하게 얘기해줘."
"응. 누군가와 실시간 대화가 가능한 이 소중한 시간에 거짓말 할 새가 어딨어."
"나 잘생겼어?" 75" 

그런 진이와 난생 처음으로 눈이 마주친 사람은 스스로를 '싱크아웃 걸'이라 말하는 소녀, 유리였다. 세상의 시간과 조금은 어긋난 순간을 살아가는 유리는 진이의 얼굴을 볼 수 있고, 유리의 시간은 진이와 함께 하는 때만큼은 어긋나지 않고 제대로 연결된다. 진이는 이런 두 사람의 만남을 운명처럼 여기고 의미를 부여하지만 유리는 유일한 존재를 절대적으로 여기지 않는다. 

두 사람 사이에서의 미묘한 어긋남은 진이의 마음을 자극하고 방황하게 만들지만, 한편으로는 성장할 수 있도록 해준다. 온통 세상에서 소외된 채 스스로도 자신을 제외시키는 것 말고는 방법을 몰랐던 진이 등수 안에 끼어들어가기도 하고, 관계 속에서 외로움, 질투, 갈망, 두려움 혹은 이름 붙이지 못한 감정들(126)을 느끼며 자신의 얼굴도 마주하게 된다. 

" 지구 위엔 제각기 다른 80억 명의 사람이 있다. 그중엔 언제나 얼굴이 흐릿한 사람도 있고 어떻게 해도 늦기 마련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이 있고 저런 사람도 있고 우리는 늘 그렇게 스쳐 지나다닌다. 잠시 눈이 마주치는 순간도 있겠지만, 각자의 길을 따라 우리는 그렇게 스쳐 지나간다. 130" 

세상에 오직 상대방만이 나를 알아보고, 나의 존재가 상대방에게 특별하리라 믿는 관계가 우리의 삶 속에도 찾아온다. 진과 유리의 만남을 두고 사랑이란 단어를 자주 떠올렸다. 사랑에 빠질 때 '잠시 눈이 마주친 순간'처럼 연결되었다가, '각자의 길을 따라 결국 스쳐 지나'가는 과정처럼 이별을 하게 되지 않던가. 성장이자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같아 읽는 동안 풋풋했다. 

2006년에 찍었다던 단편 영화와 2018년의 장편소설 안에서는 포커스아웃 된, 싱크아웃 된 인물들이 어떻게 그려졌을지 궁금해졌다. 작가는 왜 오랜 시간 동안 이 이야기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어쩌면 매번 다른 모습으로 세상과 대면한(163) 순간들을 기록해왔는지도 모른다. 이들의 뒷 이야기가, 혹은 또 다른 인물들로 그려낼 변주를 기대하게 된다. 

하늘이 온통 파랗고 너무 높아 눈을 크게 뜨고도 시야를 다 채우지 못한 것 같은 날, 거리를 스쳐지나가는 사람마저도 영영 잃어버리는 것 같아 바람이 시린 계절에, 하늘을 투명하게 채워줄 감성적인 이야기를 만나보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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