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레벨에 잠이 오니?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94
이지은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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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로맨, 너 레이싱 레벨 몇이야?" 198" 

 게임을 해본 적은 별로 없다. 솔직하자면 철봉이의 게임 용어보다 할머니의 고스돕 용어가 더 쉽다. 아정이라는 줄임말에서 아이디 대신 생각이 잠시 정지했다. 아정이 뭐야, 게임하는데 스킨은 왜 필요하지? 새로운 세계는 마치 다른 나라와 같아서 언어부터 다르게 느껴졌다.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닌데 그 안에 자연스럽게 섞여들지도 못했다. 언뜻 인터넷에서 보았던 단어들이 이게 다 게임에서 쓰는 말이었다고 싶게 튀어나왔다.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구나 새삼스러웠다. 그 안에 어떤 매력이 있는지 솟아나는 궁금함을 품고 '그 레벨에 잠이 오니?'를 손에 들고나니 이게 어른의 입장인가 싶었다. 

 게임 중독에서 벗어나 더 보람되는 활동을 하고 의미있는 관계를 맺자는 다소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 않을까 예상해봤는데, '렐크 게임 중독 학생을 위한 위플러스 캠프'는 뭔가 수상했다. 교훈은 모르겠고 스릴, 쇼크, 서스펜스가 반겨준다. 캠프는 게임 중독에서 벗어날만한 규정이 아니라 게임에서 해골, 천사, 무사같은 이름을 따오기도 하고 오히려 보상으로 컴퓨터를 할 수 있다는 조건(29)을 내밀기도 했다. 거기다 미션의 보상으로 코코콜라라는 음료를 사서 마실 수 있는 이용권을 주면서 미심쩍음이 점점 더해져만 간다. 이 캠프의 목적은 뭘까, 각자의 이유로 벗어날 수 없는 캠프에 갇혀버린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진실을 알기 위해선 아이들과 함께 캠프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각자 이름 대신 닉네임을 정하는 동안 철봉이 차례에서 갑자기 맥이 풀리는 듯 섭섭했다. 철봉이는 왜 철봉이일 수 밖에 없는가. 심지어 초면이나 다름없는 애들이 '너는 특징이 없다(25)'고 말하는 순간 같이 상처 받았다. 사실 나도 학교 다닐 적에 딱히 별명이 없었다. 가끔 이름 대신, 이름보다 더 자주 별명으로 불리는 친구들이 부러웠을 정도로 딱히 별명이랄게 없이 늘 이름으로 불려왔는데, 그걸 성인이 되고 나서 어느날 어렸을 때 별명이 뭐였는지 대화하다가 깨달았다. 별명이 없었다는 얘기를 했더니 그 자리에서 모인 사람들이 별명을 지어줄까 하다가 결국 딱히 어떤 별명을 붙여야할지 모르겠단 결론을 냈었다. 그때 느꼈던 가벼운 충격이 '나는 존재감이 없다.'는 철봉이의 말과 맞물려 되살아났다. 철봉아, 힘내. 

 없는 존재감을 딛고 전학 간 학교에서 무리수를 던진 철봉이의 사정도, 학대나 다름없이 방치된 알거지의 환경도, 관리와 보호라는 이름으로 압박을 받고 있는 요셉슈타인도, 형과 비교 당하며 엄마에게 잉여라는 말을 듣던 엄크도. 캠프에 온 아이들이 저마다의 사정이 있어 마음이 쓰이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특히 '카더라'의 이야기는 속을 할퀴는 것만 같았다. 이미 한번 그 앞에 섰는데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세계의 문을 닫아야 하는 아이라니, 근육이 다칠까봐 자세가 나빠질까봐(100) 무용을 위해 해본 적 없던 게임으로 도피한 카더라에게만은 차라리 게임이 위로가 되었으면 했다.  

 게임에 깊이 빠지고, 스스로를 돌보지 않고,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킨 전적이 있는 아이들이지만 하나씩 아이들의 세계를 들여다보니 다른 것들이 보였다. 당연히 게임에 중독된 생활은 좋지 않고, 그 안의 폭력성과 선정성에 아이들이 무방비하게 노출되는 것은 문제적이다. '그 레벨에 잠이 오니?'에서도 현실보다는 가볍지만 패드립이라고 하는 혐오표현/욕설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게임을 왜 좋아할까, 그 안에서 어떤 것을 발견했기에 몰입하는 것일까, 그게 정말 어른들의 선입견처럼 부정적인 면이 크기만 할까 하는 방향으로도 생각이 뻗어나갔다. 정말 게임을 즐겨하는 청소년에게 '그 레벨에 잠이 오니?'는 어떻게 보일까 공감되는 부분이 있을까 궁금해졌다. 

 각자의 이야기와 캠프의 숨겨진 비밀같이 확장된 소재들의 마무리가 조금은 급히 터져나온 탄산의 거품처럼 확 쏟아졌다 사그라들어버린 감이 없지는 않지만, 그 폭발을 위해 열심히 캔을 흔들던 전개 과정은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순간을 앞둔 것처럼 흥미롭고 조마조마한 면이 있었다. 어쩌면 결국은 이렇게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끝맺음일지 모른다. 14번 수련원의 슬로 섬 파티원들이 그 이후의 성장이 궁금해졌다. 7년동안 잠들어있었던 이야기가 이렇게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것처럼 언젠가 이 아이들이 어떤 시간을 거쳐 어른이 되었는지 다시 만나볼 수 있다면 좋겠다. 그때도 게임을 좋아하는 어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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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의 기분 - 한문학자가 빚어낸 한 글자 마음사전
최다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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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장에 꽂힌 가지각색의 책들과, 그 책을 쓴 작가 한 명 한 명은 모두 나름의 얼룩을 말의 무늬인 문장으로 새겨 책을 지었다고 할 수 있다. 서로 모양은 달라도 저마다 얼룩진 삶을 애써 꾸려가고 있음을, 우리는 문학 읽기를 통해 알게 된다. 개인의 얼룩이었던 문학은 홀로 웅크린 타인의 삶에 위안을 건네며 반경을 넓힌다. 작가가 겪어낸 슬픔과 고민의 흔적이 아름다운 무늬의 문장으로 기록됨으로써, 비슷한 결의 고통을 겪고 있는 누군가에게 닿아 응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개인의 무늬는 문장에서 문학으로, 나아가 문화의 형성으로까지 번질 가능성을 품고 있다. 58"

 얼마 전 생각나지 않는 단어를 기억해내기 위해 몇 시간 동안 애를 먹었던 일이 있다. 사실 원하는 단어나 책의 제목 같은 명칭들이 갑자기 기억이 나지 않는 일은 몇년 전부터 종종 있어왔는데 이번에는 유독 기억의 끄트머리에서 생각날 듯 명확히 떠오르지 않는 단어에 약이 올라 쉽게 포기가 되지 않았다. 네글자로 된 단어와 비슷한 상황을 검색창에 몇번이고 찾아보기도 했는데 결국 하루가 지나고 나서야 알아냈다. 다시 기억난 단어는 이게 왜 이렇게 생각이 안났을까 싶게 자연스러웠다. 

 왜 굳이 기억나지 않는 단어를, 다른 비슷한 단어들로 대신하지 않고 생각해내려 했냐면 왠지 모를 오기도 있었지만 글을 쓸 때 가급적이면 외국어-특히 영어-로 바꿔 쓰지 않고 반복적이지 않게 정리된 흐름으로 쓰려고 하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한 문장을 이렇게 길게 늘이고 있어 그 노력이 온전히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의식이라도 없으면 더 엉망일 것이라 웬만하면 지양하고 있다. 어쨌든 단어의 의미와 기억에 대해 의식하고 있는 차에 만난 '한자의 기분'은 같은 결을 공유하는 사람과 닿은 것 같았다. "기분을 말해줄 정확한 언어를 찾는 것만으로 덜 외로울 수 있다. 10" 는 첫 시작처럼 '정확한 언어를 찾는 것'에서 공감은 시작되었다. 

 '한자의 기분'을 읽다보니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는 싯구로 널리 알려진 김춘수의 [꽃]이 떠올랐다. 한자 단 한글자 안에 담긴 의미를 하나씩 풀어 그 이름안에 담긴 뜻을 알아봐주는 저자의 글에는 다정한 애착이 묻어난다. 학교를 다닐 적 쪽지시험 때문에 무작정 달달 외우기만 했던 한자 안에 담긴 뜻을 찬찬히 읽어내려 가다보니 새삼스러웠다. 이렇게 한자를 배웠더라면 더 흥미를 가지게 됐을까 싶은 마음과 정말 아무런 의문이 없이 그냥 하라는 대로만 했구나 싶은 생각이 교차했다. 

 저자가 풀어준 것 중 가장 마음에 드는 한자 하나는 '좌(坐) 22'였다. 두 사람이 땅 위에 앉아있다는 풀이를 가진 한자인데, 지난 봄 친구와 여행을 갔을 때 주춧돌만 남은 옛 성터를 구경갔다가 맨 땅이나 다름없는 그 위에 드러누웠던 적이 있다. 그때 친구는 재촉하거나 싫은 내색 하나 없이 '너 덕분에 이런데 누워도 본다'며 옆에 누워 사위는 하늘을 함께 바라봐주었다. " 나랑 같이 앉아 있어준 그 사람을 조금 더 좋아하게 되었다. 22"는 문장으로 끝나는 장을 읽으며 아마 이런 기분을 공유했으리라 짐작해보았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를 만나서, 가누기 어려울만큼의 기쁨을 느낀다(遇知音 不勝歡). 182'는 문구가 새겨진 문진에도 이런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황(黃) 38' 땅의 색, 모래와 사막을 떠올리다 한 청나라 시인의 싯구에서 언젠가 다녀온 사막이 그 배경임을 알게 된 일이 적혀있었다. 언젠가 내가 읽고 보면서 머릿속으로 그려만 보았던 것들을 우연히 마주하게 되는 때가 있다. 환상이나 다름없던 것이 하나씩 현실로 재인식되는 벅차고 놀라운 순간을 경험하게 될 때가 있는데 그 몇 없을 순간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 새로운 뭔가를 읽고 보고 알아가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아는만큼 더 보이고 더 즐거울 수 있는 순간이 있으니까. 그 순간에 대한 이야기가 '황'에 있었다. 

 " 나이가 이만큼 든 게 신기하다. 아득한 과거를 모두 지금의 내 안에 품은 채로 시간이 또 흘러가는 것. 나는 점점 알록달록한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 색의 혼합은 결국 검정으로 수렴하겠지만, 살아 있는 동안만큼은 더욱 다채로운 색깔의 인간이 되고 싶다. 87" 

 '로(老) 87'의 시작이다. 색의 혼합이 결국 검정으로 수렴한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나이를 더 먹을수록 색 대신 빛으로 혼합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마찬가지로 " 또다시 생활을 집어삼키려는 기분 앞에서, 기분의 해명이라도 세세히 들어보자는 심정으로 매일 한자 한 글자씩을 골라 일기를 써보기로 247"마음 먹었다는 저자에게도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을테지만 색이 아니라 빛의 혼합을 추구하면서 나이들어가자고 말해보고 싶어진다. 

 자꾸만 기억에서 하나씩 사라졌다 나타나는 단어들을 생각해본다. 당연히 쌓여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들을 청소하기 시작하는 머리에서 어쩔 수 없는 세월의 흐름을 느낀다. 어쩌면 내가 기억하기를 소홀히 했을수도 있고. '한자의 기분' 글자 안에 담긴 것, 또 담을 수 있는 것들의 의미를 헤아리며 천천히 사탕 한 알을 녹여내듯 읽어나가는 동안 주위로 눈 대신 글자가 내려와 쌓이는 것 같았다. 연말 동안 글자가 쌓이는 조용하고 깊이있는 시간을 경험해보고 싶은 사람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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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엔 모두 남남이 되기로 해
오영은 지음 / 김영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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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글이라 읽을 때마다 어느 순간 사르르 풀어진 얼굴 근육에 다시 힘을 주게 된다. 다른 사람이 이야기를 할 때 끼어들면 예의가 아니라고 하지만 '오후엔 모두 남남이 되기로 해'를 읽는 동안은 나도 모르게 끼어들어서 공감하고, 혹시 이런 상황이나 이런 느낌은 아니었는지 물어보고 싶어졌다. 얼굴을 마주하고 한 대화가 아니라 책을 읽는 시간이라 그나마 예의를 차리고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마주하고 나누는 대화였다면 이렇게까지 솔직하고 소소할 수 없었겠지만 함께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었다면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하는 아쉬움을 품었다. 

자연스럽게 튀어나온 [섹스 앤 더 시티(38)]의 에피소드를 보며 아, 요즘은 캐리를 모를텐데 하고 염려했다. 급식이 아닌 도시락(107)을 말하는 온도에서 아무렴 어때 그럼 나같은 사람이 읽으면 되는 걸 하고 마음을 바꿨다. 자연스럽게 퍼져나가던 오지랖을 갈무리하고 아무도 묻지 않는 나의 이야기를 하나씩 덧붙이며 책을 읽는 동안 즐거웠다. 여유롭게 잘 그리는 허세(18)가 나에게도 통했는지 문득 만나게 되는 자연스럽고 편안해보이는 그림들도 마음에 들었다. 읽다 얼마나 몰입했는지 수영장 그림(186)에서는 나도 모르게 이런 내밀한 공간을 그려도 되는걸까 놀라기도 했다.   

외모에 대한 사적인 생각(118)을 읽다보니 요즘 보고 있는 흑백요리사의 전 시즌을 보고 남긴 글이구나 싶었다. 벌써 새로운 시즌을 보면서 지난 시즌의 글을 읽고 있자니 그 사이에 벌어진 시간이 확연히 느껴졌다. 이번 시즌도 보고 있으시려나, 그럼 이번에도 잘 관리한 준수한 외모의 셰프 대신 우직한 인상의 셰프를 우승 후보로 꼽으시려나 궁금해졌다. 하나 고백하자면 외모와 실력에 대한 글을 읽으며 저자와 반대로 생각했다. 부지런하고 열정적인 사람들은 대개 자기 자신도 잘 관리한다고. 게으르고 나태한 사람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생각이라 한 사람 몫의 근거를 더한다. 

글을 쓰는 지인이 있어 작년부터 올 초까지는 지인의 에세이를 기다리지 않는 척 기다리고 있었다. 책을 하나 낸다는 것이 갈수록 부담인 일일 것이라 기다리던 책은 언젠가의 일로 접어두게 되었지만, '오후엔 모두 남남이 되기로 해'를 읽으며 기다리던 마음이 조금은 채워진 기분이었다. 일기든, SNS든 어떤 기록도 잘 하지 않아 비워둔 일상을 나도 이렇게 기록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책을 읽으면서 누군가의 사소함이 다른이와 나눌 수 있는 편안함과 공감이 될 수 있다는 매력에 푹 빠진 탓이다. 

어떤 사람일까, 하는 궁금함이 일어난다. 누군가를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인간적인 호감과 함께 더 많이 알면 오히려 거리가 생길 것 같아 덮어두고 지금의 좋은 인상만 남기고 싶단 망설임이 있다. 아마 그래서 '다정한 무관심이 필요한 순간'이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따뜻하고 친근한 호감을 품고도 어느 정도는 상대방과 거리를 두어야 함을 알아버린 차가운 도시의 어른들이라서, '오후엔 모두 남남이 되기로 해'하는 말을 앞에 두고도 당신과 나 사이에 침묵조차 달가운 거리를 음미한다. 어느 날 또 이렇게 반갑게 만나 밀린 이야기를 나누자고 다음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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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말로 사랑할 시간 - 분열의 시대에 도착한 새 교황, 레오 14세
크리스토퍼 화이트 지음, 방종우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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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되고 하니, 나만의 시상식 후보들을 꼽을 때가 되었다. 친구와 만난 자리에서 올해의 영화 중 추천해줄만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최근 개봉한 작품들 사이에 비교적 연초에 보았던 '콘클라베'를 끼워넣었다. 영화에 대한 관심과 함께 실제로 이 의식이 이루어지게 되면서 현실과 영화 사이의 간극에 대한 증언에도 불구하고 꽤나 깊은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특유의 엄숙하고 아름다운 영상도 괜찮았고. 비종교인에게도 이례적으로 종교 안의 일에 큰 관심을 갖게 된 해였기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사랑할 시간'에 그 관심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다른 추천 영화는 사람과 고기, 국보, 여행과 나날) 

'지금이야말로 사랑할 시간'은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과 그 뒤를 이은 레오 14세에 대해 설명하며 분열의 시대에 교회가 어떤 문제들을 끌어안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하는지 알리고 있다. 가톨릭의 영향이 미치는 모든 곳이 전세계와 다름 없기 때문에 단순히 종교의 문제로 치부될 것은 아니지만 비종교인의 입장에서는 사실 그리 큰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 건너다 보듯 하는 거리감이 있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더 이해하게 되는 부분도 있고 이 역시 사람의 일이기 때문에 흥미와 재미를 느끼게 되는 요소들도 있었다. 예를들면 '콘클라베'에 대한 설명을 읽으며 빠른 결정을 유도하기 위해 빵과 물 그리고 와인만을 제공했다(78)는 내용에서 그 와중에 와인을 챙긴 것이 양인들 답구나 싶어 재밌었다. 빨리빨리의 민족에게 1006일을 넘어서는 미결 상황이 생겼다면-생길리가 없겠지만- 밥과 물 그리고 간장만이 제공됐을 것이다. 

흥미를 느낀 부분은 동성애와 이혼, 여성의 사제 서품에 관한 변화가 아직도 진행중이라는 보수적인 면면이었다. 이 더딘 변화에 과감한 행보를 보인 것이 "제가 감히 어떻게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Who am I to judge?)21" 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대답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리는 변하지 않고 다만 더 열린 태도로 환영할 것(198)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는 것은 아이러니했다. 이 문제들에 대해서 외부인의 시선으로도 정해진 미래처럼 보이는데 특히 LGBTQ과 관련된 입장이나 여성의 사제 서품 허용은 투표권 같은 문제처럼 결국은 풀려나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세상의 절반을 구성하는 신도를 일부라도 잃을 가능성에 대해 고려해야 하기 때문일이다. 

마찬가지로 '교회와 사회가 변했고 과거처럼 문화를 통해 신앙이 전승되지 않으므로, 오늘날의 사회에 맞는 교회를 통해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는 새로운 기회와 방식을 제공해야 한다고(53)' 이 지점에서 현대 종교들이 가지고 있는 위기를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와 비슷한 어쩌면 이보다 더 심각한 절벽 앞에 불교가 놓여 있다. 절을 찾아야하는 거리적 부담, 가족의 핏줄로 이어지지도, 사회 공동체 안에서 어리고 새로운 신자를 얻기 위한 장치도 부족한 이 종교는 과거 세대의 믿음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의 틀을 깨고 근래의 '힙한 불교'에 대한 여유롭고 파격적인 마케팅이 젊은 세대에게 소비되기 위한 장치로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이게 불교가 선택한 '새로운 기회와 방식'으로 보인다. 비단 이것이 불교만의 위기가 아니라면 지금 시대에 있어 종교가 과거에 비해 어떤 의미와 영향력을 가질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새 교황 레오 14세에 대한 이야기에 '미국'이라는 키워드가 가장 크게 들어가 있는데 그 키워드의 강렬함을 지우려고 시도한 모든 사례들이 오히려 더 진하고 선명하게 크기를 키우는 듯 했다. 영어를 사용할 것인가(144) 같은 사사로운 것에 의미를 두는 것조차 만약 한국인 등 오히려 다른 출신이었다면 그런 의미에서의 관심을 두는 일은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미국이 끼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위협으로 느끼고 있는 지점이 있기 때문에 더 주의깊게 바라본 것이 아닐까. 이쪽의 입장에서 본다면 폴란드, 독일, 아르헨티나로 이어지는 비이탈리아인(135) 교황이나 이탈리아, 미국 출신의 교황 모두 그쪽 판 위에서의 일로 느껴지는 면이 있다.  

'지금이야말로 사랑할 시간'을 통해 가톨릭 세계를 살짝 엿볼 수 있었다. 전혀 모르던 세계에 대한 접근이기 때문에 깊이 있는 이해나 공감은 어려웠지만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소설과 영화로 '콘클라베'를 접했던 것이 인상적이었다면 '지금이야말로 사랑할 시간'까지 이어지는 연결이 의미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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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가의 밤
조수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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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날개 안 쪽에 적힌 작가의 이름과 소개를 보다 프리다이버라는 말과 수경이란 이름이 잘 어울린단 생각을 무심결에 했다. 그 이름에 대한 생각이 이어지는 책 안에서도 계속될지는 몰랐다. 민지라는 이름이 민저라고 잘못 올라간 탓에, 모든 것이 그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의 조용한 죽음을 읽다 다시 그럼 수경이란 이름 때문에 작가는 프리다이버가 된 것일까 생각했다. 그리고 프리다이버로 꼬리를 문 생각은 다시 프리다이버 선수로 그려지는 아빠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자신이 가진 것을 담아내고 있구나 싶었다. 

이런 류의 슬픔에는 무뎌졌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너무 슬퍼서 몇번이나 책을 덮었다. 예전이라면 이렇게까지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을텐데 나이를 먹을수록 눈물이 많아진다더니, 속으로 핑계를 대보았다. 평이하도록 담담한데, 온통 낯선 이별들이 제 이름을 말할 때면 코끝이 아리게 찡해졌다. '형우야 미안해'하는 사과가, '왜'를 묻던 한탄이, 혼자 바다에 앉은 사람을 바라보는 눈길이, 압력을 견디기 위해 참는 숨이 각각의 상처와 고통이었다. 

" 어떤 날은 포항에서 하루, 어떤 날은 울진에서 반나절, 어떤 날은 강원도까지 올라가 며칠 머무는 식으로 멀리서 바다를 바라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죽고 싶은가, 살고 싶은가. 52" 

머물 수 있는 곳이 없어서, 피해야만 하는 곳이 있어서 형우는 길 위에서 이리저리 옮겨다닌다. 트럭커라는 직업을 봤을때, 오래 전 한 트럭커 부부의 생활을 본 것이 떠올랐다. 미국에서 장거리 운송을 하는 부부의 이야기였는데, 그 영상을 보고 언젠가 더이상 한국에 머물 끈이 없어지고나면 미국에 가서 장거리 화물 운송을 해보고 싶단 생각을 했다. 머물러야만 하는 이유가 없어지면 길 위에 서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이유가 뭘까, 그런 삶은 도망치는 것일까 찾아 헤매이는 것일까 궁금해졌다. 

여름이 끈질기고 길게 지나가고 나면 '물방울(119)'부터 낯선 이야기로 들어가는 전환이 일어난다. 마치 새로운 세계로 들어간 듯한 구와의 만남은 천진하면서 새롭다. 깊은 물 속에서는 사방이 다 똑같이 느껴져서 영영 길을 잃어버리게 된다(29)는 말이 다시 들려오는 듯 했다. 이 기묘한 만남을 따라가다보면 이곳이 어디인지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인지 왜 여기에 있는지 감각을 잃어버린 채 기억 속에 갇혀있게 되는 것은 아닐까, 불안이 깔린 채 일구와 이구의 시간으로 따라간다. 

삼구(형우)의 여정은 결말이 정해진 불안과 불편 위에서도 파핑캔디의 조각처럼 터져나오는 생의 순간들을 되새겨준다. 잊고 있던 어느 날의 기억들이 돌아올 때마다 다시는 볼 수 없는 순간들을 정성껏 들여다보던 삼구의 마음을 헤아리다 부러워했다. 갇히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오히려 갇혀있던 기억의 해방 앞으로 삼구를 데려다 놓는다. 기어코 열려버린 상자* 안에서 나온 것은 고통과 상처였다. 불안의 정체를 확인하게 된 순간, 십년동안 멈춰있던 형우의 시간과 가족의 공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형우의 상자 가장 밑바닥에 남은 것은 회복이었다. 

이 과정을 쫓으며 '말라가의 밤'은 겨울과도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언뜻 여름밤을 떠올리는 표지와 따뜻한 계절일 먼 이국의 지명인 말라가를 더듬어보다 형우가 39가 되어 만나게 되는 숫자들을 통해 스크루지의 크리스마스 이브 밤을 떠올렸다. 스크루지에게 인간성의 회복이 필요했다면 형우에겐 존재의 회복이 필요했다. 형우를 부수고 고립시키며 사라져버린 가족들로부터,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생의 압박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형우는 39가 된다. 첫번째 9에서 하나씩 다음 9로 이어지는 동안 시간에 가려지고 잊힌 기억들이 되살아나 39는 다시 형우가 된다. 

" 프리다이빙에서 가장 중요한 것
절대 혼자서 물에 들어가지 않는다.
반드시 버디와 함께할 것. 332" 

올해가 가기 전에 다 털어내지 못한 기억이 남아있다면 '말라가의 밤'과 함께 회복하는 호흡을 나눠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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